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4)

입력 2018.05.13 (15:03) 수정 2018.05.1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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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코코COCO’에는 엄청난 '반전'이 나온다.
그리고 그 '반전'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진리로 어른의 마음에도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음악은 '세상'을 위해 하는 것이라기보다 결국은 '누군가 한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었다는 깨달음... 극 중의 이야기지만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 9일 68번째 생일을 맞은 피아니스트 미셸 베로프, 피아니스트로서 깊은 시련을 겪고 이겨내며 70년 가까운 인생을 살아온 그가, 그래서 "젊었을 때는 밝고 화려하며 변화무쌍한 템포와 음색의 변화를 보여주었지만, 재기 후에는 더 정갈하면서도 많은 뉘앙스를 은유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가 음악을 통해 '세상'에, 아니 그 '누군가 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지난 편에서 이어집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1)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2)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3)


Q. 피아니스트도 몸을 써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럼 나이와 피아니스트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나이가 들면 연주함에 있어서도 많은 게 달라지죠. 우선 삶의 경험과 경륜은 늘어나지만 동시에 확실한 한 가지는 젊었을 때의 에너지는 더 없다는 거죠. 그래서 더 효율적인 방법을 써야 하고,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에너지를 덜 쓸 줄도 알아야 해요. 에너지를 쓰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겁니다. 물론 아더 루빈스타인처럼 죽을 때까지 발전하는 피아니스트들도 있어요. 비록 육체적인 힘은 잃게 됐지만, 루빈스타인은 남은 힘을 다른 것과 연결시키고, (힘을 빼고) 스스로를 벗어나는 방식으로, 그리고 악기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앎으로서 보완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젊었을 때는 마치 세상의 모든 에너지를 가진 듯이 하는데 그래서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데에 많은 에너지를 써버리기도 하잖아요. 마치 조각가가 어떤 정교한 것을 만들면서 큰 도구를 쓰듯이요. 하지만 루빈스타인은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하지 않고, 정교한 것을 만들기 위해 정교한 도구를 쓰는 식으로 했습니다. 그러려면 이 모든 것들이 다 어떻게 작동을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니까요. 젊었을 때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아주 정교하게 알기도 어렵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데 비해서요.
어떤 때는 아주 격정적으로 표현하는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순간들도 있는데요, 작품을 할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관계(방식)를 가지고 가는 건 아니죠. 적, 한 작품을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잘 완성해나가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고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이기도 해요. 무엇이 더 중요한지, 삶의 우선순위가 뭔지, 심지어 음악과 그리고 커리어에 대해 서도요.

Q. 음악과 커리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커리어가 뭔데요,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커리어가 인생은 아니잖아요. 삶은 단 한 번뿐이에요. 그래서 소통하고 전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 등 음악보다 더 중요한 것들도 아주아주 많아요.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은 조금씩 조화시켜서 오직 음악에만 갇혀있거나 묻혀 있지 않도록 해야 해요. 왜냐면 음악은 아주 이기적이고 지독스런 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음악이 힘든 직업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음악을 하다 보면 세상의 다른 현실들과 완벽하게 단절된 채로 지낼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하나도 모르고 지내도 전혀 아쉽다거나 부족하게 느껴지지도 않고요. 그렇지만 슬픈 일이죠. 세상에는 발견하고 음미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걸 모르고 피아노만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삶을 놓치는 것과도 같아요. 그리고 음악을 하기 위해서도 삶이란 필요한 것이고요.

