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3’ 오역…두 가지 의문을 쫓다

입력 2018.05.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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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 가는 위기의 상황에서 닉 퓨리가 욕설을 내뱉는다.

그 순간 자막에 나온 대사는 "어머니"

최근 천 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워3'의 오역 논란이 뜨겁다.

문제의 '어머니' 장면뿐 아니라 닥터 스트레인지가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이제 마지막 게임이야"라는 뉘앙스로 말한 "It's the end game"이 "가망이 없어"라고 번역된 점도 크게 논란이 됐다.

특히 이 부분은 스토리의 흐름을 가르는 중요한 부분이기에 일부 누리꾼들은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데 방해 받을 만큼의 오역이었다고 비판했다.

‘어벤져스 : 인피니티워 3’ 스틸컷 ‘어벤져스 : 인피니티워 3’ 스틸컷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 불릴 정도로 번역가의 시선과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지만 이번 오역 논란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영화를 번역한 박지훈 번역가의 과거 오역 논란 사례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은 '이렇게 논란이 많은 번역가가 번역을 계속 맡을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중을 상대로 만든 대형 상업영화에서 어떻게 이런 실수가 나오게 된 것일까? 그리고 배급사는 왜 이런 여론에도 자막 수정을 하지 않을까? 이 두 가지 의문을 쫓아봤다.

투명 절차 강조하는 여론 vs 전담번역가 원하는 배급사

이번 영화를 번역한 박지훈 번역가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 업계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특히 인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영화 배급사 측에서 보안 유지, 마감 기한 엄수 등의 문제로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번역을 맡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상 번역은 여러 번역 업계 중에서 인맥이 없으면 번역물을 맡을 수 없는, 진입 장벽이 높은 곳으로 알려져있다. 4~5년 전부터 한국 영화의 입지가 커지면서 대형 외화 번역에 대한 수요가 줄어 그 장벽은 더욱 높아졌다. 현재 국내에 개봉되는 외화 영화는 몇 명의 소수 번역가가 전담하고 있다.

박지훈 번역가가 번역한 영화 중 일부, 왼쪽부터 ‘007 스카이폴’(2012),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2014),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2016) 박지훈 번역가가 번역한 영화 중 일부, 왼쪽부터 ‘007 스카이폴’(2012),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2014),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2016)

박지훈 번역가 또한 과거 여러 오역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십세기폭스, 소니, 워너의 작품 대다수를 줄곧 번역해 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 '오역 논란이 인맥 위주의 채용 환경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인맥'이 중요하지만 인맥이 자리를 보장해주는 건 아니라는 의견이다.

천 편 이상의 크고 작은 영상물을 번역한 전문영상번역가 심재환 씨는 "번역이 흥행과 연결되는 만큼 영화사는 영화를 흥행시켜 줄 번역가를 원한다. 국내보다 해외 배급사의 경우 더 그렇다"라며 "박지훈 씨가 번역한 작품들이 이제껏 흥행했다. 아무리 박지훈 번역가와 자주 작업을 했더라도 그의 번역이 흥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계속 맡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특히 해외 배급사에서는 원래부터 실력 있는 사람을 쓰지만 그 사람에게 계속 일감을 맡겨서 그 사람을 더 전문적으로, 전담으로 키우길 원한다"며 '공개적인 절차로 투명하게 제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여론의 주장과 배급사의 생각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자막 수정은 불가능한 걸까?

배급사가 어떤 절차나 기준으로 번역가를 고용하든 번역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실수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실수가 있는데도 이를 잘 인정하지 않고 수정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벤져스3' 영화 홍보를 담당한 호호호비치 측도 이번 오역 논란에 대해 "해석의 차이라 그 부분은 해답이 없을 것 같다. 답은 <어벤져스4>에 있을 것"이라고 밝혀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이와 달리 간혹 오역을 인정한 사례도 있었지만 그때도 수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정이 불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에 "영화는 개봉하면 수정이 정말 어렵다. 자막이 필름에 얹혀 있는 거라 자막을 수정하려면 전국 상영관에 있는 필름을 다 회수하고 다시 배포해야 하는데 그럼 상영을 우선 중단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개봉일에 맞춰진 일정이 다 틀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번역가가 오역을 인정하고 수정을 원해도 수정을 할 수 없는 이유다.

