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불’ 北 결핵약 공급 중단…13만 환자 어쩌나?

입력 2018.05.11 (15:27) 수정 2018.05.1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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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불’ 北 결핵약 공급 중단…13만 환자 어쩌나?

‘1억불’ 北 결핵약 공급 중단…13만 환자 어쩌나?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기금 '글로벌펀드'가 북한에 대한 결핵퇴치사업을 다음 달 말 중단합니다. 글로벌펀드는 미국, 러시아, 영국 등 G8 국가들을 중심으로 2002년 설립돼 매년 40억 달러의 기금을 모아 전 세계 질병퇴치를 돕고 있는 세계기금입니다. 여기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북한은 결핵관리에 적신호가 켜진 겁니다. 잦은 남북왕래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이는 남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글로벌펀드, 北 결핵약 중단… 동북아 보건에 치명적

이번 결정은 첨예하게 북한과 미국이 대립하던 지난 2월 21일 발표됐습니다. 글로벌펀드가 북한 지원을 중단한 이유를 살펴보면, 북한 내 독특한 환경 때문에 의약품 공급에 대한 효과를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치료에 대한 정보공유가 제대로 안 된다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글로벌 펀드가 수년 동안 북한을 잘 지원해왔고, 결핵 관련해 특별한 외부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은 갑작스럽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의 반응입니다.

실제로 이번 결정에 대해, 국제보건전문가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습니다. 지난 3월 세계 유명의학저널 란셋(The Lancet)지에 공개서한이 실렸는데, 글로벌펀드의 北 결핵퇴치사업 중단은 수백만 북한 주민뿐 아니라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또 최근엔 다른 유명학술지, 란셋 감염병 학회지 (The Lancet infectious diseases)에 '북한과 글로벌펀드'라는 사설이 실렸는데, 글로벌펀드는 정치적 압력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갑자기 북한을 떠나는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 北 결핵환자 13만명, 남한의 6~7배

그렇다면 북한 결핵이 얼마나 심각하길래 우리나라보다, 국제사회가 더 관심을 갖는 걸까요? 세계보건기구 WHO는 2016년 기준으로 북한 결핵 환자는 13만 명, 인구 10만 명당 513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남한보다 6~7배 더 높은 수치인데, 우리나라의 1970년대 말이나 80년대 초반하고 비슷한 수준입니다. 김희진 대한결핵협회 결핵연구원장은 북한에서 약이 듣지 않는 다제내성결핵 비율은 2.2%에 불과하지만, 워낙 결핵 환자 수가 많기 때문에 내성 결핵균의 경우도 한해 4,600건이나 되고,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숫자까지 포함하여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습니다. 내성결핵균의 문제는 훨씬 더 고가의 전문적인 치료제가 필요할 뿐 아니라 이 중 일부는 전혀 치료되지 않는 슈퍼결핵균으로 바뀐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결핵 문제는 지난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심각한 빈곤과 맞물려 영양결핍이 사회 전반에 퍼졌고, 이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진 북한 주민들은 결핵균에 무방비상태로 전염된 겁니다. 실제로 결핵균은 환자가 말을 하거나 기침, 재채기할 때, 미세한 침방울로 배출됩니다. 여기서 물기는 증발되고 결핵균만 공기 중에 남아 있다가 주변 사람이 숨을 쉴 때 함께 폐 속으로 들어가면서 감염되는 원리입니다. 공기를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결핵균의 확산속도는 매우 빠릅니다. 당시 상황이 심각해지자, 글로벌펀드가 투입됐습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북한의 결핵 퇴치사업에 6,900만 달러, 말라리아에 3,400만 달러를 지원해 도합 1억 달러 이상, 한화로 1,100억 원 이상 지원한 겁니다. 당연히 북한에 직접 돈을 준 건 아닙니다. 양질의 의약품을 구매해 세계보건기구나 유엔 산하 유니세프가 중간에서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8년간 지속된 이 사업은 향후 2020년까지 4,400만 달러를 추가 지원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는 6월 30일 자로 종료 선언을 한 겁니다.


