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연출 선생님은 어디에?”…‘미투’ 폭로에도 예산 지원

입력 2018.05.1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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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말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시작으로 각계각층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됐습니다. 특히 문화예술계는 이윤택 연출가와 고은 시인 등 20여 명이 가해자로 지목돼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미투 이후 문화예술계를 돌아봤습니다.

■ '선생님' 오태석을 고발합니다…그 이후 3개월

오태석(78) 연출은 가장 한국적인 연극 연출가로 일컬어집니다. 셰익스피어 원작소설을 가지고 와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연극 '템페스트'와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다수의 수작을 배출한 연극계 거장입니다. 극단 목화를 이끌며 연극계에서 '선생님'으로 추앙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 2월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습니다.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첫 폭로가 나온 지 하루만이었습니다. 극단 목화 출신 박영희 씨는 SNS를 통해 '대학로의 그 갈빗집 상 위에서는 핑크빛 삼겹살이 불판 위에 춤을 추고 상 아래에서는 나와 당신의 허벅지, 사타구니를 움켜잡고, 꼬집고 주무르던 축축한 선생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소리를 지를 수도, 뿌리칠 수도 없었다'며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오 씨가 초빙교수로 있는 서울예대에서도 연달아 증언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오 씨는 입장 표명없이 잠적을 선택했습니다. 벌써 두달이 넘었습니다.

‘미투’ 고발 이후 잠적한 오태석 씨를 찾아 집과 극단 등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다.‘미투’ 고발 이후 잠적한 오태석 씨를 찾아 집과 극단 등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다.

오태석 연출가를 만나고자 그가 대표로 있는 극단 목화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연습실 문은 굳게 잠겨있었습니다. 그가 미투 폭로 직전까지 있었던 서울예대에서도 2월 이후 그를 보았다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서울예대 관계자는 "이미 오 씨를 징계했으며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며 "그런 그가 학교에 찾아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힘들게 수소문해 찾아간 그의 집에도 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가장 힘든 건 피해자들입니다. 두달 넘게 그에게서 어떠한 사과도, 그 흔한 입장 표명도 듣지 못했습니다. 박영희 씨는 취재진에게 "저는 아주 형식적인, 가짜 사과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평소 "책임지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강조했던 오 씨였기에 침묵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그 사이 2차 피해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사라진 가해자 대신 '피해자 찾기'에 나선 언론은 영희 씨는 물론 주변인과 가족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괴롭혔습니다. "오태석이 무너지면 한국 연극이 무너진다"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피해에 시달려야 했던 겁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미투’ 폭로 이후에도 극단 목화의 해외공연 비용 일부를 지원했다.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미투’ 폭로 이후에도 극단 목화의 해외공연 비용 일부를 지원했다.

최근엔 그녀를 절망케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오 씨의 극단이 문체부 산하의 공공기관에서 지원을 받아 오 씨의 작품으로 해외 공연까지 마친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실제 극단 목화는 지난 2월과 4월 말 페루와 루마니아에서 공연을 했고, 항공료 등을 예술경영지원센터로부터 지원받았습니다. 그녀는 "문체부나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인식이 일반적인 가해자들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또 다른 차원의 2차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해외 공연을 지원한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오 씨를 배제한 극단 단원들에게만 지원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은 없다"면서도 "지원 금액 등은 밝힐 수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추후 지원 배제에 대해선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협박 DM(Direct Message)까지 직접 보내… 2차 피해 심각


[너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 '미투' 폭로 이후 배우 조민기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피해자들에게 쏟아진 악성 댓글입니다. 조 씨의 자살 이후 비난의 화살은 엉뚱하게도 피해자에게 돌아왔습니다. 피해자의 신상을 알아내 협박 메시지를 직접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위는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충분히 처벌받게 할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고소를 위해 댓글을 캡처하는 과정이 또 다른 2차 피해라고 할 정도로 힘든 일인 데다, 법적으로 대응하면 이게 또 다른 악성 댓글로 되돌아올까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오랜 동안 가슴을 앓아온 이들이 또다른 피해를 입게 될까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였습니다.

‘미투’ 진상조사와 2차 가해 방지를 하겠다던 청주대는 조민기 씨의 사망 이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미투’ 진상조사와 2차 가해 방지를 하겠다던 청주대는 조민기 씨의 사망 이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악성 댓글보다 힘든 건 미투 이후 청주대의 미적지근한 반응입니다. 성폭력 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 모임은 지난 3월과 4월 연극학과 교수진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조민기 교수의 성폭력 사건을 지난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 뭉개고 축소한 교수진과 청주대학교의 공식 사과와 함께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고 요청했습니다. 2차 피해에 노출된 피해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고 있지 않은 상탭니다.

문체부, 문화예술계 미투 대책 내놔…실효성은?

미투 이후 문체부는 지난 3월부터 관계부처와 함께 특별조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별조사단은 문화예술계 성범죄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와 피해자 지원 업무를 주로 하면서 가해자에 대한 수사 의뢰와 제재 등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화예술분야 전담 특별신고상담센터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을 통해 접수된 건이 100여 건(5월 첫주 현재)에 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공소 시효가 지난 경우가 많아 조사나 수사가 들어간 건 34건 뿐입니다.

