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동수야, 잘 지내니?”

입력 2018.04.21 (09:17) 수정 2018.04.2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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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동수야, 잘 지내니?”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동수야, 잘 지내니?”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봄이다. 비, 바람에 벚꽃의 향연도 일찍 끝났다. 그러나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적어도 '동수 아빠', 정성욱 씨에게는 그렇다.

■ 또다시 잔인한 4월...세 번째 '단식과 삭발'

정성욱 씨는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 2학년 7반 동수 군 아버지다. 4.16 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이기도 하다.

2014년과 2015년 봄. 그는 국회 앞에서 삭발을 하며, 곡기를 끊었다. 처음에는 "빨리 아이들을 찾아달라"는 읍소였고, 두 번째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제발 세월호를 물 위로 올려 달라"는 호소였다.

그리고 2018년, '동수 아빠'는 다시 머리를 밀고,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오늘(21일)로 닷새째다.

▲ 2018년 4월17일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한 '동수 아빠' 정성욱 씨(4.16 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 2018년 4월17일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한 '동수 아빠' 정성욱 씨(4.16 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

4년 만의 정부의 첫 '세월호 희생자 추모식'. 다시 열리는 '2기 특별조사위원회'. 다음 달로 예정된 '선체 직립'. 어느 때보다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는 다시 '단식'이라는 극단을 선택했을까?

■ '진실 규명'의 마지막 기회

세월호 참사 4주기 영결식 다음날. 민낯을 드러낸 채 누워있는 세월호 앞이 분주해졌다. 머리카락이 뭉텅이째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노란 옷을 입은 정성욱 씨였다.

그는 삭발식이 끝나고 단식을 선언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황전원 위원과 선체조사위원회 이동곤 위원 사퇴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정 씨는 "특조위 황전원 위원은 1기 특조위원 시절 이른바 '박근혜 7시간 조사'를 거부하며, 1기 특조위의 조사 활동을 방해했는데, 다시 2기 특조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선조위 이동곤 위원에 대해서는 "2014년 검찰 의뢰로 침몰 원인 실험을 여러 차례 해놓고도 중요한 실험 결과를 은폐한 인물"이라며, "그가 선체조사위원회의 결과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는 것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세월호 선체를 바로 세우는 작업을 앞두고 정 씨가 극단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2기 특조위가 '세월호 진상 규명'의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 때문이다.

단식 닷새째. 정 씨는 "견딜만합니다."라며 애써 웃었다. 고마움의 말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지지해 주는 국민들, 그리고 늘 함께 곁을 지켜주는 또 다른 유가족들에게.

■ '동수 아빠'는 왜, '황전원과 이동곤'을 지목했나?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닷새 앞둔 지난 11일, 2기 특조위 사무실 앞에서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2기 특조위 사무실에 출근하는 황전원 위원, 세월호 유족들은 이를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관련 뉴스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33077)

▲ 지난 11일 세월호 유족들에게 출근 저지 당하는 황전원 특별조사위원회 위원▲ 지난 11일 세월호 유족들에게 출근 저지 당하는 황전원 특별조사위원회 위원

황전원 위원은 1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이었다. 특조위 구성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추천으로 임명됐다. 1기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특조위 예산이 방만하다.", "박근혜 대통령 7시간 조사는 있을 수 없다"며 1기 특조위를 맹비난했다. 그리고 일부 여당 추천 위원들과 함께 스스로 집단 사퇴했다. 그는 이후 새누리당에 20대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했다 탈락했다.

그랬던 그가 2기 특별조사위원회에 다시 임명됐다. 자유한국당 추천이었고, 이번에는 상임위원이었다. 그는 세월호 유족들의 반발이 격화되자, 그는 14장짜리 장문의 편지를 써 공개했다. "자신의 발언들이 유족들에게 상처가 될지 몰랐다.", "박근혜 7시간 조사는 반대했지만, 청와대 조사는 반대한 적 없다.",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다가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며칠 뒤, 출근을 저지하던 유족들의 이 질문에는 끝내 답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앞장서서 조사할 수 있습니까?"

▲ 다음달 10일 바로 세우는 작업이 진행될 '세월호'▲ 다음달 10일 바로 세우는 작업이 진행될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이동곤 위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한국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었다. 검찰 의뢰로 침몰 원인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은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세월호 모형 활용한 자유 항주실험 등 100여 차례나 진행됐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만 반영됐다. 자유 항주 실험 결과, 화물이 없는 상태에서 실험했는데도 배가 급격히 기우는 결과가 나왔다. 검찰이 지목했던 화물 과적에 의한 침몰을 설명할 수 없던 것이다.

