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책방] 역사적 전환점을 이해하기 위하여 ‘판문점 체제의 기원’

입력 2018.05.06 (10:01) 수정 2018.05.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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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정전협정, 그리고 2018년 두 손을 맞잡은 정상

세심한 작가가 이야기 속에 복선을 심어 넣듯 회담장 들어가던 남북 두 정상은 말과 글, 그리고 행동으로 곳곳에 힌트를 남겼다. 평화를 향한 새로운 역사를 쓰자고 했다.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도 했다. 앞으로 수시로 만나자고도 했다. 하필이면 (당연히 의도적으로) 기념식수도 휴전-정전의 해였던 53년생을 골랐다. 힌트를 저렇게 많이 주는 시험 문제는 풀기가 쉽다. 이쯤 되면 선언문을 보지 않더라도 남북이 정상회담을 통해 다다르려는 지점이 어디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번 정상회담은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을 통해 형성된 한반도 체제를 허물어내려는 시도의 시작점이구나.


전쟁의 당사자인 남북과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북중미의 긴밀한 조율이 필요한 어떤 얘기가 오가고 있다. 종전일지 평화일지 협정일지 조약일지 불확실하긴 하지만 70년 분단체제에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어떤 변화든 말 그대로 역사적인 변화다. 1953년 정전 협정 이래 가장 중요한 변화다. 2015년에 나온 책을 다시 꺼내 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역사적 전환점을 이해하기 위하여

책이 나온 지는 이미 3년이 흘렀지만 이 책엔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이 역사적 순간을 설명할 수 있는 생명력이 있다. 지금의 정상회담을 설명하는 근원적 이야기가 있다. ‘판문점 체제’라고 부르는 한반도의 특수한 평화체제가 왜 탄생했는지를 살핀다. 책의 질문을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바보야, 왜 전쟁이 시작됐냐가 아니라, 왜 전쟁이 그런 모양새로 끝났냐를 물어야지!’ 정도가 된다. 정전으로 끝나고 70년 가까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전후체제가 한국전쟁 말고 있는가? 도대체 왜 전쟁은 그렇게 끝나고, 남한은 정전협정에 사인도 안 했는데 그 상태가 이토록 오래가는가? 거의 모든 면에서 생명력이 다한 국가 북한은 어째서 붕괴하지 않고 핵을 지렛대로 저렇게 전근대적인 모습으로 존속하고 있는가? 전쟁이 아니니 분명 평화인데 이 평화는 왜 이렇게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 <판문점 체제의 기원> '한국전쟁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학문적 대사건'

1950년 6월 25일 벌어진 한국전쟁을 다루는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내용은 거의 없다. 세세한 전투상황이나 ‘누가 침공했나, 왜 시작됐나’와 같은 전쟁사적 관점은 조금도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크며, 누구의 전공이 큰가 역시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1950년 6월 25일은 전혀 주목받지 않으며 인천 상륙작전 역시 제목만 등장한다. 국제법과 UN 논의, 샌프란시스코와 반둥, 이 책에는 전혀 기시감이 없는 내용이 가득하다. 시야가 전혀 다른 지평을 향하기 때문이다. 최장집은 한국전쟁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학문적 대사건이라고 하고, 박명림은 ‘평화의 기원’이라는 사유의 전환이 ‘다른 종류의 평화’를 꿈꿀 시작점을 제시한다고 평가한다. 참고로 이 책은 저자의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펴냈다.

# 다른 질문 : 우리는 왜 이런 종류의 평화를 가지게 되었나

우리는 한국전쟁을 6.25 전쟁이라고 부르자고 할 정도로 북한의 남침은 분명하게 기억하지만, 같은 해 10월 7일 UN군이 38선을 통과해 북진한 사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UN군의 북진은 정당한가? 혹은 UN군 북진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천 상륙작전 이후 서울을 되찾은 UN군은 단지 전쟁 이전 남한의 영토를 수복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북진을 통해 한반도를 통일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38선을 넘었다. 사실 UN의 창설 목적에 비추어보면 극히 이례적이고도 ‘위험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UN은 2차 대전 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범죄화하기 위해 창설됐다. 평화의 이름으로 ‘한 정치체제를 지도상에서 없애기 위한 정복’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실제로 ‘북진’은 당시 UN에서 뜨겁게 논의됐다. 혹시 한국전쟁이 미국의 남북전쟁과 같은 내전이라면 UN은 내정간섭을 해선 안 되고, 반대로 국제전이라면 원상회복 수준에서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닌가. 중공은 참전의 정당성을 바로 이 지점에서 찾는다. ‘북진’이라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항거’로 북을 도왔다는 것이다.

