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대학 축제 앞두고 ‘술 판매 금지’…학교를 찾아가보니
입력 2018.05.10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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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녹음이 가득한 5월은 그야말로 대학 축제의 시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 축제는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에겐 로망이자 대학 졸업자들에겐 가장 즐거운 기억 중 하나일 겁니다.
학생회에서 마련한 문화 공연과 각 동아리 등에서 마련한 참여 이벤트,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각 학과의 주점까지 다양한 즐길거리로 무장한 대학 축제는 중간고사로 지친 대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풀 좋은 기회입니다.
특히 각 과에서 준비한 주점은 맛과는 별개로 저렴한 가격으로 친구나 선후배와 술잔을 기울이며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것도 과하면 나쁜 법. 매년 이 주점에서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 교육부, "학생들의 술 판매 자제..."
이달 초 각 대학으로 교육부의 공문 한 장이 날아들었습니다. '대학생 주류 판매 관련 주세법령 준수 안내 협조'라는 제목의 이 공문에서 교육부는 "대학생들이 학교 축제 기간 주류 판매업 면허 없이 주점을 운영하는 등 주세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라며 "각 대학에서는 대학생들이 주세법을 위반해 벌금 처분을 받는 것을 사전에 예방해달라."라고 권고했습니다.
현행 '주류 판매 관련 주세법령'에서는 주류 판매업 면허를 받지 않고 주류를 판매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습니다.
축제 기간 임시로 학교 노상에서 여는 대학 주점에는 당연히 주류 판매업 면허가 나올 리 없기 때문에 모든 교내 학과 주점은 불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수도권의 한 대학은 축제 기간 주류 판매 면허 없이 술을 판매했다가 국세청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교육부가 국세청의 요청으로 보낸 이 공문은 '협조'라는 말이 붙었지만, 사실상의 경고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 '술 없는 축제'로의 전환
축제를 코앞에 두고 날아든 공문에 축제를 준비 중이던 각 학교 학생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결국, 교육부의 공문에 따라 학내 구성원들의 회의 끝에 '술 없는 축제'로 전환한 학교들도 생겨났습니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도 이 같은 경우였습니다.
학교 축제가 시작되는 첫날 각 과의 천막이 세워진다는 4시쯤 학교를 찾았습니다. 각 과에서 마련한 천막에서는 학생들이 영업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재료를 나르고 손질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고 모든 학생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각 학과의 천막을 돌아다니다 가장 눈에 띈 건 천막 아래 붙어있는 작은 안내문이었습니다. 안내문에는 "주류는 일절 판매하지 않는다."라고 고지돼 있었습니다.
실제로 각 학과가 준비한 메뉴판에서도 음식만 있을 뿐 술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초콜릿 우유나 탄산음료, 스포츠음료 등이 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주점을 운영하는 한 학과의 학생회장은 자신의 과는 '주점'이 아닌 안주만 파는 '안주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술 없는 축제’지만 술이 없진 않다.
저녁 6시 수업을 모두 마치는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하나둘 대학 건물을 빠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맞춰 영업을 시작한 학과 주점도 조금씩 활기가 돌았습니다.
비어있던 테이블도 날이 저물수록 하나둘 채워졌습니다. 다들 음식을 주문하곤 가방이나 봉지에서 주섬주섬 꺼내는 게 있었는데 바로 술이었습니다.