문화예술 분야의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제재도 시행하려 하지만 어렵긴 마찬가집니다.

문체부 관계자는 "언론에 회자가 된 사람들은 공적 지원을 배제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주장을 많이 하시지만, 행정을 하는 입장에서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해서 어렵다"며 한계를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법적인 절차가 진행되는 등 혐의가 확인되지 않는 한 지원대상에서 배제하기는 힘들다는 얘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화예술인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답답함은 미투 100일이 지나도록 해소될 길이 없습니다.

문화예술계 여성 대표성 부족…구조 개혁 필요

문화예술계의 재정 지원을 결정하는 각종 위원회가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위원회가 왜 문제냐고요? 정부의 재정 지원에 많은 부분 의존하는 문화예술계의 특성상 돈이 어디서 어디로 지원되느냐가 중요한 현실 때문입니다. 다른 분야 미투도 마찬가지지만, 문화예술계 미투는 더더욱 돈과 힘이 얽혀있는 권력의 문제입니다.

홍기원 숙명여대 문화행정학과 교수는 "사실상 여성 대표성이 제고돼야만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가 훨씬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며 정부 기관 소속 자문위원회부터 더 나아가 공공기관까지 양성평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양성 평등기본법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위원회를 구성할 때 위촉직 위원의 경우에는 특정 성별의 위촉직 위원 수의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아니한다] 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위원의 60% 를 넘지 않도록 해서 균형을 지키라는 얘깁니다. 이런 법에 따라 문체부 소관 자문위원회(27곳)의 여성 비율은 대부분 지켜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예술단체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심사하고 결정하는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에는 이런 규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 가운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만 봐도 그렇습니다. 현재 위원 9명 중 8명이 남성입니다. 1명 있는 여성마저 임기가 올해 3월까지라 사실상 위원회 구성원이 모두 남성입니다. 여성 대표성이 높아지면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만큼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막으려면 이 부분부터 바뀌어야 하는 겁니다.

"미투 후회 없어요!"…이들을 위한 세심한 지원책 필요


취재 중 만난 문화예술계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문화에서 '선생님'의 성폭력에 시달려왔습니다. 그 때문에 보다 큰 결심과 고민 끝에 나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후배들에게는, 동료들에게는 똑같은 환경을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함에 미투를 한 분들입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뿐이지만, 누군가는 잠적하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난 뒤 남은 피해자들은 끊임없는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기까지 힘들었을 이들을 위한 보다 세심한 행정과 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연관 기사] [뉴스9] “미투 폭로에도 예산 지원”…속수무책 ‘2차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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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연출 선생님은 어디에?”…‘미투’ 폭로에도 예산 지원
    • 입력 2018-05-11 06:08:35
    취재후·사건후
지난 1월 말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시작으로 각계각층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됐습니다. 특히 문화예술계는 이윤택 연출가와 고은 시인 등 20여 명이 가해자로 지목돼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미투 이후 문화예술계를 돌아봤습니다.

■ '선생님' 오태석을 고발합니다…그 이후 3개월

오태석(78) 연출은 가장 한국적인 연극 연출가로 일컬어집니다. 셰익스피어 원작소설을 가지고 와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연극 '템페스트'와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다수의 수작을 배출한 연극계 거장입니다. 극단 목화를 이끌며 연극계에서 '선생님'으로 추앙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 2월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습니다.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첫 폭로가 나온 지 하루만이었습니다. 극단 목화 출신 박영희 씨는 SNS를 통해 '대학로의 그 갈빗집 상 위에서는 핑크빛 삼겹살이 불판 위에 춤을 추고 상 아래에서는 나와 당신의 허벅지, 사타구니를 움켜잡고, 꼬집고 주무르던 축축한 선생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소리를 지를 수도, 뿌리칠 수도 없었다'며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오 씨가 초빙교수로 있는 서울예대에서도 연달아 증언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오 씨는 입장 표명없이 잠적을 선택했습니다. 벌써 두달이 넘었습니다.

‘미투’ 고발 이후 잠적한 오태석 씨를 찾아 집과 극단 등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다.
오태석 연출가를 만나고자 그가 대표로 있는 극단 목화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연습실 문은 굳게 잠겨있었습니다. 그가 미투 폭로 직전까지 있었던 서울예대에서도 2월 이후 그를 보았다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서울예대 관계자는 "이미 오 씨를 징계했으며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며 "그런 그가 학교에 찾아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힘들게 수소문해 찾아간 그의 집에도 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가장 힘든 건 피해자들입니다. 두달 넘게 그에게서 어떠한 사과도, 그 흔한 입장 표명도 듣지 못했습니다. 박영희 씨는 취재진에게 "저는 아주 형식적인, 가짜 사과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평소 "책임지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강조했던 오 씨였기에 침묵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그 사이 2차 피해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사라진 가해자 대신 '피해자 찾기'에 나선 언론은 영희 씨는 물론 주변인과 가족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괴롭혔습니다. "오태석이 무너지면 한국 연극이 무너진다"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피해에 시달려야 했던 겁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미투’ 폭로 이후에도 극단 목화의 해외공연 비용 일부를 지원했다.
최근엔 그녀를 절망케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오 씨의 극단이 문체부 산하의 공공기관에서 지원을 받아 오 씨의 작품으로 해외 공연까지 마친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실제 극단 목화는 지난 2월과 4월 말 페루와 루마니아에서 공연을 했고, 항공료 등을 예술경영지원센터로부터 지원받았습니다. 그녀는 "문체부나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인식이 일반적인 가해자들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또 다른 차원의 2차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해외 공연을 지원한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오 씨를 배제한 극단 단원들에게만 지원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은 없다"면서도 "지원 금액 등은 밝힐 수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추후 지원 배제에 대해선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협박 DM(Direct Message)까지 직접 보내… 2차 피해 심각


