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중국 선양 총영사가 ‘롯데건설’ 아닌 ‘중국건설’ 아파트에 사는 이유

입력 2018.05.08 (19:20) 수정 2018.05.0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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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롯데타운 공사 중단 ‘1년 6개월’

노영민 주중대사가 대중국 최대 현안 중 하나인 롯데 문제를 풀겠다며 중국 선양을 방문하기로 했다가 취소한 지 보름이 지났다. ‘희망 고문’만 당한 채로 롯데타운 공사는 여전히 중단 상태다.

1년 반 전 공사가 중단된 뒤 불확실성이 높아진 이후 이미 완공돼 입주가 시작된 롯데타운 내 아파트 분양도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밤에 불이 꺼져 있는 세대가 많다. 롯데 현지 직원들은 공사 허가를 다시 받기 위해 밤낮으로 뛰고 있다. 그래도 중국 공무원들은 요지부동이다. 잘 만나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속을 태우는 사이에도 공사 기간은 점점 늘어나고 돈도 더 들어가고 있다.

롯데 직원 다음으로 롯데타운을 걱정하는 사람은 이 공사 현장이 위치한 지역구 공무원들이다. 한국으로 치면 구청급인 선양시 황구취(皇姑区)다. 구청이 선양시 당국에 조속한 공사 재개 허가를 요청한 게 넉달 전이다. 구청이 “일이 잘못되면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공문을 보내고 사람을 보내 시청 실무자를 닦달하고 있다.

선양시 다른 지역에 비해 낙후된 지방으로선 롯데타운이 완공되면 지역 일자리 창출, 세수 확대 등 지역 발전에 보탬이 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롯데와 구청의 이런 노력 끝에 얼마 전 공사 현장 소방 점검이 최종 통과됐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왔다. 그러나 아직도 공사 허가를 받을 때까지 넘어야 할 행정 문턱은 높기만 하다.

“총영사관은 관련 기관이 아니라 관찰 기관”

롯데 현장이 있는 선양에 주 선양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이면 공사 재개를 위해 롯데 다음은 아니더라도 롯데와 구청 다음 정도로는 열심히 총영사관 직원들이 뛰어다닐 법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지에서는 총영사관이 “관련 기관이 아니라 관찰 기관”이란 평가가 나온다. 속을 들여다보면 실제 그렇다. 수조 원짜리 롯데 타운 등 관련 현안을 담당하는 총영사관의 경제 담당 영사는 해외공관 근무가 처음인 새내기 외교관이다. 부임 후 선양롯데를 찾아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구경하고 돌아갔다.

해당 영사가 최근 상부 지시를 받아 준비 중인 다른 지역 의전 관련 행사만 4개라고 한다. 롯데 문제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말이다. 총영사관 직원들이 롯데 공사 현장을 찾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차라리 지방 구청이 낫다는 비아냥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롯데 공사 현장 앞에 한국 영사관 차량이 장시간 불법 주차를 하고 있는 모습이 여러 사람에게 목격됐다. 바로 옆에 큰 기차역(선양북역)이 붙어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특이한 번호판을 보고 “공사 재개가 임박한 것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베이징에서 한국 대사가 공사 현장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대신 전해졌다. 대사 방문 전 혹시나 대사가 찾을지도 모르는 공사 현장에 영사관 직원들이 미리 찾아 사전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이징 대사관 “대사 방문 보도, 국익에 좋지 않다”

오랜 기간 선양 주재 한국기업에서 근무한 한 중국인은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몇 해 전 한국 총리가 선양을 방문했을 때보다 더 난리”라고 말했다. 대사가 방문하는 선양 동포거리와 다롄 개발구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을 통째로 빌리고 참석자와 의전 대상을 정하기 시작할 때부터 지역 한인사회는 이미 시끌벅적했다.

대사가 선양에 앞서 먼저 방문할 예정이던 다롄에서는 “다롄 총영사관 출장소에 소장이 있는데 선양총영사가 대사 의전을 위해 올 필요가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한바탕 알력 씨름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사 방문이 임박하자 총영사관에서 여권과 비자를 담당하는 영사까지 의전과 행사 준비에 투입됐다.

우리 국민의 해외 동사무소가 통째로 ‘문 닫고 의전 중’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만주 하늘에 ‘대사 환영’ 현수막이 높이 걸려 있는데도 베이징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대사의 중국 동북 지역 방문 소식이 보도되는 게 ‘국익’을 위해 좋지 않다”고 으름장을 놨다.


총영사도 안 사는 선양 롯데아파트

선양롯데타운 아파트에는 ‘롯데’라는 우리 기업 이름을 보고 들어와 사는 한국인들이 많다. 그래도 밤에 불 꺼진 집이 여전히 많은 건 미분양 세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양롯데에 국익을 걱정한다는 총영사관 직원은 단 한 명도 살지 않는다. 낙후된 황구취 지역이 아닌 더 발전된 좋은 동네에 세금으로 받은 주거지원비를 월세로 내고 산다.

얼마 전 새로 부임한 총영사도 롯데타운에 살지 않는다. 중국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에 살며 중국인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고 있다. 총영사 관저에 세금으로 요리사까지 지원하는 이유는 현지 고위급 인사들을 집으로 자주 초청해 외교 인맥을 쌓아 국익에 보탬이 되라는 것이다.