학과 주점에서 술을 '판매'하는 것은 안되지만, 외부에서 손님이 술을 '반입'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서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 직접 술을 사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과는 술을 팔지 않고 음식만 팔며 테이블당 '1천 원'의 자릿세를 받았는데 마치 회는 딴 곳에서 사고 상차림 값만 치르는 노량진 시장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혹시나 술을 마시지 않는 테이블을 찾아봤지만, 제가 취재한 학과의 주점에서는 손님들이 모두 '술'을 구매해왔습니다. 학생회가 미리 주점에서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면서 알아서 술을 준비해온 겁니다. 때문에 '술 판매하지 않는 축제'지만 '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술을 사온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 앞 편의점에서 술을 구매해왔다고 답했습니다. 축제 시간에 맞춰 학교로 들어오는 학생들 손에 술을 든 봉지를 들고 가는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적게는 1인당 맥주 한 병씩을 손에 들고 주점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소주를 상자 채로 들고 가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학교 앞 편의점은 때아닌 호황을 맞았습니다. 실제로 찾아간 학교 앞 편의점은 냉장고에 술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술을 사온 학생들은 "아무래도 전보다는 학과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게 귀찮아졌다."라며 "전보다는 술을 좀 적게 마실 것 같다."라고 답했습니다.
# '축제 기간 술 판매 금지'에 엇갈리는 반응들
제가 찾아간 학교뿐만 아니라 점차 축제 기간 중 교내 주점의 술 판매를 금지하는 학교들은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당장 축제를 앞둔 각 대학도 '술 판매 없는 축제'를 결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학생들의 반응은 아직도 엇갈립니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너무 갑작스럽다.',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축제의 분위기가 안 난다.', '왜 이제 와서 그러냐'라는 의견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술을 판매하지 못하다 보니 매년 해오던 주점을 올해부터는 하지 않는 학과나 동아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예년보다 주점 규모가 작아졌고 축제 분위기도 덜 나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현재의 흐름을 찬성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축제 기간에 술 문제가 많이 제기됐는데, 이번 계기로 더 많은 콘텐츠, 문화가 생겨나서 더 좋은 대학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학생들의 반대 의견이 높긴 하지만, 법 위반이 걸려 있기 때문에 앞으로 축제 기간에 학과 주점의 술 판매를 금지하는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술을 마시기 위해선 어쨌든 적게는 수백 미터 많게는 수 킬로미터를 귀찮게 왔다 갔다 해야 해서 과거보다 음주량은 조금 줄어들 수밖에 없어 사건 사고도 줄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교육부의 공문 한 장으로 시작된 '술 없는 축제'가 대학가의 음주문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앞으로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 대학 축제 앞두고 ‘술 판매 금지’…현실은?
학생회에서 마련한 문화 공연과 각 동아리 등에서 마련한 참여 이벤트,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각 학과의 주점까지 다양한 즐길거리로 무장한 대학 축제는 중간고사로 지친 대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풀 좋은 기회입니다.
특히 각 과에서 준비한 주점은 맛과는 별개로 저렴한 가격으로 친구나 선후배와 술잔을 기울이며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것도 과하면 나쁜 법. 매년 이 주점에서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 교육부, "학생들의 술 판매 자제..."
이달 초 각 대학으로 교육부의 공문 한 장이 날아들었습니다. '대학생 주류 판매 관련 주세법령 준수 안내 협조'라는 제목의 이 공문에서 교육부는 "대학생들이 학교 축제 기간 주류 판매업 면허 없이 주점을 운영하는 등 주세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라며 "각 대학에서는 대학생들이 주세법을 위반해 벌금 처분을 받는 것을 사전에 예방해달라."라고 권고했습니다.
현행 '주류 판매 관련 주세법령'에서는 주류 판매업 면허를 받지 않고 주류를 판매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습니다.
축제 기간 임시로 학교 노상에서 여는 대학 주점에는 당연히 주류 판매업 면허가 나올 리 없기 때문에 모든 교내 학과 주점은 불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수도권의 한 대학은 축제 기간 주류 판매 면허 없이 술을 판매했다가 국세청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교육부가 국세청의 요청으로 보낸 이 공문은 '협조'라는 말이 붙었지만, 사실상의 경고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 '술 없는 축제'로의 전환
축제를 코앞에 두고 날아든 공문에 축제를 준비 중이던 각 학교 학생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결국, 교육부의 공문에 따라 학내 구성원들의 회의 끝에 '술 없는 축제'로 전환한 학교들도 생겨났습니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도 이 같은 경우였습니다.
