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르노삼성 대리점의 ‘복잡한’ 속사정

입력 2018.05.15 (06:16) 수정 2018.05.17 (11:1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갑질'은 참 단순하지만 복잡한 말입니다. 힘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하는 모든 부당한 행동을 두 글자로 표현하니까 단순하지만, 그 부당한 행동이 온갖 교묘한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복잡합니다. 갑질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맞서 싸우다가 힘에 부쳐 공권력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르노삼성 개인 대리점주들도 "본사에서 갑질을 했다"며 공권력을 찾았습니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에 본사를 제소했고, 본격 조사 전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조정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대리점주들은 본사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주고, 판매 수수료 중 일부를 이 목표와 연계해서 인센티브 형식으로 주고 있어서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울 지경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취재해 지난 9일 보도했습니다. 취재하면서 대리점주들에게 여러 번 설명을 들었는데, 수수료 항목이 많고, 지급 기준이 복잡해서 한 번에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보도 이후 취재를 더 진행하다가 수수료 지급 기준만큼이나 복잡한 게 얼마 전까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대리점별 판매 목표를 정하는 기준입니다.

[연관기사] [단독] “르노삼성 본사, 수수료 갑질에 차 팔아도 적자”


신용카드 결제 많으면 불이익…3년여간 지속
이건 2014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있었던 제도였습니다. 없어진 제도를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르노삼성 대리점주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르노삼성은 본사에서 판매 목표를 정하고 이걸 각 영업본부에 나눠주면, 영업본부가 각 대리점 사정에 맞게 판매 목표를 부여합니다. 영업본부는 과거 판매대수와 영업사원 숫자 등을 반영해서 각 대리점별 1차 판매 목표를 계산합니다. 지난해 9월까지는 이 1차 판매 목표를 가지고 조정 작업을 거쳤습니다. 조정은 1차 판매 목표의 10% 이내에서 이뤄졌습니다.

르노삼성은 각 대리점에서 고객이 차를 사면서 신용카드 결제를 얼마나 했는지 파악했습니다. 신용카드 결제가 많으면 결제 수수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본사에서는 비용이 늘어납니다. 비용 증가를 피하고 싶었던 걸까요. 르노삼성은 신용카드 결제 비율이 높은 대리점에 판매 목표를 늘리는 불이익을 줬습니다. 반대로 신용카드 결제 비율이 낮은 대리점에는 판매 목표를 낮춰주는 혜택을 줬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리점은 고객이 신용카드 결제 대신 할부사의 할부 결제를 하도록 유도하게 됩니다. 사실상 고객의 선택지를 좁히는 결과가 됩니다.


제휴 할부사 이용률·특정 차종 판매 실적도 반영
르노삼성은 또 각 대리점의 제휴 할부사 이용률이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해서 판매 목표에 반영했습니다. 제휴 할부사 이용이 많으면 판매 목표를 낮추고, 제휴 할부사 이용이 적으면 판매 목표를 올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제휴 할부사 이용을 독려하려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판매 목표 조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르노삼성 본사는 차종을 하나 정해서 별도로 판매 목표를 주고, 100%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음 달 판매 목표를 높이는 불이익을 줬습니다. 또 판매 목표 달성률이 80%에 못 미치는 대리점에도 같은 불이익을 줬습니다.

르노삼성은 이렇게 복잡한 기준에 따라 3년 가까이 대리점에 판매 목표를 부여했습니다. 대리점 입장에서는 차를 많이 판매하면서도 회사에 원하는 방식으로 팔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은 겁니다.

르노삼성은 본사 지침에 따라 기준을 운용한 것은 아니며, 상당수 지역영업본부에서 기준을 만들었는데, 대리점주들의 문제 제기에 따라 없앴다고 설명했습니다.


복잡한 실타래 풀려면 실마리부터 찾아야
르노삼성은 그동안 대화가 잘 이뤄지고 있었는데, 대리점주들이 갑자기 대화를 중단하고 공정위에 제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1년 동안 대화를 했지만, 진전이 없어서 참다못해 공정위 제소를 택했다는 대리점주들의 설명과는 180도 다른 해명이었습니다. 양측이 얼마나 견해차가 큰지 알 수 있었습니다.

르노삼성과 대리점의 수수료 문제는 복잡한 수수료 체계에 어떻게 양측 상황을 반영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입니다. 또 긴 시간 대화 노력을 하면서 일이 풀리지 않아 쌓인 감정도 있어서 더욱 복잡한 문제가 돼 버렸습니다.

대리점주들은 대리점주 중에 삼성자동차 시절부터 일했던 직원들이 많다며, 애사심이 남아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회사가 처벌받기를 원해서 공정위에 제소했다기보다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어서 공정위를 찾은 걸로 보였습니다.

