[취재후] 계속되는 폐비닐 대란…EPR 손질이 근본해법

입력 2018.04.17 (16:38) 수정 2018.04.1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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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폐비닐 대란…단순 지원책만으론 한계

지난달 말부터 수도권 아파트단지에서 표면화된 폐비닐 수거 거부사태가 벌써 보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폐비닐이 쌓이면서 시민들의 불편도 점점 커졌는데요. 지난 11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재활용 정책을 총괄하는 김은경 환경부 장관을 질책하기도 했죠.

발등에 불이 떨어진 환경부와 자치단체가 신경 쓰고 있는 건 일단 당장 쌓인 폐비닐 수거가 이뤄지도록 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 재활용 선별업체들의 이물질 소각비용을 줄여주는 등 폐기물 단가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업체들을 지원하면서 한편으론 설득도 하고 있죠. 아파트 단지와 재활용 수거 업체가 맺은 수거 계약 단가를 조정하는 것도 업체에 대한 지원 방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것조차 여의치 않은 곳은 시·군·구가 직접 거둬가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환경부와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열심히 노력하고는 있지만 완전한 사태 해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물론 발등의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근본적인 해법의 모색 역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EPR)?

폐비닐 대란의 근본적인 해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이른바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제도의 손질입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는 말 그대로 어떤 제품을 생산한 생산자(업체)가 만든 제품을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다 쓴 제품의 수거와 재활용까지 책임지도록 한 제도입니다. 국가 자원순환정책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제도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대부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방법이 조금씩 다릅니다. 쉽게 말해, 생산자들은 어떻게 얼마나 책임을 지는지 조금씩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경우 일종의 실적제로 운영됩니다. 생산자들이 직접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량에 따라 돈을 내면 그 돈을 재활용 업체들에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생산자들이 내는 돈을 '분담금'이라고 합니다. 이 돈을 걷고 관리하는 건 포장재 재활용사업공제조합과 순환자원유통자원센터입니다.


포장재 조합과 유통자원센터는 생산자들이 낸 '분담금'을 걷어 재활용 선별·처리업체에 '지원금'으로 지급합니다. 지원금을 받는 재활용 업체들이 생산자들 대신 재활용을 책임지는 건데요. 업체들이 품목별로 처리한 재활용품의 실적을 생산업체들이 사는 셈입니다. 금액으로는 얼마나 될까요? 지난해 생산업체들이 낸 재활용 분담금 총액은 1,666억여 원입니다. 이 가운데 1,348억이 지원금 명목으로 재활용 업체들에 지급됐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합성수지(플라스틱)만 봤을 때는 분담금이 1,346억여 원, 지원금이 1,100억여 원 정도 됩니다.

액수가 많다고 느껴지시나요? 사실상 이 정도의 분담금으로 재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을 면제받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특히 재활용 처리 과정에서 부가가치 창출이 어려운, 다시 말해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합성수지(플라스틱) 폐기물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합니다. 폐비닐 대란에 직면한 상황에서 결국 생산자의 책임을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입니다.

현행 EPR 품목별 의무율에 따른 책임만 지고 있습니다.

책임을 어떻게 늘려야 할지 자세한 내용을 좀 더 알아볼까요. 일단 한국의 현행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서 생산자들의 책임은 제한적입니다. 생산한 제품 100%에 대해서 재활용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품목별로 의무율에 따라 책임을 집니다. 의무율은 비닐(필름)의 경우 65.3%, 단일재질 용기류 79.6%, 스티로폼 80.7%, 페트병 81.8%인데요. 쉽게 말해 생산된 비닐이 100장이란 65장만 재활용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이 의무율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만 생산자들이 부담금을 추가로 내는데요. 이 재활용의무율을 높이면 생산자의 책임도 커지겠죠.

현행 EPR ② 매출 10억 미만인 생산 업체는 책임이 없습니다.