이 위원은 검찰이 '자유 항주실험 결과'를 재판 증거 목록에서 뺀 것을 알고 있지만, 침묵했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현재 선체조사위원회가 실험 결과 은폐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위원이 몸담고 있던 연구소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는게 선조위측 설명이다.
(관련 뉴스 : http://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16074)

■ 1,467일,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달 말, 목포 신항에서 정성욱 씨를 만났다. 긴 고무장화에 안전모, 작업복 차림이었다. 세월호 안에서 나온 진흙더미에서 혹시 나올지 모를 희생자들의 유골과 유류품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정부도 감췄는데, 누구 손에 맡길 수가 있어요?" 그는 맨손이었고, 손바닥 마디 마디는 마른 논바닥 마냥 갈라져 있었다.

▲ 1년 넘게 목포신항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는 정성욱 씨▲ 1년 넘게 목포신항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는 정성욱 씨

그가 취재진을 안내한 곳은 그의 숙소였다. 세월호를 마주 보고 세워진 철제 컨테이너였다. 그는 집과 가족을 떠나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386일, 1년이 넘었다.

"집에 있는 둘째에게 가장 미안해요. 지 형(동수) 때문에 그 아이가 커 가는 걸 봐주지 못하니까……."
- 정성욱 씨 인터뷰 中

1,400일이 훌쩍 지났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고스란히 가슴으로 느끼기도 전에 그는 거리로 내몰렸다. 처음에는 슬픔이었고, 그다음은 좌절이었고, 좌절은 다시 분노로 바뀌었다.

