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호평 ‘버닝’ 여행을 위한 안내서

입력 2018.05.18 (09:46) 수정 2018.05.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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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고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한가."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 쓴 이 말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세상을 여행하는 지침이기도 합니다. 내비게이션은 고사하고 흔한 안내지도 한 장 없이, 이 행복한 여행자는 별자리를 헤아리며 길을 찾습니다. 목적지에 빨리 가야 하는 이에게 권할 만한 방법은 아니겠지요. 파리를 여행할 때 '에펠탑 눈도장-상젤리제 거리 카페 인증사진-루브르 박물관 2시간 핵심체크….' 이렇게 '요약정리'하듯 관광하는 이에게 그 도시는 입체가 아닌 각각의 점으로만 기억될 공산이 큽니다. 천천히 걷다 머물며 현지인들과 눈인사라도 하면서 그곳의 기운을 몸으로 느낄 때 여행지의 점들은 서로 이어져 선이 되고 나아가 온전한 입체가 된다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은 말해왔습니다.

관객 스스로 찾아가는 여행길에서 '버닝'은 누군가에겐 막막한 사막이고 어떤 이에겐 경이로운 오아시스가 될 것입니다. 그만큼 어느 전작보다 관객의 개입을 강하게 촉구하면서 빈 자리를 넓게 비워두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들에게 점수를 받을 만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스토리 쫓기보다 인물-장소 관계 살피는 쪽이 감상에 도움

이 영화의 스토리는 그래서 중요한 게 못됩니다. '요약정리 관광'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버닝'의 주요 인물 3명, 종수(유아인), 해미(전종서), 벤(스티븐 연)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종수와 해미는 시골 초등학교 동창 사이이고, 벤과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 중 알게 됐습니다. 벤은 해미를 재미삼아 만나는 것으로 보이며 종수의 마음속에 해미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쥴 앤 짐'(1961)부터 황석영 소설 '삼포 가는 길'(1973) 등 '남자 2, 여자 1' 구도의 서사는 뿌리 깊습니다. 여기서 남성들 사이에 욕망이 충돌하거나 누군가 여성을 착취하는 계급이 형성되는 등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흥미를 끄는 1차 요소입니다('버닝'의 칸영화제 상영 후 해미 캐릭터를 대상화했다는 일부 비판적 견해가 나왔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여기에 축사 딸린 파주 농가(종수) - 도시를 선호하는 미혼여성의 비좁은 후암동 원룸(해미) - 금수저 젊은이의 반포 고급 빌라(벤), 이들이 사는 공간들 사이의 관계가 '버닝'을 여행할 때 바라볼 별자리입니다. 데뷔작 '초록물고기'(1997)에서 당시 개발 신도시인 일산과 구도심인 영등포를 대조해 을씨년스러운 시대상을 담은 이래, 이창동 감독은 줄곧 자신의 작품에서 지역 실명제를 써왔습니다. 이렇게 하면 관객 개개인의 장소에 대한 기억이 중요해집니다. 그의 영화에 개발 예정지('밀양')나 공사 중 도로('오아시스')가 자주 등장하는 건 이 같은 맥락입니다.

'버닝'의 첫 장면이 강남이면서 강남스럽지 않은 이수역 부근에서 시작하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남처럼 호화롭지는 못하면서 상업자본의 욕망은 어느 곳 못지 않은 장소로 사당 지역을 인식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로 들어가는 문턱은 넘은 셈입니다. 이 장면에서 해미는 상업자본주의의 얕은 욕망을 상징하는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입니다('밀양'의 비극은 여주인공이 땅 살 돈을 갖고 있는 것처럼 행세한 데서 씨앗이 뿌려졌고, '버닝'에서는 그 출발이 해미의 카드빚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존재' 쫓다 길 잃기 쉬운 영화…기꺼이 방황해보자

