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시간만에 태도 돌변한 北, 북미회담-풍계리 불똥튀나?

입력 2018.05.16 (15:31) 수정 2018.05.1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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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항을 거듭하던 북미정상회담 가도에 첫 장애물이 나타났다. 북한이 오늘(16일) 예정된 남북 고위급회담을 돌연 취소한 데 이어, 북미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주말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쇄 일정을 발표하고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남북 고위급회담을 제안하고 나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태도 돌변은 매우 이례적이고, 그 파장 또한 만만치 않아 보인다.

북한이 갑자기 초강수를 두고 나선 이유는 뭘까? 이른바 세기의 담판이 예고된 북미정상회담은 제대로 치러질지, 당장은 다음 주 날짜까지 잡혀있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이벤트는 예정대로 진행될지가 관심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사진출처 : 연합뉴스

■ 15시간 만의 회담 취소, 북미정상회담 무산 경고까지

한밤중 갑작스럽게 발표된 북한의 남북 고위급회담 취소는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회담 시작 시각을 채 10시간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이뤄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새벽 0시 30분쯤 리선권 단장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한국과 미국 공군의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를 비난하며 고위급 회담을 '무기 연기'한다고 통보해왔다.

북한이 전날 오전 9시 '고위급회담을 16일에 열자'고 우리 측에 제안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회담 제의 불과 15시간여 만에 일방적으로 회담을 취소한 셈이다.

북한은 새벽 3시쯤엔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우리는 남조선에서 무분별한 북침전쟁 소동과 대결 난동이 벌어지는 험악한 정세 하에서 16일로 예견된 북남고위급회담을 중지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회담 취소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북한은 다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내세워 "일방적인 핵 포기만 강요하는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면서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지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까지 내놓았다.

■ 맥스선더(Max Thunder)가 뭐길래…석연치 않은 회담 취소 사유

북한이 명시적으로 밝힌 남북 고위급회담 취소 사유는 한미 두 나라 공군이 현재 한반도에서 진행하고 있는 맥스선더 훈련이다.

11일부터 시작돼 오는 25일까지 2주간 진행되는 이번 훈련에는 미 최첨단 F-22 스텔스 전투기 8대와 F-15K 전투기 등 100여 대의 양국 공군 전력이 참가할 예정인데, 이를 "판문점 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자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이라고 규정하고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거론한 '맥스선더' 훈련은 이미 지난 11일 시작된 훈련이라는 점, 북한 당국 역시 이를 충분히 알고 전날 고위급 회담 개최를 제안했었다는 점 등을 감아하면 북한의 주장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고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북한은 맥스선더 훈련 개시 다음날인 지난 12일에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기 입장을 밝혔고, 15일에는 핵실험장 폐기 상황을 취재할 남측 언론을 초청하는 통지문을 우리 측에 전달해오기도 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3월 초 서훈 국정원장 등 남측의 대북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키리졸브와 독수리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이해한다'는 입장을 표시했었다는 점에서 북한이 회담 취소 사유로 내세운 맥스선더 훈련은 명분이 약하다는 분석이다.


■ 진짜 이유는 비핵화 반발…북미 기싸움 2라운드?

그렇다면 북한이 돌연 회담 취소 카드를 꺼내 든 진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표면적으로는 남쪽을 겨냥했지만, 진짜 표적은 미국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남한을 겨냥하는 듯하면서 실제로는 미국을 치는 이른바 '성동격서(聲東擊西)'일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핵무기의 미국 반출, 고강도의 검증·사찰 등 요구사항을 쏟아내며 기선잡기에 나서자, 북한이 이에 반발하며 제동을 걸고 나선 형국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북한은 이날 '중앙통신사 보도'에서 "북남고위급회담이 중단되게 되고 첫걸음을 뗀 북남관계에 난관과 장애가 조성된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에 그 책임이 있다"면서 "미국도 남조선 당국과 함께 벌리고 있는 도발적인 군사적 소동 국면을 놓고 일정에 오른 조미(북미) 수뇌 상봉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며 속내 일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미 양측이 다음 달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2차 기싸움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했다. 싱가포르 회동의 핵심 쟁점이 될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해 미국이 이른바 '더 크고, (이전과) 다르고, 더 빠른'(bigger, different, faster) 비핵화 방식의 구체적인 청구서를 공개하자, 북한이 이에 반발하고 나선 샅바 싸움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역시,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세가 조성되자 브레이크를 건 것으로 평가했다. 북한의 입장에선 볼턴 보좌관의 '핵무기 오크리지 이전' 발언 등은 사실상 '승전국이 패전국에 요구하는 굴욕 수준'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크고, 앞으로 이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출한 걸로 봐야 한다는 게 남 교수의 설명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사진출처 : 연합뉴스

■ 김계관 담화로 확인된 복한의 속내…‘리비아식 핵폐기’ 일축

전문가들의 이런 분석은 남북고위급 회담 취소에 이어 발표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보다 명확해지는 분위기다.