평양 제2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한국군 전범조사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 본문 419쪽평양 제2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한국군 전범조사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 본문 419쪽

# '자발적으로 선택하라'고 던진 포로송환 문제

또 다른 핵심적 질문은 포로 문제다. 사실 침공과 낙동강 전선, 인천상륙작전과 1.4 후퇴까지 우리가 아는 전쟁의 주요 전황은 개전 이후 거의 6개월 안에 다 진행됐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주요 전투가 마무리되고 51년에는 정전협상을 시작까지 했다. 그런데 이후로도 전쟁은 2년 동안 지속했다. 포로송환, 단 하나의 문제 때문이었다. 다른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에는 금방 합의해 놓고 왜 고작 포로 문제 때문에 전쟁을 계속했나? 미국은 중국과 북한의 전쟁 포로들에게 ‘남을지, 돌아갈지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결정하라’고 강요했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중립국’을 선택하는 주인공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제네바 협약은 포로의 송환을 원칙으로 한다. 포로에게 갈 곳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라고 하는 일은 전쟁사에서 유례없었다. 미국은 유례는 없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고 (그리고 부가적으로 이승만도) 정말 고집스럽게 이 ‘자원 송환’ 원칙을 고수하려 했다. ‘배신자 프로그램’을 통해 돌아가지 말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역시 전쟁사에 유례없는 아비규환을 낳았다. 수용소에서 포로들은 ‘개인적 신념에 따라’ 정치 조직화 되었고 수용된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누고 서로 죽이고 죽는 암투를 벌였으며, 수용 당국을 향해서 반란을 획책했다. 미군 수용소장이 납치, 억류됐다. 포로 문제가 전쟁 이후 ‘특수한 평화의 본질’을 꿰뚫는 실마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도 저자가 처음이 아닐까.

# 한반도는 왜 분단되었는가

시야를 좀 더 넓히면 독일과 우리의 분단을 등치 시키는 우리 사고도 질문 대상이다. 지구 상에 분단된 유일한 국가, 라고 할 때마다 우리는 ‘독일도 이제는 통일되었는데’라는 관용어구를 떠올린다. 하지만 독일과 우리의 분단이 등치될 수 있는 것일까? 독일은 패전국이자 전범국이니 강제 분단됐다 치자, 그런데 우리는 왜 전쟁을 겪고 분단이 되고, 70년 분단을 겪고 있나? 독일이 전쟁 책임으로 분단이 되었다면, 오스트리아도, 이탈리아도 유사한 분할 군정기를 겪었다면, 아시아에선 우리가 아니고 일본이 분할되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지구적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아시아는 왜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늘 으르렁댈까도 질문의 대상이다. 전쟁을 겪은 유럽은 NATO를 출범시키고 협력의 문화 속에 EU 통합으로까지 이르렀는데, 아시아는 경제 공동체는커녕 한, 중, 일이 역사문제로 만나면 으르렁댄다. 남사군도 센카쿠, 쿠릴열도... 이제는 독도까지 곳곳에서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과 갈등이 반복된다. 협력의 문화는 찾기 힘들고, 갈등과 대립, 충돌이 반복된다. 성숙하지 않은 문명의 한계로 쉽게 정의하고 말아도 되는 것일까?

# 정의와 제국 사이 : 냉전의 전초기지에 자리 잡은 ‘판문점 체제’

이 낯선 질문들과 항해를 하다 보면 ‘한반도의 특수한 평화체제-판문점 체제’의 본질적 구조를 보게 된다. 우선은 자유주의 진영에 의한 평화를 꿈꾸는 미국과 그 미국이 만들어낸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질서다. 공산주의에 대한 불인정, 즉 대결의 자세다. 스스로 ‘정의’로운 자유진영의 기수임을 자신한 미국은 침략자이기에 정의롭지 않은 북한을 지도에서 제거하는 것 역시 정의라고 UN을 통해 규정하려 했다. 혁명을 통해 중국 본토를 차지한 중국은 그게 정의가 아닌 제국주의 침약 야욕이라고 판단했다. 또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의 부정은 공산주의가 틀렸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어 포로들에게 틀린 것을 포기할 자유를 주는 것이 정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의와 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포로들을 냉전적 인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서로의 이념을 공격하고 배척하고 살육을 벌였다. 수용소에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지게 했다. 이 수용소는 결국 동아시아 냉전 정세의 축소판이 됐다.