극 초반 해미는 팬터마임을 배우고 있다면서 종수 앞에서 가상의 귤 까먹는 동작을 선보입니다. 그러면서 "여기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귤이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작부터 근원적인 존재의 물음에 부닥치게 만듭니다. 해미는 여행을 떠나며 고양이 밥 챙겨줄 것을 종수에게 부탁하는데, 종수는 고양이를 보지 못한 채 사료가 없어지는 것만 봅니다. 후반부 들어 해미도 자취를 감춥니다. 관객은 귤과 고양이와 해미가 언제 어디까지 존재했나, 아니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아닐까, 헷갈립니다. 우리의 인식이 '존재' 자체에 매몰되면 그렇습니다. 스릴러의 형태를 띤 이 영화의 관객들이 고양이든 해미든 그 존재의 행방만 뒤쫓다 보면 더욱 헷갈리게 됩니다.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 동굴에 갇힌 사람들이 줄에 묶인 채 횃불에 비친 그림자만 봅니다. 이들은 그림자가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다 한 사람이 풀려나와 그림자와 실물을 구분하게 됐지만 묶인 사람들은 풀려난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버닝'은 표면적으로 젊은이들의 증오나 분노를 소재 삼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 영화의 핵심 정서는 불신에서 나옵니다. 인물들은 보는 것과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서로를 믿지 못하며, 관객 역시 이 때문에 헷갈립니다. 감독은 관객이 혼란스러울 만한 상황의 정점을 찍는 몇몇 장면에서 대놓고 날카로운 음악을 사용합니다. 일종의 신호입니다. '스스로 찾아가야 할 길이니 정신 차리시라'는. 그간 작품에서 인위적인 음악 사용을 고집스럽게 부정해온 그의 스타일을 돌이켜보면 놀랄 일입니다.

이 영화는 존재란 정해져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거대한 제안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쁜 인간이기도 합니다. 벤의 스포츠카에 타는 해미와 종수의 화물차에 타는 해미는 다른 여자입니다. 내 위치와 별자리의 각도에 따라 내가 갈 길도 달라집니다. 고정불변의 존재는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버닝'을 본다면, 이 여행길은 한결 흥미진진한 방황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송형국 기자/영화평론가 spianat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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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8 09:46:00
    • 수정2018-05-18 09:51:59
    취재K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고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한가."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 쓴 이 말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세상을 여행하는 지침이기도 합니다. 내비게이션은 고사하고 흔한 안내지도 한 장 없이, 이 행복한 여행자는 별자리를 헤아리며 길을 찾습니다. 목적지에 빨리 가야 하는 이에게 권할 만한 방법은 아니겠지요. 파리를 여행할 때 '에펠탑 눈도장-상젤리제 거리 카페 인증사진-루브르 박물관 2시간 핵심체크….' 이렇게 '요약정리'하듯 관광하는 이에게 그 도시는 입체가 아닌 각각의 점으로만 기억될 공산이 큽니다. 천천히 걷다 머물며 현지인들과 눈인사라도 하면서 그곳의 기운을 몸으로 느낄 때 여행지의 점들은 서로 이어져 선이 되고 나아가 온전한 입체가 된다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은 말해왔습니다.

관객 스스로 찾아가는 여행길에서 '버닝'은 누군가에겐 막막한 사막이고 어떤 이에겐 경이로운 오아시스가 될 것입니다. 그만큼 어느 전작보다 관객의 개입을 강하게 촉구하면서 빈 자리를 넓게 비워두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들에게 점수를 받을 만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스토리 쫓기보다 인물-장소 관계 살피는 쪽이 감상에 도움

