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주목하는 판문점 완전정복

입력 2018.04.27 (06:00) 수정 2018.04.27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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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주목할 판문점 완전정복

전 세계가 주목할 판문점 완전정복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은 주소가 두 개다.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그리고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점이다.

한반도 평화를 좌우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판문점이지만, 한국전쟁 이전에는 초가집 몇 채가 전부였던 외딴 시골 마을이었다. 한국전쟁 전 원래 이름은 ‘널문리’로 불렸다.

한국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던 1951년 10월. UN군과 인민군은 정전회담을 논의할 장소를 찾던 중 한반도 중간에 위치한 널문리에 주목한다. 그 해 10월 22일 널문리에 천막을 치고 첫 접촉을 시작하면서 판문점의 역사는 시작됐다. 중국 측이 널문리를 한자 표기로 판문점(板門店)이라 이름 붙이면서 새로운 이름도 얻었다. 판문점은 1953년 7월 27일 조인된 정전협정에 따라 UN사와 북한군의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지정됐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가을걷이에 한창인 농부들 너머로 휴전 회담을 위해 마련된 막사들이 보인다. 지금의 판문점이 위치한 곳으로 1951년 10월 30일 미군이 촬영한 사진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가을걷이에 한창인 농부들 너머로 휴전 회담을 위해 마련된 막사들이 보인다. 지금의 판문점이 위치한 곳으로 1951년 10월 30일 미군이 촬영한 사진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판문점은 원래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장 역할을 했지만 1971년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을 계기로 남북 당국 간 회담장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1976년까지는 경계선 없이 양측 경비병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형태였다.

판문점이 지금처럼 남북한 대치의 형태를 띤 것은 1976년 8월 18일 발생한 엽기적인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UN군 제3초소 인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잔혹하게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에 미국은 F-4 전폭기 1개 대대와 F-111 전폭기 1개 대대를 한국에 증파하고,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한국해역으로 항진시키는 등 전쟁위기까지 고조됐으며, 결국 김일성 주석의 직접 유감 표명으로 간신히 수습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판문점 공동경비는 군사분계선(MDL)이 그어진다.

도끼 만행사건도끼 만행사건

현재 판문점에는 공동경비구역(JSA)을 남북으로 나누는 군사분계선을 따라 7개의 단층 건물이 늘어서 있다.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로 파란색 3개 동은 UN사가, 회색 4개 동은 북한군이 관리한다. UN사가 관리하는 3개동은 T1, T2, T3 로 불린다.

MDL을 경계로 마주 보고 있는 우리측 건물이 자유의 집, 북측 건물이 판문각이다. 판문점 직통 전화를 운영하는 양측의 판문점 연락 사무소가 자리 잡고 있다.

자유의 집은 원래 1965년 9월 30일 준공된 팔각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배치된 2층 건물이었는데, 건물이 낡아 1998년 4층 건물로 새로 지었다. 판문각은 1994년 12월 증축한 3층 석조건물인데, 이곳에는 조선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와 북한 경비병 지휘소가 들어서 있다.


자유의 집과 판문각의 뒤에 각각 위치한 곳이 우리 쪽 평화의 집과 북측 통일각이다. 주로 회담장으로 쓰이는 시설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역사적인 장소는 바로 JSA 남쪽에 있는 평화의 집이다. 우리 정부가 1989년 12월 19일 준공했다. 총 3층 석조건물인데 남북 관계 개선을 기대하며 지었다. JSA 북쪽에 잇는 통일각은 평화의 집에 대응해 북한이 1992년 준공한 지하 1층, 지상 1층의 건물이다. 북한은 이곳에 남북 연락사무소를 두며 접촉장소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남북 접촉은 어디서 주로 이뤄졌을까.

통일부가 배포한 ‘남북회담 약사 및 판문점 현황’에 따르면 지금까지 열린 남북회담은 모두 655회고 이 중 360회가 판문점에서 열렸다.

판문점 남북회담은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156회, 남측 평화의 집에서 94회, 북측 통일각에서 87회 열렸다.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에서도 각각 11회와 12회의 회담이 열렸다.

