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3)

입력 2018.05.0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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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최근 들어 유럽 유학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경화: 외국에 나가는 것도 좋은데 선생을 정말 잘 만나야 해. 암만 줏대가 강해도 (선생을 잘못 만나면) 수습이 힘들어. 자기 마음대로 안 되지. 나중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선택이야. -2012년 인터뷰 중에서
[매일경제] 바이올린 女帝 정경화 & 조성진 피아노계 新星 (2012.1.3)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유학을 떠나기 전 멘토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나눈 대화이다. 사제지간의 연(緣)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겠지만 특별히‘사사(師事)하다-스승으로 섬기고 가르침을 받다’라는 표현을 쓰는 음악가에게는 더욱 그러함을 보여준다. 결국은 ‘인연(因緣)’의 문제이고, 그래서 좋은 스승과 제자가 만나면 서로에 대해 ‘운이 좋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미셸 베로프와 조성진의 인연도 조성진이 원래 계획대로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페트로프(Nikolai Petrov)에게 사사하러 러시아에 갔었더라면 닿지 않을 수 있었다. -페트로프는 조성진에게 ‘자기와 공부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었고, 조성진도 그럴 의향이 있었지만 2011년 페트로프가 갑자기 타계하면서 무산됐다- 어찌 보면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스승과 제자. 하지만 그 인연은 단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필연인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클래식, 그 때 그 사람] 시련을 딛고 전설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미셸 베로프

▶지난 편에서 이어집니다.
[연관기사]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1)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2)

Q. 교수님께서는 조성진이 2015 쇼팽 콩쿠르에 나갈 당시에 어떤 조언을 해주셨나요?

별로 조언한 게 없어요. 왜냐면 제가 봤을 때 이미 그는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시험을 치를 때나 대중 앞에서 연주할 때도 떨거나 하는 게 전혀 없었거든요. 그가 정말 떠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조언이라고 해도 그저 각 작품, 곡들과 관계된 것들이었죠. 최대한 악보를 존중하고 너무 자기 자신을 표현하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정도. 왜냐면 쇼팽의 곡들은 아주 복잡하거든요. 그래서 그에게‘쇼팽 곡(의 해석)에 대해서 확고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쇼팽은 조국 폴란드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다, 쇼팽에 대해서 가장 잘 안다고 확신하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연주하는 것임을 잊지 마라, 그러므로 쇼팽을 연주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다’라는 걸 일깨워주는 정도였습니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연주란 없어요.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또 안 그런 사람들도 있는 거죠. 조성진 같은 우수한 인재의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좋아하고 당연히 콩쿠르 우승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과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에요. 따라서 제가 준 조언은 각각의 작품에 입각한 것들만이었습니다. 심사위원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으니 이렇게 연주해야 된다는 식의 조언은 절대 통하지 않거든요. 다른 누군가를 생각해서 그 사람 마음에 들도록 어떻게 연주하라는 건 말도 안 돼요. 진정성과 성실함이 있다면, 그리고 준비했다면 그 다음에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다죠. 더 이상 줄 조언은 없습니다.

특히 조성진처럼 이미 충분히 실력이 있고 기본이 확실히 갖춰진 경우에는요.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어떤 연주자에게나 혹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호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터인데 그것은 그 연주자가 천재나 바보라서 그런 게 결코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는 겁니다. 연주자는 그저 자신의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하죠. 진정성과 지성을 가지고서요. 음악을 사랑한다면 그 태도에 있어서 진지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가야 할 길이고 계속 나아가야 할 방향인 거죠. 모든 학생 개개인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가르치다가 좀 위험하다 싶은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면 제 의견을 이야기해주곤 했어요.

결국 연주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잖아요, 제가 아니라. 어떻게 할지 최종 선택도 오롯이 그의 몫이고요. 그래서 조성진에게도 제 역할은 ‘주의해라, 쇼팽이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런 방향이 맞는 것 같다’라고 필요할 때 환기시켜주는 정도였습니다.

Q. 그래서 조성진씨가 “베로프 선생님은 제게 아이디어를 강요하지 않으셨어요. 의논하면서 레슨하는 편이세요. 제 생각도 존중해주시고 좀 이상하다 싶으면 제게 선생님의 의견을 전달해 주시고…그러시는 편이에요”라고 이야기한 거군요.

결국은 각자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니까요. 선생님인 제가 맞는지 틀린 건지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러기 위해 고민하는 것마저도요.

