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전격 방중과 ‘PVID’…단순 기싸움 넘어 변수되나?

입력 2018.05.08 (17:20) 수정 2018.05.0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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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북미 정상회담에 변수가 등장한 것일까?

북미정상회담 일정 발표가 지연되는 것을 계기로 언론과 외교가를 중심으로 북미 간 이상기류 설이 확산하는 가운데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난 뒤 40여일 만에 이뤄진 방북이다.

가뜩이나 미국이 'PVID'로 상징되는 새로운 비핵화 목표를 제시하며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고, 이에 맞선 북한의 반발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까지 사실로 확인되면서 정상회담을 앞둔 북미 간 의제 조율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일각의 관측은 더 힘을 얻게 됐다.

그렇다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은 위원장의 전격적인 방중은 뭘 의미할까? 미국이 새로운 협상기준으로 설정한 이른바 'PVID'의 파괴력은 얼마나 될까? 심상치 않은 북미의 최근 움직임은 과연 협상을 앞둔 막판 기싸움일까, 아니면 북미회담의 판을 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사진출처 : EPA=연합뉴스][사진출처 : EPA=연합뉴스]

■갑자기 등장한 ‘PVID’…15년만에 사라지는 CVID

최근 외교가의 핫이슈로 떠오른 'PVID'라는 용어는 이달 들어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의 입을 통해 처음 등장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2일(현지 시간) 국무부에서 진행된 취임식에서 북핵 해결의 원칙으로 기존의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대신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Perman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내세웠다.

[사진출처 : EPA=연합뉴스][사진출처 : EPA=연합뉴스]

이틀 뒤, 이번엔 백악관 외교안보수장인 졸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또다시 PVID를 언급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실은 지난 5일(현지 시각)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NSC) 국장의 전날 회담 결과를 전하면서 "두 사람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폐기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했다(Ambassador Bolton and Mr. Yachi reaffirmed the shared goal of achieving the complete and permanent dismantlement of North Korea’s weapons of mass destruction, including all nuclear weapons, ballistic missiles, biological and chemical weapons, and related programs."고 밝혔다.

'PVID'는 미국 국무부가 오늘(8일) KBS 질의에 대해 내놓은 공식답변에도 등장한다.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대변인은 최근 북한 외무성의 비판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KBS 워싱턴특파원의 이메일 질의에 대해 "미국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지체없이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것(we are committed to achieving permanent dismantlement of North Korea’s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grams without delay.)이라면서 영구적 비핵화(permanent dismantlement)를 언급했다.

폼페이오가 처음 PVID를 언급했을 때만도 'CVID를 달리 표현한 정치적 수사'정도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신중론이 우세했지만, 며칠 사이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폼페이오 발언에,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가세하고 미 국무부 표현에까지 PVID가 등장하면서 PVID는 이제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 비핵화 목표를 상징하는 공식 용어가 됐다는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03년 부시 행정부 당시, 네오콘 등 미국 내 강경파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던 CVID가 15년만에 역사적 소임을 마치고 PVID로 대체되는 경계지점에 이른 것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사진출처 : 연합뉴스]

■PVID와 등장한 두 개의 단어: wmd(대량살상무기), instant(즉시)

CVID와 PVID, 외견상으로 볼 때 달라진 건 단어 하나뿐이다. '완전한'을 뜻하는 'complete'가 '영구적인'을 의미하는 'permanent'로 표현이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외교가와 언론이 이토록 PVID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PVID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고 해서 미국의 협상 전략이 바뀌었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특히 미국 정부 관리들이 PVID의 개념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로선 추론만 가능할 뿐 결론을 내리기에는 근거가 부족하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신중론에도 불구하고, CVID의 PVID로의 전환은 단순히 단어 하나를 바꾼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흔히 프레스 가인던스(PG)로 불리는 미국 정부의 공식 언론 대응 문구는 단어 하나하나가 범정부 차원의 치밀한 정책 협의를 거쳐 정교하게 선택된다는 점, 여기에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앞두고 이를 주도하는 미국 최고 외교 실세들이 단어의 의미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동일한 표현을 반복해 사용할 리 만무하다.

이 때문에 현시점에서 미국이 CVID를 PVID 개념으로 바꿨다는 것은 단순한 용어 변경을 넘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협상 전략이 변경됐음을 의미하고, '영구적인 핵 폐기'라는 한층 강화된 협상 목표와 기준을 갖고 정상회담에 임하겠다는 메시지로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PVID와 함께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문에서 최근 달라진 표현이 더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대량살상무기를 뜻하는 'wmd'와 즉각적인 시행을 의미하는 'instant 또는 without delay'라는 단어 2개가 바로 그것이다.