▲ 정성욱 씨 등 '세월호 유족'들이 생활하고 있는 목포 신항 컨테이너▲ 정성욱 씨 등 '세월호 유족'들이 생활하고 있는 목포 신항 컨테이너

계속되는 컨테이너 생활. 그는 밤에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40분 정도 자다 깨기를 매일 반복한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이가 여러 개 빠졌다. 치과에 갈 시간도 없어 그대로 생활한다고 했다. 그날, 함께한 저녁 식사에서 그는 메뉴였던 동태탕을 한 수저도 뜨지 않았다. 빠진 이 때문에 조금만 딱딱해도 씹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 아침. 정성욱 씨는 맨 먼저 녹슨 세월호를 본다. 그리고 다시 작업복을 입고, 신발 끈을 묶고, 묵묵히 철조망 안 세월호로 향한다. 아들과의 행복했던 추억이 세월호가 등진 바다 위로 스쳐 지나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마 입 밖으로는 부르기 힘든 그 이름을 속으로 불러본다고. "동수야…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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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동수야, 잘 지내니?”
    • 입력 2018-04-21 09:17:51
    • 수정2018-04-21 11:06:44
    취재K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봄이다. 비, 바람에 벚꽃의 향연도 일찍 끝났다. 그러나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적어도 '동수 아빠', 정성욱 씨에게는 그렇다. ■ 또다시 잔인한 4월...세 번째 '단식과 삭발' 정성욱 씨는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 2학년 7반 동수 군 아버지다. 4.16 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이기도 하다. 2014년과 2015년 봄. 그는 국회 앞에서 삭발을 하며, 곡기를 끊었다. 처음에는 "빨리 아이들을 찾아달라"는 읍소였고, 두 번째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제발 세월호를 물 위로 올려 달라"는 호소였다. 그리고 2018년, '동수 아빠'는 다시 머리를 밀고,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오늘(21일)로 닷새째다. ▲ 2018년 4월17일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한 '동수 아빠' 정성욱 씨(4.16 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 4년 만의 정부의 첫 '세월호 희생자 추모식'. 다시 열리는 '2기 특별조사위원회'. 다음 달로 예정된 '선체 직립'. 어느 때보다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는 다시 '단식'이라는 극단을 선택했을까? ■ '진실 규명'의 마지막 기회 세월호 참사 4주기 영결식 다음날. 민낯을 드러낸 채 누워있는 세월호 앞이 분주해졌다. 머리카락이 뭉텅이째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노란 옷을 입은 정성욱 씨였다. 그는 삭발식이 끝나고 단식을 선언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황전원 위원과 선체조사위원회 이동곤 위원 사퇴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정 씨는 "특조위 황전원 위원은 1기 특조위원 시절 이른바 '박근혜 7시간 조사'를 거부하며, 1기 특조위의 조사 활동을 방해했는데, 다시 2기 특조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선조위 이동곤 위원에 대해서는 "2014년 검찰 의뢰로 침몰 원인 실험을 여러 차례 해놓고도 중요한 실험 결과를 은폐한 인물"이라며, "그가 선체조사위원회의 결과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는 것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세월호 선체를 바로 세우는 작업을 앞두고 정 씨가 극단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2기 특조위가 '세월호 진상 규명'의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 때문이다. 단식 닷새째. 정 씨는 "견딜만합니다."라며 애써 웃었다. 고마움의 말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지지해 주는 국민들, 그리고 늘 함께 곁을 지켜주는 또 다른 유가족들에게. ■ '동수 아빠'는 왜, '황전원과 이동곤'을 지목했나?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닷새 앞둔 지난 11일, 2기 특조위 사무실 앞에서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2기 특조위 사무실에 출근하는 황전원 위원, 세월호 유족들은 이를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관련 뉴스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33077) ▲ 지난 11일 세월호 유족들에게 출근 저지 당하는 황전원 특별조사위원회 위원 황전원 위원은 1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이었다. 특조위 구성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추천으로 임명됐다. 1기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특조위 예산이 방만하다.", "박근혜 대통령 7시간 조사는 있을 수 없다"며 1기 특조위를 맹비난했다. 그리고 일부 여당 추천 위원들과 함께 스스로 집단 사퇴했다. 그는 이후 새누리당에 20대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했다 탈락했다. 그랬던 그가 2기 특별조사위원회에 다시 임명됐다. 자유한국당 추천이었고, 이번에는 상임위원이었다. 그는 세월호 유족들의 반발이 격화되자, 그는 14장짜리 장문의 편지를 써 공개했다. "자신의 발언들이 유족들에게 상처가 될지 몰랐다.", "박근혜 7시간 조사는 반대했지만, 청와대 조사는 반대한 적 없다.",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다가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며칠 뒤, 출근을 저지하던 유족들의 이 질문에는 끝내 답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앞장서서 조사할 수 있습니까?" ▲ 다음달 10일 바로 세우는 작업이 진행될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이동곤 위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한국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었다. 검찰 의뢰로 침몰 원인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은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세월호 모형 활용한 자유 항주실험 등 100여 차례나 진행됐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만 반영됐다. 자유 항주 실험 결과, 화물이 없는 상태에서 실험했는데도 배가 급격히 기우는 결과가 나왔다. 검찰이 지목했던 화물 과적에 의한 침몰을 설명할 수 없던 것이다. 이 위원은 검찰이 '자유 항주실험 결과'를 재판 증거 목록에서 뺀 것을 알고 있지만, 침묵했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현재 선체조사위원회가 실험 결과 은폐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위원이 몸담고 있던 연구소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는게 선조위측 설명이다. (관련 뉴스 : http://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16074) ■ 1,467일,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달 말, 목포 신항에서 정성욱 씨를 만났다. 긴 고무장화에 안전모, 작업복 차림이었다. 세월호 안에서 나온 진흙더미에서 혹시 나올지 모를 희생자들의 유골과 유류품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정부도 감췄는데, 누구 손에 맡길 수가 있어요?" 그는 맨손이었고, 손바닥 마디 마디는 마른 논바닥 마냥 갈라져 있었다. ▲ 1년 넘게 목포신항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는 정성욱 씨 그가 취재진을 안내한 곳은 그의 숙소였다. 세월호를 마주 보고 세워진 철제 컨테이너였다. 그는 집과 가족을 떠나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386일, 1년이 넘었다. "집에 있는 둘째에게 가장 미안해요. 지 형(동수) 때문에 그 아이가 커 가는 걸 봐주지 못하니까……." - 정성욱 씨 인터뷰 中 1,400일이 훌쩍 지났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고스란히 가슴으로 느끼기도 전에 그는 거리로 내몰렸다. 처음에는 슬픔이었고, 그다음은 좌절이었고, 좌절은 다시 분노로 바뀌었다. ▲ 정성욱 씨 등 '세월호 유족'들이 생활하고 있는 목포 신항 컨테이너 계속되는 컨테이너 생활. 그는 밤에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40분 정도 자다 깨기를 매일 반복한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이가 여러 개 빠졌다. 치과에 갈 시간도 없어 그대로 생활한다고 했다. 그날, 함께한 저녁 식사에서 그는 메뉴였던 동태탕을 한 수저도 뜨지 않았다. 빠진 이 때문에 조금만 딱딱해도 씹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 아침. 정성욱 씨는 맨 먼저 녹슨 세월호를 본다. 그리고 다시 작업복을 입고, 신발 끈을 묶고, 묵묵히 철조망 안 세월호로 향한다. 아들과의 행복했던 추억이 세월호가 등진 바다 위로 스쳐 지나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마 입 밖으로는 부르기 힘든 그 이름을 속으로 불러본다고. "동수야…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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