학교 축제가 시작되는 첫날 각 과의 천막이 세워진다는 4시쯤 학교를 찾았습니다. 각 과에서 마련한 천막에서는 학생들이 영업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재료를 나르고 손질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고 모든 학생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각 학과의 천막을 돌아다니다 가장 눈에 띈 건 천막 아래 붙어있는 작은 안내문이었습니다. 안내문에는 "주류는 일절 판매하지 않는다."라고 고지돼 있었습니다.
실제로 각 학과가 준비한 메뉴판에서도 음식만 있을 뿐 술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초콜릿 우유나 탄산음료, 스포츠음료 등이 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주점을 운영하는 한 학과의 학생회장은 자신의 과는 '주점'이 아닌 안주만 파는 '안주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술 없는 축제’지만 술이 없진 않다.
저녁 6시 수업을 모두 마치는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하나둘 대학 건물을 빠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맞춰 영업을 시작한 학과 주점도 조금씩 활기가 돌았습니다.
비어있던 테이블도 날이 저물수록 하나둘 채워졌습니다. 다들 음식을 주문하곤 가방이나 봉지에서 주섬주섬 꺼내는 게 있었는데 바로 술이었습니다.
학과 주점에서 술을 '판매'하는 것은 안되지만, 외부에서 손님이 술을 '반입'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서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 직접 술을 사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과는 술을 팔지 않고 음식만 팔며 테이블당 '1천 원'의 자릿세를 받았는데 마치 회는 딴 곳에서 사고 상차림 값만 치르는 노량진 시장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혹시나 술을 마시지 않는 테이블을 찾아봤지만, 제가 취재한 학과의 주점에서는 손님들이 모두 '술'을 구매해왔습니다. 학생회가 미리 주점에서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면서 알아서 술을 준비해온 겁니다. 때문에 '술 판매하지 않는 축제'지만 '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술을 사온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 앞 편의점에서 술을 구매해왔다고 답했습니다. 축제 시간에 맞춰 학교로 들어오는 학생들 손에 술을 든 봉지를 들고 가는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적게는 1인당 맥주 한 병씩을 손에 들고 주점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소주를 상자 채로 들고 가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학교 앞 편의점은 때아닌 호황을 맞았습니다. 실제로 찾아간 학교 앞 편의점은 냉장고에 술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술을 사온 학생들은 "아무래도 전보다는 학과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게 귀찮아졌다."라며 "전보다는 술을 좀 적게 마실 것 같다."라고 답했습니다.
# '축제 기간 술 판매 금지'에 엇갈리는 반응들
제가 찾아간 학교뿐만 아니라 점차 축제 기간 중 교내 주점의 술 판매를 금지하는 학교들은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당장 축제를 앞둔 각 대학도 '술 판매 없는 축제'를 결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학생들의 반응은 아직도 엇갈립니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너무 갑작스럽다.',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축제의 분위기가 안 난다.', '왜 이제 와서 그러냐'라는 의견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술을 판매하지 못하다 보니 매년 해오던 주점을 올해부터는 하지 않는 학과나 동아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예년보다 주점 규모가 작아졌고 축제 분위기도 덜 나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현재의 흐름을 찬성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축제 기간에 술 문제가 많이 제기됐는데, 이번 계기로 더 많은 콘텐츠, 문화가 생겨나서 더 좋은 대학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학생들의 반대 의견이 높긴 하지만, 법 위반이 걸려 있기 때문에 앞으로 축제 기간에 학과 주점의 술 판매를 금지하는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술을 마시기 위해선 어쨌든 적게는 수백 미터 많게는 수 킬로미터를 귀찮게 왔다 갔다 해야 해서 과거보다 음주량은 조금 줄어들 수밖에 없어 사건 사고도 줄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교육부의 공문 한 장으로 시작된 '술 없는 축제'가 대학가의 음주문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앞으로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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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5-10 06:11:19
푸른 녹음이 가득한 5월은 그야말로 대학 축제의 시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 축제는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에겐 로망이자 대학 졸업자들에겐 가장 즐거운 기억 중 하나일 겁니다.