김계관 제1부상은 이날 담화에서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미국 고위관리들이 '선 핵 포기 후 보상' '리비아식 핵 포기방식' '핵·미사일·생화학무기 완전폐기' 등을 밝힌 사실을 일일이 지적하며, "대화 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망발"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핵 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던 리비아를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와 대비하는 것 자체가 아둔하기 짝이 없다"고 말하면서, "대국들에게 나라를 통째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고 비난했다.

북한의 이런 입장 표명은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요구해온 리비아식 핵 폐기 모델, 즉 '先 핵 폐기 後 보상 방식'의 비핵화를 일축하면서, 핵보유국의 입장에서 향후 협상을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다 노골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즉,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 과정 등에서 수차례 밝혔던 이른바 '단계적-동시적 조치, 행동 대 행동 원칙을 통한 비핵화를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조미 수뇌회담에 나오는 경우,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번 담화가 미국 정부의 태도 변화를 노린 촉구성 담화라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북한이 정부 성명이나 외무성 담화 등이 아닌 김계관 제1부상 개인을 담화의 주체로 내세운 것도 미국의 볼턴 보좌관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대북 발언을 의식한 수위 조절용이라는 해석이다.

■ 북한에 허 찔린 백악관…풍계리 이벤트 1차 고비될 듯

이런 북한의 태도 돌변에 대해 한미 양국은 일단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 채 향후 북미정상회담 등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측이 연례적인 한미연합공중훈련을 이유로 남북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은 4월 27일 양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근본정신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유감"이라며 북측의 조속한 회담 복귀를 촉구했다.

미국 백악관도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한 제 상황 파악이라는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세라 허커비 샌더슨 대변인은 성명에서 "우리는 한국 언론 보도를 보고 관련 사실을 알았다"면서 "미국은 북한이 밝힌 내용에 대해 별도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고위급 회담취소를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날 백악관에서 매릴랜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기자들로부터 관련 질문을 받았지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계관 부상의 담화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곧바로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미국 관리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당혹스럽다'는 것이다. 미국 CNN 방송은 특히 백악관 참모진을 인용해 "백악관이 북측의 통보로 허를 찔렸다"고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당혹스런 기류를 전했다.

CNN과 로이터 통신은 전문가 등을 인용해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려는 '김정은의 협상 각본'에서 나온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고,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이번 발표가 몇 달간 한반도에서 조성된 해빙 무드에 긴장감과 불확실성을 불어넣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오늘 발표로 당장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인 북미정상회담 일정이 큰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의 리비아식 핵 폐기 요구에 강력 반발하고 북미정상회담 무산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나서면서 양측의 힘겨루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은 다음 주 23일부터 25일 사이에 진행될 예정인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가 정상적으로 진행될지가 1차 고비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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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시간만에 태도 돌변한 北, 북미회담-풍계리 불똥튀나?
    • 입력 2018-05-16 15:31:09
    • 수정2018-05-16 19:26:14
    취재K
순항을 거듭하던 북미정상회담 가도에 첫 장애물이 나타났다. 북한이 오늘(16일) 예정된 남북 고위급회담을 돌연 취소한 데 이어, 북미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주말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쇄 일정을 발표하고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남북 고위급회담을 제안하고 나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태도 돌변은 매우 이례적이고, 그 파장 또한 만만치 않아 보인다.

북한이 갑자기 초강수를 두고 나선 이유는 뭘까? 이른바 세기의 담판이 예고된 북미정상회담은 제대로 치러질지, 당장은 다음 주 날짜까지 잡혀있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이벤트는 예정대로 진행될지가 관심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 15시간 만의 회담 취소, 북미정상회담 무산 경고까지

한밤중 갑작스럽게 발표된 북한의 남북 고위급회담 취소는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회담 시작 시각을 채 10시간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이뤄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새벽 0시 30분쯤 리선권 단장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한국과 미국 공군의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를 비난하며 고위급 회담을 '무기 연기'한다고 통보해왔다.

북한이 전날 오전 9시 '고위급회담을 16일에 열자'고 우리 측에 제안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회담 제의 불과 15시간여 만에 일방적으로 회담을 취소한 셈이다.

북한은 새벽 3시쯤엔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우리는 남조선에서 무분별한 북침전쟁 소동과 대결 난동이 벌어지는 험악한 정세 하에서 16일로 예견된 북남고위급회담을 중지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회담 취소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북한은 다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내세워 "일방적인 핵 포기만 강요하는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면서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지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까지 내놓았다.

■ 맥스선더(Max Thunder)가 뭐길래…석연치 않은 회담 취소 사유

북한이 명시적으로 밝힌 남북 고위급회담 취소 사유는 한미 두 나라 공군이 현재 한반도에서 진행하고 있는 맥스선더 훈련이다.

11일부터 시작돼 오는 25일까지 2주간 진행되는 이번 훈련에는 미 최첨단 F-22 스텔스 전투기 8대와 F-15K 전투기 등 100여 대의 양국 공군 전력이 참가할 예정인데, 이를 "판문점 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자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이라고 규정하고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거론한 '맥스선더' 훈련은 이미 지난 11일 시작된 훈련이라는 점, 북한 당국 역시 이를 충분히 알고 전날 고위급 회담 개최를 제안했었다는 점 등을 감아하면 북한의 주장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고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북한은 맥스선더 훈련 개시 다음날인 지난 12일에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기 입장을 밝혔고, 15일에는 핵실험장 폐기 상황을 취재할 남측 언론을 초청하는 통지문을 우리 측에 전달해오기도 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3월 초 서훈 국정원장 등 남측의 대북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키리졸브와 독수리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이해한다'는 입장을 표시했었다는 점에서 북한이 회담 취소 사유로 내세운 맥스선더 훈련은 명분이 약하다는 분석이다.