백악관은 볼턴과 야치 쇼타로 일본 NSC 국장의 회동 결과를 전하면서, 양측이 핵무기 외에 탄도 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하고 항구적인 폐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the complete and permanent dismantlement of North Korea’s weapons of mass destruction, including all nuclear weapons, ballistic missiles, biological and chemical weapons, and related programs") 북한이 폐기해야 하는 무기 대상에 통상적으로 거론돼왔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외에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등의 대량살상무기가 포함된 것이다.

국무부 대변인의 이메일 답변에서는 항구적인 폐기라는 단어의 목적어로 '북한 대량살상무기(WMD)'가 사용됐고, 폐기 시기를 의미하는 부사로 '지체없이(without delay)'가 추가됐다. ("permanent dismantlement of North Korea’s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grams without delay.")

PVID와 CVID를 둘러싼 의미 해석 논란과는 별개로, 북한이 폐기해야 할 대량살상무기의 범위에 핵탄두 외에도 단·중·장거리 미사일과 ICBM, 생화학무기가 모두 포함됐고, 폐기 대상도 크게 앞당겨야 한다는 게 미국의 진짜 생각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기존의 핵무기와 ICBM 중심으로 동결과 폐기, 검증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했던 당초 북미정상회담의 전망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사진출처 : 연합뉴스]

■문정인 “美 전문가들 80%, 북미정상회담 전망 비관적”

미국 정부가 새로운 협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나선 데는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계산과 함께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내 신중론과도 일정 부분 맥이 닿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7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자리에서,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전문가들의 분위기와 관련해 "비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 80% 이상이 되는 것 같다"면서 특히 강경, 온건파 할 것 없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문 특보는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는데 "한가지는 북한을 믿기 어렵다는 것은 강경, 온건에 관계없이 '과거의 행태로 봐서 북한을 믿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협상을 별로 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외교적으로 북한 핵 협상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신중한 분위기는 최근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이 연일 쏟아내는 "믿지 말고 검증하라!"는 문구에도 함축돼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0년대 소련과 군축협상을 할 때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를 표현을 즐겨썼지만, 북한에는 이 원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만큼 "믿지 말고 검증하라(Distrust and verify)"가 협상 전략이 돼야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6일(현지시간) 북한의 전력 때문에 전문가들의 대북 의견은 "Distrust everything and verify, verify, verify’(모든 것을 불신하고 검증, 검증, 또 검증하라)로 모아지고 있다"고 미국 내 분위기를 전했고,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주역이었던 로버트 갈루치 전 특사는 특히 "레이건은 틀렸다"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믿지 마라. 그러므로 검증하라(don't trust and therefore verify) '라가 적합하다며 거듭 철저한 검증을 주문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사진출처 : 연합뉴스]

■북한의 경고, 김정은의 전격 방중…북미정상회담 변수되나?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대북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는 가운데 오늘 전격 이뤄진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의미와 파장은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이 나와야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일단은 한반도 정세가 중요한 변곡점을 맞는 가운데 북·중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윈윈의 카드'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북한으로선 무엇보다 중국이라는 우군을 확보함으로써 미국의 압박에 맞서 대미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협상이 자칫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자신들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중국이라는 안전판이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대미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앞서 북한은 지난 6일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이례적으로 대미 경고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위는 모처럼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정세를 원점으로 되돌려 세우려는 위험한 시도"라면서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중국으로선 급변하는 한반도 질서 재편과정에서 자국이 소외되는 이른바 '차이나 패싱'을 차단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판문점 선언에서 중국을 제외한 남북미 3자 대화를 통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논의 가능성이 대두되자,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을 서둘러 북한에 파견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북한과 중국이 서로에게 손을 내밀면서 남북, 북미, 남북미를 중심으로 흘러왔던 북한의 핵 폐기와 한반도의 미래를 둘러싼 협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 양상이다. 중국 역할론이 힘을 받을 경우,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 역시 영향을 받게 되고,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열릴 예정인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 양상도 지금까지의 예측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의 대북 압박과 김정은 위원장의 전격 방중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기싸움일까? 아니면 판을 흔드는 중대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미국의 대북 압박 기조에 앞선 북한의 맞대응 성격으로 북미 간 기싸움, 힘겨루기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판문점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의 시간표가 돌이킬 수 없는 '상수'가 돼버린 상황에서 북미 대화의 판을 뒤흔드는 중대변수로 작용하긴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호랑이 등에 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남북미 정상들이 궤도를 이탈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있고, 해법을 찾아내려는 정상들의 의지 또한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점 역시 중요한 포인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압박 전략에 맞서, 김정은 위원장이 맞불을 놓고 나선 형국이어서 향후 북미간 비핵화 협상을 낙관할 수만은 없게 됐다는 점 또한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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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전격 방중과 ‘PVID’…단순 기싸움 넘어 변수되나?
    • 입력 2018-05-08 17:20:38
    • 수정2018-05-08 20:32:28
    취재K
과연 북미 정상회담에 변수가 등장한 것일까?

