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좀엔 무화과?…남도 어르신 ‘토종 꿀팁’

입력 2018.05.15 (17:45) 수정 2018.05.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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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줄기 자르면 나오는 진액을 발에 바르면 무좀이 낫는다?

“줄기를 팍 짤라블면 찐덕찐덕한 것이 나온디, 그 허연 것을 살살 볼라주는 거제. 발 간지라서 죽것단 사람한테 볼라주면 좋제”

-신안군 비금도 신촌 최○○(여, 78세)
-완도군 소안도 부상 김○○(여, 98세)
-진도군 진도 향동마을 하○○(여, 86세) 외 7명 등

전남 섬마을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실제로 구전한 내용입니다. 무화과 줄기 진액이나 잎을 찧은 것을 무좀 치료에 사용하기도 하고, 상처 난 곳에 바르면 좋다고 합니다. 또, 잎을 된장이나 재래식 화장실에 넣으면 구더기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네요.


무화과나무는 우리나라 남쪽에서 많이 키우고 있는 나무입니다. 높이는 2~7m가량, 가지는 갈색입니다. 잎과 줄기를 자르면 흰색 유액이 나옵니다. 이 유액을 섬마을 할머니들은 '무좀 치료제'로 썼던 겁니다.

이런 '생활 정보'를 담은 자료집이 출간됐습니다.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에서 펴냈습니다. 섬 지역 어르신 300여 명이 구전한 내용인데요. 연구진이 전남 신안·진도·완도군 지역 105개 마을을 찾아 조사했는데, 어르신들의 평균 나이는 80.9세였다고 합니다. 민간요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남도 어르신들이 숨겨뒀던 '토종 꿀팁'를 소개합니다.


구안와사엔 ‘드렁허리’ 껍질을 붙인다

- 완도군 보길도 월송리 조○○(여, 80세)
- 완도군 완도 증도 황○○(여, 83세)
- 진도군 진도 향동마을 하○○(여, 86세) 등

드렁허리는 뱀장어와 비슷하지만, 지느러미가 퇴화해 없고 꼬리지느러미만 흔적이 남은 동물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드렁허리목 드렁허리과에 속하고, 진흙이 많은 논이나 호수 등에 사는데 요즘은 개체 수가 줄어 발견하기가 힘들죠.

이런 드렁허리를 안면근육이 마비돼 얼굴 한쪽이 삐뚤어지는 구안와사에 쓰면 낫는답니다. 진도에서는 '때랭이, 뜨랭이'라고 부르고 완도에서는 '드랭이'라고 부릅니다.

조선 선조 때의 의학서인 '의림촬요(醫林撮要)'에도 드렁허리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요. 드렁허리 머리를 찔러 피를 뽑은 후, 반대편 얼굴에 바르면 얼굴이 바로 잡힌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머리에 피가 난다면 참갑오징어 뼛가루를 바른다

-신안군 도초도 발매리 정○○(남, 74세)외 6인
-완도군 보길도 보옥 고○○(남, 71세) 등

참갑오징어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하고 서해 중부에서 많이 잡히는 오징어과 연체동물입니다. 오징어류 중에 가장 맛이 좋다고 하죠.

이 참갑오징어 뼈를 누렇게 변색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루를 내면 지혈하는 데 쓸 수 있답니다.오징어 뼈에 있는 탄산칼슘 성분이 지혈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갑오징어를 손질하고 나온 뼈는 '늘' 또는 '깜능'이라고도 불렀다네요. 체하거나 배가 아플 때는 식초에 타서도 먹었다는 내용까지 어르신들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외 해충인 벼멸구를 퇴치할 때 고래의 한 종인 상괭이 기름을 사용하고, 산후조리에 먹는 미역국에는 소고기 대신 생선 조피볼락을 넣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남도 어르신 ‘토종 꿀팁’, 어떻게 활용될까

국립생물자원관에서는 이런 전통지식에 과학적 검증을 거쳐 특허 신청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한민국 이름으로 특허를 출원하는 거죠. 국유특허입니다.

전통지식을 상품화하려면 '국유특허 기술이전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중소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이런 전통지식 관련 특허에 관심이 많다는 게 국립생물자원관 측의 설명입니다. 사실상 무료로 기술이전을 해줘 전통지식이 산업계로 흘러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상품화된 사례는 많습니다. 예로부터 이뇨와 부기 제거에 사용해 온 옥수수수염을 활용한 음료도 있고요. 설사나 복통에 사용해온 쑥으로 위염 치료제가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자생생물 전통지식 조사발굴 10년…국립공원 중심으로 2020년까지

자생식물 전통지식 조사발굴사업은 2009년도에 시범사업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작년까지 다도해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조사를 마쳤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올해 전라남·북도에 있는 월출산 인근 지역과 무등산 인근 지역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태백산과 북한산 등으로 조사를 이어가 전통마을 70여 곳을 조사합니다.

