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죽어서도 차별” 유가족 두 번 울리는 군인 유족연금

입력 2018.05.13 (10:00) 수정 2018.05.1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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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관 이상 직업 군인은 자신의 월급에서 일정 비율을 적립해 20년 이상 복무하면 나중에 군인연금의 형태로 돌려받는다. 그런데 20년을 복무하지 않아도 받을 때가 있다. 순직 판정을 받은 경우다. 문제는 군인연금법 제8조 '시효' 조항이다.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5년'이라는 시효 조항이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는 사례가 있다. 자살 군인의 경우다. 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발표한 경우 상당수는 '개인 문제'로 치부됐다. 설령 구타나 가혹행위가 있었을지라도 그걸 군대에서 스스로 밝힌 경우는 드물었다. 타살인지 자살인지 모호한 경우도 있다. 국방부는 2012년 상관이나 동료의 가혹행위 등 부당한 관리 감독에 따른 자살은 순직으로 판정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자살 군인이 순직 판정을 받기까지는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친다. 군이 먼저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고 개인 원인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연관기사] 軍은 왜 심 중위를 두 번 죽이나

■ "김장 도와주러 가겠다"던 아들

이종희(가명) 씨의 아들 故 김OO 중위는 2010년 11월 12일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으로 발견된 지 불과 몇 시간 전 김 중위는 이종희 씨에게 "김장 도와주러 가려고 휴가 냈으니 먼저 하지 말라"고 전화를 했다. 태어난 지 100일 남짓 된 아기가 있었다. 군은 자살이라고 결정했다. 이 씨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폭언과 욕설" "과중한 업무 부과와 질책" 등 군의 책임을 인정했다. 국방부는 재조사에 들어갔고 결국 2016년 11월 25일 순직 결정을 내렸다. 숨진 지 6년 13일 만이다. 김 중위의 경우처럼 '자살 군인이 순직으로 인정되려면' 대부분 '자살 → 국가 상대 소송 → 군 재조사 → 순직 결정'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사망 시점에서 순직 결정 때까지 물리적으로 5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순직 결정이 난 뒤 유족연금을 신청해도 군은 "시효 5년이 지났다"며 신청을 거부한다. 유족연금의 존재 자체도 다른 군 사망 유가족에게서 들었다.


이종희 씨처럼 군대에서 자살한 아들과 관련해 소송 등 '긴 싸움'을 통해 순직 판정을 받고도 시효 초과로 유족연금 신청을 거부당한 사례는 취재진이 만난 사례만 10건이었다. 늙은 부모들은 유족연금 신청 거부가 부당하다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들 외에 아직 순직 결정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인 유족들도 여럿 있다.

故 김OO 중위 유족연금 불가 통보 공문故 김OO 중위 유족연금 불가 통보 공문

■ 누군 받고 누군 못 받고…"죽어서도 차별"

그런데 이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또 있었다. 이종희 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효 5년'이 지났지만, 유족연금을 받고 있는 사례가 파악된 것이다. 중위 3명 소위 3명 하사 2명 등 모두 8명이었다. 이들 역시 사망 직후 자살로 판정됐다, 나중에 순직 결정이 난 경우였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유족연금이 지급되고 있었다.

이종희 씨와 마찬가지로 '5년 시효 초과'로 아들의 유족연금 신청을 거부당한 김영숙(가명) 씨는 "8명 중 1명의 경우 군에서 직접 유족연금 신청하라고 연락이 왔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서 "아는 사람은 받고 모르는 사람은 못 받아먹는 게 유족연금이냐"고 지적했다. 특히 8명 중 2명의 부친이 장성 출신의 퇴역 군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유족연금 지급 과정에 특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

■ "법 개정 준비 중…재심 통해 구제 검토"