북미정상회담 일정 발표가 지연되는 것을 계기로 언론과 외교가를 중심으로 북미 간 이상기류 설이 확산하는 가운데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난 뒤 40여일 만에 이뤄진 방북이다.

가뜩이나 미국이 'PVID'로 상징되는 새로운 비핵화 목표를 제시하며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고, 이에 맞선 북한의 반발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까지 사실로 확인되면서 정상회담을 앞둔 북미 간 의제 조율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일각의 관측은 더 힘을 얻게 됐다.

그렇다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은 위원장의 전격적인 방중은 뭘 의미할까? 미국이 새로운 협상기준으로 설정한 이른바 'PVID'의 파괴력은 얼마나 될까? 심상치 않은 북미의 최근 움직임은 과연 협상을 앞둔 막판 기싸움일까, 아니면 북미회담의 판을 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사진출처 : EPA=연합뉴스]
■갑자기 등장한 ‘PVID’…15년만에 사라지는 CVID

최근 외교가의 핫이슈로 떠오른 'PVID'라는 용어는 이달 들어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의 입을 통해 처음 등장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2일(현지 시간) 국무부에서 진행된 취임식에서 북핵 해결의 원칙으로 기존의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대신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Perman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내세웠다.

[사진출처 : EPA=연합뉴스]
이틀 뒤, 이번엔 백악관 외교안보수장인 졸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또다시 PVID를 언급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실은 지난 5일(현지 시각)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NSC) 국장의 전날 회담 결과를 전하면서 "두 사람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폐기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했다(Ambassador Bolton and Mr. Yachi reaffirmed the shared goal of achieving the complete and permanent dismantlement of North Korea’s weapons of mass destruction, including all nuclear weapons, ballistic missiles, biological and chemical weapons, and related programs."고 밝혔다.

'PVID'는 미국 국무부가 오늘(8일) KBS 질의에 대해 내놓은 공식답변에도 등장한다.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대변인은 최근 북한 외무성의 비판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KBS 워싱턴특파원의 이메일 질의에 대해 "미국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지체없이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것(we are committed to achieving permanent dismantlement of North Korea’s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grams without delay.)이라면서 영구적 비핵화(permanent dismantlement)를 언급했다.

폼페이오가 처음 PVID를 언급했을 때만도 'CVID를 달리 표현한 정치적 수사'정도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신중론이 우세했지만, 며칠 사이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폼페이오 발언에,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가세하고 미 국무부 표현에까지 PVID가 등장하면서 PVID는 이제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 비핵화 목표를 상징하는 공식 용어가 됐다는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03년 부시 행정부 당시, 네오콘 등 미국 내 강경파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던 CVID가 15년만에 역사적 소임을 마치고 PVID로 대체되는 경계지점에 이른 것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PVID와 등장한 두 개의 단어: wmd(대량살상무기), instant(즉시)

CVID와 PVID, 외견상으로 볼 때 달라진 건 단어 하나뿐이다. '완전한'을 뜻하는 'complete'가 '영구적인'을 의미하는 'permanent'로 표현이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외교가와 언론이 이토록 PVID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PVID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고 해서 미국의 협상 전략이 바뀌었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특히 미국 정부 관리들이 PVID의 개념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로선 추론만 가능할 뿐 결론을 내리기에는 근거가 부족하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신중론에도 불구하고, CVID의 PVID로의 전환은 단순히 단어 하나를 바꾼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흔히 프레스 가인던스(PG)로 불리는 미국 정부의 공식 언론 대응 문구는 단어 하나하나가 범정부 차원의 치밀한 정책 협의를 거쳐 정교하게 선택된다는 점, 여기에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앞두고 이를 주도하는 미국 최고 외교 실세들이 단어의 의미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동일한 표현을 반복해 사용할 리 만무하다.

이 때문에 현시점에서 미국이 CVID를 PVID 개념으로 바꿨다는 것은 단순한 용어 변경을 넘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협상 전략이 변경됐음을 의미하고, '영구적인 핵 폐기'라는 한층 강화된 협상 목표와 기준을 갖고 정상회담에 임하겠다는 메시지로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PVID와 함께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문에서 최근 달라진 표현이 더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대량살상무기를 뜻하는 'wmd'와 즉각적인 시행을 의미하는 'instant 또는 without delay'라는 단어 2개가 바로 그것이다.

