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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KBS-뉴스타파-프레시안, ‘삼성의 소송’을 말하다
입력 2018.05.17 (18:00) 수정 2018.05.17 (22:18) 취재후
[취재후] KBS-뉴스타파-프레시안, ‘삼성의 소송’을 말하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반도체 분야를 전공해 인텔에서 일하던 이 모 박사. 2008년 삼성전자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상무로 입사했습니다. 반도체 개발과 양산의 요직을 거친 그는 2015년 전무로 승진해 일하다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두 번 쓰러지며 병가를 냈습니다.

병가 기간인 2016년 7월 29일 밤, 사무실에 갔다 나오던 중 보안요원에게 차량 검색을 당했습니다. 그의 가방에서 예전에 출력해놓았던 기술자료 31장이 발견됐습니다.

삼성은 이 전무를 기술유출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경찰은 그의 집을 압수수색해 회사에서 출력한 자료 수천 장을 발견했습니다.

현직 삼성전자 전무의 기술유출 의혹은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됐습니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효자인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팔아넘기려 했다는 기사 내용에 많은 국민들이 "나라를 팔아넘기려 한 매국노"라는 분노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1년 반 가까운 법정 싸움 끝에 올해 1월 수원지방법원은 이 전무의 기술유출 혐의가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신, 삼성 측이 기술유출 혐의로 고소한 지 40여 일 뒤 추가로 제기한 법인카드의 일부 사적 유용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기술자료 수천 장 반출한 삼성 임원, 법원은 왜 무죄 판결?

병가 중에 회사에 들어가 자료를 반출했고, 집에서 기술자료 수천 장이 발견된 임원에 대해 법원은 왜 무죄 판결을 내린 걸까요? 재판부가 기술유출 혐의의 유무죄를 가리기 위해 주목한 초점은 자료를 회사 밖으로 들고 나온 이유였습니다.

삼성은 이 전무가 이직을 목적으로 제3자에게 자료를 넘기기 위해 회사 보안을 무력화하고 기술자료를 유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전무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습니다. 우선, 삼성이 유출됐다고 주장한 자료는 모두 자신에게 온 이메일 내용이며, 필요한 자료를 출력해 집에서 검토하는 게 평소의 습관이라는 겁니다.

이런 자료 반출은 미국 인텔에서도 문제가 없었고, 삼성의 다른 임원들 역시 출장이나 재택업무를 위해 자료를 반출하는 것이 일상적이며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기술 유출이 목적이었다면 외부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촬영할 수 있는 내용을 회사에서 출력해 증거를 남길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습니다. 병가 중에 '비서에게 자료를 찾으러 갈테니 출력해 놓으라'고 사내 메일을 보낸 사실도 반증으로 제시했습니다.

재판부는 자료를 유출한 이유에 대한 이 전무의 소명이 일리가 있고, 삼성 측 주장과 달리 제3자에게 유출하거나 유출을 시도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음을 판결문에서 밝혔습니다.


사건의 재구성 ① 삼성은 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했나?

아파서 쉰다는 사람이 한밤중에 회사를 드나든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의심하는 게 당연할 겁니다. 더구나, 그게 황금알을 낳는 반도체 기술 유출 의혹이라면 확실히 수사해달라고 신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삼성이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삼성이 이 전무를 경찰에 신고할 때부터 사실과 다른 진술들을 한 정황이 드러난 겁니다.


이런 진술들은 순간적 착오나 단순한 오해에서 나올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에서, 삼성이 경찰에 신고할 때부터 이렇게 사실과 다른 진술을 쏟아낸 것은 이 전무에 대한 수사 의뢰가 기술유출 의혹의 진실을 알기 위한 것인지 의심을 품게 하는 대목입니다.

사건의 재구성 ② 삼성은 왜 피고 측 증인들에게 연락했나?

재판 과정에서 삼성이 보인 또 다른 행태는 이런 의구심을 증폭시킵니다. 삼성은 이 전무의 부하직원 등을 증인으로 내세워 "이 전무가 직원들에게 폭언 등 '갑질'을 일삼은 사람으로 직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며 증언하게 하는 등 기술유출 사건과 관계없는 '인성 흠집내기'를 시도했습니다.

