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한국GM 지원 협상 타결…산은 VS GM, 승자는?

입력 2018.04.27 (17:26) 수정 2018.04.2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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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지원 협상 타결...산은 VS GM, 승자는?

한국GM에 대한 자금 지원 협상이 타결됐습니다. 산업은행과 GM본사는 그동안 지원 조건과 규모, 방식 등을 놓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여왔는데요. 지원 조건은 산업은행측 요구가, 지원 규모에서는 GM측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렇다면 이번 협상에서 양측이 하나씩 주고 받았으니,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승부로 봐야할까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GM과 협상을 벌인 상대방이 왜 산업은행이었을까요? GM은 한국GM의 지분 77%를 가진 최대주주이자, 27억 달러(2조 9천억 원)의 채권을 보유한 채권자인데요. 산업은행은 그 다음으로 많은 지분(17%)을 가진 2대 주주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번 협상은 위기에 놓인 한국GM에 자금을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투입할 지를 놓고 벌인 주주간 협상이었습니다. 다만 한국GM이 철수할 경우 막대한 경제적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산은이 정부의 대리인 격으로 GM과 협상을 벌인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정부와 GM의 협상처럼 느껴지기는 했습니다.


10년 유지 확약·거부권 보장...산업은행 승

여하튼 정부는 한국GM에 대한 지원 조건으로 3대 원칙, △ 대주주의 책임있는 역할 △ 이해관계자들의 고통분담 △ 장기적 지속 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거듭 강조해왔는데요. 이 원칙들은 각각 △ 출자전환 △ 노사간 자구안 도출 △ 10년 이상 철수하지 않을 것으로 구체화돼 협상 테이블에 올라갔습니다. 산업은행은 이와 함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거부권도 요구했는데요. GM이 공장을 추가로 폐쇄하거나 매각하는 등 한국GM의 자산을 처분하려할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GM은 산은 측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처음에는 난색을 표시했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자금을 투입할 수 없다는 산은의 강경한 입장에 결국 모든 조건을 수용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지원 전제 조건을 놓고 벌인 협상은 우리 정부와 산업은행의 승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투자 규모 확대...GM 판정승?

전제 조건을 수용하는 대신 GM은 투자 규모 확대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GM에 제안에 따라 산은은 지원 규모를 당초 5천억 원에서 8천억 원으로 대폭 늘렸는데요. 그렇다면 투자 규모에서는 GM측이 승리를 거둔 것일까요?

우선 산은이 왜 당초 지원 규모를 5천억 원으로 상정했는지 따져봐야겠습니다. GM은 지난 2월 군산 공장 폐쇄를 결정한 이후 한국GM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신차 배정과 그에 따른 설비 투자 등으로 28억 달러의 신규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는데요. 이와 함께 산은에도 투자에 참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산은은 전체 투자액 가운데 지분율(17%)만큼 참여하겠다며 5천억 원을 투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 협상 막바지에 GM이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며 투자 규모 확대를 제안한 것인데요. 이에 따라 GM측 신규 투자 규모는 당초 23억 달러(2조 5천억 원)에서 36억 달러(3조 9천억 원)로 늘었고, 여기에 맞춰 산은측도 투자 규모를 늘리면서 7.5억 달러(8천억 원)라는 금액이 나오게 됐습니다.

결국 GM에 요청에 따라 투자 규모를 늘리기는 했지만, 산은이 당초 주장했던 '지분율에 비례한 투자'라는 원칙은 유지됐습니다. GM의 요청이 수용됐다는 측면에서 GM측이 유리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산은이 크게 양보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협상 결과만 놓고보면 전체적으로 산은이 별다른 양보없이 상당부분 얻어낸 것 같습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전문가들도 협상 결과가 나쁘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그러니까 산은과 우리 정부가 왜 GM과 자금 지원 협상을 벌였는지를 생각해보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전투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

이번 한국GM 사태는 경영난을 이유로 군산 공장 폐쇄를 결정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자구안을 놓고 한국GM 노사가 협상을 벌이는 가운데,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도 있다고 GM측이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위기가 고조됐습니다. GM이 우리나라에서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GM이 철수할 경우 우리경제가 입을 타격이 상당할 것입니다. 정부와 산은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사건이 시작점이었던 군산공장은 정말 폐쇄가 불가피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을까요? 전문가들은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폐쇄가 불가피한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군산공장 폐쇄가 결정된 직후부터 "GM이 한국GM에 납품되는 부품 단가를 과도하게 높게 설정했다", "차입금 금리도 너무 높다. GM본사에 너무 많은 이자를 지급한게 부실의 원인이다"는 의혹들이 제기됐고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전문가들은 "군산 공장 폐쇄는 멕시코 등 생산비용이 낮은 곳으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GM의 글로벌 전략의 일환"이라고 분석합니다.

이쯤되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대주주인 GM이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해 한국GM 사태라는 전쟁이 시작됐는데, 그 안에서 벌어진 자금 지원 전투에서 산은이 이겼다. 하지만 자신들의 뜻대로 공장을 닫고, 희망퇴직으로 인원을 감축하고, 8천억 원의 산은 자금까지 끌어낸 GM이 결국 승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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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한국GM 지원 협상 타결…산은 VS GM, 승자는?
    • 입력 2018-04-27 17:26:50
    • 수정2018-04-27 17:29:33
    취재후·사건후
한국GM 지원 협상 타결...산은 VS GM, 승자는?