■ 北 자체조달 어려워, 당장 7월부터 결핵관리 공백

국내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북한이 자체적으로 결핵약을 생산하거나, 경제적 제재로 인해 약을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한결같이 말합니다. 이혜원 '통일의료' 공동저자(서울의료원 공공의료팀 과장)는 북한에 결핵 관련된 핵심 진단실험실조차 시약이나 카트리지 같은 간단한 소모품이 없어 제대로 가동을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다급한 북한 보건성은 글로벌펀드의 지원 중단에 대해, 매우 비정상적이며, 비인도주의적인 처사라고 수차례 항의한 바 있습니다. 1차 결핵약 대부분을 국제사회에 의존한 북한으로서는 당장 7월부터 결핵 관리에 큰 공백이 생기는 셈입니다.

13만 북한 결핵 환자에게 약이 중단되면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먼저 결핵 진단받은 환자가 제대로 격리돼서 치료약을 투여받지 못하니까, 기침을 계속 하면서 주변에 결핵균을 퍼트립니다. 더 심각한 건 진단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결핵인지 모르는 환자들이 통제를 받지 않고 더 광범위하게 전염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결핵약은 보통 6개월 장기복용해야 합니다. 관리가 중요한 만성감염병 질환인 셈입니다. 그런데 결핵약을 구하지 못해 북한 환자들이 복용하던 약을 갑자기 못 먹는다면 이는 내성 결핵 발생위험을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핵균은 한번 약에 노출되면, 돌연변이를 만들어내기 굉장히 쉽기 때문입니다. 결핵약은 균을 박멸할 때까지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데, 약을 먹다 말다 하면 그 사이에 내성이 생깁니다. 결국 어떤 약도 듣지 않는 슈퍼결핵균의 전파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교류, 북중교류가 활발해지면, '한반도 건강공동체'라는 관점에서 결핵은 큰 위협요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먼저 북한이 갖고 있는 결핵 관리자원들이 잘 활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의료소모품이 없어 결핵 실험실이 멈춘 거라면, 북한 스스로 결핵관리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이를 지원해주는 방식을 고려해봐야 합니다. 또, 북한도 한반도 건강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결핵약이 환자들에게 잘 보급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모니터링 환경을 개선한다는 의지를 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당장 북한의 결핵약이 동나는 상황에서 대북 경제제재와 무관하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세계기금이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남북관계 진전과 함께 처음 맞닥뜨릴 한반도 건강공동체의 결핵 위기,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갈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앵커&리포트] “北 결핵 약 중단”…한반도 건강공동체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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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억불’ 北 결핵약 공급 중단…13만 환자 어쩌나?
    • 입력 2018-05-11 15:27:28
    • 수정2018-05-11 22:28:50
    취재K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기금 '글로벌펀드'가 북한에 대한 결핵퇴치사업을 다음 달 말 중단합니다. 글로벌펀드는 미국, 러시아, 영국 등 G8 국가들을 중심으로 2002년 설립돼 매년 40억 달러의 기금을 모아 전 세계 질병퇴치를 돕고 있는 세계기금입니다. 여기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북한은 결핵관리에 적신호가 켜진 겁니다. 잦은 남북왕래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이는 남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글로벌펀드, 北 결핵약 중단… 동북아 보건에 치명적

이번 결정은 첨예하게 북한과 미국이 대립하던 지난 2월 21일 발표됐습니다. 글로벌펀드가 북한 지원을 중단한 이유를 살펴보면, 북한 내 독특한 환경 때문에 의약품 공급에 대한 효과를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치료에 대한 정보공유가 제대로 안 된다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글로벌 펀드가 수년 동안 북한을 잘 지원해왔고, 결핵 관련해 특별한 외부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은 갑작스럽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의 반응입니다.

실제로 이번 결정에 대해, 국제보건전문가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습니다. 지난 3월 세계 유명의학저널 란셋(The Lancet)지에 공개서한이 실렸는데, 글로벌펀드의 北 결핵퇴치사업 중단은 수백만 북한 주민뿐 아니라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또 최근엔 다른 유명학술지, 란셋 감염병 학회지 (The Lancet infectious diseases)에 '북한과 글로벌펀드'라는 사설이 실렸는데, 글로벌펀드는 정치적 압력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갑자기 북한을 떠나는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 北 결핵환자 13만명, 남한의 6~7배