때로는 어떤 학생에게 무엇을 얘기하면 빨리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 변화가 오기도 하고요.

6개월 또는 2년이 걸려서 깨닫는 경우도 있죠. 그 타이밍은 학생마다 다르고 아무도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선생으로서 학생이 연주하는 방식에 대해 제 생각을 이야기해주고, 그가 선택한 음악적 옵션에 대한 제 생각도 이야기해줍니다.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길이 뭔지, 그렇다고 절대 그것이 진리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왜냐면 음악에 있어서 진리란 없으니까요. 제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똑같은 연주를 하는 학생들을 ‘찍어내는’ 게 아니라 학생 각자가 개성이 다 다른 만큼, 그리고 실력이 다 다른 만큼 각자에게 맞는 걸 전수해주는 것입니다. 특히 조성진 같은 학생의 경우는 이야기해주기가 훨씬 쉬웠죠. 왜냐하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준을 갖췄으니까요.

어떤 주문을 해도 결국은 다 해냈습니다. 실력이 뒷받침됐으니까요. 이야기를 해도 이해를 못하거나 실력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조성진의 경우는 가르치기가 매우 쉬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으로서도 아주 즐거웠죠.

Q. 교수님만의 확고한 교육 철학이 있으시군요.

그건 아주 어려운 문제인데요, 제가 어떤 걸 가르친다고 해도 그 또한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진리는 아닐 수도 있는 거죠. 저는 그저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향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음악과 악보라는 차원에 입각해 생각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거고요, 그리고 너무 쉽게 대중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젊을 때는 자기를 표현하고 싶은 것도 당연하거든요. 하지만 음악은, 특히 거장들의 작품을 연주할 때는 오로지 그 음악의 메시지에만 집중해야 하지요. 연주자는 그것을 헤아리는 사람이고 전달자인 거예요. 그런 인식이 결국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대중을 너무 의식하면 위험하고, 그래서는 결코 진정한 음악가가 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미 소년시절부터 대단한 재능과 거장의 자질을 지닌 조성진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하게 하는데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것입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너무 어려서 성공을 하면 위험이 있을 수 있고, 특히 너무 일찍 대중에 알려지면 자기도 모르게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기 쉽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될 수도 있거든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음악가는 늘 자기 자신일 수 있어야 하고, 음악을 위해서 존재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가르치려 노력했어요. 조성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만이 지닌 개성을 간직하고서요. 적어도 저와 함께 공부하면서 그런 엄격함과 철저함, 엄정성은 더 길러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웃음)

Q. 이번에도 라벨(Maurice Ravel)을 연주하셨는데 요즘 한국에서도 드뷔시와 쇼팽 등 프랑스 음악을 즐겨듣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프랑스 음악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벨의 음악을 보면 대칭과 균형까지는 아닐지라도 형태에 있어 드뷔시에 비해 훨씬 더 완벽하게 짜여진 형태입니다.

드뷔시는 상상력 면에서 쇼팽에 훨씬 더 가까운 편이고, 표현이 너무 많고 따라서 감정을 훨씬 멀리 이끌어가는 측면이 있는데요, 정교함을 동경했던 라벨은 완벽한 화성과 완벽한 형태에 대한 강박이 있었죠. 이처럼 프랑스 음악에는 천재들이 많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음악에 빠져들게 되면 프랑스 음악을 지나치기는 어렵죠. 이탈리아 음악이나 독일 음악, 러시아 음악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레퍼토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섬세하면서도 때로는 철학적 깊이가 느껴지고, 그렇지만 독일 음악과는 다르게 가볍고 경쾌함이 살아있고, 그러면서도 감정을 아주 멀리까지 끌고 가는.......

