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김의 웨딩드레스, 왜 그랬을까?

입력 2018.04.30 (09:24) 수정 2018.04.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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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나 마키바(Kristina Makeeva), The Pink Heart, 2017, 캔버스에 디지털 출력, 178x142cm.tif

웅장한 성문을 배경으로 금발 머리 젊은 여성이 등을 보이고 서 있습니다. 그녀가 입은 건 분홍색 비단 드레스. 넓은 드레스 자락이 꽃잎처럼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 있는 여성은 그저 아름답습니다.

얼굴이 옆을 응시하고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녀가 젊음과 행복을 양손에 쥐고, 이제 막 미래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려고 한다는 걸요.


서울미술관 개관 이래 최대 규모 기획전시 <디어 마이 웨딩스레스>

이 작품이 설치된 곳은 서울미술관,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 전시회입니다. 네, 결혼식에서 입는 그 웨딩드레스 말입니다.

결혼 성수기로 꼽히는 5월을 맞아, 미술관은 700평 공간을 모두 이 전시에 할애했습니다. 그림과 조각, 사진 등 웨딩드레스, 또는 결혼과 관계있는 작품 100여 점이 들어섰는데, 개관 이래 최대 규모의 기획 전시라고 합니다.

대중문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전시

전시장에 들어가면 작품보다 어떤 여성의 이야기가 먼저 관람객을 맞습니다.

부모의 반대로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진 여자,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진정한 자신을 찾는 과정을 거쳐 그 남자와 재결합한 여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직진하는 여자 등등이죠.

실제의 인물이냐고요?
윤종신의 노래 <너의 결혼식> 속의 여 주인공,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와 <또 오해영>의 여주인공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관람객이 잘 알고 있을 법한 인물을 구축한 뒤에, 그들이 입을 만한 드레스를 보여주고 그리고 나서 작품이 제시됩니다. 웨딩드레스는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작품에 접근하는 데 도움을 주죠.

평창 동계올림픽 개, 폐회식 의상감독을 맡아 피켓 요원 등의 의상을 제작한 작가 금기숙의 작품평창 동계올림픽 개, 폐회식 의상감독을 맡아 피켓 요원 등의 의상을 제작한 작가 금기숙의 작품

여심 움직이는 주제와 색…SNS용 사진 찍는 공간도 마련

5월에, 결혼에, 드레스라는 주제에 어울릴 만큼 작품들은 아름답고 밝습니다. 러시아 사진작가인 크리스티나 마키바의 사진이나,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의상감독을 맡아 피켓 요원들의 의상을 제작한 금기숙 작가의 철제 드레스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마음을 설레게 하려는 게 목적인 양, 분홍과 노랑, 금빛 색깔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SNS에 올릴만한 사진을 찍을 장소를 따로 마련해 둔 것도 눈에 띕니다. 전시회가 끌어들이려고 하는 대상은 명확하게 '젊은 여성'입니다.


故 앙드레김 디자이너, 웨딩드레스를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결혼을 염두에 둔 여성에게 추천합니다. 연애 세포 따위는 없다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눈여겨 볼만한 코너가 있습니다. 앙드레김 드레스 전시입니다.

잔뜩 부푼 소매에 과장된 꽃장식, 레이스.. 앙드레김 드레스 하면 전형적으로 떠오르시죠? 얼핏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디자인을 앙드레김은 늘 고집했습니다. 쇼 마지막에는 부담스럽도록 화려하고 부푼 웨딩드레스를 톱스타에게 입혀서 반짝이가 떨어지는 흰 무대를 걷게 했습니다.

이 웨딩드레스는 그가 디자이너로서 팔려고 만든 게 아니었다고 전시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그저 쇼의 마지막 작품은 늘 웨딩드레스여야 한다는 신념이 디자이너 앙드레김에게 있었다고 합니다.

이성간의 사랑이나 부부 관계와는 거리를 두고 평생 살아온 디자이너에게 결혼은 꿈이었고 사랑의 맺음이자 절정이었습니다. 그의 인터뷰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죠.

그래서 가장 빛나는 것, 돋보이는 요소들을 덧대어 과장되게 드레스를 만들었을 겁니다. 결혼은 현실적이나 실용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믿음에서요.


이 시대 여성에게 '웨딩드레스'란?

압니다. < 며느라기>, <82년생 김지영>의 시대인 요즘은 여성들 그 누구도 그렇게 믿지 않는다는 것을요.

현실은 녹록지 않고, 한 번의 화려한 이벤트 뒤엔 새로운 역할과 책임에 적응하는 분투가 필요하단 사실을 모두가 알죠.

하지만 미술관에서 빛나는 드레스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이제는 세상을 떠난 대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을 더없이 빛나게 만들어서, 그 이후로 찾아올 힘겨운 날들을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 그의 웨딩드레스에 녹아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덧없다 하면서도 우리는 결혼식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찾는 건 아닐까요.