냉전적 세계관이 확립되어 가면서 이득을 얻은 건 일본이다. 2차대전 뒤 평화협정 체결을 미적거리던 미국은 전쟁 중에 급히 샌프란시스코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미군의 주둔을 명시하면서 일본을 아시아 자유주의 진영의 교두보로 쓰기로 했다. 일본은 반대급부로 전쟁 책임을 면제받았다. 강제 분할당한 독일을 포함해 다른 패전국들은 분할통치 기간을 거치고 주권을 양도 당했고 반성을 했지만, 일본은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분단도 당하지 않고, 천황제를 유지하면서 온전히 살아남았다. 한국전쟁의 과실을 누리며 순식간에 재건에도 성공했다. 미국에 쓸모가 있었다.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우기는 건 바로 전쟁 중에 급히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당초 있던 반환 부분이 중간에 빠졌기 때문이다.

# 정치적 냉전은 계속하는 한반도 '정전체제'

대신 희생은 패전국의 식민지였던 한반도가 당했다. 전쟁을 겪었고 분할 당했고, 평화도 얻지 못했다. 한반도는 힘이 균형을 이루는 장소여야 했고, 군사전은 끝났어도 정치적 냉전은 계속 수행되어야 하는 장소가 됐다. 판문점 체제는 오직 군사적으로 총만 내려놓는 데 합의한 정전체제였다. 평화협정은 전쟁 상대인 중공을 중국을 통치하는 실질적 국가주체로 인정해야 하는 정치적 문제로 인해 체결될 수 없었다. 장기란 말이 된 남북은 자유와 혁명 세력의 대치장소로서 체제 경쟁을 해야 했고 끝없이 서로 적대해야 했다. 냉전의 양 진영과 한반도의 독재자들에게는 유리한 구도였다. 독재자들은 이 상황이 항구적으로 지속하여야 생존이 가능했다. 국민들은 왜곡된 사회 경제 정치 구조를 받아들여 왜곡된 인식을 한 주체로 살아야 했다. 북한은 물론 전근대적인 왕조체제이며 잔악하며 경제적으로 붕괴한 실패한 국가이지만, 바로 이 왜곡된 질서에 순응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 2018년 남북 정상회담, 65년 지속한 ‘특수 평화체제’의 종식의 시발점 될까

지금 판문점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은 바로 이렇게 정초 돼 65년 지속된 판문점 체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점이 되려 한다. 사실 한국전쟁이 정전이라는 일시적 평화로 이어지게 했던 힘의 균형은 무너진 지 오래다. 제국주의의 대안으로 ‘정의로운 근대화’를 추구했던 공산주의는 지구에선 실패한 실험이 되었다. 북한은 체제경쟁에서 패배했다. 핵은 무너진 힘의 균형을 억지로 유지하고 또 체제를 지탱하는 일시적이지만 유일한 힘의 원천이었다. 협박하고 위협해 공포를 조장해야 국제적으로 살아남고 내적 단결을 획득할 수 있었다. 생존의 한 수단으로 65년간 효과적으로 작동한 논리였다.