이 전무는 삼성 측 주장과 달리 평소 임원들은 자유롭게 자료를 반출할 수 있었다는 점과 자신이 부하직원들에게 '갑질'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언해줄 전직 동료들을 수소문해 두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흔쾌히 증인이 돼주겠다던 두 사람이 증인 신문기일을 나흘 앞둔 날 일제히 증언을 포기하겠다고 연락해왔습니다.

2013년부터 2년간 이 전무의 부하직원으로 일했던 A씨(당시 OO대학교 산학교수)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인사팀과 반도체총괄 인사팀 간부로부터 잇따라 전화를 받은 뒤 증인 출석을 못하겠으니 양해해달라고 이 전무에게 말했습니다. 당시 A씨와 이 전무 간 대화 내용입니다.


같은 날, 또 한 명의 증인인 전직 삼성 임원은 갑작스런 출장이 생겨 증언을 못하게 됐다며 연락해옵니다.


이 전무의 마지막 메시지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B씨는 한 달 가량 지난 뒤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취재진은 두 사람의 증인 채택을 방해한 의혹에 대해 삼성전자에 해명이나 반론을 요청했지만, 삼성은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왜 일개 임원을 기술 유출범으로 몰아가기 위해 무리수를 쓴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서 삼성이 무슨 이익을 얻는다는 것인가?

공동취재를 해온 기자들에게도 그것이 가장 큰 궁금증이었습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 합리적 의심의 실마리를 하나 포착했습니다. 이 사건 소송이 1심 판결을 향해 가던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나온 다른 판결 때문이었습니다.

7년 끈 기술유출 재판...삼성이 지고도 얻은 것은?

2010년 2월 서울동부지검의 발표로 삼성 반도체 기술유출 사건이 모든 언론 매체에 대서특필됐습니다. 삼성전자가 핵심기술이 협력업체인 미국계 장비업체를 통해 경쟁사인 하이닉스에 무더기로 유출됐다고 신고했고, 검찰은 두 회사 임직원 18명을 기소했습니다. 직접 피해액만 수천억 원, 간접 피해까지 합치면 수조 원대라고 보도됐습니다.


법정에서 드러난 진실은 달랐습니다. 1심 재판에서 12명이, 2심과 대법원에서는 18명 전원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유출됐다며 신고한 핵심기술의 상당수는 이미 공개된 내용이거나 자체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삼성 연구원이 발표한 논문이나 강의 자료에 포함된 내용도 있었습니다. 삼성전자가 그런 기술들을 영업비밀로 관리해오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2010년 초에 검찰 기소로 시작된 사건이 대법원 무죄판결로 끝난 것은 2017년 11월이었습니다. ‘매국노’ 손가락질을 받던 18명이 7년 넘는 싸움 끝에 누명을 벗었지만, 2010년 기술유출 사건을 대서특필한 언론 매체들은 무죄 판결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핵심 먹거리인 삼성의 반도체 기술이 무더기로 유출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 소송의 패자였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사실상 승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협력사들을 통한 기술유출 우려'가 고민거리였는데, 공격적인 소송을 통해 협력사들에게 '공포'를 심어줌으로써 '기강'을 확실히 잡는 효과를 얻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소송을 당한 미국계 장비협력업체는 법정에서 진실이 드러나기 훨씬 전에 장비가격 할인과 업그레이드 우선권 등을 내놓으며 삼성과 화해를 해버렸습니다. 경쟁사인 하이닉스도 제조본부장이 구속되고 경쟁사 기술을 빼낸 기업으로 지목되며 대외 이미지가 훼손됐습니다.

발표된 논문이나 강의자료, 인터넷 등을 통해 검색되는 정보들을 핵심기술이라고 주장하며 7년 소송전을 벌인 까닭이 '무지와 오해'의 산물인지, '고도의 기획'인지는 삼성만이 알 일입니다.

수사 기록에 없는 '중국', 언론 보도에 등장한 까닭은?

다시 이번 사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번 사건이 터졌을 때 이를 다룬 언론 보도 상당수에는 이 전무가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넘기려 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 기록에나 검찰이 담당한 재판 과정 어디에서도 '중국'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의 취재원이 경찰과 삼성이었음을 감안하면 '중국'이라는 단어는 삼성에서 흘러나왔을 개연성이 크다는 얘깁니다.

