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미궁에 빠진 사건…‘걸음걸이’로 꼼짝 마

입력 2018.04.20 (08:31) 수정 2018.04.2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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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시청자 여러분은 방금 제 걸음걸이에서 혹시 특이한 특징을 발견하셨나요?

다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잘 모르는 것이 저마다 가진 고유의 걸음걸이 특성입니다.

옷을 갈아입거나 얼굴을 가려도 쉽게 숨길 수 없는 것이 걸음걸이.

여기에 미궁에 빠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의 유일한 단서는 범죄 현장에 남은 CCTV.

하지만, 용의자 추적에 어려움을 겪어 수사가 넉달을 넘겼던 이 사건의 결정적 단서는 바로 '걸음걸이'였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부산의 한 시장입니다.

도로 갓길에 정차된 트럭 한 대.

쌓여있는 박스를 차로 옮겨 싣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그 때, 트럭 옆을 지나가는 한 남성.

지금부터 이 남성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한쪽 주머니에 손을 넣고 팔을 휘져으며 가던 남성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이 뭔가 이상합니다.

이 남성,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트럭 쪽으로 접근합니다.

트럭 운전석 쪽으로 사라진 남성. 과연 어디로 갔을까요?

그 날 오후, 인근 경찰서에 절도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신고자는 바로 앞서 보셨던 화물 트럭의 운전기사였습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시장 앞에서 영업용 화물차 기사가 화물을 싣는 과정에 일하고 있는 틈을 이용해서 화물차에 들어가서 그 안에 들어있던 가방을 들고 나간 것입니다.”]

트럭 기사가 잃어버렸다고 신고한 것은 차 안에 놓아뒀던 가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가방이 아니었습니다.

안에는 무려 7천8백만 원 상당의 현금이 들어있었습니다.

트럭 기사가 낡은 트럭을 바꾸기 위해 5년 동안 모은 돈이 갑자기 사라진 겁니다.

[절도 피해자/음성변조 : “차 새로 사려고 그랬어요. 많이 절망적이었죠. 못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많이 힘들었죠.”]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피해자가 화물차 영업을 하는 기사인데 화물차를 바꿀 때가 됐는데 그게 급매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급매를 빨리 잡을 수 있으려면 현금을 항상 소지하고 있어야 됐기 때문에 차를 바꾸기 위해서 (현금을) 계속 보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찰은 트럭이 주차돼 있었던 인근의 CCTV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의 유력한 용의자가 등장합니다.

앞서 보셨던 지나가던 한 남성.

방향을 틀어 운전석 쪽으로 갔던 그 남성은 50여초 만에 차 앞쪽으로 나타났는데, 가방을 들고 있었던 겁니다.

경찰은 즉시 용의자의 행방을 추적했습니다.

한 달 동안 경찰이 찾아낸 인근의 CCTV는 모두 40여 대.

하지만, 해당 남성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택시를 타고 00백화점 앞에 내렸습니다. 거기까지 저희가 추적을 했지만 그 이후로 CCTV가 잘 잡히지 않고 너무 골목골목이 많다 보니까 거기서 놓친 것 같습니다.”]

바뀐 인상착의에다 CCTV인 탓에 얼굴을 확인하기란 더욱 쉽지 않았습니다.

이때, 하나의 단서라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CCTV를 돌려보던 경찰의 눈에 포착된 게 있습니다.

바로 남성의 걸음걸입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자세가 앞으로 좀 구부러져 목이 앞으로 구부러지고 어깨가 구부러진 상태에서 걷는 사람인데….”]

하지만 넉 달 넘게 이어진 수사에도 용의자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았고, 사건은 결국 미궁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던 지난 17일, 넉달 넘게 용의자를 추적해왔던 홍 경사가 퇴근하던 길, 한 남성이 포착됐습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저는 저쪽으로 가고 있었고 상대방은 이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쓱 마주쳤는데 비슷한 생각이 들어서….”]