그런 북한이 이제 다른 생존의 수단을 쓰고 싶어 한다. 생존을 보장받는 동시에 발전도 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전쟁의 당사자이거나 정전 협정 조인국들인 한국과 북한 미국과 중국이 모두 임기 초기이거나 정책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권력상태에 있다. 전방위적이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화를 한다. 북한의 시도가, 그리고 우리의 소망이 아마도 근 70년 만에 가장 좋은 기회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이 ‘판문점 체제’ 균열 내기가 순조롭게 결실을 향해 갈 수 있게 된다면, 만약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미국이 북한의 국가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북한이 핵과 관련해 미국이 이해할 만한 답을 내놓는다면, 지금의 이 정상회담은 말 그대로 역사적인 순간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판문점 체제의 기원>은 이 첫 발걸음이 얼마나 거대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납득하게 한다.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전례 없는 희망, 이 희망이 피어난 역사적인 순간을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다. 분단 현실의 기저에 놓인 현실을 규정하는 힘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판문점 체제의 기원> 김학재 씀, 출판사 후마니타스,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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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 책방] 역사적 전환점을 이해하기 위하여 ‘판문점 체제의 기원’
    • 입력 2018-05-06 10:01:48
    • 수정2018-05-08 11: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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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정전협정, 그리고 2018년 두 손을 맞잡은 정상 세심한 작가가 이야기 속에 복선을 심어 넣듯 회담장 들어가던 남북 두 정상은 말과 글, 그리고 행동으로 곳곳에 힌트를 남겼다. 평화를 향한 새로운 역사를 쓰자고 했다.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도 했다. 앞으로 수시로 만나자고도 했다. 하필이면 (당연히 의도적으로) 기념식수도 휴전-정전의 해였던 53년생을 골랐다. 힌트를 저렇게 많이 주는 시험 문제는 풀기가 쉽다. 이쯤 되면 선언문을 보지 않더라도 남북이 정상회담을 통해 다다르려는 지점이 어디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번 정상회담은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을 통해 형성된 한반도 체제를 허물어내려는 시도의 시작점이구나. 전쟁의 당사자인 남북과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북중미의 긴밀한 조율이 필요한 어떤 얘기가 오가고 있다. 종전일지 평화일지 협정일지 조약일지 불확실하긴 하지만 70년 분단체제에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어떤 변화든 말 그대로 역사적인 변화다. 1953년 정전 협정 이래 가장 중요한 변화다. 2015년에 나온 책을 다시 꺼내 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역사적 전환점을 이해하기 위하여 책이 나온 지는 이미 3년이 흘렀지만 이 책엔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이 역사적 순간을 설명할 수 있는 생명력이 있다. 지금의 정상회담을 설명하는 근원적 이야기가 있다. ‘판문점 체제’라고 부르는 한반도의 특수한 평화체제가 왜 탄생했는지를 살핀다. 책의 질문을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바보야, 왜 전쟁이 시작됐냐가 아니라, 왜 전쟁이 그런 모양새로 끝났냐를 물어야지!’ 정도가 된다. 정전으로 끝나고 70년 가까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전후체제가 한국전쟁 말고 있는가? 도대체 왜 전쟁은 그렇게 끝나고, 남한은 정전협정에 사인도 안 했는데 그 상태가 이토록 오래가는가? 거의 모든 면에서 생명력이 다한 국가 북한은 어째서 붕괴하지 않고 핵을 지렛대로 저렇게 전근대적인 모습으로 존속하고 있는가? 전쟁이 아니니 분명 평화인데 이 평화는 왜 이렇게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 <판문점 체제의 기원> '한국전쟁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학문적 대사건' 1950년 6월 25일 벌어진 한국전쟁을 다루는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내용은 거의 없다. 세세한 전투상황이나 ‘누가 침공했나, 왜 시작됐나’와 같은 전쟁사적 관점은 조금도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크며, 누구의 전공이 큰가 역시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1950년 6월 25일은 전혀 주목받지 않으며 인천 상륙작전 역시 제목만 등장한다. 국제법과 UN 논의, 샌프란시스코와 반둥, 이 책에는 전혀 기시감이 없는 내용이 가득하다. 시야가 전혀 다른 지평을 향하기 때문이다. 