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서비스, 장애인에게는 ‘높은 문턱’

입력 2018.04.20 (10:03) 수정 2018.04.2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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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서비스, 장애인에게는 ‘높은 문턱’

금융 서비스, 장애인에게는 ‘높은 문턱’

◆ 공증 있어야 대출 받을 수 있는 시각 장애인


전북 군산에서 20년째 안마사로 일하는 김병길 씨는 최근 4천만 원의 전세 자금을 대출하기 위해서 근처 은행을 찾았다. 안마사로 일하면서 꾸준한 소득을 올리고 있고, 신용등급도 양호하기 때문에 대출에 문제가 없다고 여긴 김 씨에게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은행은 주민등록등본과 소득 증명원 등 모든 서류에 공증을 받아 오라고 요구했다. 시각장애인인 김 씨가 제출한 서류의 내용을 본인이 제대로 인식하고 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 씨는 은행이 장애인 고객을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과 함께 관공서에 가서 뗀 서류입니다. 정 못 믿겠다면 은행 직원이 서류 내용을 읽어주며 내용이 맞는지 확인할 수도 있는데 왜 돈을 들여서 공증을 받아오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내부 조항도 없는데 공증 요구해


해당 은행은 시각 장애인인 김 씨와의 분쟁 등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공증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최악의 경우 장애인을 이용한 대출 사기 등 범죄에 연루됐을 상황도 대비해 근거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장애인의 대출 심사에서 공증을 받아야하는 내부 조항이 있냐는 질의에는 그런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혹시나 불거질지 모르는 책임을 덜기 위해 명확한 근거도 없이 관행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 시각 장애인에게 법정 후견인 요구도


김 씨만의 사례가 아니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시각장애인 이의광 씨도 지난 해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 씨 또한 햇살론 대출을 위해 은행을 방문해 대출 심사를 받던 중 장벽에 부딪혔다. 은행은 '법정 후견인'을 데려오라고 이 씨에게 요구했다. 이 씨 또한 이를 불쾌한 경험으로 떠올린다. 현행 민법에서는 친권으로 보호를 받기 어려운 미성년자나 금치산자, 한정치산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후견인 제도를 마련했는데 이에 해당하지도 않는 이 씨에게 후견인을 데려오라고 요구한 셈이다.

◆ 상품 가입 거절 등 다양한 차별 존재


금융사들의 장애인 차별 실태는 어떨까?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실태가 여실히 드러난다. 자료를 보면 보험가입, 통장개설, 카드발급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금융상품가입 거절당한 사례가 70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거절 사유에 대한 정확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가입을 포기해야한다. 또, 금융 상품 가입시 서류작성 및 본인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가입을 거절당했다는 사례도 나왔다.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경사로나 엘레베이터 탑승이 어려운 2층 지점 등 직접 창구를 방문하여 적절한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여건 등 일상적인 활동에 제약을 두는 불편 등 다양한 사례가 포함됐다.

◆ 장애인 차별 금지 조항 있는 금융사 4곳 중 1곳뿐


공익 변호사들의 모임인 '희망을 만드는 법'의 김재왕 변호사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의 제공자는 금전대출, 신용카드발급, 보험가입 등 각종 금융상품과 서비스 제공에 있어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분리·배제·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금융사들의 이런 행태는 명백한 차별 행위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장애인 차별 금지 규정을 갖추고 금융사는 조사대상 64개사 가운데 26.6퍼센트에 그친다. 국내 금융사가 내는 광고마다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말하고 있지만, 장애인에게는 아직 그 문턱이 높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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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 서비스, 장애인에게는 ‘높은 문턱’
    • 입력 2018-04-20 10:03:33
    • 수정2018-04-20 15:25:04
    취재K
◆ 공증 있어야 대출 받을 수 있는 시각 장애인


전북 군산에서 20년째 안마사로 일하는 김병길 씨는 최근 4천만 원의 전세 자금을 대출하기 위해서 근처 은행을 찾았다. 안마사로 일하면서 꾸준한 소득을 올리고 있고, 신용등급도 양호하기 때문에 대출에 문제가 없다고 여긴 김 씨에게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은행은 주민등록등본과 소득 증명원 등 모든 서류에 공증을 받아 오라고 요구했다. 시각장애인인 김 씨가 제출한 서류의 내용을 본인이 제대로 인식하고 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 씨는 은행이 장애인 고객을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과 함께 관공서에 가서 뗀 서류입니다. 정 못 믿겠다면 은행 직원이 서류 내용을 읽어주며 내용이 맞는지 확인할 수도 있는데 왜 돈을 들여서 공증을 받아오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내부 조항도 없는데 공증 요구해


해당 은행은 시각 장애인인 김 씨와의 분쟁 등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공증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최악의 경우 장애인을 이용한 대출 사기 등 범죄에 연루됐을 상황도 대비해 근거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장애인의 대출 심사에서 공증을 받아야하는 내부 조항이 있냐는 질의에는 그런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혹시나 불거질지 모르는 책임을 덜기 위해 명확한 근거도 없이 관행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 시각 장애인에게 법정 후견인 요구도


김 씨만의 사례가 아니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시각장애인 이의광 씨도 지난 해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 씨 또한 햇살론 대출을 위해 은행을 방문해 대출 심사를 받던 중 장벽에 부딪혔다. 은행은 '법정 후견인'을 데려오라고 이 씨에게 요구했다. 이 씨 또한 이를 불쾌한 경험으로 떠올린다. 현행 민법에서는 친권으로 보호를 받기 어려운 미성년자나 금치산자, 한정치산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후견인 제도를 마련했는데 이에 해당하지도 않는 이 씨에게 후견인을 데려오라고 요구한 셈이다.

◆ 상품 가입 거절 등 다양한 차별 존재


금융사들의 장애인 차별 실태는 어떨까?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실태가 여실히 드러난다. 자료를 보면 보험가입, 통장개설, 카드발급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금융상품가입 거절당한 사례가 70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거절 사유에 대한 정확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가입을 포기해야한다. 또, 금융 상품 가입시 서류작성 및 본인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가입을 거절당했다는 사례도 나왔다.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경사로나 엘레베이터 탑승이 어려운 2층 지점 등 직접 창구를 방문하여 적절한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여건 등 일상적인 활동에 제약을 두는 불편 등 다양한 사례가 포함됐다.

◆ 장애인 차별 금지 조항 있는 금융사 4곳 중 1곳뿐


공익 변호사들의 모임인 '희망을 만드는 법'의 김재왕 변호사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의 제공자는 금전대출, 신용카드발급, 보험가입 등 각종 금융상품과 서비스 제공에 있어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분리·배제·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금융사들의 이런 행태는 명백한 차별 행위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장애인 차별 금지 규정을 갖추고 금융사는 조사대상 64개사 가운데 26.6퍼센트에 그친다. 국내 금융사가 내는 광고마다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말하고 있지만, 장애인에게는 아직 그 문턱이 높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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