현행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서 매출이 10억 미만인 생산 업체들은 아예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물론 영세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긴 한데요. 문제는 이런 업체들의 현황파악조차 쉽지 않다는 겁니다. 생산자들의 신고가 의무가 아니다 보니 관련 업무를 대행하는 한국환경공단이 주먹구구식으로 현황을 파악하기 때문인데요. 매출이 10억 원을 넘기고도 일부러 신고를 안 할 경우 이를 잡아낼 방법이 사실상 없는 셈입니다. 영세업자들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면제 매출기준을 유지하더라도, 철저한 현황 파악이 필요해 보입니다. 국세청의 세무 자료 등을 활용할 수 있다면 더 엄격한 관리가 가능하겠지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대상 품목 늘려야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대상 품목에서 빠져있는 사각을 없애는 것도 필요합니다. 배달 때 제품 포장이나 가정집에서 방한용으로 많이 쓰이는 에어캡 비닐(일명 뽁뽁이)은 '포장재'의 성격이 애매하다는 이유로 재활용 책임 대상 품목에서 빠져 있는데요. 비닐 지퍼백과 차량 덮개용 비닐도 마찬가지로 제외된 품목입니다. 비닐이 아닌 품목 중에서는 애완용 사료 캔과 상당수의 차량용 제품들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제품들은 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 기반의 재활용 시장 구조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 품목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렇게 생산자의 책임을 늘리면, 많아진 분담금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납니다. 이번 중국의 폐기물 금수조치 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급격한 폐기물 가격 변동이 있을 경우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예비비를 편성할 수도 있고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재활용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각종 재활용 신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원활한 폐기물 수거와 재활용률 증진에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손질이 모든 재활용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당장 쓰레기통이 넘치는 것만 신경 쓰다가, 근본적인 해법에 대한 고민을 놓치게 된다면 언제든 쓰레기 대란은 재발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제도 개선에 대한 노력이 이뤄져야 할 이유입니다.

[연관기사][뉴스9] ‘재활용 대란’ 막으려면?…“생산자 책임 강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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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7 16:38:26
    • 수정2018-04-17 18:11:18
    취재후·사건후

계속되는 폐비닐 대란…단순 지원책만으론 한계

지난달 말부터 수도권 아파트단지에서 표면화된 폐비닐 수거 거부사태가 벌써 보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폐비닐이 쌓이면서 시민들의 불편도 점점 커졌는데요. 지난 11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재활용 정책을 총괄하는 김은경 환경부 장관을 질책하기도 했죠.

발등에 불이 떨어진 환경부와 자치단체가 신경 쓰고 있는 건 일단 당장 쌓인 폐비닐 수거가 이뤄지도록 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 재활용 선별업체들의 이물질 소각비용을 줄여주는 등 폐기물 단가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업체들을 지원하면서 한편으론 설득도 하고 있죠. 아파트 단지와 재활용 수거 업체가 맺은 수거 계약 단가를 조정하는 것도 업체에 대한 지원 방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것조차 여의치 않은 곳은 시·군·구가 직접 거둬가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환경부와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열심히 노력하고는 있지만 완전한 사태 해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물론 발등의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근본적인 해법의 모색 역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EPR)?

폐비닐 대란의 근본적인 해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이른바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제도의 손질입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는 말 그대로 어떤 제품을 생산한 생산자(업체)가 만든 제품을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다 쓴 제품의 수거와 재활용까지 책임지도록 한 제도입니다. 국가 자원순환정책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제도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대부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방법이 조금씩 다릅니다. 쉽게 말해, 생산자들은 어떻게 얼마나 책임을 지는지 조금씩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경우 일종의 실적제로 운영됩니다. 생산자들이 직접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량에 따라 돈을 내면 그 돈을 재활용 업체들에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생산자들이 내는 돈을 '분담금'이라고 합니다. 이 돈을 걷고 관리하는 건 포장재 재활용사업공제조합과 순환자원유통자원센터입니다.