그렇다면 북한 결핵이 얼마나 심각하길래 우리나라보다, 국제사회가 더 관심을 갖는 걸까요? 세계보건기구 WHO는 2016년 기준으로 북한 결핵 환자는 13만 명, 인구 10만 명당 513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남한보다 6~7배 더 높은 수치인데, 우리나라의 1970년대 말이나 80년대 초반하고 비슷한 수준입니다. 김희진 대한결핵협회 결핵연구원장은 북한에서 약이 듣지 않는 다제내성결핵 비율은 2.2%에 불과하지만, 워낙 결핵 환자 수가 많기 때문에 내성 결핵균의 경우도 한해 4,600건이나 되고,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숫자까지 포함하여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습니다. 내성결핵균의 문제는 훨씬 더 고가의 전문적인 치료제가 필요할 뿐 아니라 이 중 일부는 전혀 치료되지 않는 슈퍼결핵균으로 바뀐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결핵 문제는 지난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심각한 빈곤과 맞물려 영양결핍이 사회 전반에 퍼졌고, 이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진 북한 주민들은 결핵균에 무방비상태로 전염된 겁니다. 실제로 결핵균은 환자가 말을 하거나 기침, 재채기할 때, 미세한 침방울로 배출됩니다. 여기서 물기는 증발되고 결핵균만 공기 중에 남아 있다가 주변 사람이 숨을 쉴 때 함께 폐 속으로 들어가면서 감염되는 원리입니다. 공기를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결핵균의 확산속도는 매우 빠릅니다. 당시 상황이 심각해지자, 글로벌펀드가 투입됐습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북한의 결핵 퇴치사업에 6,900만 달러, 말라리아에 3,400만 달러를 지원해 도합 1억 달러 이상, 한화로 1,100억 원 이상 지원한 겁니다. 당연히 북한에 직접 돈을 준 건 아닙니다. 양질의 의약품을 구매해 세계보건기구나 유엔 산하 유니세프가 중간에서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8년간 지속된 이 사업은 향후 2020년까지 4,400만 달러를 추가 지원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는 6월 30일 자로 종료 선언을 한 겁니다.


■ 北 자체조달 어려워, 당장 7월부터 결핵관리 공백

국내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북한이 자체적으로 결핵약을 생산하거나, 경제적 제재로 인해 약을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한결같이 말합니다. 이혜원 '통일의료' 공동저자(서울의료원 공공의료팀 과장)는 북한에 결핵 관련된 핵심 진단실험실조차 시약이나 카트리지 같은 간단한 소모품이 없어 제대로 가동을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다급한 북한 보건성은 글로벌펀드의 지원 중단에 대해, 매우 비정상적이며, 비인도주의적인 처사라고 수차례 항의한 바 있습니다. 1차 결핵약 대부분을 국제사회에 의존한 북한으로서는 당장 7월부터 결핵 관리에 큰 공백이 생기는 셈입니다.

13만 북한 결핵 환자에게 약이 중단되면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먼저 결핵 진단받은 환자가 제대로 격리돼서 치료약을 투여받지 못하니까, 기침을 계속 하면서 주변에 결핵균을 퍼트립니다. 더 심각한 건 진단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결핵인지 모르는 환자들이 통제를 받지 않고 더 광범위하게 전염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결핵약은 보통 6개월 장기복용해야 합니다. 관리가 중요한 만성감염병 질환인 셈입니다. 그런데 결핵약을 구하지 못해 북한 환자들이 복용하던 약을 갑자기 못 먹는다면 이는 내성 결핵 발생위험을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핵균은 한번 약에 노출되면, 돌연변이를 만들어내기 굉장히 쉽기 때문입니다. 결핵약은 균을 박멸할 때까지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데, 약을 먹다 말다 하면 그 사이에 내성이 생깁니다. 결국 어떤 약도 듣지 않는 슈퍼결핵균의 전파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교류, 북중교류가 활발해지면, '한반도 건강공동체'라는 관점에서 결핵은 큰 위협요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먼저 북한이 갖고 있는 결핵 관리자원들이 잘 활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의료소모품이 없어 결핵 실험실이 멈춘 거라면, 북한 스스로 결핵관리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이를 지원해주는 방식을 고려해봐야 합니다. 또, 북한도 한반도 건강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결핵약이 환자들에게 잘 보급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모니터링 환경을 개선한다는 의지를 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당장 북한의 결핵약이 동나는 상황에서 대북 경제제재와 무관하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세계기금이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남북관계 진전과 함께 처음 맞닥뜨릴 한반도 건강공동체의 결핵 위기,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갈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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