이 전무가 병가를 낼 무렵, 언론에는 삼성전자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2010년 기술유출 사건의 맥락을 토대로 이 사건을 들여다본다면, 반도체 기술이나 전문 인력이 중국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내부 단속을 통해 '기강'을 잡을 필요성이 있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불거지는 대목입니다.

취재진은 삼성전자에 이런 의혹에 대해 해명이나 반론을 요청했지만, 역시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거대 기업과의 소송, 진실을 다툴 권리가 방해받는다면?

이 전무 사건은 2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검찰은 기술유출 혐의 무죄가 부당하다며, 이 전무는 법인카드의 사적 유용 금액이 과다 인정됐다며 각각 항소했습니다.

KBS를 비롯한 언론 3사 취재진은 진행 중인 재판의 1심 판결을 토대로 기사를 쓰는데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1심 판결이 2심이나 3심에서 뒤집히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가 2심 재판부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숙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 취재를 통해 기사를 쓰기로 한 것은 유죄냐, 무죄냐의 결론 못지않게 삼성이 소송 과정에서 보인 행태가 주목할 가치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장충기 문자' 사건, '노조 파괴 공작' 등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삼성 관련 추문은 삼성이 우리 사회의 거대 권력으로서 건강한 사회적 가치와 민주적 법제도를 훼손하는 행위를 해온 정황을 보여줍니다.

삼성 측 주장과 검경의 수사 내용을 일방적으로 받아쓴 언론 보도로 국민들에게서 '매국노'로 지탄받고 지인들에게도 기피 대상이 돼버린 한 개인이 최후의 보루인 법정에서 진실을 다툴 권리마저 대기업의 거짓 진술과 증인 출석 방해 등으로 봉쇄된다면, 국가와 자본 등 거대 권력과의 싸움에서 시민 개개인은 어디에 기댈 수 있을까요?

언론 3사 취재진은 이 사건과 관련해 삼성전자에 17건의 질문을 담은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앞서 제기한 합리적 의심들에 대한 삼성의 해명이나 반론을 공정하게 다루기 위해섭니다. 그러나, 삼성은 재판 중임을 이유로 단 한 건에 대해서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공동 취재진은 향후 소송 과정을 계속 취재하고, 재판이 종결된 뒤 다시 삼성에 질의서를 보내 받은 답변을 토대로 '이 전무 기술유출 사건'과 관련된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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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18.05.17 (22:18)
    취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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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반도체 분야를 전공해 인텔에서 일하던 이 모 박사. 2008년 삼성전자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상무로 입사했습니다. 반도체 개발과 양산의 요직을 거친 그는 2015년 전무로 승진해 일하다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두 번 쓰러지며 병가를 냈습니다.

병가 기간인 2016년 7월 29일 밤, 사무실에 갔다 나오던 중 보안요원에게 차량 검색을 당했습니다. 그의 가방에서 예전에 출력해놓았던 기술자료 31장이 발견됐습니다.

삼성은 이 전무를 기술유출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경찰은 그의 집을 압수수색해 회사에서 출력한 자료 수천 장을 발견했습니다.

현직 삼성전자 전무의 기술유출 의혹은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됐습니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효자인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팔아넘기려 했다는 기사 내용에 많은 국민들이 "나라를 팔아넘기려 한 매국노"라는 분노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1년 반 가까운 법정 싸움 끝에 올해 1월 수원지방법원은 이 전무의 기술유출 혐의가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신, 삼성 측이 기술유출 혐의로 고소한 지 40여 일 뒤 추가로 제기한 법인카드의 일부 사적 유용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기술자료 수천 장 반출한 삼성 임원, 법원은 왜 무죄 판결?

병가 중에 회사에 들어가 자료를 반출했고, 집에서 기술자료 수천 장이 발견된 임원에 대해 법원은 왜 무죄 판결을 내린 걸까요? 재판부가 기술유출 혐의의 유무죄를 가리기 위해 주목한 초점은 자료를 회사 밖으로 들고 나온 이유였습니다.

삼성은 이 전무가 이직을 목적으로 제3자에게 자료를 넘기기 위해 회사 보안을 무력화하고 기술자료를 유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전무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습니다. 우선, 삼성이 유출됐다고 주장한 자료는 모두 자신에게 온 이메일 내용이며, 필요한 자료를 출력해 집에서 검토하는 게 평소의 습관이라는 겁니다.

