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아베 정권의 “두더지 잡기”…추문·막말·사과의 악순환

입력 2018.04.25 (08:0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아베 정권의 헛발질, '두더지'를 소환하다

"여보세요∼! 잠깐만요∼!”

전자오락실 앞을 지날 때 흔히 들리던 음성이다. 고개를 돌리면 어김없이 큼직한 아날로그 게임기가 동그마니 시선을 끌었다.

'두더지 잡기'.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두더지 인형 머리를 둔탁한 천 뭉치 망치로 내려치는 게임. 약간의 순발력만 필요한 단순성, 그러나 본능을 자극하는 중독성이 특징이다.

두더지는 두더짓과의 포유류이다. 일본말로는 'もぐら(モグラ)'. 몸 길이는 대략 9~18cm, 땅 밑에 서식하면서 지렁이, 애벌레 따위를 잡아먹고 산다. 두더지의 습성을 게임기로 형상화한 창의력이 놀랍다. 각종 행사장에서는 '인간 두더지 게임'도 등장한다.

일본에서도 인기를 누렸던 '두더지 잡기'게임이 최근 정치 풍자의 입길에 올랐다.

"두더지 잡기 게임(もぐらたたき)같다"

야당 입헌민주당의 쓰지모토 기요미 국회대책위원장이 아베 정권을 향해 "두더지 잡기 게임 같다"고 말했다.

쓰지모토 키요미 입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쓰지모토 키요미 입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도쿄신문은 23일 자 1면 머리기사의 소제목을 아예 '두더지 잡기'로 뽑았다. 의혹과 추문, 거짓말과 일탈, 그리고 해명과 사과가 뫼비우스 띠를 따라가듯 끝없이 되풀이되는 상황을 빗대어 이른 말이다.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두더지는 각종 의혹이 될 것이고, 망치를 쉴새 없이 내려치는 게임자는 아베 총리 또는 아베 정권쯤 될 것 같다. 의혹이 튀어나오면 사과 또는 변명으로 내려쳐 억누르는 모양새가 게임 방식과 닮았다.

의혹, 추문, 막말, 사고, 그리고 다시 의혹...

사학 스캔들(아베 정권의 사학재단 특혜 의혹), 자위대 PKO(평화유지군) 문서 은폐, 정치인·각료·관료들의 실언·망언·폭언, 그리고, 가장 최근에 불거진 고위 관료 성희롱 의혹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도덕적 기반을 뒤흔드는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국회가 열릴 때마다, 정권의 도덕성과 신뢰성을 문제 삼는 것이 통과 의례가 되다시피 했다.
도쿄신문 분석에 따르면, 최근 석 달 동안 국회에서 추궁한 아베 정권 관련 문제가 13건에 이른다.

지난 1월 중의원 회의에서는 미군 헬기의 잇따른 불시착 사고와 관련해, 내각부 부장관이 "그래서 몇 명이 죽었느냐"고 야유를 보냈다가 사실상 경질됐다.

2월에는 '일하는 방식' 관련 법안을 둘러싸고 후생노동성이 잘못된 데이터를 제시해 물의를 빚었다. 아베 총리는 재량 노동제(미리 정한 노동 총량만큼의 임금만 지급하는 제도) 아래의 노동시간이 평균적인 일반 노동자 사례보다 짧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재량노동제 확대는 무산됐다.

3월에는 사학재단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 재무성의 결재문서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 계약 당시 담당 국장이던 사가와 국세청 장관이 사임했다.

4월 들어서는 추문과 사실 은폐, 막말 사례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후생노동성 도쿄 노동국장은 보도기관을 협박하는 듯한 부적절한 발언을 내뱉었다가 경질됐다. 이라크에 파병된 자위대의 일일보고 문서가 은폐된 사실도 드러났다.

이 와중에 자위대 간부가 국회의원에게 폭언했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자위대가 문민 통제의 원칙마저 부정하려 한다는 우려를 증폭시켰다.

고위관료 성희롱 의혹‥피해자를 공격하는 日 우익

잇단 성희롱 의혹 사건은 정권의 도덕성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후생노동성 후쿠다 건강국장은 여성직원에게 부적절한 메일을 여러 번 보냈다가 구두주의를 받았다. 재무성의 후쿠다 사무차관은 TV아사히 여성기자를 성희롱했다는 의혹을 받고 18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일본 정부는 24일 국무회의를 열고 사퇴를 승인했다.