그리고 프랑스 음악에서는 소리의 퀄리티가 음악적인 메시지의 전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프랑스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프랑스 미술과 프랑스 문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프랑스 음악을 더욱 잘 이해하고, 그 음악을 작곡한 사람들이 있었던 예술적 환경과 연관 지어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죠. 그리고 프랑스 음악 뿐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음악도 두루 들어보고 그 맥락 안에서 레퍼토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역시 미술이나 시 등 문학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작곡가들의 생각과 시대적 배경까지를 이해하려 노력하면서요. 음악에 깃든 역사와 곡이 만들어질 당시의 사회적 배경 등을 눈여겨보고 다양한 문화들의 어우러짐까지를 한번 봐보세요. 음악은 보편적인 것이거든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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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3)
    • 입력 2018-05-06 15:04:39
    취재K
조성진: 최근 들어 유럽 유학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경화: 외국에 나가는 것도 좋은데 선생을 정말 잘 만나야 해. 암만 줏대가 강해도 (선생을 잘못 만나면) 수습이 힘들어. 자기 마음대로 안 되지. 나중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선택이야. -2012년 인터뷰 중에서
[매일경제] 바이올린 女帝 정경화 & 조성진 피아노계 新星 (2012.1.3)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유학을 떠나기 전 멘토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나눈 대화이다. 사제지간의 연(緣)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겠지만 특별히‘사사(師事)하다-스승으로 섬기고 가르침을 받다’라는 표현을 쓰는 음악가에게는 더욱 그러함을 보여준다. 결국은 ‘인연(因緣)’의 문제이고, 그래서 좋은 스승과 제자가 만나면 서로에 대해 ‘운이 좋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미셸 베로프와 조성진의 인연도 조성진이 원래 계획대로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페트로프(Nikolai Petrov)에게 사사하러 러시아에 갔었더라면 닿지 않을 수 있었다. -페트로프는 조성진에게 ‘자기와 공부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었고, 조성진도 그럴 의향이 있었지만 2011년 페트로프가 갑자기 타계하면서 무산됐다- 어찌 보면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스승과 제자. 하지만 그 인연은 단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필연인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클래식, 그 때 그 사람] 시련을 딛고 전설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미셸 베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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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1)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2)

Q. 교수님께서는 조성진이 2015 쇼팽 콩쿠르에 나갈 당시에 어떤 조언을 해주셨나요?

별로 조언한 게 없어요. 왜냐면 제가 봤을 때 이미 그는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시험을 치를 때나 대중 앞에서 연주할 때도 떨거나 하는 게 전혀 없었거든요. 그가 정말 떠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조언이라고 해도 그저 각 작품, 곡들과 관계된 것들이었죠. 최대한 악보를 존중하고 너무 자기 자신을 표현하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정도. 왜냐면 쇼팽의 곡들은 아주 복잡하거든요. 그래서 그에게‘쇼팽 곡(의 해석)에 대해서 확고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쇼팽은 조국 폴란드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다, 쇼팽에 대해서 가장 잘 안다고 확신하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연주하는 것임을 잊지 마라, 그러므로 쇼팽을 연주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다’라는 걸 일깨워주는 정도였습니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연주란 없어요.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또 안 그런 사람들도 있는 거죠. 조성진 같은 우수한 인재의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좋아하고 당연히 콩쿠르 우승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과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에요. 따라서 제가 준 조언은 각각의 작품에 입각한 것들만이었습니다. 심사위원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으니 이렇게 연주해야 된다는 식의 조언은 절대 통하지 않거든요. 다른 누군가를 생각해서 그 사람 마음에 들도록 어떻게 연주하라는 건 말도 안 돼요. 진정성과 성실함이 있다면, 그리고 준비했다면 그 다음에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다죠. 더 이상 줄 조언은 없습니다.

특히 조성진처럼 이미 충분히 실력이 있고 기본이 확실히 갖춰진 경우에는요.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어떤 연주자에게나 혹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호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터인데 그것은 그 연주자가 천재나 바보라서 그런 게 결코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는 겁니다. 연주자는 그저 자신의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하죠. 진정성과 지성을 가지고서요. 음악을 사랑한다면 그 태도에 있어서 진지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가야 할 길이고 계속 나아가야 할 방향인 거죠. 모든 학생 개개인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가르치다가 좀 위험하다 싶은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면 제 의견을 이야기해주곤 했어요.

결국 연주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잖아요, 제가 아니라. 어떻게 할지 최종 선택도 오롯이 그의 몫이고요. 그래서 조성진에게도 제 역할은 ‘주의해라, 쇼팽이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런 방향이 맞는 것 같다’라고 필요할 때 환기시켜주는 정도였습니다.

Q. 그래서 조성진씨가 “베로프 선생님은 제게 아이디어를 강요하지 않으셨어요. 의논하면서 레슨하는 편이세요. 제 생각도 존중해주시고 좀 이상하다 싶으면 제게 선생님의 의견을 전달해 주시고…그러시는 편이에요”라고 이야기한 거군요.

결국은 각자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니까요. 선생님인 제가 맞는지 틀린 건지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러기 위해 고민하는 것마저도요.