구부정한 걸음으로 지나가는 남성을 보는 순간, CCTV속 용의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범행 당일과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검은색 가방을 들고있는 남성의 걸음걸이 만큼은 똑같았습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그때 CCTV를 워낙 많이 본 상태라 그 사람의 얼굴이라든지 인상착의, 걸음걸이가 워낙 비슷해서 제가 그 모습이 딱 떠올랐습니다.”]

경찰은 곧바로 동료 경찰관을 호출했고, 곧바로 100여m를 뒤따라 간 뒤 해당 남성을 불심검문합니다.

가방을 보여달라는 경찰에게 남성은 범행사실을 시인했습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가방 안에 현금 5만 원 짜리가 몇 다발 정도 들어있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까 범행 후 쓰다 남은 6천3백만 원 정도가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절도 피해자/음성변조 : “많이 고마웠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만큼 신경 써서 해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일정한 거주지 없이 모텔과 찜질방을 전전하며 완전범죄를 꿈꿨던 남성은 결국 자신의 ‘걸음걸이’에 덜미를 잡힌 겁니다.

특유의 걸음걸이가 사건 해결의 결정적 역할을 한 사건은 지난 1월에도 있었습니다.

서울의 한 지하상가.

손님들로 빼곡한 상가에서 진열된 옷을 보는가 하더니 다른 손님이 벗어둔 외투에서 눈깜짝할 사이 휴대전화를 빼고 자리를 뜹니다.

한달 여 동안 휴대전화 8대를 훔친 70대 김 모 씨 역시 자신의 걸음걸이 때문에 경찰에 덜미가 잡혔습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인상착의가 나오는 사건 같은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지나더라도 반드시 경찰이 잡게 되어있습니다.”]

경찰은 이미 지난 2015년부터 걸음걸이를 과학수사에 활용하기 위해 연구 분석하고 있습니다.

400만 대가 넘는 촘촘한 CCTV 망이 있는 환경에서 '걸음걸이'는 범죄 용의자가 바꿀 수 없는 결정적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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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미궁에 빠진 사건…‘걸음걸이’로 꼼짝 마
    • 입력 2018-04-20 08:32:24
    • 수정2018-04-20 08:5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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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시청자 여러분은 방금 제 걸음걸이에서 혹시 특이한 특징을 발견하셨나요?

다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잘 모르는 것이 저마다 가진 고유의 걸음걸이 특성입니다.

옷을 갈아입거나 얼굴을 가려도 쉽게 숨길 수 없는 것이 걸음걸이.

여기에 미궁에 빠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의 유일한 단서는 범죄 현장에 남은 CCTV.

하지만, 용의자 추적에 어려움을 겪어 수사가 넉달을 넘겼던 이 사건의 결정적 단서는 바로 '걸음걸이'였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부산의 한 시장입니다.

도로 갓길에 정차된 트럭 한 대.

쌓여있는 박스를 차로 옮겨 싣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그 때, 트럭 옆을 지나가는 한 남성.

지금부터 이 남성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한쪽 주머니에 손을 넣고 팔을 휘져으며 가던 남성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이 뭔가 이상합니다.

이 남성,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트럭 쪽으로 접근합니다.

트럭 운전석 쪽으로 사라진 남성. 과연 어디로 갔을까요?

그 날 오후, 인근 경찰서에 절도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신고자는 바로 앞서 보셨던 화물 트럭의 운전기사였습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시장 앞에서 영업용 화물차 기사가 화물을 싣는 과정에 일하고 있는 틈을 이용해서 화물차에 들어가서 그 안에 들어있던 가방을 들고 나간 것입니다.”]

트럭 기사가 잃어버렸다고 신고한 것은 차 안에 놓아뒀던 가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가방이 아니었습니다.

안에는 무려 7천8백만 원 상당의 현금이 들어있었습니다.

트럭 기사가 낡은 트럭을 바꾸기 위해 5년 동안 모은 돈이 갑자기 사라진 겁니다.

