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댓글에도 ‘출렁’…댓글 조작의 심리학

입력 2018.04.18 (08:02) 수정 2018.04.1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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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댓글에도 ‘출렁’…댓글 조작의 심리학

근거 없는 댓글에도 ‘출렁’…댓글 조작의 심리학

댓글 조작에 국정원과 군을 비롯해 경찰과 민간인까지 광범위하게 가담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언론사나 포털을 통해 접하는 기사에는 많게는 수만 개의 댓글과 반응이 달린다. 이를 통해 메인 페이지에 노출될 수 있고 댓글을 통한 여론몰이도 가능해 그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온라인 정치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입증됐다. 그러나 그 부작용으로 특정 정치인에 대한 조작된 댓글을 대량으로 퍼뜨리는 '댓글 알바'가 등장했다. 과연 전혀 근거가 없고 논리도 부족한 댓글에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일이 가능할까?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실정치에서 '매우 그렇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통계적인 진실보다 주변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하고 기사 자체보다 댓글을 보고 진실을 추론하는 경향이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공감을 많이 받은 베스트 댓글에는 동조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취재진이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도 기사를 보기 전에 댓글을 본다거나 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에 신뢰감이 든다고 답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댓글이 정치인에 대한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논문을 발표했다.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댓글이 정치인에 대한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논문을 발표했다.

타당성과 무관하게 '출렁'이는 마음

전우영 교수팀은 ‘인터넷 댓글이 정치인에 대한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보기로 했다. 실험 참가자 177명을 대상으로 '국회의원 000'라는 익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키, 몸무게 같은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이와 함께 포털 사이트에서 수집한 그 정치인에 대한 실제 댓글을 보여줬다.

댓글에는 "우리나라 정치인 중 최고" "화려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시는 모습에 팬이 되었습니다" 같은 긍정적인 내용과 "참 변하지 않고 사고 치는 구나" "제발 나오지 마라! 나라 망할라" 같은 부정적인 내용으로 구성했다. 전 교수는 기존에 알고 있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면 선입견이 작용하기 때문에 익명의 이름과 기본적인 정보만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또 온라인상에도 나름 논리적인 댓글이 있기 때문에 정치인의 행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포함된 댓글도 포함했다. 실험을 처음 설계할 때는 타당하고 논리적인 댓글에 사람들이 더 크게 영향받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타당성의 정도와 무관하게 사람들은 긍정적인 댓글에는 긍정적으로, 부정적인 댓글에는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타당성의 정도가 매우 낮은 아무 근거 없는 댓글에도 정치인에 대한 호감도가 쭉쭉 늘었다가 팍팍 줄어드는 것이 확인됐다. 사소해 보이는 댓글이라도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부정적인 댓글을 본 실험 참가자들은 투표 의향 역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댓글' 보는 순간 '진실'로 받아들이는 뇌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데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전 교수는 인간의 정보 처리 과정에 그 답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어떤 글을 접하면 먼저 그 내용을 파악하는 입력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내용이 근거가 없고 잘못됐다는 정정 반응은 그 다음에야 일어난다. 정정 과정은 자동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만약 피곤하거나 시간이 없다면 타당성 없는 댓글도 그대로 수용하고 정치적 의사 결정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전 교수는 분석했다.

충남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조건을 추가했다.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댓글 밑에 '댓글 알바에 의해 조작된 정보였다'고 정정 보도를 제공한 것이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고 투표 의향도 악성 댓글을 보기 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교수는 잘못된 뉴스나 댓글 때문에 사람들의 판단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면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정정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거 다른 연구에서는 한번 형성된 정치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많았지만 이번 연구는 왜곡된 정보의 수정이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면을 보여줬다.