판문점에 있는 두 개의 다리

판문점 인근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72시간의 다리’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란 이름은 한번 건너면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당시 붙잡힌 남북한 포로들이 정전협정 조인 후 이 다리를 통해 교환되면서 얻게 된 것이다. UN군은 76년 도끼만행 사건 이후 이 다리의 통행을 금지했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72시간 다리'를 이용해 남쪽으로 오게 된다. 이 다리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폐쇄되자 북한이 72시간 만에 새 다리를 세웠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해 11월 13일 북한 병사 오청성의 극적인 귀순도 바로 이 다리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귀 순과정에서 이를 막으려는 북한군의 총격을 받았지만, 극적으로 우리 군에 구조됐다. 북한은 오청성 귀순 이후 72시간 다리에 통문을 설치했다.

판문점을 거친 주요 왕래 사례로는 임수경 학생과 문규현 신부 판문점 귀환(1989년 8월 15일),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 판문점 경유 방북, 귀환(1994년 6월 15~6월 18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소떼 방북(1998년 6월 16일, 1998년 10월 27일)이 있다.


군사분계선 걸어 넘어올 김정은

회담 당일 전 세계의 시선은 판문점에 쏠린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떤 동선으로 내려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날까.

김 위원장은 오늘(27일) 오전 9시 30분 승용차를 타고 ‘72시간 다리’와 통일각을 지나 판문각까지 이동할 것으로 예상한다. 판문각 앞에서 김 위원장은 차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걸어서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인 T2와 소회의실인 T3를 걸어서 군사분계선(MDL)을 넘고, MDL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뜨거운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이어 두 사람은 우리 전통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 사이 판문점 광장으로 이동한다. 오전 9시 40분, 판문점 광장에서 두 정상은 의장대 사열을 포함한 공식 환영식을 갖는다. 여기서 두 정상은 양측 공식 수행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인사 후 두 정상은 정상회담이 열리는 평화의 집으로 이동한다. 평화의 집 1층에서 김 위원장은 준비된 방명록에 서명하고 문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한다. 두 사람은 인근 접견 실에서 간단하게 환담을 나눈 뒤 2층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해 오전 10시 30분부터 정상회담을 시작한다. 한반도 운명이 걸린 역사적인 2018년 남북정상회담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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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계가 주목하는 판문점 완전정복
    • 입력 2018-04-27 06:00:25
    • 수정2018-04-27 07:37:05
    취재K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은 주소가 두 개다.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그리고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점이다.

한반도 평화를 좌우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판문점이지만, 한국전쟁 이전에는 초가집 몇 채가 전부였던 외딴 시골 마을이었다. 한국전쟁 전 원래 이름은 ‘널문리’로 불렸다.

한국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던 1951년 10월. UN군과 인민군은 정전회담을 논의할 장소를 찾던 중 한반도 중간에 위치한 널문리에 주목한다. 그 해 10월 22일 널문리에 천막을 치고 첫 접촉을 시작하면서 판문점의 역사는 시작됐다. 중국 측이 널문리를 한자 표기로 판문점(板門店)이라 이름 붙이면서 새로운 이름도 얻었다. 판문점은 1953년 7월 27일 조인된 정전협정에 따라 UN사와 북한군의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지정됐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가을걷이에 한창인 농부들 너머로 휴전 회담을 위해 마련된 막사들이 보인다. 지금의 판문점이 위치한 곳으로 1951년 10월 30일 미군이 촬영한 사진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판문점은 원래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장 역할을 했지만 1971년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을 계기로 남북 당국 간 회담장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1976년까지는 경계선 없이 양측 경비병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형태였다.

판문점이 지금처럼 남북한 대치의 형태를 띤 것은 1976년 8월 18일 발생한 엽기적인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UN군 제3초소 인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잔혹하게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에 미국은 F-4 전폭기 1개 대대와 F-111 전폭기 1개 대대를 한국에 증파하고,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한국해역으로 항진시키는 등 전쟁위기까지 고조됐으며, 결국 김일성 주석의 직접 유감 표명으로 간신히 수습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판문점 공동경비는 군사분계선(MDL)이 그어진다.