최장집은 한국전쟁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학문적 대사건이라고 하고, 박명림은 ‘평화의 기원’이라는 사유의 전환이 ‘다른 종류의 평화’를 꿈꿀 시작점을 제시한다고 평가한다. 참고로 이 책은 저자의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펴냈다. # 다른 질문 : 우리는 왜 이런 종류의 평화를 가지게 되었나 우리는 한국전쟁을 6.25 전쟁이라고 부르자고 할 정도로 북한의 남침은 분명하게 기억하지만, 같은 해 10월 7일 UN군이 38선을 통과해 북진한 사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UN군의 북진은 정당한가? 혹은 UN군 북진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천 상륙작전 이후 서울을 되찾은 UN군은 단지 전쟁 이전 남한의 영토를 수복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북진을 통해 한반도를 통일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38선을 넘었다. 사실 UN의 창설 목적에 비추어보면 극히 이례적이고도 ‘위험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UN은 2차 대전 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범죄화하기 위해 창설됐다. 평화의 이름으로 ‘한 정치체제를 지도상에서 없애기 위한 정복’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실제로 ‘북진’은 당시 UN에서 뜨겁게 논의됐다. 혹시 한국전쟁이 미국의 남북전쟁과 같은 내전이라면 UN은 내정간섭을 해선 안 되고, 반대로 국제전이라면 원상회복 수준에서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닌가. 중공은 참전의 정당성을 바로 이 지점에서 찾는다. ‘북진’이라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항거’로 북을 도왔다는 것이다. 평양 제2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한국군 전범조사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 본문 419쪽 # '자발적으로 선택하라'고 던진 포로송환 문제 또 다른 핵심적 질문은 포로 문제다. 사실 침공과 낙동강 전선, 인천상륙작전과 1.4 후퇴까지 우리가 아는 전쟁의 주요 전황은 개전 이후 거의 6개월 안에 다 진행됐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주요 전투가 마무리되고 51년에는 정전협상을 시작까지 했다. 그런데 이후로도 전쟁은 2년 동안 지속했다. 포로송환, 단 하나의 문제 때문이었다. 다른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에는 금방 합의해 놓고 왜 고작 포로 문제 때문에 전쟁을 계속했나? 미국은 중국과 북한의 전쟁 포로들에게 ‘남을지, 돌아갈지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결정하라’고 강요했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중립국’을 선택하는 주인공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제네바 협약은 포로의 송환을 원칙으로 한다. 포로에게 갈 곳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라고 하는 일은 전쟁사에서 유례없었다. 미국은 유례는 없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고 (그리고 부가적으로 이승만도) 정말 고집스럽게 이 ‘자원 송환’ 원칙을 고수하려 했다. ‘배신자 프로그램’을 통해 돌아가지 말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역시 전쟁사에 유례없는 아비규환을 낳았다. 수용소에서 포로들은 ‘개인적 신념에 따라’ 정치 조직화 되었고 수용된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누고 서로 죽이고 죽는 암투를 벌였으며, 수용 당국을 향해서 반란을 획책했다. 미군 수용소장이 납치, 억류됐다. 포로 문제가 전쟁 이후 ‘특수한 평화의 본질’을 꿰뚫는 실마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도 저자가 처음이 아닐까. # 한반도는 왜 분단되었는가 시야를 좀 더 넓히면 독일과 우리의 분단을 등치 시키는 우리 사고도 질문 대상이다. 지구 상에 분단된 유일한 국가, 라고 할 때마다 우리는 ‘독일도 이제는 통일되었는데’라는 관용어구를 떠올린다. 하지만 독일과 우리의 분단이 등치될 수 있는 것일까? 독일은 패전국이자 전범국이니 강제 분단됐다 치자, 그런데 우리는 왜 전쟁을 겪고 분단이 되고, 70년 분단을 겪고 있나? 독일이 전쟁 책임으로 분단이 되었다면, 오스트리아도, 이탈리아도 유사한 분할 군정기를 겪었다면, 아시아에선 우리가 아니고 일본이 분할되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지구적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아시아는 왜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늘 으르렁댈까도 질문의 대상이다. 전쟁을 겪은 유럽은 NATO를 출범시키고 협력의 문화 속에 EU 통합으로까지 이르렀는데, 아시아는 경제 공동체는커녕 한, 중, 일이 역사문제로 만나면 으르렁댄다. 남사군도 센카쿠, 쿠릴열도... 이제는 독도까지 곳곳에서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과 갈등이 반복된다. 협력의 문화는 찾기 힘들고, 갈등과 대립, 충돌이 반복된다. 성숙하지 않은 문명의 한계로 쉽게 정의하고 말아도 되는 것일까? # 정의와 제국 사이 : 냉전의 전초기지에 자리 잡은 ‘판문점 체제’ 이 낯선 질문들과 항해를 하다 보면 ‘한반도의 특수한 평화체제-판문점 체제’의 본질적 구조를 보게 된다. 우선은 자유주의 진영에 의한 평화를 꿈꾸는 미국과 그 미국이 만들어낸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질서다. 