보도 이후 르노삼성은 공정위 조정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며, 수수료에서 인센티브 수수료 비중을 낮추고 고정 수수료 비중을 올리는 방향으로 대리점주들과 대화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큰 견해차를 보이고 있는 양측이지만, 파국은 원치 않는다는 점은 같았습니다. 복잡한 실타래 같은 이 문제의 실마리는 이미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양측이 힘을 합쳐 실마리를 천천히 잡아당긴다면 실타래가 금방 풀릴 거라고 믿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르노삼성 대리점의 ‘복잡한’ 속사정
    • 입력 2018-05-15 06:16:21
    • 수정2018-05-17 11:14:25
    취재후·사건후
'갑질'은 참 단순하지만 복잡한 말입니다. 힘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하는 모든 부당한 행동을 두 글자로 표현하니까 단순하지만, 그 부당한 행동이 온갖 교묘한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복잡합니다. 갑질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맞서 싸우다가 힘에 부쳐 공권력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르노삼성 개인 대리점주들도 "본사에서 갑질을 했다"며 공권력을 찾았습니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에 본사를 제소했고, 본격 조사 전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조정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대리점주들은 본사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주고, 판매 수수료 중 일부를 이 목표와 연계해서 인센티브 형식으로 주고 있어서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울 지경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취재해 지난 9일 보도했습니다. 취재하면서 대리점주들에게 여러 번 설명을 들었는데, 수수료 항목이 많고, 지급 기준이 복잡해서 한 번에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보도 이후 취재를 더 진행하다가 수수료 지급 기준만큼이나 복잡한 게 얼마 전까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대리점별 판매 목표를 정하는 기준입니다.

[연관기사] [단독] “르노삼성 본사, 수수료 갑질에 차 팔아도 적자”


신용카드 결제 많으면 불이익…3년여간 지속
이건 2014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있었던 제도였습니다. 없어진 제도를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르노삼성 대리점주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르노삼성은 본사에서 판매 목표를 정하고 이걸 각 영업본부에 나눠주면, 영업본부가 각 대리점 사정에 맞게 판매 목표를 부여합니다. 영업본부는 과거 판매대수와 영업사원 숫자 등을 반영해서 각 대리점별 1차 판매 목표를 계산합니다. 지난해 9월까지는 이 1차 판매 목표를 가지고 조정 작업을 거쳤습니다. 조정은 1차 판매 목표의 10% 이내에서 이뤄졌습니다.

르노삼성은 각 대리점에서 고객이 차를 사면서 신용카드 결제를 얼마나 했는지 파악했습니다. 신용카드 결제가 많으면 결제 수수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본사에서는 비용이 늘어납니다. 비용 증가를 피하고 싶었던 걸까요. 르노삼성은 신용카드 결제 비율이 높은 대리점에 판매 목표를 늘리는 불이익을 줬습니다. 반대로 신용카드 결제 비율이 낮은 대리점에는 판매 목표를 낮춰주는 혜택을 줬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리점은 고객이 신용카드 결제 대신 할부사의 할부 결제를 하도록 유도하게 됩니다. 사실상 고객의 선택지를 좁히는 결과가 됩니다.


제휴 할부사 이용률·특정 차종 판매 실적도 반영
르노삼성은 또 각 대리점의 제휴 할부사 이용률이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해서 판매 목표에 반영했습니다. 제휴 할부사 이용이 많으면 판매 목표를 낮추고, 제휴 할부사 이용이 적으면 판매 목표를 올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제휴 할부사 이용을 독려하려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판매 목표 조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르노삼성 본사는 차종을 하나 정해서 별도로 판매 목표를 주고, 100%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음 달 판매 목표를 높이는 불이익을 줬습니다. 또 판매 목표 달성률이 80%에 못 미치는 대리점에도 같은 불이익을 줬습니다.

르노삼성은 이렇게 복잡한 기준에 따라 3년 가까이 대리점에 판매 목표를 부여했습니다. 대리점 입장에서는 차를 많이 판매하면서도 회사에 원하는 방식으로 팔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은 겁니다.

르노삼성은 본사 지침에 따라 기준을 운용한 것은 아니며, 상당수 지역영업본부에서 기준을 만들었는데, 대리점주들의 문제 제기에 따라 없앴다고 설명했습니다.


복잡한 실타래 풀려면 실마리부터 찾아야
르노삼성은 그동안 대화가 잘 이뤄지고 있었는데, 대리점주들이 갑자기 대화를 중단하고 공정위에 제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1년 동안 대화를 했지만, 진전이 없어서 참다못해 공정위 제소를 택했다는 대리점주들의 설명과는 180도 다른 해명이었습니다. 양측이 얼마나 견해차가 큰지 알 수 있었습니다.

르노삼성과 대리점의 수수료 문제는 복잡한 수수료 체계에 어떻게 양측 상황을 반영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입니다. 또 긴 시간 대화 노력을 하면서 일이 풀리지 않아 쌓인 감정도 있어서 더욱 복잡한 문제가 돼 버렸습니다.

대리점주들은 대리점주 중에 삼성자동차 시절부터 일했던 직원들이 많다며, 애사심이 남아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회사가 처벌받기를 원해서 공정위에 제소했다기보다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어서 공정위를 찾은 걸로 보였습니다.

보도 이후 르노삼성은 공정위 조정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며, 수수료에서 인센티브 수수료 비중을 낮추고 고정 수수료 비중을 올리는 방향으로 대리점주들과 대화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큰 견해차를 보이고 있는 양측이지만, 파국은 원치 않는다는 점은 같았습니다. 복잡한 실타래 같은 이 문제의 실마리는 이미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양측이 힘을 합쳐 실마리를 천천히 잡아당긴다면 실타래가 금방 풀릴 거라고 믿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