[너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 '미투' 폭로 이후 배우 조민기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피해자들에게 쏟아진 악성 댓글입니다. 조 씨의 자살 이후 비난의 화살은 엉뚱하게도 피해자에게 돌아왔습니다. 피해자의 신상을 알아내 협박 메시지를 직접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위는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충분히 처벌받게 할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고소를 위해 댓글을 캡처하는 과정이 또 다른 2차 피해라고 할 정도로 힘든 일인 데다, 법적으로 대응하면 이게 또 다른 악성 댓글로 되돌아올까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오랜 동안 가슴을 앓아온 이들이 또다른 피해를 입게 될까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였습니다.

‘미투’ 진상조사와 2차 가해 방지를 하겠다던 청주대는 조민기 씨의 사망 이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악성 댓글보다 힘든 건 미투 이후 청주대의 미적지근한 반응입니다. 성폭력 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 모임은 지난 3월과 4월 연극학과 교수진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조민기 교수의 성폭력 사건을 지난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 뭉개고 축소한 교수진과 청주대학교의 공식 사과와 함께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고 요청했습니다. 2차 피해에 노출된 피해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고 있지 않은 상탭니다.

문체부, 문화예술계 미투 대책 내놔…실효성은?

미투 이후 문체부는 지난 3월부터 관계부처와 함께 특별조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별조사단은 문화예술계 성범죄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와 피해자 지원 업무를 주로 하면서 가해자에 대한 수사 의뢰와 제재 등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화예술분야 전담 특별신고상담센터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을 통해 접수된 건이 100여 건(5월 첫주 현재)에 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공소 시효가 지난 경우가 많아 조사나 수사가 들어간 건 34건 뿐입니다.

문화예술 분야의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제재도 시행하려 하지만 어렵긴 마찬가집니다.

문체부 관계자는 "언론에 회자가 된 사람들은 공적 지원을 배제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주장을 많이 하시지만, 행정을 하는 입장에서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해서 어렵다"며 한계를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법적인 절차가 진행되는 등 혐의가 확인되지 않는 한 지원대상에서 배제하기는 힘들다는 얘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화예술인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답답함은 미투 100일이 지나도록 해소될 길이 없습니다.

문화예술계 여성 대표성 부족…구조 개혁 필요

문화예술계의 재정 지원을 결정하는 각종 위원회가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위원회가 왜 문제냐고요? 정부의 재정 지원에 많은 부분 의존하는 문화예술계의 특성상 돈이 어디서 어디로 지원되느냐가 중요한 현실 때문입니다. 다른 분야 미투도 마찬가지지만, 문화예술계 미투는 더더욱 돈과 힘이 얽혀있는 권력의 문제입니다.

홍기원 숙명여대 문화행정학과 교수는 "사실상 여성 대표성이 제고돼야만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가 훨씬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며 정부 기관 소속 자문위원회부터 더 나아가 공공기관까지 양성평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양성 평등기본법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위원회를 구성할 때 위촉직 위원의 경우에는 특정 성별의 위촉직 위원 수의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아니한다] 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위원의 60% 를 넘지 않도록 해서 균형을 지키라는 얘깁니다. 이런 법에 따라 문체부 소관 자문위원회(27곳)의 여성 비율은 대부분 지켜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예술단체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심사하고 결정하는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에는 이런 규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 가운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만 봐도 그렇습니다. 현재 위원 9명 중 8명이 남성입니다. 1명 있는 여성마저 임기가 올해 3월까지라 사실상 위원회 구성원이 모두 남성입니다. 여성 대표성이 높아지면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만큼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막으려면 이 부분부터 바뀌어야 하는 겁니다.

"미투 후회 없어요!"…이들을 위한 세심한 지원책 필요


취재 중 만난 문화예술계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문화에서 '선생님'의 성폭력에 시달려왔습니다. 그 때문에 보다 큰 결심과 고민 끝에 나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후배들에게는, 동료들에게는 똑같은 환경을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함에 미투를 한 분들입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뿐이지만, 누군가는 잠적하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난 뒤 남은 피해자들은 끊임없는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기까지 힘들었을 이들을 위한 보다 세심한 행정과 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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