학생회에서 마련한 문화 공연과 각 동아리 등에서 마련한 참여 이벤트,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각 학과의 주점까지 다양한 즐길거리로 무장한 대학 축제는 중간고사로 지친 대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풀 좋은 기회입니다.
특히 각 과에서 준비한 주점은 맛과는 별개로 저렴한 가격으로 친구나 선후배와 술잔을 기울이며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것도 과하면 나쁜 법. 매년 이 주점에서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 교육부, "학생들의 술 판매 자제..."
이달 초 각 대학으로 교육부의 공문 한 장이 날아들었습니다. '대학생 주류 판매 관련 주세법령 준수 안내 협조'라는 제목의 이 공문에서 교육부는 "대학생들이 학교 축제 기간 주류 판매업 면허 없이 주점을 운영하는 등 주세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라며 "각 대학에서는 대학생들이 주세법을 위반해 벌금 처분을 받는 것을 사전에 예방해달라."라고 권고했습니다.
현행 '주류 판매 관련 주세법령'에서는 주류 판매업 면허를 받지 않고 주류를 판매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습니다.
축제 기간 임시로 학교 노상에서 여는 대학 주점에는 당연히 주류 판매업 면허가 나올 리 없기 때문에 모든 교내 학과 주점은 불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수도권의 한 대학은 축제 기간 주류 판매 면허 없이 술을 판매했다가 국세청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교육부가 국세청의 요청으로 보낸 이 공문은 '협조'라는 말이 붙었지만, 사실상의 경고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 '술 없는 축제'로의 전환
축제를 코앞에 두고 날아든 공문에 축제를 준비 중이던 각 학교 학생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결국, 교육부의 공문에 따라 학내 구성원들의 회의 끝에 '술 없는 축제'로 전환한 학교들도 생겨났습니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도 이 같은 경우였습니다.
학교 축제가 시작되는 첫날 각 과의 천막이 세워진다는 4시쯤 학교를 찾았습니다. 각 과에서 마련한 천막에서는 학생들이 영업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재료를 나르고 손질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고 모든 학생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각 학과의 천막을 돌아다니다 가장 눈에 띈 건 천막 아래 붙어있는 작은 안내문이었습니다. 안내문에는 "주류는 일절 판매하지 않는다."라고 고지돼 있었습니다.
실제로 각 학과가 준비한 메뉴판에서도 음식만 있을 뿐 술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초콜릿 우유나 탄산음료, 스포츠음료 등이 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주점을 운영하는 한 학과의 학생회장은 자신의 과는 '주점'이 아닌 안주만 파는 '안주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술 없는 축제’지만 술이 없진 않다.
저녁 6시 수업을 모두 마치는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하나둘 대학 건물을 빠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맞춰 영업을 시작한 학과 주점도 조금씩 활기가 돌았습니다.
비어있던 테이블도 날이 저물수록 하나둘 채워졌습니다. 다들 음식을 주문하곤 가방이나 봉지에서 주섬주섬 꺼내는 게 있었는데 바로 술이었습니다.