과거 사람과 사람의 입으로 전달되던 정보가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댓글을 통해 무한에 가깝게 확장하고 있다. 사회과학에서는 '온라인 구전(口傳)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르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펼쳐놓을 수 있는 공간에 사는 셈이다. '댓글 알바'에 '댓글 부대', '댓글 공작'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인터넷 댓글이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만큼 자신이 정치인에 대한 댓글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번쯤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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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거 없는 댓글에도 ‘출렁’…댓글 조작의 심리학
    • 입력 2018-04-18 08:02:23
    • 수정2018-04-18 09:23:19
    취재K
댓글 조작에 국정원과 군을 비롯해 경찰과 민간인까지 광범위하게 가담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언론사나 포털을 통해 접하는 기사에는 많게는 수만 개의 댓글과 반응이 달린다. 이를 통해 메인 페이지에 노출될 수 있고 댓글을 통한 여론몰이도 가능해 그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온라인 정치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입증됐다. 그러나 그 부작용으로 특정 정치인에 대한 조작된 댓글을 대량으로 퍼뜨리는 '댓글 알바'가 등장했다. 과연 전혀 근거가 없고 논리도 부족한 댓글에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일이 가능할까?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실정치에서 '매우 그렇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통계적인 진실보다 주변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하고 기사 자체보다 댓글을 보고 진실을 추론하는 경향이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공감을 많이 받은 베스트 댓글에는 동조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취재진이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도 기사를 보기 전에 댓글을 본다거나 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에 신뢰감이 든다고 답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댓글이 정치인에 대한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논문을 발표했다. 타당성과 무관하게 '출렁'이는 마음 전우영 교수팀은 ‘인터넷 댓글이 정치인에 대한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보기로 했다. 실험 참가자 177명을 대상으로 '국회의원 000'라는 익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키, 몸무게 같은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이와 함께 포털 사이트에서 수집한 그 정치인에 대한 실제 댓글을 보여줬다. 댓글에는 "우리나라 정치인 중 최고" "화려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시는 모습에 팬이 되었습니다" 같은 긍정적인 내용과 "참 변하지 않고 사고 치는 구나" "제발 나오지 마라! 나라 망할라" 같은 부정적인 내용으로 구성했다. 전 교수는 기존에 알고 있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면 선입견이 작용하기 때문에 익명의 이름과 기본적인 정보만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또 온라인상에도 나름 논리적인 댓글이 있기 때문에 정치인의 행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포함된 댓글도 포함했다. 실험을 처음 설계할 때는 타당하고 논리적인 댓글에 사람들이 더 크게 영향받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타당성의 정도와 무관하게 사람들은 긍정적인 댓글에는 긍정적으로, 부정적인 댓글에는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타당성의 정도가 매우 낮은 아무 근거 없는 댓글에도 정치인에 대한 호감도가 쭉쭉 늘었다가 팍팍 줄어드는 것이 확인됐다. 사소해 보이는 댓글이라도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부정적인 댓글을 본 실험 참가자들은 투표 의향 역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댓글' 보는 순간 '진실'로 받아들이는 뇌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데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전 교수는 인간의 정보 처리 과정에 그 답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어떤 글을 접하면 먼저 그 내용을 파악하는 입력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내용이 근거가 없고 잘못됐다는 정정 반응은 그 다음에야 일어난다. 정정 과정은 자동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만약 피곤하거나 시간이 없다면 타당성 없는 댓글도 그대로 수용하고 정치적 의사 결정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전 교수는 분석했다. 충남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조건을 추가했다.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댓글 밑에 '댓글 알바에 의해 조작된 정보였다'고 정정 보도를 제공한 것이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고 투표 의향도 악성 댓글을 보기 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교수는 잘못된 뉴스나 댓글 때문에 사람들의 판단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면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정정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거 다른 연구에서는 한번 형성된 정치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많았지만 이번 연구는 왜곡된 정보의 수정이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면을 보여줬다. 과거 사람과 사람의 입으로 전달되던 정보가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댓글을 통해 무한에 가깝게 확장하고 있다. 사회과학에서는 '온라인 구전(口傳)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르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펼쳐놓을 수 있는 공간에 사는 셈이다. '댓글 알바'에 '댓글 부대', '댓글 공작'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인터넷 댓글이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만큼 자신이 정치인에 대한 댓글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번쯤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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