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3남매 일감몰아주기 제재, 왜 실패했나

입력 2018.04.20 (14:18) 수정 2018.04.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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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3남매 일감몰아주기 제재, 왜 실패했나

한진 3남매 일감몰아주기 제재, 왜 실패했나

2016년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발표 내용은 이렇다. 대한항공이 계열회사인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와 내부 거래를 하면서 총수 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정위는 과징금 14억 3000만 원을 부과하고, 대한항공 법인과 조원태 사장을 검찰에 고발한다.

당시 공정위가 밝힌 일감 몰아주기 수법은 다양했다. 대한항공은 자사가 노력해 만들어낸 인터넷 광고 수익을 싸이버스카이가 전부 누리도록 하고, 계약상 받기로 한 통신 판매 수수료를 이유 없이 면제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두 회사를 몰아줬다.

대한항공은 또 유니컨버스에게 콜센터 운영 업무를 위탁한 후 시스템 장비에 대한 시설 사용료와 유지 보수비를 과다하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유니컨버스를 밀어줬다.


대한항공의 이런 비정상적인 거래는 바로 대한항공 3남매(조현아·조원태·조현민)의 돈주머니를 불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기업 내 시스템 통합업체(SI)업체를 설립해 총수 일가의 재산을 불려주는 것은 국내 대기업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한진그룹의 유니컨버스도 바로 그런 회사다. 조양호 한진 회장은 2009년 2월 자신이 보유 중인 유니컨버스 지분 대부분을 외아들인 조원태 사장에게 넘겼다.

이후 대한항공의 유니컨버스 지원은 본격화된다. 콜센터 경험이 전혀 없는 이 회사에 그룹 콜센터 업무를 순차적으로 맡기기 시작한다.

싸이버스카이의 경우 조양호 회장은 2003년까지 이 회사 대주주였지만 본인 지분을 3남매에 ‘사이좋게’ 33.3%씩 넘겼다. 이후 대한항공은 싸이버스카이에게 각종 혜택을 안겼다.

2016년 공정위가 지적하고 검찰 고발까지 이뤄진 이런 한진 총수 일가의 부도덕한 행위는 하지만 어쩐 일인지 지금까지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대한항공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즉각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내 굴지의 로펌이 참여한 이 소송에서 서울고법 행정2부(김용석 부장판사)는 2017년 9월 “공정위는 대한항공에 부과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를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다. 행정 소송에서 패하자 검찰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관련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왜 법원은 대한항공 3남매의 손을 들어줬을까.

법을 보자. 공정거래법 23조2는 대기업들이 특수관계인에게 일감 몰아주기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에 따라 법원은 “공정위가 제출한 증거와 이익 규모로 볼 때 싸이버스카이나 유니컨버스에 귀속된 이익이 '부당한 이익'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즉 재판부는 “공정위가 대한항공과 그 계열사들의 행위를 ‘부당거래’라고 주장하려면 비교 대상이 되는 ‘정상거래’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총수 일가가 거둔 이익이 그룹 규모에 비해 작다는 지적도 했다.

시민단체 "법원이 입법 취지 오해"

그러나 이 판결에 대해 재판부가 국회의 입법 취지를 오해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제의 공정거래법 23조2 규정이 만들어질 당시 2013년 4월 법률안심사소위원회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원 문구는 ‘정당한 이유 없이 특수 관계인에게 경제상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금지한다' 였다. 이 규정이 입법화되면서 막판에 ‘부당한 이익’으로 수정됐다.

박 의원은 "표현이 바뀐 것은 기업이 거래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하는 것처럼 보여서 (입증책임에 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부당한 이익’으로 수정한 것”이라며 “그러나 법원은 마치 ‘부당성 요건’을 신설한 것처럼 오해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당한 이유 없이 특수 관계인에게 직간접적으로 경제상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 자체가 법이 말하는 '부당한 이익'이라는 내용이 법안 심사 자료에 명시돼 있다는 것이 박 의원의 얘기다. 총수 일가에 대해 대한항공이 내부 거래를 통해 10억 이상의 이익을 안겨줬다면 '부당한 이익'으로 보기 충분하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도 논평에서 “박 의원이 공개한 심사자료를 통해 당시 입법 취지는 특수관계인에게 이익을 귀속시켰는지와 그 이익이 부당한지 아닌지가 문제 될 뿐, (법원의 판결처럼) 별도의 부당성 심사를 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며 “당시 정무위원장이 제시한 대안 제안 경위 등을 봐도 법원의 판결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진의 경영권 승계 방식은?

한진그룹의 창업 3세 경영권 승계는 아직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를 통한 3남매 재산 불리기는 2016년 공정위에 발표로 일단 제동이 걸린 상태다. 땅콩 회항 등으로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3남매는 2016년 싸이버스카이 지분을 모두 대한항공에 증여했다. 유니컨버스는 콜센터 운영업무를 한진정보통신에 영업양도했다.

지금으로써는 3남매가 한진그룹을 이어받으려면 조 회장이 가지고 있는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지분을 승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지난해 3 분기 말 보통주를 기준으로 한진칼 지분 17.84%를 보유해 최대주주고, 3남매가 각각 2.3% 정도의 지분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3남매가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을 승계하려면 세금 등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이 때문에 한진칼 배당 확대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될 전망이다.

또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조현민 전무의 경우 항공법에 따라 국적항공사의 등기 임원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한국 국적 회복이 필요한 상황인데, 국적법에 따르면 국적 회복이 거부될 수 있다.