포장재 조합과 유통자원센터는 생산자들이 낸 '분담금'을 걷어 재활용 선별·처리업체에 '지원금'으로 지급합니다. 지원금을 받는 재활용 업체들이 생산자들 대신 재활용을 책임지는 건데요. 업체들이 품목별로 처리한 재활용품의 실적을 생산업체들이 사는 셈입니다. 금액으로는 얼마나 될까요? 지난해 생산업체들이 낸 재활용 분담금 총액은 1,666억여 원입니다. 이 가운데 1,348억이 지원금 명목으로 재활용 업체들에 지급됐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합성수지(플라스틱)만 봤을 때는 분담금이 1,346억여 원, 지원금이 1,100억여 원 정도 됩니다.

액수가 많다고 느껴지시나요? 사실상 이 정도의 분담금으로 재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을 면제받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특히 재활용 처리 과정에서 부가가치 창출이 어려운, 다시 말해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합성수지(플라스틱) 폐기물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합니다. 폐비닐 대란에 직면한 상황에서 결국 생산자의 책임을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입니다.

현행 EPR 품목별 의무율에 따른 책임만 지고 있습니다.

책임을 어떻게 늘려야 할지 자세한 내용을 좀 더 알아볼까요. 일단 한국의 현행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서 생산자들의 책임은 제한적입니다. 생산한 제품 100%에 대해서 재활용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품목별로 의무율에 따라 책임을 집니다. 의무율은 비닐(필름)의 경우 65.3%, 단일재질 용기류 79.6%, 스티로폼 80.7%, 페트병 81.8%인데요. 쉽게 말해 생산된 비닐이 100장이란 65장만 재활용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이 의무율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만 생산자들이 부담금을 추가로 내는데요. 이 재활용의무율을 높이면 생산자의 책임도 커지겠죠.

현행 EPR ② 매출 10억 미만인 생산 업체는 책임이 없습니다.

현행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서 매출이 10억 미만인 생산 업체들은 아예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물론 영세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긴 한데요. 문제는 이런 업체들의 현황파악조차 쉽지 않다는 겁니다. 생산자들의 신고가 의무가 아니다 보니 관련 업무를 대행하는 한국환경공단이 주먹구구식으로 현황을 파악하기 때문인데요. 매출이 10억 원을 넘기고도 일부러 신고를 안 할 경우 이를 잡아낼 방법이 사실상 없는 셈입니다. 영세업자들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면제 매출기준을 유지하더라도, 철저한 현황 파악이 필요해 보입니다. 국세청의 세무 자료 등을 활용할 수 있다면 더 엄격한 관리가 가능하겠지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대상 품목 늘려야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대상 품목에서 빠져있는 사각을 없애는 것도 필요합니다. 배달 때 제품 포장이나 가정집에서 방한용으로 많이 쓰이는 에어캡 비닐(일명 뽁뽁이)은 '포장재'의 성격이 애매하다는 이유로 재활용 책임 대상 품목에서 빠져 있는데요. 비닐 지퍼백과 차량 덮개용 비닐도 마찬가지로 제외된 품목입니다. 비닐이 아닌 품목 중에서는 애완용 사료 캔과 상당수의 차량용 제품들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제품들은 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 기반의 재활용 시장 구조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 품목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렇게 생산자의 책임을 늘리면, 많아진 분담금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납니다. 이번 중국의 폐기물 금수조치 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급격한 폐기물 가격 변동이 있을 경우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예비비를 편성할 수도 있고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재활용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각종 재활용 신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원활한 폐기물 수거와 재활용률 증진에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손질이 모든 재활용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당장 쓰레기통이 넘치는 것만 신경 쓰다가, 근본적인 해법에 대한 고민을 놓치게 된다면 언제든 쓰레기 대란은 재발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제도 개선에 대한 노력이 이뤄져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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