Q. 음악가로서 삶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음악가로서는 음악 앞에서 경탄과 감탄을 지켜가는 거죠. 그 진지하고 진실한 자세를요. 사실 인성이나 인품은 바뀌지 않아요. 늘 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리고 주변에도 관심을 가져서 주위에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죠. 음악가라는 직업은 시기와 질투도 견뎌내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친구를 골라 사귀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아주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요. 왜냐면 음악의 세계에는 '친구'는 별로 없거든요, '아는 사람'은 많지만.
하지만 친구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특히 음악을 하는 친구들, 그러면서도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연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는 두말할 나위가 없죠. 상아탑에 갇혀서 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면 안 됩니다. 때로 너무 연주를 많이 다니다 보면 친구를 챙기는데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고 같이 어울리거나 음악에 대해 생각을 나누거나 하는 것마저도 귀찮아질 때가 있는데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주 중요해요. 그것이 삶을, 음악을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Q. 교수님은 '시련을 딛고 전설을 연주한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받고 계십니다. 한창 잘 나가시던 시절에 손 부상을 당하지 않으셨더라면 인생이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까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한창일 때는 사흘에 한 번꼴, 일 년에 120차례 연주가 있었고 근육을 너무 혹사한 까닭에 부상이 찾아왔는데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삶은 충분히 길기 때문에 최대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삶은 길이 있는 것이고, 각자에게는 카르마(운명)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교육자를 할 수 있었던 건 잘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비록 그 당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이해하려고 많은 사람을 만나서 조언을 듣고 고민 상담도 하고 그랬었지만요, 그런 경험들이 나중에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나도 문제가 있었고, 누구에게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는 각각 다 다른 방식으로 온다. 그래서 모두에게 삶의 이야기도 다 다른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닥치면 어떤 면에서는 삶이 더 풍요로워지기도 한다. 다만 문제를 맞닥뜨리면 성찰해봐야 하고, 삶과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모든 게 다 잘 풀릴 때는 별로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가던 길을 계속 가죠. 문제가 생겨야 비로소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되고, 그때 사람도 더 깊어지죠. 저도 한창 바쁠 때는 그냥 연주 준비만 했어요. 어떤 면에선 그게 훨씬 쉬운 일이었죠. 그런데 제가 몸이 말하는 걸 잘 듣지 않으니까 제 몸 안의 정신이 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도록 작용을 해서 '그래, 듣지 않겠다면 무언가 문제를 만들어서 네가 더 연주를 못 하도록 하겠어. 그러면 너는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몸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되겠지' 이렇게 된 것 같아요.

Q. 그럼 그 모든 걸 바탕으로 제자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고 싶으신가요?

조성진을 예로 들어볼까요? 마흔 살에 유명해진 게 아니잖아요, 쇼팽 콩쿠르에서 젊은 나이에 우승했고 그래서 기다림의 시간이 아주 길다고 할 수는 없죠. '준비하고 기다려라'는 말은 이제 어울리지 않아요. 음악을 사랑하면 열심히 하는 거죠. 그리고 호기심을 계속 유지해야 하고요. 아마 그렇게 재능이 있고 또 열심인 경우에는 최고의 연주를 하고 싶을 겁니다. 특히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 이후 유명해지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쇼팽 콩쿠르로 인해 완전히 유명해졌죠. 하지만 그는 2년 전과 같은 아티스트입니다. 물론 진화하고 발전했고, 그래서 16살 때랑 20살 때랑은 분명히 다르죠. 특히 청년기는 극적으로 변화하는 시기니까요. 음악적으로도 풍성해졌고 아직도 계속 발전하는 중입니다. 스스로 준비하면서요. 그리고 이제는 콩쿠르를 위해서 준비하지는 않아도 되고요. 이 모든 게 상당히 빨리 이루어졌어요. 제 주위에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하는데도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지는 건 훨씬 늦게 이루어지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너무 일찍 이루면 경계해야 될 점도 많아요. 후에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이름이 알려진 다음에는 결국 레퍼토리와의 싸움인데 계속 다른 레퍼토리를 해야 하죠,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미리 해놓지 않았으면 새로 작품을 해야 하는 경우 상당히 힘들죠. 이 세계에선 누군가를 무대에 올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할 수도 있지만 금세 바뀌어버릴 수도 있거든요. 따라서 2년, 3년을 기준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니라 음악가의 생애를 놓고 봐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요.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이 아니라 평생 변화를 겪으면서 음악가의 직업을 이어가려면 레퍼토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깊은 반성과 성찰과 함께요. 물론 조성진처럼 생각이 깊은 경우에는 많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을 것이고 조언도 새겨 들었을 것이고 알고 있을 거에요. 어떻게 해야할 지를요. 좋은 음악을 최선을 다해 연주해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 그것도 역시 중요하지만 대중의 마음에 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음악을 사랑하고, 성실하고 진실되게 연주하면 대중도 그걸 느낍니다. 분명히요. 그게 위대한 작곡가들을 존중하고 예우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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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4)
    • 입력 2018-05-13 15:03:30
    • 수정2018-05-13 15:06:28
    취재K
지난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코코COCO’에는 엄청난 '반전'이 나온다. 그리고 그 '반전'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진리로 어른의 마음에도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음악은 '세상'을 위해 하는 것이라기보다 결국은 '누군가 한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었다는 깨달음... 극 중의 이야기지만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 9일 68번째 생일을 맞은 피아니스트 미셸 베로프, 피아니스트로서 깊은 시련을 겪고 이겨내며 70년 가까운 인생을 살아온 그가, 그래서 "젊었을 때는 밝고 화려하며 변화무쌍한 템포와 음색의 변화를 보여주었지만, 재기 후에는 더 정갈하면서도 많은 뉘앙스를 은유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가 음악을 통해 '세상'에, 아니 그 '누군가 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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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1)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2)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3)