■ 진짜 이유는 비핵화 반발…북미 기싸움 2라운드?

그렇다면 북한이 돌연 회담 취소 카드를 꺼내 든 진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표면적으로는 남쪽을 겨냥했지만, 진짜 표적은 미국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남한을 겨냥하는 듯하면서 실제로는 미국을 치는 이른바 '성동격서(聲東擊西)'일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핵무기의 미국 반출, 고강도의 검증·사찰 등 요구사항을 쏟아내며 기선잡기에 나서자, 북한이 이에 반발하며 제동을 걸고 나선 형국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북한은 이날 '중앙통신사 보도'에서 "북남고위급회담이 중단되게 되고 첫걸음을 뗀 북남관계에 난관과 장애가 조성된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에 그 책임이 있다"면서 "미국도 남조선 당국과 함께 벌리고 있는 도발적인 군사적 소동 국면을 놓고 일정에 오른 조미(북미) 수뇌 상봉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며 속내 일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미 양측이 다음 달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2차 기싸움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했다. 싱가포르 회동의 핵심 쟁점이 될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해 미국이 이른바 '더 크고, (이전과) 다르고, 더 빠른'(bigger, different, faster) 비핵화 방식의 구체적인 청구서를 공개하자, 북한이 이에 반발하고 나선 샅바 싸움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역시,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세가 조성되자 브레이크를 건 것으로 평가했다. 북한의 입장에선 볼턴 보좌관의 '핵무기 오크리지 이전' 발언 등은 사실상 '승전국이 패전국에 요구하는 굴욕 수준'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크고, 앞으로 이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출한 걸로 봐야 한다는 게 남 교수의 설명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 김계관 담화로 확인된 복한의 속내…‘리비아식 핵폐기’ 일축

전문가들의 이런 분석은 남북고위급 회담 취소에 이어 발표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보다 명확해지는 분위기다.

김계관 제1부상은 이날 담화에서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미국 고위관리들이 '선 핵 포기 후 보상' '리비아식 핵 포기방식' '핵·미사일·생화학무기 완전폐기' 등을 밝힌 사실을 일일이 지적하며, "대화 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망발"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핵 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던 리비아를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와 대비하는 것 자체가 아둔하기 짝이 없다"고 말하면서, "대국들에게 나라를 통째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고 비난했다.

북한의 이런 입장 표명은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요구해온 리비아식 핵 폐기 모델, 즉 '先 핵 폐기 後 보상 방식'의 비핵화를 일축하면서, 핵보유국의 입장에서 향후 협상을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다 노골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즉,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 과정 등에서 수차례 밝혔던 이른바 '단계적-동시적 조치, 행동 대 행동 원칙을 통한 비핵화를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조미 수뇌회담에 나오는 경우,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번 담화가 미국 정부의 태도 변화를 노린 촉구성 담화라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북한이 정부 성명이나 외무성 담화 등이 아닌 김계관 제1부상 개인을 담화의 주체로 내세운 것도 미국의 볼턴 보좌관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대북 발언을 의식한 수위 조절용이라는 해석이다.

■ 북한에 허 찔린 백악관…풍계리 이벤트 1차 고비될 듯

이런 북한의 태도 돌변에 대해 한미 양국은 일단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 채 향후 북미정상회담 등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측이 연례적인 한미연합공중훈련을 이유로 남북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은 4월 27일 양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근본정신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유감"이라며 북측의 조속한 회담 복귀를 촉구했다.

미국 백악관도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한 제 상황 파악이라는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세라 허커비 샌더슨 대변인은 성명에서 "우리는 한국 언론 보도를 보고 관련 사실을 알았다"면서 "미국은 북한이 밝힌 내용에 대해 별도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고위급 회담취소를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날 백악관에서 매릴랜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기자들로부터 관련 질문을 받았지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계관 부상의 담화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곧바로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미국 관리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당혹스럽다'는 것이다. 미국 CNN 방송은 특히 백악관 참모진을 인용해 "백악관이 북측의 통보로 허를 찔렸다"고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당혹스런 기류를 전했다.

CNN과 로이터 통신은 전문가 등을 인용해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려는 '김정은의 협상 각본'에서 나온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고,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이번 발표가 몇 달간 한반도에서 조성된 해빙 무드에 긴장감과 불확실성을 불어넣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오늘 발표로 당장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인 북미정상회담 일정이 큰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의 리비아식 핵 폐기 요구에 강력 반발하고 북미정상회담 무산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나서면서 양측의 힘겨루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은 다음 주 23일부터 25일 사이에 진행될 예정인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가 정상적으로 진행될지가 1차 고비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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