[절도 피해자/음성변조 : “차 새로 사려고 그랬어요. 많이 절망적이었죠. 못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많이 힘들었죠.”]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피해자가 화물차 영업을 하는 기사인데 화물차를 바꿀 때가 됐는데 그게 급매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급매를 빨리 잡을 수 있으려면 현금을 항상 소지하고 있어야 됐기 때문에 차를 바꾸기 위해서 (현금을) 계속 보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찰은 트럭이 주차돼 있었던 인근의 CCTV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의 유력한 용의자가 등장합니다.

앞서 보셨던 지나가던 한 남성.

방향을 틀어 운전석 쪽으로 갔던 그 남성은 50여초 만에 차 앞쪽으로 나타났는데, 가방을 들고 있었던 겁니다.

경찰은 즉시 용의자의 행방을 추적했습니다.

한 달 동안 경찰이 찾아낸 인근의 CCTV는 모두 40여 대.

하지만, 해당 남성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택시를 타고 00백화점 앞에 내렸습니다. 거기까지 저희가 추적을 했지만 그 이후로 CCTV가 잘 잡히지 않고 너무 골목골목이 많다 보니까 거기서 놓친 것 같습니다.”]

바뀐 인상착의에다 CCTV인 탓에 얼굴을 확인하기란 더욱 쉽지 않았습니다.

이때, 하나의 단서라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CCTV를 돌려보던 경찰의 눈에 포착된 게 있습니다.

바로 남성의 걸음걸입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자세가 앞으로 좀 구부러져 목이 앞으로 구부러지고 어깨가 구부러진 상태에서 걷는 사람인데….”]

하지만 넉 달 넘게 이어진 수사에도 용의자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았고, 사건은 결국 미궁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던 지난 17일, 넉달 넘게 용의자를 추적해왔던 홍 경사가 퇴근하던 길, 한 남성이 포착됐습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저는 저쪽으로 가고 있었고 상대방은 이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쓱 마주쳤는데 비슷한 생각이 들어서….”]

구부정한 걸음으로 지나가는 남성을 보는 순간, CCTV속 용의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범행 당일과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검은색 가방을 들고있는 남성의 걸음걸이 만큼은 똑같았습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그때 CCTV를 워낙 많이 본 상태라 그 사람의 얼굴이라든지 인상착의, 걸음걸이가 워낙 비슷해서 제가 그 모습이 딱 떠올랐습니다.”]

경찰은 곧바로 동료 경찰관을 호출했고, 곧바로 100여m를 뒤따라 간 뒤 해당 남성을 불심검문합니다.

가방을 보여달라는 경찰에게 남성은 범행사실을 시인했습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가방 안에 현금 5만 원 짜리가 몇 다발 정도 들어있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까 범행 후 쓰다 남은 6천3백만 원 정도가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절도 피해자/음성변조 : “많이 고마웠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만큼 신경 써서 해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일정한 거주지 없이 모텔과 찜질방을 전전하며 완전범죄를 꿈꿨던 남성은 결국 자신의 ‘걸음걸이’에 덜미를 잡힌 겁니다.

특유의 걸음걸이가 사건 해결의 결정적 역할을 한 사건은 지난 1월에도 있었습니다.

서울의 한 지하상가.

손님들로 빼곡한 상가에서 진열된 옷을 보는가 하더니 다른 손님이 벗어둔 외투에서 눈깜짝할 사이 휴대전화를 빼고 자리를 뜹니다.

한달 여 동안 휴대전화 8대를 훔친 70대 김 모 씨 역시 자신의 걸음걸이 때문에 경찰에 덜미가 잡혔습니다.

[홍재명/부산 중부경찰서 강력1팀 : “인상착의가 나오는 사건 같은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지나더라도 반드시 경찰이 잡게 되어있습니다.”]

경찰은 이미 지난 2015년부터 걸음걸이를 과학수사에 활용하기 위해 연구 분석하고 있습니다.

400만 대가 넘는 촘촘한 CCTV 망이 있는 환경에서 '걸음걸이'는 범죄 용의자가 바꿀 수 없는 결정적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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