공산주의에 대한 불인정, 즉 대결의 자세다. 스스로 ‘정의’로운 자유진영의 기수임을 자신한 미국은 침략자이기에 정의롭지 않은 북한을 지도에서 제거하는 것 역시 정의라고 UN을 통해 규정하려 했다. 혁명을 통해 중국 본토를 차지한 중국은 그게 정의가 아닌 제국주의 침약 야욕이라고 판단했다. 또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의 부정은 공산주의가 틀렸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어 포로들에게 틀린 것을 포기할 자유를 주는 것이 정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의와 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포로들을 냉전적 인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서로의 이념을 공격하고 배척하고 살육을 벌였다. 수용소에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지게 했다. 이 수용소는 결국 동아시아 냉전 정세의 축소판이 됐다. 냉전적 세계관이 확립되어 가면서 이득을 얻은 건 일본이다. 2차대전 뒤 평화협정 체결을 미적거리던 미국은 전쟁 중에 급히 샌프란시스코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미군의 주둔을 명시하면서 일본을 아시아 자유주의 진영의 교두보로 쓰기로 했다. 일본은 반대급부로 전쟁 책임을 면제받았다. 강제 분할당한 독일을 포함해 다른 패전국들은 분할통치 기간을 거치고 주권을 양도 당했고 반성을 했지만, 일본은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분단도 당하지 않고, 천황제를 유지하면서 온전히 살아남았다. 한국전쟁의 과실을 누리며 순식간에 재건에도 성공했다. 미국에 쓸모가 있었다.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우기는 건 바로 전쟁 중에 급히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당초 있던 반환 부분이 중간에 빠졌기 때문이다. # 정치적 냉전은 계속하는 한반도 '정전체제' 대신 희생은 패전국의 식민지였던 한반도가 당했다. 전쟁을 겪었고 분할 당했고, 평화도 얻지 못했다. 한반도는 힘이 균형을 이루는 장소여야 했고, 군사전은 끝났어도 정치적 냉전은 계속 수행되어야 하는 장소가 됐다. 판문점 체제는 오직 군사적으로 총만 내려놓는 데 합의한 정전체제였다. 평화협정은 전쟁 상대인 중공을 중국을 통치하는 실질적 국가주체로 인정해야 하는 정치적 문제로 인해 체결될 수 없었다. 장기란 말이 된 남북은 자유와 혁명 세력의 대치장소로서 체제 경쟁을 해야 했고 끝없이 서로 적대해야 했다. 냉전의 양 진영과 한반도의 독재자들에게는 유리한 구도였다. 독재자들은 이 상황이 항구적으로 지속하여야 생존이 가능했다. 국민들은 왜곡된 사회 경제 정치 구조를 받아들여 왜곡된 인식을 한 주체로 살아야 했다. 북한은 물론 전근대적인 왕조체제이며 잔악하며 경제적으로 붕괴한 실패한 국가이지만, 바로 이 왜곡된 질서에 순응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 2018년 남북 정상회담, 65년 지속한 ‘특수 평화체제’의 종식의 시발점 될까 지금 판문점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은 바로 이렇게 정초 돼 65년 지속된 판문점 체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점이 되려 한다. 사실 한국전쟁이 정전이라는 일시적 평화로 이어지게 했던 힘의 균형은 무너진 지 오래다. 제국주의의 대안으로 ‘정의로운 근대화’를 추구했던 공산주의는 지구에선 실패한 실험이 되었다. 북한은 체제경쟁에서 패배했다. 핵은 무너진 힘의 균형을 억지로 유지하고 또 체제를 지탱하는 일시적이지만 유일한 힘의 원천이었다. 협박하고 위협해 공포를 조장해야 국제적으로 살아남고 내적 단결을 획득할 수 있었다. 생존의 한 수단으로 65년간 효과적으로 작동한 논리였다. 그런 북한이 이제 다른 생존의 수단을 쓰고 싶어 한다. 생존을 보장받는 동시에 발전도 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전쟁의 당사자이거나 정전 협정 조인국들인 한국과 북한 미국과 중국이 모두 임기 초기이거나 정책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권력상태에 있다. 전방위적이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화를 한다. 북한의 시도가, 그리고 우리의 소망이 아마도 근 70년 만에 가장 좋은 기회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이 ‘판문점 체제’ 균열 내기가 순조롭게 결실을 향해 갈 수 있게 된다면, 만약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미국이 북한의 국가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북한이 핵과 관련해 미국이 이해할 만한 답을 내놓는다면, 지금의 이 정상회담은 말 그대로 역사적인 순간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판문점 체제의 기원>은 이 첫 발걸음이 얼마나 거대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납득하게 한다.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전례 없는 희망, 이 희망이 피어난 역사적인 순간을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다. 분단 현실의 기저에 놓인 현실을 규정하는 힘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판문점 체제의 기원> 김학재 씀, 출판사 후마니타스,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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