학과 주점에서 술을 '판매'하는 것은 안되지만, 외부에서 손님이 술을 '반입'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서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 직접 술을 사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과는 술을 팔지 않고 음식만 팔며 테이블당 '1천 원'의 자릿세를 받았는데 마치 회는 딴 곳에서 사고 상차림 값만 치르는 노량진 시장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혹시나 술을 마시지 않는 테이블을 찾아봤지만, 제가 취재한 학과의 주점에서는 손님들이 모두 '술'을 구매해왔습니다. 학생회가 미리 주점에서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면서 알아서 술을 준비해온 겁니다. 때문에 '술 판매하지 않는 축제'지만 '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술을 사온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 앞 편의점에서 술을 구매해왔다고 답했습니다. 축제 시간에 맞춰 학교로 들어오는 학생들 손에 술을 든 봉지를 들고 가는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적게는 1인당 맥주 한 병씩을 손에 들고 주점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소주를 상자 채로 들고 가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학교 앞 편의점은 때아닌 호황을 맞았습니다. 실제로 찾아간 학교 앞 편의점은 냉장고에 술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술을 사온 학생들은 "아무래도 전보다는 학과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게 귀찮아졌다."라며 "전보다는 술을 좀 적게 마실 것 같다."라고 답했습니다.
# '축제 기간 술 판매 금지'에 엇갈리는 반응들
제가 찾아간 학교뿐만 아니라 점차 축제 기간 중 교내 주점의 술 판매를 금지하는 학교들은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당장 축제를 앞둔 각 대학도 '술 판매 없는 축제'를 결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학생들의 반응은 아직도 엇갈립니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너무 갑작스럽다.',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축제의 분위기가 안 난다.', '왜 이제 와서 그러냐'라는 의견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술을 판매하지 못하다 보니 매년 해오던 주점을 올해부터는 하지 않는 학과나 동아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예년보다 주점 규모가 작아졌고 축제 분위기도 덜 나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현재의 흐름을 찬성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축제 기간에 술 문제가 많이 제기됐는데, 이번 계기로 더 많은 콘텐츠, 문화가 생겨나서 더 좋은 대학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학생들의 반대 의견이 높긴 하지만, 법 위반이 걸려 있기 때문에 앞으로 축제 기간에 학과 주점의 술 판매를 금지하는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술을 마시기 위해선 어쨌든 적게는 수백 미터 많게는 수 킬로미터를 귀찮게 왔다 갔다 해야 해서 과거보다 음주량은 조금 줄어들 수밖에 없어 사건 사고도 줄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교육부의 공문 한 장으로 시작된 '술 없는 축제'가 대학가의 음주문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앞으로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 대학 축제 앞두고 ‘술 판매 금지’…현실은?
학생회에서 마련한 문화 공연과 각 동아리 등에서 마련한 참여 이벤트,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각 학과의 주점까지 다양한 즐길거리로 무장한 대학 축제는 중간고사로 지친 대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풀 좋은 기회입니다.
특히 각 과에서 준비한 주점은 맛과는 별개로 저렴한 가격으로 친구나 선후배와 술잔을 기울이며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것도 과하면 나쁜 법. 매년 이 주점에서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 교육부, "학생들의 술 판매 자제..."
이달 초 각 대학으로 교육부의 공문 한 장이 날아들었습니다. '대학생 주류 판매 관련 주세법령 준수 안내 협조'라는 제목의 이 공문에서 교육부는 "대학생들이 학교 축제 기간 주류 판매업 면허 없이 주점을 운영하는 등 주세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라며 "각 대학에서는 대학생들이 주세법을 위반해 벌금 처분을 받는 것을 사전에 예방해달라."라고 권고했습니다.
현행 '주류 판매 관련 주세법령'에서는 주류 판매업 면허를 받지 않고 주류를 판매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습니다.
축제 기간 임시로 학교 노상에서 여는 대학 주점에는 당연히 주류 판매업 면허가 나올 리 없기 때문에 모든 교내 학과 주점은 불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수도권의 한 대학은 축제 기간 주류 판매 면허 없이 술을 판매했다가 국세청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교육부가 국세청의 요청으로 보낸 이 공문은 '협조'라는 말이 붙었지만, 사실상의 경고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 '술 없는 축제'로의 전환
축제를 코앞에 두고 날아든 공문에 축제를 준비 중이던 각 학교 학생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결국, 교육부의 공문에 따라 학내 구성원들의 회의 끝에 '술 없는 축제'로 전환한 학교들도 생겨났습니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도 이 같은 경우였습니다.