때로는 어떤 학생에게 무엇을 얘기하면 빨리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 변화가 오기도 하고요.

6개월 또는 2년이 걸려서 깨닫는 경우도 있죠. 그 타이밍은 학생마다 다르고 아무도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선생으로서 학생이 연주하는 방식에 대해 제 생각을 이야기해주고, 그가 선택한 음악적 옵션에 대한 제 생각도 이야기해줍니다.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길이 뭔지, 그렇다고 절대 그것이 진리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왜냐면 음악에 있어서 진리란 없으니까요. 제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똑같은 연주를 하는 학생들을 ‘찍어내는’ 게 아니라 학생 각자가 개성이 다 다른 만큼, 그리고 실력이 다 다른 만큼 각자에게 맞는 걸 전수해주는 것입니다. 특히 조성진 같은 학생의 경우는 이야기해주기가 훨씬 쉬웠죠. 왜냐하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준을 갖췄으니까요.

어떤 주문을 해도 결국은 다 해냈습니다. 실력이 뒷받침됐으니까요. 이야기를 해도 이해를 못하거나 실력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조성진의 경우는 가르치기가 매우 쉬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으로서도 아주 즐거웠죠.

Q. 교수님만의 확고한 교육 철학이 있으시군요.

그건 아주 어려운 문제인데요, 제가 어떤 걸 가르친다고 해도 그 또한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진리는 아닐 수도 있는 거죠. 저는 그저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향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음악과 악보라는 차원에 입각해 생각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거고요, 그리고 너무 쉽게 대중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젊을 때는 자기를 표현하고 싶은 것도 당연하거든요. 하지만 음악은, 특히 거장들의 작품을 연주할 때는 오로지 그 음악의 메시지에만 집중해야 하지요. 연주자는 그것을 헤아리는 사람이고 전달자인 거예요. 그런 인식이 결국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대중을 너무 의식하면 위험하고, 그래서는 결코 진정한 음악가가 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미 소년시절부터 대단한 재능과 거장의 자질을 지닌 조성진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하게 하는데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것입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너무 어려서 성공을 하면 위험이 있을 수 있고, 특히 너무 일찍 대중에 알려지면 자기도 모르게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기 쉽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될 수도 있거든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음악가는 늘 자기 자신일 수 있어야 하고, 음악을 위해서 존재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가르치려 노력했어요. 조성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만이 지닌 개성을 간직하고서요. 적어도 저와 함께 공부하면서 그런 엄격함과 철저함, 엄정성은 더 길러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웃음)

Q. 이번에도 라벨(Maurice Ravel)을 연주하셨는데 요즘 한국에서도 드뷔시와 쇼팽 등 프랑스 음악을 즐겨듣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프랑스 음악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벨의 음악을 보면 대칭과 균형까지는 아닐지라도 형태에 있어 드뷔시에 비해 훨씬 더 완벽하게 짜여진 형태입니다.

드뷔시는 상상력 면에서 쇼팽에 훨씬 더 가까운 편이고, 표현이 너무 많고 따라서 감정을 훨씬 멀리 이끌어가는 측면이 있는데요, 정교함을 동경했던 라벨은 완벽한 화성과 완벽한 형태에 대한 강박이 있었죠. 이처럼 프랑스 음악에는 천재들이 많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음악에 빠져들게 되면 프랑스 음악을 지나치기는 어렵죠. 이탈리아 음악이나 독일 음악, 러시아 음악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레퍼토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섬세하면서도 때로는 철학적 깊이가 느껴지고, 그렇지만 독일 음악과는 다르게 가볍고 경쾌함이 살아있고, 그러면서도 감정을 아주 멀리까지 끌고 가는.......

그리고 프랑스 음악에서는 소리의 퀄리티가 음악적인 메시지의 전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프랑스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프랑스 미술과 프랑스 문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프랑스 음악을 더욱 잘 이해하고, 그 음악을 작곡한 사람들이 있었던 예술적 환경과 연관 지어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죠. 그리고 프랑스 음악 뿐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음악도 두루 들어보고 그 맥락 안에서 레퍼토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역시 미술이나 시 등 문학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작곡가들의 생각과 시대적 배경까지를 이해하려 노력하면서요. 음악에 깃든 역사와 곡이 만들어질 당시의 사회적 배경 등을 눈여겨보고 다양한 문화들의 어우러짐까지를 한번 봐보세요. 음악은 보편적인 것이거든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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