전시는 5월 1일부터 9월 16일까지, 관람 시간은 정오부터 4시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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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드레김의 웨딩드레스, 왜 그랬을까?
    • 입력 2018-04-30 09:24:53
    • 수정2018-04-30 17:58:46
    취재K
▲ 크리스티나 마키바(Kristina Makeeva), The Pink Heart, 2017, 캔버스에 디지털 출력, 178x142cm.tif

웅장한 성문을 배경으로 금발 머리 젊은 여성이 등을 보이고 서 있습니다. 그녀가 입은 건 분홍색 비단 드레스. 넓은 드레스 자락이 꽃잎처럼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 있는 여성은 그저 아름답습니다.

얼굴이 옆을 응시하고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녀가 젊음과 행복을 양손에 쥐고, 이제 막 미래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려고 한다는 걸요.


서울미술관 개관 이래 최대 규모 기획전시 <디어 마이 웨딩스레스>

이 작품이 설치된 곳은 서울미술관,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 전시회입니다. 네, 결혼식에서 입는 그 웨딩드레스 말입니다.

결혼 성수기로 꼽히는 5월을 맞아, 미술관은 700평 공간을 모두 이 전시에 할애했습니다. 그림과 조각, 사진 등 웨딩드레스, 또는 결혼과 관계있는 작품 100여 점이 들어섰는데, 개관 이래 최대 규모의 기획 전시라고 합니다.

대중문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전시

전시장에 들어가면 작품보다 어떤 여성의 이야기가 먼저 관람객을 맞습니다.

부모의 반대로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진 여자,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진정한 자신을 찾는 과정을 거쳐 그 남자와 재결합한 여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직진하는 여자 등등이죠.

실제의 인물이냐고요?
윤종신의 노래 <너의 결혼식> 속의 여 주인공,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와 <또 오해영>의 여주인공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관람객이 잘 알고 있을 법한 인물을 구축한 뒤에, 그들이 입을 만한 드레스를 보여주고 그리고 나서 작품이 제시됩니다. 웨딩드레스는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작품에 접근하는 데 도움을 주죠.

평창 동계올림픽 개, 폐회식 의상감독을 맡아 피켓 요원 등의 의상을 제작한 작가 금기숙의 작품
여심 움직이는 주제와 색…SNS용 사진 찍는 공간도 마련

5월에, 결혼에, 드레스라는 주제에 어울릴 만큼 작품들은 아름답고 밝습니다. 러시아 사진작가인 크리스티나 마키바의 사진이나,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의상감독을 맡아 피켓 요원들의 의상을 제작한 금기숙 작가의 철제 드레스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마음을 설레게 하려는 게 목적인 양, 분홍과 노랑, 금빛 색깔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SNS에 올릴만한 사진을 찍을 장소를 따로 마련해 둔 것도 눈에 띕니다. 전시회가 끌어들이려고 하는 대상은 명확하게 '젊은 여성'입니다.


故 앙드레김 디자이너, 웨딩드레스를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결혼을 염두에 둔 여성에게 추천합니다. 연애 세포 따위는 없다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눈여겨 볼만한 코너가 있습니다. 앙드레김 드레스 전시입니다.

잔뜩 부푼 소매에 과장된 꽃장식, 레이스.. 앙드레김 드레스 하면 전형적으로 떠오르시죠? 얼핏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디자인을 앙드레김은 늘 고집했습니다. 쇼 마지막에는 부담스럽도록 화려하고 부푼 웨딩드레스를 톱스타에게 입혀서 반짝이가 떨어지는 흰 무대를 걷게 했습니다.

이 웨딩드레스는 그가 디자이너로서 팔려고 만든 게 아니었다고 전시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그저 쇼의 마지막 작품은 늘 웨딩드레스여야 한다는 신념이 디자이너 앙드레김에게 있었다고 합니다.

이성간의 사랑이나 부부 관계와는 거리를 두고 평생 살아온 디자이너에게 결혼은 꿈이었고 사랑의 맺음이자 절정이었습니다. 그의 인터뷰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죠.

그래서 가장 빛나는 것, 돋보이는 요소들을 덧대어 과장되게 드레스를 만들었을 겁니다. 결혼은 현실적이나 실용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믿음에서요.


이 시대 여성에게 '웨딩드레스'란?

압니다. < 며느라기>, <82년생 김지영>의 시대인 요즘은 여성들 그 누구도 그렇게 믿지 않는다는 것을요.

현실은 녹록지 않고, 한 번의 화려한 이벤트 뒤엔 새로운 역할과 책임에 적응하는 분투가 필요하단 사실을 모두가 알죠.

하지만 미술관에서 빛나는 드레스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이제는 세상을 떠난 대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을 더없이 빛나게 만들어서, 그 이후로 찾아올 힘겨운 날들을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 그의 웨딩드레스에 녹아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덧없다 하면서도 우리는 결혼식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찾는 건 아닐까요.

전시는 5월 1일부터 9월 16일까지, 관람 시간은 정오부터 4시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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