영화 ‘로봇 앤 프랭크’ 속 로봇의 대사를 ‘~임’ 체로 번역해 논란이 일었다. 영화 ‘로봇 앤 프랭크’ 속 로봇의 대사를 ‘~임’ 체로 번역해 논란이 일었다.

그렇다고 수정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영화 '로봇 앤 프랭크(2013)'의 경우 시사회 때 '번역가 임의로 인터넷 은어를 집어넣어 잔잔한 영화의 감동을 변질시켰다'는 논란에 심하게 시달려 영화 상영 당시 자막을 조금 수정해 개봉했다. 이미 상영 중일 때는 수정을 할 수 없지만 시사회 후나 DVD 출시 전 등 단계 사이사이에는 수정 작업을 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토하는 사람이 없다?

이번 오역 논란이 불거지면서 많은 사람이 이런 '대형영화 번역을 검토하는 사람도 없나' 의구심을 품었다.

영화 배급사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영화사 측에서는 처음부터 철자 검사까지 프리랜서인 번역가에게 온전히 맡기고 있다. 배급사 측에서는 검토하지만 대사가 말이 되는 대사인지, 줄이 넘어가지 않는지 등의 형식을 주로 검토하지 자막이 스토리 흐름과 맞는지 등 깊이 있게 보지는 않는다. 번역을 받아 바로 심의에 넘기는 등 항상 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다.

전문영상번역가 심재환 씨는 "번역가가 먼저 잘해야겠지만 영화사 측에서 전체적인 스토리나 맥락을 아는 사람이 한 번 더 검토를 하면 좋을 것"이라며 "이번 오역 논란 같은 경우도 스토리와 맥락을 잘 아는 사람이 봤다면 잡아낼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번역하면서 작품에 파묻혀 있으면 내가 이해한 대로만 보일 때가 있다. 나 같은 경우는 기밀을 유지할 수 있는 제3자에게 내 번역을 보여주고 검토를 부탁하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여건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보통 해외 대형 배급사는 전문번역가에게 영화 한 편을 의뢰할 때 40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 또 규모가 작은 작품을 번역하는 영상번역가의 경우는 100~150만 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번역된 결과물이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많은 관객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고려하면 번역가 한 명에게 관련 업무를 온전히 맡기기 보다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K스타 강지수 kbs.kangj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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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9 1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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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 가는 위기의 상황에서 닉 퓨리가 욕설을 내뱉는다.

그 순간 자막에 나온 대사는 "어머니"

최근 천 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워3'의 오역 논란이 뜨겁다.

문제의 '어머니' 장면뿐 아니라 닥터 스트레인지가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이제 마지막 게임이야"라는 뉘앙스로 말한 "It's the end game"이 "가망이 없어"라고 번역된 점도 크게 논란이 됐다.

특히 이 부분은 스토리의 흐름을 가르는 중요한 부분이기에 일부 누리꾼들은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데 방해 받을 만큼의 오역이었다고 비판했다.

‘어벤져스 : 인피니티워 3’ 스틸컷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 불릴 정도로 번역가의 시선과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지만 이번 오역 논란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영화를 번역한 박지훈 번역가의 과거 오역 논란 사례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은 '이렇게 논란이 많은 번역가가 번역을 계속 맡을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중을 상대로 만든 대형 상업영화에서 어떻게 이런 실수가 나오게 된 것일까? 그리고 배급사는 왜 이런 여론에도 자막 수정을 하지 않을까? 이 두 가지 의문을 쫓아봤다.

투명 절차 강조하는 여론 vs 전담번역가 원하는 배급사

이번 영화를 번역한 박지훈 번역가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 업계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특히 인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영화 배급사 측에서 보안 유지, 마감 기한 엄수 등의 문제로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번역을 맡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상 번역은 여러 번역 업계 중에서 인맥이 없으면 번역물을 맡을 수 없는, 진입 장벽이 높은 곳으로 알려져있다. 4~5년 전부터 한국 영화의 입지가 커지면서 대형 외화 번역에 대한 수요가 줄어 그 장벽은 더욱 높아졌다. 현재 국내에 개봉되는 외화 영화는 몇 명의 소수 번역가가 전담하고 있다.