이런 자료 반출은 미국 인텔에서도 문제가 없었고, 삼성의 다른 임원들 역시 출장이나 재택업무를 위해 자료를 반출하는 것이 일상적이며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기술 유출이 목적이었다면 외부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촬영할 수 있는 내용을 회사에서 출력해 증거를 남길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습니다. 병가 중에 '비서에게 자료를 찾으러 갈테니 출력해 놓으라'고 사내 메일을 보낸 사실도 반증으로 제시했습니다.

재판부는 자료를 유출한 이유에 대한 이 전무의 소명이 일리가 있고, 삼성 측 주장과 달리 제3자에게 유출하거나 유출을 시도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음을 판결문에서 밝혔습니다.


사건의 재구성 ① 삼성은 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했나?

아파서 쉰다는 사람이 한밤중에 회사를 드나든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의심하는 게 당연할 겁니다. 더구나, 그게 황금알을 낳는 반도체 기술 유출 의혹이라면 확실히 수사해달라고 신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삼성이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삼성이 이 전무를 경찰에 신고할 때부터 사실과 다른 진술들을 한 정황이 드러난 겁니다.


이런 진술들은 순간적 착오나 단순한 오해에서 나올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에서, 삼성이 경찰에 신고할 때부터 이렇게 사실과 다른 진술을 쏟아낸 것은 이 전무에 대한 수사 의뢰가 기술유출 의혹의 진실을 알기 위한 것인지 의심을 품게 하는 대목입니다.

사건의 재구성 ② 삼성은 왜 피고 측 증인들에게 연락했나?

재판 과정에서 삼성이 보인 또 다른 행태는 이런 의구심을 증폭시킵니다. 삼성은 이 전무의 부하직원 등을 증인으로 내세워 "이 전무가 직원들에게 폭언 등 '갑질'을 일삼은 사람으로 직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며 증언하게 하는 등 기술유출 사건과 관계없는 '인성 흠집내기'를 시도했습니다.

이 전무는 삼성 측 주장과 달리 평소 임원들은 자유롭게 자료를 반출할 수 있었다는 점과 자신이 부하직원들에게 '갑질'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언해줄 전직 동료들을 수소문해 두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흔쾌히 증인이 돼주겠다던 두 사람이 증인 신문기일을 나흘 앞둔 날 일제히 증언을 포기하겠다고 연락해왔습니다.

2013년부터 2년간 이 전무의 부하직원으로 일했던 A씨(당시 OO대학교 산학교수)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인사팀과 반도체총괄 인사팀 간부로부터 잇따라 전화를 받은 뒤 증인 출석을 못하겠으니 양해해달라고 이 전무에게 말했습니다. 당시 A씨와 이 전무 간 대화 내용입니다.


같은 날, 또 한 명의 증인인 전직 삼성 임원은 갑작스런 출장이 생겨 증언을 못하게 됐다며 연락해옵니다.


이 전무의 마지막 메시지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B씨는 한 달 가량 지난 뒤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취재진은 두 사람의 증인 채택을 방해한 의혹에 대해 삼성전자에 해명이나 반론을 요청했지만, 삼성은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왜 일개 임원을 기술 유출범으로 몰아가기 위해 무리수를 쓴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서 삼성이 무슨 이익을 얻는다는 것인가?

공동취재를 해온 기자들에게도 그것이 가장 큰 궁금증이었습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 합리적 의심의 실마리를 하나 포착했습니다. 이 사건 소송이 1심 판결을 향해 가던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나온 다른 판결 때문이었습니다.

7년 끈 기술유출 재판...삼성이 지고도 얻은 것은?

2010년 2월 서울동부지검의 발표로 삼성 반도체 기술유출 사건이 모든 언론 매체에 대서특필됐습니다. 삼성전자가 핵심기술이 협력업체인 미국계 장비업체를 통해 경쟁사인 하이닉스에 무더기로 유출됐다고 신고했고, 검찰은 두 회사 임직원 18명을 기소했습니다. 직접 피해액만 수천억 원, 간접 피해까지 합치면 수조 원대라고 보도됐습니다.