후쿠다 전 재무성 사무차관후쿠다 전 재무성 사무차관

'성희롱 사건'은 여성 인권에 대한 일본 사회의 민낯을 보여줬다. 어설프고 거친 대응으로 논란을 더욱 키웠다. 후쿠다 전 차관이 혐의를 부인하자, 아소 부총리는 미온적 대처로 '2차 피해 유발과 가해자 감싸기 논란'을 자초했다.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

게다가, 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상은 성희롱 피해 여성기자에 대해 "방송국 사람이 몰래 녹음한 것을 주간지에 판 것은 범죄"라고 주장했다가, 비난이 커지자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사과했다.

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상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상

집권 자민당의 나가오 다카시 중의원 의원은 성희롱 의혹에 항의하는 야당 여성의원들을 조롱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치고 빠지기'식으로 발언은 취소했지만,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야당 여성의원 재무성 항의방문(왼쪽), 나가오 다카시 자민당 의원야당 여성의원 재무성 항의방문(왼쪽), 나가오 다카시 자민당 의원

'두더지'는 지치지 않는다

여기에, 피해자를 오히려 비난하는 극우세력의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성희롱 문제에 반응하는 일본 남성 주류집단의 저열한 의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24일, 아베 총리는 성희롱 의혹으로 사임한 재무성 차관 문제와 관련해 "매우 죄송하다"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앞서 자위대 문서 은폐 때도 "사죄"했다. 내각 각료와 관료, 정치인 등이 돌아가며 물의를 빚으면, 사학스캔들 의혹의 정점에 선 아베 총리가 사과하며 수습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반복되고 있다.

'두더지 잡기' 게임기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현실의 두더지 게임은 시간 제한이 없다. 게다가, 한번 올라왔던 두더지가 다시 튀어 오르듯, 모르쇠로 버티고 넘어간 의혹도 언제든 다시 튀어 오른다. 아베 총리의 개인기와 맷집으로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북한발 안보 위기론 등에 의지했던 내각 지지율은 또다시 폭락했다. 두더지 게임에 비유하면, 망치를 계속 휘두르다 지쳐가는 형국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아베 정권의 “두더지 잡기”…추문·막말·사과의 악순환
    • 입력 2018-04-25 08:05:30
    특파원 리포트
아베 정권의 헛발질, '두더지'를 소환하다

"여보세요∼! 잠깐만요∼!”

전자오락실 앞을 지날 때 흔히 들리던 음성이다. 고개를 돌리면 어김없이 큼직한 아날로그 게임기가 동그마니 시선을 끌었다.

'두더지 잡기'.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두더지 인형 머리를 둔탁한 천 뭉치 망치로 내려치는 게임. 약간의 순발력만 필요한 단순성, 그러나 본능을 자극하는 중독성이 특징이다.

두더지는 두더짓과의 포유류이다. 일본말로는 'もぐら(モグラ)'. 몸 길이는 대략 9~18cm, 땅 밑에 서식하면서 지렁이, 애벌레 따위를 잡아먹고 산다. 두더지의 습성을 게임기로 형상화한 창의력이 놀랍다. 각종 행사장에서는 '인간 두더지 게임'도 등장한다.

일본에서도 인기를 누렸던 '두더지 잡기'게임이 최근 정치 풍자의 입길에 올랐다.

"두더지 잡기 게임(もぐらたたき)같다"

야당 입헌민주당의 쓰지모토 기요미 국회대책위원장이 아베 정권을 향해 "두더지 잡기 게임 같다"고 말했다.

쓰지모토 키요미 입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도쿄신문은 23일 자 1면 머리기사의 소제목을 아예 '두더지 잡기'로 뽑았다. 의혹과 추문, 거짓말과 일탈, 그리고 해명과 사과가 뫼비우스 띠를 따라가듯 끝없이 되풀이되는 상황을 빗대어 이른 말이다.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두더지는 각종 의혹이 될 것이고, 망치를 쉴새 없이 내려치는 게임자는 아베 총리 또는 아베 정권쯤 될 것 같다. 의혹이 튀어나오면 사과 또는 변명으로 내려쳐 억누르는 모양새가 게임 방식과 닮았다.