국적법은 법무부장관이 국적회복 신청자에 대해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자' 등의 이유로 국적 회복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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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진 3남매 일감몰아주기 제재, 왜 실패했나
    • 입력 2018-04-20 14:18:39
    • 수정2018-04-20 20:39:32
    취재K
2016년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발표 내용은 이렇다. 대한항공이 계열회사인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와 내부 거래를 하면서 총수 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정위는 과징금 14억 3000만 원을 부과하고, 대한항공 법인과 조원태 사장을 검찰에 고발한다.

당시 공정위가 밝힌 일감 몰아주기 수법은 다양했다. 대한항공은 자사가 노력해 만들어낸 인터넷 광고 수익을 싸이버스카이가 전부 누리도록 하고, 계약상 받기로 한 통신 판매 수수료를 이유 없이 면제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두 회사를 몰아줬다.

대한항공은 또 유니컨버스에게 콜센터 운영 업무를 위탁한 후 시스템 장비에 대한 시설 사용료와 유지 보수비를 과다하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유니컨버스를 밀어줬다.


대한항공의 이런 비정상적인 거래는 바로 대한항공 3남매(조현아·조원태·조현민)의 돈주머니를 불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기업 내 시스템 통합업체(SI)업체를 설립해 총수 일가의 재산을 불려주는 것은 국내 대기업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한진그룹의 유니컨버스도 바로 그런 회사다. 조양호 한진 회장은 2009년 2월 자신이 보유 중인 유니컨버스 지분 대부분을 외아들인 조원태 사장에게 넘겼다.

이후 대한항공의 유니컨버스 지원은 본격화된다. 콜센터 경험이 전혀 없는 이 회사에 그룹 콜센터 업무를 순차적으로 맡기기 시작한다.

싸이버스카이의 경우 조양호 회장은 2003년까지 이 회사 대주주였지만 본인 지분을 3남매에 ‘사이좋게’ 33.3%씩 넘겼다. 이후 대한항공은 싸이버스카이에게 각종 혜택을 안겼다.

2016년 공정위가 지적하고 검찰 고발까지 이뤄진 이런 한진 총수 일가의 부도덕한 행위는 하지만 어쩐 일인지 지금까지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대한항공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즉각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내 굴지의 로펌이 참여한 이 소송에서 서울고법 행정2부(김용석 부장판사)는 2017년 9월 “공정위는 대한항공에 부과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를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다. 행정 소송에서 패하자 검찰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관련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왜 법원은 대한항공 3남매의 손을 들어줬을까.

법을 보자. 공정거래법 23조2는 대기업들이 특수관계인에게 일감 몰아주기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에 따라 법원은 “공정위가 제출한 증거와 이익 규모로 볼 때 싸이버스카이나 유니컨버스에 귀속된 이익이 '부당한 이익'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즉 재판부는 “공정위가 대한항공과 그 계열사들의 행위를 ‘부당거래’라고 주장하려면 비교 대상이 되는 ‘정상거래’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총수 일가가 거둔 이익이 그룹 규모에 비해 작다는 지적도 했다.

시민단체 "법원이 입법 취지 오해"

그러나 이 판결에 대해 재판부가 국회의 입법 취지를 오해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제의 공정거래법 23조2 규정이 만들어질 당시 2013년 4월 법률안심사소위원회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원 문구는 ‘정당한 이유 없이 특수 관계인에게 경제상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금지한다' 였다. 이 규정이 입법화되면서 막판에 ‘부당한 이익’으로 수정됐다.

박 의원은 "표현이 바뀐 것은 기업이 거래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하는 것처럼 보여서 (입증책임에 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부당한 이익’으로 수정한 것”이라며 “그러나 법원은 마치 ‘부당성 요건’을 신설한 것처럼 오해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당한 이유 없이 특수 관계인에게 직간접적으로 경제상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 자체가 법이 말하는 '부당한 이익'이라는 내용이 법안 심사 자료에 명시돼 있다는 것이 박 의원의 얘기다. 총수 일가에 대해 대한항공이 내부 거래를 통해 10억 이상의 이익을 안겨줬다면 '부당한 이익'으로 보기 충분하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도 논평에서 “박 의원이 공개한 심사자료를 통해 당시 입법 취지는 특수관계인에게 이익을 귀속시켰는지와 그 이익이 부당한지 아닌지가 문제 될 뿐, (법원의 판결처럼) 별도의 부당성 심사를 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며 “당시 정무위원장이 제시한 대안 제안 경위 등을 봐도 법원의 판결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진의 경영권 승계 방식은?

한진그룹의 창업 3세 경영권 승계는 아직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를 통한 3남매 재산 불리기는 2016년 공정위에 발표로 일단 제동이 걸린 상태다. 땅콩 회항 등으로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3남매는 2016년 싸이버스카이 지분을 모두 대한항공에 증여했다. 유니컨버스는 콜센터 운영업무를 한진정보통신에 영업양도했다.

지금으로써는 3남매가 한진그룹을 이어받으려면 조 회장이 가지고 있는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지분을 승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지난해 3 분기 말 보통주를 기준으로 한진칼 지분 17.84%를 보유해 최대주주고, 3남매가 각각 2.3% 정도의 지분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3남매가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을 승계하려면 세금 등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이 때문에 한진칼 배당 확대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될 전망이다.

또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조현민 전무의 경우 항공법에 따라 국적항공사의 등기 임원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한국 국적 회복이 필요한 상황인데, 국적법에 따르면 국적 회복이 거부될 수 있다.

국적법은 법무부장관이 국적회복 신청자에 대해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자' 등의 이유로 국적 회복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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