한국GM에 대한 자금 지원 협상이 타결됐습니다. 산업은행과 GM본사는 그동안 지원 조건과 규모, 방식 등을 놓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여왔는데요. 지원 조건은 산업은행측 요구가, 지원 규모에서는 GM측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렇다면 이번 협상에서 양측이 하나씩 주고 받았으니,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승부로 봐야할까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GM과 협상을 벌인 상대방이 왜 산업은행이었을까요? GM은 한국GM의 지분 77%를 가진 최대주주이자, 27억 달러(2조 9천억 원)의 채권을 보유한 채권자인데요. 산업은행은 그 다음으로 많은 지분(17%)을 가진 2대 주주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번 협상은 위기에 놓인 한국GM에 자금을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투입할 지를 놓고 벌인 주주간 협상이었습니다. 다만 한국GM이 철수할 경우 막대한 경제적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산은이 정부의 대리인 격으로 GM과 협상을 벌인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정부와 GM의 협상처럼 느껴지기는 했습니다.


10년 유지 확약·거부권 보장...산업은행 승

여하튼 정부는 한국GM에 대한 지원 조건으로 3대 원칙, △ 대주주의 책임있는 역할 △ 이해관계자들의 고통분담 △ 장기적 지속 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거듭 강조해왔는데요. 이 원칙들은 각각 △ 출자전환 △ 노사간 자구안 도출 △ 10년 이상 철수하지 않을 것으로 구체화돼 협상 테이블에 올라갔습니다. 산업은행은 이와 함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거부권도 요구했는데요. GM이 공장을 추가로 폐쇄하거나 매각하는 등 한국GM의 자산을 처분하려할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GM은 산은 측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처음에는 난색을 표시했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자금을 투입할 수 없다는 산은의 강경한 입장에 결국 모든 조건을 수용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지원 전제 조건을 놓고 벌인 협상은 우리 정부와 산업은행의 승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투자 규모 확대...GM 판정승?

전제 조건을 수용하는 대신 GM은 투자 규모 확대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GM에 제안에 따라 산은은 지원 규모를 당초 5천억 원에서 8천억 원으로 대폭 늘렸는데요. 그렇다면 투자 규모에서는 GM측이 승리를 거둔 것일까요?

우선 산은이 왜 당초 지원 규모를 5천억 원으로 상정했는지 따져봐야겠습니다. GM은 지난 2월 군산 공장 폐쇄를 결정한 이후 한국GM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신차 배정과 그에 따른 설비 투자 등으로 28억 달러의 신규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는데요. 이와 함께 산은에도 투자에 참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산은은 전체 투자액 가운데 지분율(17%)만큼 참여하겠다며 5천억 원을 투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 협상 막바지에 GM이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며 투자 규모 확대를 제안한 것인데요. 이에 따라 GM측 신규 투자 규모는 당초 23억 달러(2조 5천억 원)에서 36억 달러(3조 9천억 원)로 늘었고, 여기에 맞춰 산은측도 투자 규모를 늘리면서 7.5억 달러(8천억 원)라는 금액이 나오게 됐습니다.

결국 GM에 요청에 따라 투자 규모를 늘리기는 했지만, 산은이 당초 주장했던 '지분율에 비례한 투자'라는 원칙은 유지됐습니다. GM의 요청이 수용됐다는 측면에서 GM측이 유리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산은이 크게 양보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협상 결과만 놓고보면 전체적으로 산은이 별다른 양보없이 상당부분 얻어낸 것 같습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전문가들도 협상 결과가 나쁘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그러니까 산은과 우리 정부가 왜 GM과 자금 지원 협상을 벌였는지를 생각해보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전투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

이번 한국GM 사태는 경영난을 이유로 군산 공장 폐쇄를 결정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자구안을 놓고 한국GM 노사가 협상을 벌이는 가운데,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도 있다고 GM측이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위기가 고조됐습니다. GM이 우리나라에서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GM이 철수할 경우 우리경제가 입을 타격이 상당할 것입니다. 정부와 산은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사건이 시작점이었던 군산공장은 정말 폐쇄가 불가피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을까요? 전문가들은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폐쇄가 불가피한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군산공장 폐쇄가 결정된 직후부터 "GM이 한국GM에 납품되는 부품 단가를 과도하게 높게 설정했다", "차입금 금리도 너무 높다. GM본사에 너무 많은 이자를 지급한게 부실의 원인이다"는 의혹들이 제기됐고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전문가들은 "군산 공장 폐쇄는 멕시코 등 생산비용이 낮은 곳으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GM의 글로벌 전략의 일환"이라고 분석합니다.

이쯤되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대주주인 GM이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해 한국GM 사태라는 전쟁이 시작됐는데, 그 안에서 벌어진 자금 지원 전투에서 산은이 이겼다. 하지만 자신들의 뜻대로 공장을 닫고, 희망퇴직으로 인원을 감축하고, 8천억 원의 산은 자금까지 끌어낸 GM이 결국 승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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