Q. 피아니스트도 몸을 써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럼 나이와 피아니스트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나이가 들면 연주함에 있어서도 많은 게 달라지죠. 우선 삶의 경험과 경륜은 늘어나지만 동시에 확실한 한 가지는 젊었을 때의 에너지는 더 없다는 거죠. 그래서 더 효율적인 방법을 써야 하고,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에너지를 덜 쓸 줄도 알아야 해요. 에너지를 쓰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겁니다. 물론 아더 루빈스타인처럼 죽을 때까지 발전하는 피아니스트들도 있어요. 비록 육체적인 힘은 잃게 됐지만, 루빈스타인은 남은 힘을 다른 것과 연결시키고, (힘을 빼고) 스스로를 벗어나는 방식으로, 그리고 악기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앎으로서 보완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젊었을 때는 마치 세상의 모든 에너지를 가진 듯이 하는데 그래서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데에 많은 에너지를 써버리기도 하잖아요. 마치 조각가가 어떤 정교한 것을 만들면서 큰 도구를 쓰듯이요. 하지만 루빈스타인은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하지 않고, 정교한 것을 만들기 위해 정교한 도구를 쓰는 식으로 했습니다. 그러려면 이 모든 것들이 다 어떻게 작동을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니까요. 젊었을 때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아주 정교하게 알기도 어렵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데 비해서요.
어떤 때는 아주 격정적으로 표현하는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순간들도 있는데요, 작품을 할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관계(방식)를 가지고 가는 건 아니죠. 적, 한 작품을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잘 완성해나가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고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이기도 해요. 무엇이 더 중요한지, 삶의 우선순위가 뭔지, 심지어 음악과 그리고 커리어에 대해 서도요.

Q. 음악과 커리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커리어가 뭔데요,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커리어가 인생은 아니잖아요. 삶은 단 한 번뿐이에요. 그래서 소통하고 전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 등 음악보다 더 중요한 것들도 아주아주 많아요.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은 조금씩 조화시켜서 오직 음악에만 갇혀있거나 묻혀 있지 않도록 해야 해요. 왜냐면 음악은 아주 이기적이고 지독스런 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음악이 힘든 직업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음악을 하다 보면 세상의 다른 현실들과 완벽하게 단절된 채로 지낼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하나도 모르고 지내도 전혀 아쉽다거나 부족하게 느껴지지도 않고요. 그렇지만 슬픈 일이죠. 세상에는 발견하고 음미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걸 모르고 피아노만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삶을 놓치는 것과도 같아요. 그리고 음악을 하기 위해서도 삶이란 필요한 것이고요.