법정에서 드러난 진실은 달랐습니다. 1심 재판에서 12명이, 2심과 대법원에서는 18명 전원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유출됐다며 신고한 핵심기술의 상당수는 이미 공개된 내용이거나 자체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삼성 연구원이 발표한 논문이나 강의 자료에 포함된 내용도 있었습니다. 삼성전자가 그런 기술들을 영업비밀로 관리해오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2010년 초에 검찰 기소로 시작된 사건이 대법원 무죄판결로 끝난 것은 2017년 11월이었습니다. ‘매국노’ 손가락질을 받던 18명이 7년 넘는 싸움 끝에 누명을 벗었지만, 2010년 기술유출 사건을 대서특필한 언론 매체들은 무죄 판결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핵심 먹거리인 삼성의 반도체 기술이 무더기로 유출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 소송의 패자였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사실상 승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협력사들을 통한 기술유출 우려'가 고민거리였는데, 공격적인 소송을 통해 협력사들에게 '공포'를 심어줌으로써 '기강'을 확실히 잡는 효과를 얻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소송을 당한 미국계 장비협력업체는 법정에서 진실이 드러나기 훨씬 전에 장비가격 할인과 업그레이드 우선권 등을 내놓으며 삼성과 화해를 해버렸습니다. 경쟁사인 하이닉스도 제조본부장이 구속되고 경쟁사 기술을 빼낸 기업으로 지목되며 대외 이미지가 훼손됐습니다.

발표된 논문이나 강의자료, 인터넷 등을 통해 검색되는 정보들을 핵심기술이라고 주장하며 7년 소송전을 벌인 까닭이 '무지와 오해'의 산물인지, '고도의 기획'인지는 삼성만이 알 일입니다.

수사 기록에 없는 '중국', 언론 보도에 등장한 까닭은?

다시 이번 사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번 사건이 터졌을 때 이를 다룬 언론 보도 상당수에는 이 전무가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넘기려 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 기록에나 검찰이 담당한 재판 과정 어디에서도 '중국'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의 취재원이 경찰과 삼성이었음을 감안하면 '중국'이라는 단어는 삼성에서 흘러나왔을 개연성이 크다는 얘깁니다.

이 전무가 병가를 낼 무렵, 언론에는 삼성전자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2010년 기술유출 사건의 맥락을 토대로 이 사건을 들여다본다면, 반도체 기술이나 전문 인력이 중국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내부 단속을 통해 '기강'을 잡을 필요성이 있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불거지는 대목입니다.

취재진은 삼성전자에 이런 의혹에 대해 해명이나 반론을 요청했지만, 역시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거대 기업과의 소송, 진실을 다툴 권리가 방해받는다면?

이 전무 사건은 2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검찰은 기술유출 혐의 무죄가 부당하다며, 이 전무는 법인카드의 사적 유용 금액이 과다 인정됐다며 각각 항소했습니다.

KBS를 비롯한 언론 3사 취재진은 진행 중인 재판의 1심 판결을 토대로 기사를 쓰는데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1심 판결이 2심이나 3심에서 뒤집히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가 2심 재판부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숙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 취재를 통해 기사를 쓰기로 한 것은 유죄냐, 무죄냐의 결론 못지않게 삼성이 소송 과정에서 보인 행태가 주목할 가치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장충기 문자' 사건, '노조 파괴 공작' 등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삼성 관련 추문은 삼성이 우리 사회의 거대 권력으로서 건강한 사회적 가치와 민주적 법제도를 훼손하는 행위를 해온 정황을 보여줍니다.

삼성 측 주장과 검경의 수사 내용을 일방적으로 받아쓴 언론 보도로 국민들에게서 '매국노'로 지탄받고 지인들에게도 기피 대상이 돼버린 한 개인이 최후의 보루인 법정에서 진실을 다툴 권리마저 대기업의 거짓 진술과 증인 출석 방해 등으로 봉쇄된다면, 국가와 자본 등 거대 권력과의 싸움에서 시민 개개인은 어디에 기댈 수 있을까요?

언론 3사 취재진은 이 사건과 관련해 삼성전자에 17건의 질문을 담은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앞서 제기한 합리적 의심들에 대한 삼성의 해명이나 반론을 공정하게 다루기 위해섭니다. 그러나, 삼성은 재판 중임을 이유로 단 한 건에 대해서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공동 취재진은 향후 소송 과정을 계속 취재하고, 재판이 종결된 뒤 다시 삼성에 질의서를 보내 받은 답변을 토대로 '이 전무 기술유출 사건'과 관련된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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