총영사 집에 초대받은 중국 관리들은 총영사조차 살지 않는 롯데 아파트를 어떻게 생각할까. 총영사가 관용 차량으로 우리 기업이 만든 ‘에쿠스’를 타고 다니는 게 그 ‘국익’을 생각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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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중국 선양 총영사가 ‘롯데건설’ 아닌 ‘중국건설’ 아파트에 사는 이유
    • 입력 2018-05-08 19:20:42
    • 수정2018-05-08 19:29:05
    특파원 리포트
선양롯데타운 공사 중단 ‘1년 6개월’

노영민 주중대사가 대중국 최대 현안 중 하나인 롯데 문제를 풀겠다며 중국 선양을 방문하기로 했다가 취소한 지 보름이 지났다. ‘희망 고문’만 당한 채로 롯데타운 공사는 여전히 중단 상태다.

1년 반 전 공사가 중단된 뒤 불확실성이 높아진 이후 이미 완공돼 입주가 시작된 롯데타운 내 아파트 분양도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밤에 불이 꺼져 있는 세대가 많다. 롯데 현지 직원들은 공사 허가를 다시 받기 위해 밤낮으로 뛰고 있다. 그래도 중국 공무원들은 요지부동이다. 잘 만나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속을 태우는 사이에도 공사 기간은 점점 늘어나고 돈도 더 들어가고 있다.

롯데 직원 다음으로 롯데타운을 걱정하는 사람은 이 공사 현장이 위치한 지역구 공무원들이다. 한국으로 치면 구청급인 선양시 황구취(皇姑区)다. 구청이 선양시 당국에 조속한 공사 재개 허가를 요청한 게 넉달 전이다. 구청이 “일이 잘못되면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공문을 보내고 사람을 보내 시청 실무자를 닦달하고 있다.

선양시 다른 지역에 비해 낙후된 지방으로선 롯데타운이 완공되면 지역 일자리 창출, 세수 확대 등 지역 발전에 보탬이 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롯데와 구청의 이런 노력 끝에 얼마 전 공사 현장 소방 점검이 최종 통과됐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왔다. 그러나 아직도 공사 허가를 받을 때까지 넘어야 할 행정 문턱은 높기만 하다.

“총영사관은 관련 기관이 아니라 관찰 기관”

롯데 현장이 있는 선양에 주 선양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이면 공사 재개를 위해 롯데 다음은 아니더라도 롯데와 구청 다음 정도로는 열심히 총영사관 직원들이 뛰어다닐 법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지에서는 총영사관이 “관련 기관이 아니라 관찰 기관”이란 평가가 나온다. 속을 들여다보면 실제 그렇다. 수조 원짜리 롯데 타운 등 관련 현안을 담당하는 총영사관의 경제 담당 영사는 해외공관 근무가 처음인 새내기 외교관이다. 부임 후 선양롯데를 찾아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구경하고 돌아갔다.

해당 영사가 최근 상부 지시를 받아 준비 중인 다른 지역 의전 관련 행사만 4개라고 한다. 롯데 문제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말이다. 총영사관 직원들이 롯데 공사 현장을 찾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차라리 지방 구청이 낫다는 비아냥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롯데 공사 현장 앞에 한국 영사관 차량이 장시간 불법 주차를 하고 있는 모습이 여러 사람에게 목격됐다. 바로 옆에 큰 기차역(선양북역)이 붙어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특이한 번호판을 보고 “공사 재개가 임박한 것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베이징에서 한국 대사가 공사 현장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대신 전해졌다. 대사 방문 전 혹시나 대사가 찾을지도 모르는 공사 현장에 영사관 직원들이 미리 찾아 사전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이징 대사관 “대사 방문 보도, 국익에 좋지 않다”

오랜 기간 선양 주재 한국기업에서 근무한 한 중국인은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몇 해 전 한국 총리가 선양을 방문했을 때보다 더 난리”라고 말했다. 대사가 방문하는 선양 동포거리와 다롄 개발구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을 통째로 빌리고 참석자와 의전 대상을 정하기 시작할 때부터 지역 한인사회는 이미 시끌벅적했다.

대사가 선양에 앞서 먼저 방문할 예정이던 다롄에서는 “다롄 총영사관 출장소에 소장이 있는데 선양총영사가 대사 의전을 위해 올 필요가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한바탕 알력 씨름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사 방문이 임박하자 총영사관에서 여권과 비자를 담당하는 영사까지 의전과 행사 준비에 투입됐다.

우리 국민의 해외 동사무소가 통째로 ‘문 닫고 의전 중’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만주 하늘에 ‘대사 환영’ 현수막이 높이 걸려 있는데도 베이징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대사의 중국 동북 지역 방문 소식이 보도되는 게 ‘국익’을 위해 좋지 않다”고 으름장을 놨다.


총영사도 안 사는 선양 롯데아파트

선양롯데타운 아파트에는 ‘롯데’라는 우리 기업 이름을 보고 들어와 사는 한국인들이 많다. 그래도 밤에 불 꺼진 집이 여전히 많은 건 미분양 세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양롯데에 국익을 걱정한다는 총영사관 직원은 단 한 명도 살지 않는다. 낙후된 황구취 지역이 아닌 더 발전된 좋은 동네에 세금으로 받은 주거지원비를 월세로 내고 산다.

얼마 전 새로 부임한 총영사도 롯데타운에 살지 않는다. 중국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에 살며 중국인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고 있다. 총영사 관저에 세금으로 요리사까지 지원하는 이유는 현지 고위급 인사들을 집으로 자주 초청해 외교 인맥을 쌓아 국익에 보탬이 되라는 것이다.

총영사 집에 초대받은 중국 관리들은 총영사조차 살지 않는 롯데 아파트를 어떻게 생각할까. 총영사가 관용 차량으로 우리 기업이 만든 ‘에쿠스’를 타고 다니는 게 그 ‘국익’을 생각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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