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뒤 이상한 ‘후진’…검·경 잇단 살인죄 적용

입력 2018.05.10 (07:01) 수정 2018.05.1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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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피해자 확인했는데…‘이상한 후진’

지난 2월의 어느날 저녁. 4.5톤 화물차를 운전하던 50살 장 모 씨는 좌회전을 하려다가 옆으로 빠르게 달리던 오토바이와 부딪혔습니다. 오토바이는 나동그라졌고, 기사는 화물차 아래로 쓰러졌습니다. 장 씨는 차문을 열고 사고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경찰이나 119에 신고하지 않고, 후진을 한 겁니다. 화물차 밑에 쓰러진 오토바이 기사는 결국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장 씨는 후진을 한 뒤 119에 신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고 장소는 좌회전이 금지된 구간이었습니다.

“미필적 고의” 경찰, 살인 혐의 적용

경찰은 이 사건을 우연히 벌어진 교통사고로 보기에는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봤습니다. 장 씨는 교통사고를 낸 뒤에도 자신은 사고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범행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CCTV 화면을 입수했고, 40여일 간의 수사로 장 씨에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장 씨의 행동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경찰 조사에서 장 씨는 "쓰러진 피해자에게 구호 조치를 하려고 후진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사고 상황을 확인했는데도 바로 신고하지 않고, 기어변속까지 해가며 후진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119에 신고한 점에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경찰은 결국 교통사고로는 이례적으로 장 씨에 살인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장 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및 살인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고민에 빠진 검찰…시민위원회 회부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살인죄를 적용하려면 고의성이 입증돼야 합니다. 경찰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장 씨가 '미필적 고의'로 후진했다고 봤습니다. 미필적 고의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어떤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행동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장 씨가 후진을 할 당시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후진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장 씨는 완강하게 실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민 끝에 검찰은 검찰 시민위원회에 자문을 구했습니다. 범행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보여주며 살인죄 적용이 가능한지 시민들의 의견을 구한 겁니다. 그 결과 시민위원회 위원 11명 중 7명이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검찰은 시민위원회의 결정을 참고해 경찰과 마찬가지로 장 씨를 살인죄로 기소했습니다.

“기소독점주의 견제” 검찰 시민위원회

검찰 시민위원회는 11명의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위원회입니다. 검찰 기소독점주의의 폐해를 견제하기 위해 지난 2010년 만들어졌습니다. 시민위원회는 검찰의 기소나 구속 여부가 적절한지를 판단합니다. 시민위원회의 의결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사항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검사는 위원회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시민위원회의 결정이 검찰의 기소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중앙지검은 매주 금요일 시민위원회를 열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구하고 있습니다.

시민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검찰의 판단이 달라진 경우는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림 대작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 결국 징역형이 구형된 가수 조영남 씨가 그 예입니다. 사건을 처음 수사한 서울 중앙지검은 조 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지난 1월, 서울 고등검찰청은 피해자의 항고를 받아들여 조영남 씨를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검찰은 "기소 처분은 검찰 시민위원회가 조영남 씨를 만장일치로 재판에 넘기라고 결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종 판단은 법원 몫…고의성 입증 쟁점

장 씨 사건에 대해 검·경 모두 살인 혐의를 적용했지만, 아직 법원의 최종 판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법조계 인사는 "15년 간 검찰에 있었지만, 교통사고에 이렇게 살인 혐의가 적용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이례적인 사건이란 뜻입니다. 장 씨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 입증이 재판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연관기사] [뉴스7] 오토바이 치고 ‘고의 후진’ 의심…검찰 ‘살인죄’ 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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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사고 뒤 이상한 ‘후진’…검·경 잇단 살인죄 적용
    • 입력 2018-05-10 07:01:02
    • 수정2018-05-10 16:34:41
    취재K
쓰러진 피해자 확인했는데…‘이상한 후진’

지난 2월의 어느날 저녁. 4.5톤 화물차를 운전하던 50살 장 모 씨는 좌회전을 하려다가 옆으로 빠르게 달리던 오토바이와 부딪혔습니다. 오토바이는 나동그라졌고, 기사는 화물차 아래로 쓰러졌습니다. 장 씨는 차문을 열고 사고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경찰이나 119에 신고하지 않고, 후진을 한 겁니다. 화물차 밑에 쓰러진 오토바이 기사는 결국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장 씨는 후진을 한 뒤 119에 신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고 장소는 좌회전이 금지된 구간이었습니다.

“미필적 고의” 경찰, 살인 혐의 적용

경찰은 이 사건을 우연히 벌어진 교통사고로 보기에는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봤습니다. 장 씨는 교통사고를 낸 뒤에도 자신은 사고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범행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CCTV 화면을 입수했고, 40여일 간의 수사로 장 씨에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장 씨의 행동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경찰 조사에서 장 씨는 "쓰러진 피해자에게 구호 조치를 하려고 후진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사고 상황을 확인했는데도 바로 신고하지 않고, 기어변속까지 해가며 후진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119에 신고한 점에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경찰은 결국 교통사고로는 이례적으로 장 씨에 살인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장 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및 살인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고민에 빠진 검찰…시민위원회 회부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살인죄를 적용하려면 고의성이 입증돼야 합니다. 경찰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장 씨가 '미필적 고의'로 후진했다고 봤습니다. 미필적 고의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어떤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행동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장 씨가 후진을 할 당시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후진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장 씨는 완강하게 실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민 끝에 검찰은 검찰 시민위원회에 자문을 구했습니다. 범행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보여주며 살인죄 적용이 가능한지 시민들의 의견을 구한 겁니다. 그 결과 시민위원회 위원 11명 중 7명이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검찰은 시민위원회의 결정을 참고해 경찰과 마찬가지로 장 씨를 살인죄로 기소했습니다.

“기소독점주의 견제” 검찰 시민위원회

검찰 시민위원회는 11명의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위원회입니다. 검찰 기소독점주의의 폐해를 견제하기 위해 지난 2010년 만들어졌습니다. 시민위원회는 검찰의 기소나 구속 여부가 적절한지를 판단합니다. 시민위원회의 의결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사항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검사는 위원회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시민위원회의 결정이 검찰의 기소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중앙지검은 매주 금요일 시민위원회를 열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구하고 있습니다.

시민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검찰의 판단이 달라진 경우는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림 대작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 결국 징역형이 구형된 가수 조영남 씨가 그 예입니다. 사건을 처음 수사한 서울 중앙지검은 조 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지난 1월, 서울 고등검찰청은 피해자의 항고를 받아들여 조영남 씨를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검찰은 "기소 처분은 검찰 시민위원회가 조영남 씨를 만장일치로 재판에 넘기라고 결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종 판단은 법원 몫…고의성 입증 쟁점

장 씨 사건에 대해 검·경 모두 살인 혐의를 적용했지만, 아직 법원의 최종 판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법조계 인사는 "15년 간 검찰에 있었지만, 교통사고에 이렇게 살인 혐의가 적용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이례적인 사건이란 뜻입니다. 장 씨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 입증이 재판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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