국방부는 유족연금 관련 유가족들의 주장에 대해 "같은 사안을 다르게 처리했다"고 인정하며 "재심 등을 통해 처리하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또 "실제 유족연금을 청구할 수 있었을 시점을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보는 방향으로 군인연금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관 기사] [뉴스9] 유가족 두 번 울리는 軍 ‘유족연금’…지급 기준 들쭉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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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죽어서도 차별” 유가족 두 번 울리는 군인 유족연금
    • 입력 2018-05-13 10:00:11
    • 수정2018-05-13 13:43:35
    취재후·사건후
부사관 이상 직업 군인은 자신의 월급에서 일정 비율을 적립해 20년 이상 복무하면 나중에 군인연금의 형태로 돌려받는다. 그런데 20년을 복무하지 않아도 받을 때가 있다. 순직 판정을 받은 경우다. 문제는 군인연금법 제8조 '시효' 조항이다.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5년'이라는 시효 조항이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는 사례가 있다. 자살 군인의 경우다. 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발표한 경우 상당수는 '개인 문제'로 치부됐다. 설령 구타나 가혹행위가 있었을지라도 그걸 군대에서 스스로 밝힌 경우는 드물었다. 타살인지 자살인지 모호한 경우도 있다. 국방부는 2012년 상관이나 동료의 가혹행위 등 부당한 관리 감독에 따른 자살은 순직으로 판정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자살 군인이 순직 판정을 받기까지는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친다. 군이 먼저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고 개인 원인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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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 도와주러 가겠다"던 아들

이종희(가명) 씨의 아들 故 김OO 중위는 2010년 11월 12일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으로 발견된 지 불과 몇 시간 전 김 중위는 이종희 씨에게 "김장 도와주러 가려고 휴가 냈으니 먼저 하지 말라"고 전화를 했다. 태어난 지 100일 남짓 된 아기가 있었다. 군은 자살이라고 결정했다. 이 씨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폭언과 욕설" "과중한 업무 부과와 질책" 등 군의 책임을 인정했다. 국방부는 재조사에 들어갔고 결국 2016년 11월 25일 순직 결정을 내렸다. 숨진 지 6년 13일 만이다. 김 중위의 경우처럼 '자살 군인이 순직으로 인정되려면' 대부분 '자살 → 국가 상대 소송 → 군 재조사 → 순직 결정'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사망 시점에서 순직 결정 때까지 물리적으로 5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순직 결정이 난 뒤 유족연금을 신청해도 군은 "시효 5년이 지났다"며 신청을 거부한다. 유족연금의 존재 자체도 다른 군 사망 유가족에게서 들었다.


이종희 씨처럼 군대에서 자살한 아들과 관련해 소송 등 '긴 싸움'을 통해 순직 판정을 받고도 시효 초과로 유족연금 신청을 거부당한 사례는 취재진이 만난 사례만 10건이었다. 늙은 부모들은 유족연금 신청 거부가 부당하다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들 외에 아직 순직 결정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인 유족들도 여럿 있다.

故 김OO 중위 유족연금 불가 통보 공문
■ 누군 받고 누군 못 받고…"죽어서도 차별"

그런데 이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또 있었다. 이종희 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효 5년'이 지났지만, 유족연금을 받고 있는 사례가 파악된 것이다. 중위 3명 소위 3명 하사 2명 등 모두 8명이었다. 이들 역시 사망 직후 자살로 판정됐다, 나중에 순직 결정이 난 경우였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유족연금이 지급되고 있었다.

이종희 씨와 마찬가지로 '5년 시효 초과'로 아들의 유족연금 신청을 거부당한 김영숙(가명) 씨는 "8명 중 1명의 경우 군에서 직접 유족연금 신청하라고 연락이 왔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서 "아는 사람은 받고 모르는 사람은 못 받아먹는 게 유족연금이냐"고 지적했다. 특히 8명 중 2명의 부친이 장성 출신의 퇴역 군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유족연금 지급 과정에 특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

■ "법 개정 준비 중…재심 통해 구제 검토"

국방부는 유족연금 관련 유가족들의 주장에 대해 "같은 사안을 다르게 처리했다"고 인정하며 "재심 등을 통해 처리하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또 "실제 유족연금을 청구할 수 있었을 시점을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보는 방향으로 군인연금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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