도끼 만행사건
현재 판문점에는 공동경비구역(JSA)을 남북으로 나누는 군사분계선을 따라 7개의 단층 건물이 늘어서 있다.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로 파란색 3개 동은 UN사가, 회색 4개 동은 북한군이 관리한다. UN사가 관리하는 3개동은 T1, T2, T3 로 불린다.

MDL을 경계로 마주 보고 있는 우리측 건물이 자유의 집, 북측 건물이 판문각이다. 판문점 직통 전화를 운영하는 양측의 판문점 연락 사무소가 자리 잡고 있다.

자유의 집은 원래 1965년 9월 30일 준공된 팔각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배치된 2층 건물이었는데, 건물이 낡아 1998년 4층 건물로 새로 지었다. 판문각은 1994년 12월 증축한 3층 석조건물인데, 이곳에는 조선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와 북한 경비병 지휘소가 들어서 있다.


자유의 집과 판문각의 뒤에 각각 위치한 곳이 우리 쪽 평화의 집과 북측 통일각이다. 주로 회담장으로 쓰이는 시설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역사적인 장소는 바로 JSA 남쪽에 있는 평화의 집이다. 우리 정부가 1989년 12월 19일 준공했다. 총 3층 석조건물인데 남북 관계 개선을 기대하며 지었다. JSA 북쪽에 잇는 통일각은 평화의 집에 대응해 북한이 1992년 준공한 지하 1층, 지상 1층의 건물이다. 북한은 이곳에 남북 연락사무소를 두며 접촉장소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남북 접촉은 어디서 주로 이뤄졌을까.

통일부가 배포한 ‘남북회담 약사 및 판문점 현황’에 따르면 지금까지 열린 남북회담은 모두 655회고 이 중 360회가 판문점에서 열렸다.

판문점 남북회담은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156회, 남측 평화의 집에서 94회, 북측 통일각에서 87회 열렸다.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에서도 각각 11회와 12회의 회담이 열렸다.

판문점에 있는 두 개의 다리

판문점 인근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72시간의 다리’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란 이름은 한번 건너면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당시 붙잡힌 남북한 포로들이 정전협정 조인 후 이 다리를 통해 교환되면서 얻게 된 것이다. UN군은 76년 도끼만행 사건 이후 이 다리의 통행을 금지했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72시간 다리'를 이용해 남쪽으로 오게 된다. 이 다리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폐쇄되자 북한이 72시간 만에 새 다리를 세웠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해 11월 13일 북한 병사 오청성의 극적인 귀순도 바로 이 다리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귀 순과정에서 이를 막으려는 북한군의 총격을 받았지만, 극적으로 우리 군에 구조됐다. 북한은 오청성 귀순 이후 72시간 다리에 통문을 설치했다.

판문점을 거친 주요 왕래 사례로는 임수경 학생과 문규현 신부 판문점 귀환(1989년 8월 15일),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 판문점 경유 방북, 귀환(1994년 6월 15~6월 18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소떼 방북(1998년 6월 16일, 1998년 10월 27일)이 있다.


군사분계선 걸어 넘어올 김정은

회담 당일 전 세계의 시선은 판문점에 쏠린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떤 동선으로 내려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날까.

김 위원장은 오늘(27일) 오전 9시 30분 승용차를 타고 ‘72시간 다리’와 통일각을 지나 판문각까지 이동할 것으로 예상한다. 판문각 앞에서 김 위원장은 차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걸어서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인 T2와 소회의실인 T3를 걸어서 군사분계선(MDL)을 넘고, MDL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뜨거운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이어 두 사람은 우리 전통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 사이 판문점 광장으로 이동한다. 오전 9시 40분, 판문점 광장에서 두 정상은 의장대 사열을 포함한 공식 환영식을 갖는다. 여기서 두 정상은 양측 공식 수행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인사 후 두 정상은 정상회담이 열리는 평화의 집으로 이동한다. 평화의 집 1층에서 김 위원장은 준비된 방명록에 서명하고 문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한다. 두 사람은 인근 접견 실에서 간단하게 환담을 나눈 뒤 2층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해 오전 10시 30분부터 정상회담을 시작한다. 한반도 운명이 걸린 역사적인 2018년 남북정상회담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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