Q. 음악가로서 삶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음악가로서는 음악 앞에서 경탄과 감탄을 지켜가는 거죠. 그 진지하고 진실한 자세를요. 사실 인성이나 인품은 바뀌지 않아요. 늘 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리고 주변에도 관심을 가져서 주위에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죠. 음악가라는 직업은 시기와 질투도 견뎌내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친구를 골라 사귀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아주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요. 왜냐면 음악의 세계에는 '친구'는 별로 없거든요, '아는 사람'은 많지만.
하지만 친구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특히 음악을 하는 친구들, 그러면서도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연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는 두말할 나위가 없죠. 상아탑에 갇혀서 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면 안 됩니다. 때로 너무 연주를 많이 다니다 보면 친구를 챙기는데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고 같이 어울리거나 음악에 대해 생각을 나누거나 하는 것마저도 귀찮아질 때가 있는데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주 중요해요. 그것이 삶을, 음악을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Q. 교수님은 '시련을 딛고 전설을 연주한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받고 계십니다. 한창 잘 나가시던 시절에 손 부상을 당하지 않으셨더라면 인생이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까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한창일 때는 사흘에 한 번꼴, 일 년에 120차례 연주가 있었고 근육을 너무 혹사한 까닭에 부상이 찾아왔는데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삶은 충분히 길기 때문에 최대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삶은 길이 있는 것이고, 각자에게는 카르마(운명)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교육자를 할 수 있었던 건 잘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비록 그 당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이해하려고 많은 사람을 만나서 조언을 듣고 고민 상담도 하고 그랬었지만요, 그런 경험들이 나중에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나도 문제가 있었고, 누구에게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는 각각 다 다른 방식으로 온다. 그래서 모두에게 삶의 이야기도 다 다른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닥치면 어떤 면에서는 삶이 더 풍요로워지기도 한다. 다만 문제를 맞닥뜨리면 성찰해봐야 하고, 삶과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모든 게 다 잘 풀릴 때는 별로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가던 길을 계속 가죠. 문제가 생겨야 비로소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되고, 그때 사람도 더 깊어지죠. 저도 한창 바쁠 때는 그냥 연주 준비만 했어요. 어떤 면에선 그게 훨씬 쉬운 일이었죠. 그런데 제가 몸이 말하는 걸 잘 듣지 않으니까 제 몸 안의 정신이 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도록 작용을 해서 '그래, 듣지 않겠다면 무언가 문제를 만들어서 네가 더 연주를 못 하도록 하겠어. 그러면 너는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몸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되겠지' 이렇게 된 것 같아요.

Q. 그럼 그 모든 걸 바탕으로 제자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고 싶으신가요?

조성진을 예로 들어볼까요? 마흔 살에 유명해진 게 아니잖아요, 쇼팽 콩쿠르에서 젊은 나이에 우승했고 그래서 기다림의 시간이 아주 길다고 할 수는 없죠. '준비하고 기다려라'는 말은 이제 어울리지 않아요. 음악을 사랑하면 열심히 하는 거죠. 그리고 호기심을 계속 유지해야 하고요. 아마 그렇게 재능이 있고 또 열심인 경우에는 최고의 연주를 하고 싶을 겁니다. 특히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 이후 유명해지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쇼팽 콩쿠르로 인해 완전히 유명해졌죠. 하지만 그는 2년 전과 같은 아티스트입니다. 물론 진화하고 발전했고, 그래서 16살 때랑 20살 때랑은 분명히 다르죠. 특히 청년기는 극적으로 변화하는 시기니까요. 음악적으로도 풍성해졌고 아직도 계속 발전하는 중입니다. 스스로 준비하면서요. 그리고 이제는 콩쿠르를 위해서 준비하지는 않아도 되고요. 이 모든 게 상당히 빨리 이루어졌어요. 제 주위에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하는데도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지는 건 훨씬 늦게 이루어지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너무 일찍 이루면 경계해야 될 점도 많아요. 후에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이름이 알려진 다음에는 결국 레퍼토리와의 싸움인데 계속 다른 레퍼토리를 해야 하죠,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미리 해놓지 않았으면 새로 작품을 해야 하는 경우 상당히 힘들죠. 이 세계에선 누군가를 무대에 올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할 수도 있지만 금세 바뀌어버릴 수도 있거든요. 따라서 2년, 3년을 기준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니라 음악가의 생애를 놓고 봐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요.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이 아니라 평생 변화를 겪으면서 음악가의 직업을 이어가려면 레퍼토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깊은 반성과 성찰과 함께요. 물론 조성진처럼 생각이 깊은 경우에는 많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을 것이고 조언도 새겨 들었을 것이고 알고 있을 거에요. 어떻게 해야할 지를요. 좋은 음악을 최선을 다해 연주해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 그것도 역시 중요하지만 대중의 마음에 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음악을 사랑하고, 성실하고 진실되게 연주하면 대중도 그걸 느낍니다. 분명히요. 그게 위대한 작곡가들을 존중하고 예우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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