학교 축제가 시작되는 첫날 각 과의 천막이 세워진다는 4시쯤 학교를 찾았습니다. 각 과에서 마련한 천막에서는 학생들이 영업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재료를 나르고 손질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고 모든 학생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각 학과의 천막을 돌아다니다 가장 눈에 띈 건 천막 아래 붙어있는 작은 안내문이었습니다. 안내문에는 "주류는 일절 판매하지 않는다."라고 고지돼 있었습니다.
실제로 각 학과가 준비한 메뉴판에서도 음식만 있을 뿐 술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초콜릿 우유나 탄산음료, 스포츠음료 등이 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주점을 운영하는 한 학과의 학생회장은 자신의 과는 '주점'이 아닌 안주만 파는 '안주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술 없는 축제’지만 술이 없진 않다.
저녁 6시 수업을 모두 마치는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하나둘 대학 건물을 빠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맞춰 영업을 시작한 학과 주점도 조금씩 활기가 돌았습니다.
비어있던 테이블도 날이 저물수록 하나둘 채워졌습니다. 다들 음식을 주문하곤 가방이나 봉지에서 주섬주섬 꺼내는 게 있었는데 바로 술이었습니다.
학과 주점에서 술을 '판매'하는 것은 안되지만, 외부에서 손님이 술을 '반입'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서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 직접 술을 사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과는 술을 팔지 않고 음식만 팔며 테이블당 '1천 원'의 자릿세를 받았는데 마치 회는 딴 곳에서 사고 상차림 값만 치르는 노량진 시장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혹시나 술을 마시지 않는 테이블을 찾아봤지만, 제가 취재한 학과의 주점에서는 손님들이 모두 '술'을 구매해왔습니다. 학생회가 미리 주점에서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면서 알아서 술을 준비해온 겁니다. 때문에 '술 판매하지 않는 축제'지만 '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술을 사온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 앞 편의점에서 술을 구매해왔다고 답했습니다. 축제 시간에 맞춰 학교로 들어오는 학생들 손에 술을 든 봉지를 들고 가는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적게는 1인당 맥주 한 병씩을 손에 들고 주점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소주를 상자 채로 들고 가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학교 앞 편의점은 때아닌 호황을 맞았습니다. 실제로 찾아간 학교 앞 편의점은 냉장고에 술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술을 사온 학생들은 "아무래도 전보다는 학과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게 귀찮아졌다."라며 "전보다는 술을 좀 적게 마실 것 같다."라고 답했습니다.
# '축제 기간 술 판매 금지'에 엇갈리는 반응들
제가 찾아간 학교뿐만 아니라 점차 축제 기간 중 교내 주점의 술 판매를 금지하는 학교들은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당장 축제를 앞둔 각 대학도 '술 판매 없는 축제'를 결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학생들의 반응은 아직도 엇갈립니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너무 갑작스럽다.',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축제의 분위기가 안 난다.', '왜 이제 와서 그러냐'라는 의견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술을 판매하지 못하다 보니 매년 해오던 주점을 올해부터는 하지 않는 학과나 동아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예년보다 주점 규모가 작아졌고 축제 분위기도 덜 나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현재의 흐름을 찬성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축제 기간에 술 문제가 많이 제기됐는데, 이번 계기로 더 많은 콘텐츠, 문화가 생겨나서 더 좋은 대학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학생들의 반대 의견이 높긴 하지만, 법 위반이 걸려 있기 때문에 앞으로 축제 기간에 학과 주점의 술 판매를 금지하는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술을 마시기 위해선 어쨌든 적게는 수백 미터 많게는 수 킬로미터를 귀찮게 왔다 갔다 해야 해서 과거보다 음주량은 조금 줄어들 수밖에 없어 사건 사고도 줄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교육부의 공문 한 장으로 시작된 '술 없는 축제'가 대학가의 음주문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앞으로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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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립 기자 real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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