물론, 근거 없는 민갑요법에 현혹돼선 안 되겠죠. 무좀에 무화과 진액을 바르고, 구안와사에는 드렁허리 껍질을 쓴다는 내용은 충분한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 전통지식입니다. 그래도 어르신들의 전통지식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두는 건, 전통지식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종의 '무형자산'이기 때문일 겁니다. 어르신들의 구전을 통해 기록된 전통지식이 이후에 어떤 문화 자료로 활용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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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좀엔 무화과?…남도 어르신 ‘토종 꿀팁’
    • 입력 2018-05-15 17:45:29
    • 수정2018-05-15 17:51:57
    취재K
무화과 줄기 자르면 나오는 진액을 발에 바르면 무좀이 낫는다? “줄기를 팍 짤라블면 찐덕찐덕한 것이 나온디, 그 허연 것을 살살 볼라주는 거제. 발 간지라서 죽것단 사람한테 볼라주면 좋제” -신안군 비금도 신촌 최○○(여, 78세) -완도군 소안도 부상 김○○(여, 98세) -진도군 진도 향동마을 하○○(여, 86세) 외 7명 등 전남 섬마을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실제로 구전한 내용입니다. 무화과 줄기 진액이나 잎을 찧은 것을 무좀 치료에 사용하기도 하고, 상처 난 곳에 바르면 좋다고 합니다. 또, 잎을 된장이나 재래식 화장실에 넣으면 구더기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네요. 무화과나무는 우리나라 남쪽에서 많이 키우고 있는 나무입니다. 높이는 2~7m가량, 가지는 갈색입니다. 잎과 줄기를 자르면 흰색 유액이 나옵니다. 이 유액을 섬마을 할머니들은 '무좀 치료제'로 썼던 겁니다. 이런 '생활 정보'를 담은 자료집이 출간됐습니다.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에서 펴냈습니다. 섬 지역 어르신 300여 명이 구전한 내용인데요. 연구진이 전남 신안·진도·완도군 지역 105개 마을을 찾아 조사했는데, 어르신들의 평균 나이는 80.9세였다고 합니다. 민간요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남도 어르신들이 숨겨뒀던 '토종 꿀팁'를 소개합니다. 구안와사엔 ‘드렁허리’ 껍질을 붙인다 - 완도군 보길도 월송리 조○○(여, 80세) - 완도군 완도 증도 황○○(여, 83세) - 진도군 진도 향동마을 하○○(여, 86세) 등 드렁허리는 뱀장어와 비슷하지만, 지느러미가 퇴화해 없고 꼬리지느러미만 흔적이 남은 동물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드렁허리목 드렁허리과에 속하고, 진흙이 많은 논이나 호수 등에 사는데 요즘은 개체 수가 줄어 발견하기가 힘들죠. 이런 드렁허리를 안면근육이 마비돼 얼굴 한쪽이 삐뚤어지는 구안와사에 쓰면 낫는답니다. 진도에서는 '때랭이, 뜨랭이'라고 부르고 완도에서는 '드랭이'라고 부릅니다. 조선 선조 때의 의학서인 '의림촬요(醫林撮要)'에도 드렁허리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요. 드렁허리 머리를 찔러 피를 뽑은 후, 반대편 얼굴에 바르면 얼굴이 바로 잡힌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머리에 피가 난다면 참갑오징어 뼛가루를 바른다 -신안군 도초도 발매리 정○○(남, 74세)외 6인 -완도군 보길도 보옥 고○○(남, 71세) 등 참갑오징어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하고 서해 중부에서 많이 잡히는 오징어과 연체동물입니다. 오징어류 중에 가장 맛이 좋다고 하죠. 이 참갑오징어 뼈를 누렇게 변색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루를 내면 지혈하는 데 쓸 수 있답니다.오징어 뼈에 있는 탄산칼슘 성분이 지혈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갑오징어를 손질하고 나온 뼈는 '늘' 또는 '깜능'이라고도 불렀다네요. 체하거나 배가 아플 때는 식초에 타서도 먹었다는 내용까지 어르신들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외 해충인 벼멸구를 퇴치할 때 고래의 한 종인 상괭이 기름을 사용하고, 산후조리에 먹는 미역국에는 소고기 대신 생선 조피볼락을 넣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남도 어르신 ‘토종 꿀팁’, 어떻게 활용될까 국립생물자원관에서는 이런 전통지식에 과학적 검증을 거쳐 특허 신청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한민국 이름으로 특허를 출원하는 거죠. 국유특허입니다. 전통지식을 상품화하려면 '국유특허 기술이전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중소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이런 전통지식 관련 특허에 관심이 많다는 게 국립생물자원관 측의 설명입니다. 사실상 무료로 기술이전을 해줘 전통지식이 산업계로 흘러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상품화된 사례는 많습니다. 예로부터 이뇨와 부기 제거에 사용해 온 옥수수수염을 활용한 음료도 있고요. 설사나 복통에 사용해온 쑥으로 위염 치료제가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자생생물 전통지식 조사발굴 10년…국립공원 중심으로 2020년까지 자생식물 전통지식 조사발굴사업은 2009년도에 시범사업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작년까지 다도해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조사를 마쳤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올해 전라남·북도에 있는 월출산 인근 지역과 무등산 인근 지역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태백산과 북한산 등으로 조사를 이어가 전통마을 70여 곳을 조사합니다. 물론, 근거 없는 민갑요법에 현혹돼선 안 되겠죠. 무좀에 무화과 진액을 바르고, 구안와사에는 드렁허리 껍질을 쓴다는 내용은 충분한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 전통지식입니다. 그래도 어르신들의 전통지식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두는 건, 전통지식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종의 '무형자산'이기 때문일 겁니다. 어르신들의 구전을 통해 기록된 전통지식이 이후에 어떤 문화 자료로 활용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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