박지훈 번역가가 번역한 영화 중 일부, 왼쪽부터 ‘007 스카이폴’(2012),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2014),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2016)
박지훈 번역가 또한 과거 여러 오역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십세기폭스, 소니, 워너의 작품 대다수를 줄곧 번역해 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 '오역 논란이 인맥 위주의 채용 환경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인맥'이 중요하지만 인맥이 자리를 보장해주는 건 아니라는 의견이다.

천 편 이상의 크고 작은 영상물을 번역한 전문영상번역가 심재환 씨는 "번역이 흥행과 연결되는 만큼 영화사는 영화를 흥행시켜 줄 번역가를 원한다. 국내보다 해외 배급사의 경우 더 그렇다"라며 "박지훈 씨가 번역한 작품들이 이제껏 흥행했다. 아무리 박지훈 번역가와 자주 작업을 했더라도 그의 번역이 흥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계속 맡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특히 해외 배급사에서는 원래부터 실력 있는 사람을 쓰지만 그 사람에게 계속 일감을 맡겨서 그 사람을 더 전문적으로, 전담으로 키우길 원한다"며 '공개적인 절차로 투명하게 제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여론의 주장과 배급사의 생각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자막 수정은 불가능한 걸까?

배급사가 어떤 절차나 기준으로 번역가를 고용하든 번역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실수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실수가 있는데도 이를 잘 인정하지 않고 수정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벤져스3' 영화 홍보를 담당한 호호호비치 측도 이번 오역 논란에 대해 "해석의 차이라 그 부분은 해답이 없을 것 같다. 답은 <어벤져스4>에 있을 것"이라고 밝혀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이와 달리 간혹 오역을 인정한 사례도 있었지만 그때도 수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정이 불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에 "영화는 개봉하면 수정이 정말 어렵다. 자막이 필름에 얹혀 있는 거라 자막을 수정하려면 전국 상영관에 있는 필름을 다 회수하고 다시 배포해야 하는데 그럼 상영을 우선 중단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개봉일에 맞춰진 일정이 다 틀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번역가가 오역을 인정하고 수정을 원해도 수정을 할 수 없는 이유다.

영화 ‘로봇 앤 프랭크’ 속 로봇의 대사를 ‘~임’ 체로 번역해 논란이 일었다.
그렇다고 수정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영화 '로봇 앤 프랭크(2013)'의 경우 시사회 때 '번역가 임의로 인터넷 은어를 집어넣어 잔잔한 영화의 감동을 변질시켰다'는 논란에 심하게 시달려 영화 상영 당시 자막을 조금 수정해 개봉했다. 이미 상영 중일 때는 수정을 할 수 없지만 시사회 후나 DVD 출시 전 등 단계 사이사이에는 수정 작업을 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토하는 사람이 없다?

이번 오역 논란이 불거지면서 많은 사람이 이런 '대형영화 번역을 검토하는 사람도 없나' 의구심을 품었다.

영화 배급사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영화사 측에서는 처음부터 철자 검사까지 프리랜서인 번역가에게 온전히 맡기고 있다. 배급사 측에서는 검토하지만 대사가 말이 되는 대사인지, 줄이 넘어가지 않는지 등의 형식을 주로 검토하지 자막이 스토리 흐름과 맞는지 등 깊이 있게 보지는 않는다. 번역을 받아 바로 심의에 넘기는 등 항상 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다.

전문영상번역가 심재환 씨는 "번역가가 먼저 잘해야겠지만 영화사 측에서 전체적인 스토리나 맥락을 아는 사람이 한 번 더 검토를 하면 좋을 것"이라며 "이번 오역 논란 같은 경우도 스토리와 맥락을 잘 아는 사람이 봤다면 잡아낼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번역하면서 작품에 파묻혀 있으면 내가 이해한 대로만 보일 때가 있다. 나 같은 경우는 기밀을 유지할 수 있는 제3자에게 내 번역을 보여주고 검토를 부탁하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여건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보통 해외 대형 배급사는 전문번역가에게 영화 한 편을 의뢰할 때 40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 또 규모가 작은 작품을 번역하는 영상번역가의 경우는 100~150만 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번역된 결과물이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많은 관객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고려하면 번역가 한 명에게 관련 업무를 온전히 맡기기 보다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K스타 강지수 kbs.kangj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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