의혹, 추문, 막말, 사고, 그리고 다시 의혹...

사학 스캔들(아베 정권의 사학재단 특혜 의혹), 자위대 PKO(평화유지군) 문서 은폐, 정치인·각료·관료들의 실언·망언·폭언, 그리고, 가장 최근에 불거진 고위 관료 성희롱 의혹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도덕적 기반을 뒤흔드는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국회가 열릴 때마다, 정권의 도덕성과 신뢰성을 문제 삼는 것이 통과 의례가 되다시피 했다.
도쿄신문 분석에 따르면, 최근 석 달 동안 국회에서 추궁한 아베 정권 관련 문제가 13건에 이른다.

지난 1월 중의원 회의에서는 미군 헬기의 잇따른 불시착 사고와 관련해, 내각부 부장관이 "그래서 몇 명이 죽었느냐"고 야유를 보냈다가 사실상 경질됐다.

2월에는 '일하는 방식' 관련 법안을 둘러싸고 후생노동성이 잘못된 데이터를 제시해 물의를 빚었다. 아베 총리는 재량 노동제(미리 정한 노동 총량만큼의 임금만 지급하는 제도) 아래의 노동시간이 평균적인 일반 노동자 사례보다 짧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재량노동제 확대는 무산됐다.

3월에는 사학재단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 재무성의 결재문서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 계약 당시 담당 국장이던 사가와 국세청 장관이 사임했다.

4월 들어서는 추문과 사실 은폐, 막말 사례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후생노동성 도쿄 노동국장은 보도기관을 협박하는 듯한 부적절한 발언을 내뱉었다가 경질됐다. 이라크에 파병된 자위대의 일일보고 문서가 은폐된 사실도 드러났다.

이 와중에 자위대 간부가 국회의원에게 폭언했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자위대가 문민 통제의 원칙마저 부정하려 한다는 우려를 증폭시켰다.

고위관료 성희롱 의혹‥피해자를 공격하는 日 우익

잇단 성희롱 의혹 사건은 정권의 도덕성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후생노동성 후쿠다 건강국장은 여성직원에게 부적절한 메일을 여러 번 보냈다가 구두주의를 받았다. 재무성의 후쿠다 사무차관은 TV아사히 여성기자를 성희롱했다는 의혹을 받고 18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일본 정부는 24일 국무회의를 열고 사퇴를 승인했다.

후쿠다 전 재무성 사무차관
'성희롱 사건'은 여성 인권에 대한 일본 사회의 민낯을 보여줬다. 어설프고 거친 대응으로 논란을 더욱 키웠다. 후쿠다 전 차관이 혐의를 부인하자, 아소 부총리는 미온적 대처로 '2차 피해 유발과 가해자 감싸기 논란'을 자초했다.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
게다가, 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상은 성희롱 피해 여성기자에 대해 "방송국 사람이 몰래 녹음한 것을 주간지에 판 것은 범죄"라고 주장했다가, 비난이 커지자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사과했다.

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상
집권 자민당의 나가오 다카시 중의원 의원은 성희롱 의혹에 항의하는 야당 여성의원들을 조롱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치고 빠지기'식으로 발언은 취소했지만,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야당 여성의원 재무성 항의방문(왼쪽), 나가오 다카시 자민당 의원
'두더지'는 지치지 않는다

여기에, 피해자를 오히려 비난하는 극우세력의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성희롱 문제에 반응하는 일본 남성 주류집단의 저열한 의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24일, 아베 총리는 성희롱 의혹으로 사임한 재무성 차관 문제와 관련해 "매우 죄송하다"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앞서 자위대 문서 은폐 때도 "사죄"했다. 내각 각료와 관료, 정치인 등이 돌아가며 물의를 빚으면, 사학스캔들 의혹의 정점에 선 아베 총리가 사과하며 수습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반복되고 있다.

'두더지 잡기' 게임기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현실의 두더지 게임은 시간 제한이 없다. 게다가, 한번 올라왔던 두더지가 다시 튀어 오르듯, 모르쇠로 버티고 넘어간 의혹도 언제든 다시 튀어 오른다. 아베 총리의 개인기와 맷집으로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북한발 안보 위기론 등에 의지했던 내각 지지율은 또다시 폭락했다. 두더지 게임에 비유하면, 망치를 계속 휘두르다 지쳐가는 형국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