이 영화의 스토리는 그래서 중요한 게 못됩니다. '요약정리 관광'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버닝'의 주요 인물 3명, 종수(유아인), 해미(전종서), 벤(스티븐 연)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종수와 해미는 시골 초등학교 동창 사이이고, 벤과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 중 알게 됐습니다. 벤은 해미를 재미삼아 만나는 것으로 보이며 종수의 마음속에 해미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쥴 앤 짐'(1961)부터 황석영 소설 '삼포 가는 길'(1973) 등 '남자 2, 여자 1' 구도의 서사는 뿌리 깊습니다. 여기서 남성들 사이에 욕망이 충돌하거나 누군가 여성을 착취하는 계급이 형성되는 등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흥미를 끄는 1차 요소입니다('버닝'의 칸영화제 상영 후 해미 캐릭터를 대상화했다는 일부 비판적 견해가 나왔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여기에 축사 딸린 파주 농가(종수) - 도시를 선호하는 미혼여성의 비좁은 후암동 원룸(해미) - 금수저 젊은이의 반포 고급 빌라(벤), 이들이 사는 공간들 사이의 관계가 '버닝'을 여행할 때 바라볼 별자리입니다. 데뷔작 '초록물고기'(1997)에서 당시 개발 신도시인 일산과 구도심인 영등포를 대조해 을씨년스러운 시대상을 담은 이래, 이창동 감독은 줄곧 자신의 작품에서 지역 실명제를 써왔습니다. 이렇게 하면 관객 개개인의 장소에 대한 기억이 중요해집니다. 그의 영화에 개발 예정지('밀양')나 공사 중 도로('오아시스')가 자주 등장하는 건 이 같은 맥락입니다.

'버닝'의 첫 장면이 강남이면서 강남스럽지 않은 이수역 부근에서 시작하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남처럼 호화롭지는 못하면서 상업자본의 욕망은 어느 곳 못지 않은 장소로 사당 지역을 인식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로 들어가는 문턱은 넘은 셈입니다. 이 장면에서 해미는 상업자본주의의 얕은 욕망을 상징하는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입니다('밀양'의 비극은 여주인공이 땅 살 돈을 갖고 있는 것처럼 행세한 데서 씨앗이 뿌려졌고, '버닝'에서는 그 출발이 해미의 카드빚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존재' 쫓다 길 잃기 쉬운 영화…기꺼이 방황해보자

극 초반 해미는 팬터마임을 배우고 있다면서 종수 앞에서 가상의 귤 까먹는 동작을 선보입니다. 그러면서 "여기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귤이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작부터 근원적인 존재의 물음에 부닥치게 만듭니다. 해미는 여행을 떠나며 고양이 밥 챙겨줄 것을 종수에게 부탁하는데, 종수는 고양이를 보지 못한 채 사료가 없어지는 것만 봅니다. 후반부 들어 해미도 자취를 감춥니다. 관객은 귤과 고양이와 해미가 언제 어디까지 존재했나, 아니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아닐까, 헷갈립니다. 우리의 인식이 '존재' 자체에 매몰되면 그렇습니다. 스릴러의 형태를 띤 이 영화의 관객들이 고양이든 해미든 그 존재의 행방만 뒤쫓다 보면 더욱 헷갈리게 됩니다.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 동굴에 갇힌 사람들이 줄에 묶인 채 횃불에 비친 그림자만 봅니다. 이들은 그림자가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다 한 사람이 풀려나와 그림자와 실물을 구분하게 됐지만 묶인 사람들은 풀려난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버닝'은 표면적으로 젊은이들의 증오나 분노를 소재 삼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 영화의 핵심 정서는 불신에서 나옵니다. 인물들은 보는 것과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서로를 믿지 못하며, 관객 역시 이 때문에 헷갈립니다. 감독은 관객이 혼란스러울 만한 상황의 정점을 찍는 몇몇 장면에서 대놓고 날카로운 음악을 사용합니다. 일종의 신호입니다. '스스로 찾아가야 할 길이니 정신 차리시라'는. 그간 작품에서 인위적인 음악 사용을 고집스럽게 부정해온 그의 스타일을 돌이켜보면 놀랄 일입니다.

이 영화는 존재란 정해져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거대한 제안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쁜 인간이기도 합니다. 벤의 스포츠카에 타는 해미와 종수의 화물차에 타는 해미는 다른 여자입니다. 내 위치와 별자리의 각도에 따라 내가 갈 길도 달라집니다. 고정불변의 존재는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버닝'을 본다면, 이 여행길은 한결 흥미진진한 방황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송형국 기자/영화평론가 spianat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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