백악관은 볼턴과 야치 쇼타로 일본 NSC 국장의 회동 결과를 전하면서, 양측이 핵무기 외에 탄도 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하고 항구적인 폐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the complete and permanent dismantlement of North Korea’s weapons of mass destruction, including all nuclear weapons, ballistic missiles, biological and chemical weapons, and related programs") 북한이 폐기해야 하는 무기 대상에 통상적으로 거론돼왔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외에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등의 대량살상무기가 포함된 것이다.

국무부 대변인의 이메일 답변에서는 항구적인 폐기라는 단어의 목적어로 '북한 대량살상무기(WMD)'가 사용됐고, 폐기 시기를 의미하는 부사로 '지체없이(without delay)'가 추가됐다. ("permanent dismantlement of North Korea’s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grams without delay.")

PVID와 CVID를 둘러싼 의미 해석 논란과는 별개로, 북한이 폐기해야 할 대량살상무기의 범위에 핵탄두 외에도 단·중·장거리 미사일과 ICBM, 생화학무기가 모두 포함됐고, 폐기 대상도 크게 앞당겨야 한다는 게 미국의 진짜 생각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기존의 핵무기와 ICBM 중심으로 동결과 폐기, 검증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했던 당초 북미정상회담의 전망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문정인 “美 전문가들 80%, 북미정상회담 전망 비관적”

미국 정부가 새로운 협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나선 데는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계산과 함께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내 신중론과도 일정 부분 맥이 닿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7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자리에서,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전문가들의 분위기와 관련해 "비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 80% 이상이 되는 것 같다"면서 특히 강경, 온건파 할 것 없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문 특보는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는데 "한가지는 북한을 믿기 어렵다는 것은 강경, 온건에 관계없이 '과거의 행태로 봐서 북한을 믿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협상을 별로 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외교적으로 북한 핵 협상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신중한 분위기는 최근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이 연일 쏟아내는 "믿지 말고 검증하라!"는 문구에도 함축돼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0년대 소련과 군축협상을 할 때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를 표현을 즐겨썼지만, 북한에는 이 원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만큼 "믿지 말고 검증하라(Distrust and verify)"가 협상 전략이 돼야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6일(현지시간) 북한의 전력 때문에 전문가들의 대북 의견은 "Distrust everything and verify, verify, verify’(모든 것을 불신하고 검증, 검증, 또 검증하라)로 모아지고 있다"고 미국 내 분위기를 전했고,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주역이었던 로버트 갈루치 전 특사는 특히 "레이건은 틀렸다"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믿지 마라. 그러므로 검증하라(don't trust and therefore verify) '라가 적합하다며 거듭 철저한 검증을 주문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북한의 경고, 김정은의 전격 방중…북미정상회담 변수되나?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대북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는 가운데 오늘 전격 이뤄진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의미와 파장은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이 나와야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일단은 한반도 정세가 중요한 변곡점을 맞는 가운데 북·중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윈윈의 카드'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북한으로선 무엇보다 중국이라는 우군을 확보함으로써 미국의 압박에 맞서 대미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협상이 자칫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자신들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중국이라는 안전판이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대미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앞서 북한은 지난 6일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이례적으로 대미 경고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위는 모처럼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정세를 원점으로 되돌려 세우려는 위험한 시도"라면서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중국으로선 급변하는 한반도 질서 재편과정에서 자국이 소외되는 이른바 '차이나 패싱'을 차단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판문점 선언에서 중국을 제외한 남북미 3자 대화를 통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논의 가능성이 대두되자,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을 서둘러 북한에 파견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북한과 중국이 서로에게 손을 내밀면서 남북, 북미, 남북미를 중심으로 흘러왔던 북한의 핵 폐기와 한반도의 미래를 둘러싼 협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 양상이다. 중국 역할론이 힘을 받을 경우,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 역시 영향을 받게 되고,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열릴 예정인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 양상도 지금까지의 예측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의 대북 압박과 김정은 위원장의 전격 방중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기싸움일까? 아니면 판을 흔드는 중대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미국의 대북 압박 기조에 앞선 북한의 맞대응 성격으로 북미 간 기싸움, 힘겨루기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판문점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의 시간표가 돌이킬 수 없는 '상수'가 돼버린 상황에서 북미 대화의 판을 뒤흔드는 중대변수로 작용하긴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호랑이 등에 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남북미 정상들이 궤도를 이탈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있고, 해법을 찾아내려는 정상들의 의지 또한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점 역시 중요한 포인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압박 전략에 맞서, 김정은 위원장이 맞불을 놓고 나선 형국이어서 향후 북미간 비핵화 협상을 낙관할 수만은 없게 됐다는 점 또한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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