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악질 태클’ 파동…日 대학 스포츠 휘청

입력 2018.05.22 (12:16) 수정 2018.05.2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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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초적 욕망을 형상화한 스포츠 '미식축구'

미식축구는 유럽에서 건너온 축구와 럭비가 독특한 방식으로 섞여 탄생했다. 한 편당 11명씩 나서서, 상대 진영 제일 깊숙한 곳‘엔드 존(end zone)’에 타원형 공을 찍거나, 공을 발로 차서 허공의 가로막대를 넘기면 득점한다.

무력으로 밀고 들어가는 방식이 원주민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하던 초창기 미국 모습과 흡사해 보이기도 한다. 구기 종목 가운데 인간의 원초적인 정복 욕망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형상화한 스포츠가 또 있을까 싶다.


경기 양상은 역동적이며 격렬하다. 공격적이며 전투적이다. 주먹질·발길질만 없을 뿐, 언듯 보면 싸움질처럼 보인다. 그래도 스포츠는 스포츠다. 경기 규칙을 지키고, 일부러 상대선수를 해코지 하려고 하지 않으면 불상사는 거의 없다. 용기와 체력, 정신력, 조직력, 책임감 등을 기를 수 있는 스포츠로 통한다.

미식축구의 본고장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서도 선수 보호를 위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 선수와 코치 등에게 정확한 태클 방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경기 규칙도 계속 개선하고 있으며, 악의적인 태클을 하는 선수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고 있다.

폭력적인 태클 … 선수 안전은 어디로? 

최근 일본의 대학 미식축구 경기에서 매우 위험한 반칙 태클이 발생해, 선수가 큰 부상을 입을 뻔했다. 당사자들의 어설픈 초기 대응은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갔다. 언론은 연일 '악질 태클'이라는 제목으로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사건은 지난 6일 시작됐다. 일본 대학리그에서 각각 20여 차례의 우승을 자랑하는 미식축구 명문 니혼대학과 간사이가쿠인대학의 정기전이 도쿄에서 열렸다. 경기 도중 니혼대 선수 한 명이, 패스를 한 뒤 한숨을 돌리던 상대 선수의 뒤쪽을 돌진해 들어왔다. 하반신을 강타당한 선수는 몸이 휘청하고 꺾이며 공중으로 붕 떴다가 맥없이 떨어졌다.

명백한 반칙 태클이었다. 피해 선수는 오른쪽 무릎 등에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 왼쪽 발에도 마비증상을 호소했다. 가해 선수는 거듭된 반칙으로 결국 퇴장당했다. 양측 선수들은 몸싸움 직전 상황까지 갔다.

경기 종료 뒤 니혼대학 우치다 마사토 감독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피해 선수가 시합의 중심축인 '쿼터백' 담당이었고, 동일 선수가 여러 차례 거친 반칙을 했다는 점까지 겹쳐, 고의 반칙 지시설이 퍼졌다.


경기를 주최한 간토 학생미식축구연맹은 9일, "페어플레이 정신과 스프맨십 정신을 크게 훼손했다"며 반칙 선수에게 대외 경기 출장 금지, 지도자 엄중 주의 조치를 내리고, 조사 징계위를 구성했다.

부실대응이 자초한 파문 … 사회 문제로 

간사이가쿠인대학은 10일 니혼대 측에 항의 공문을 보내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니혼 대학 홍보부는 홈페이지에 의례적 사과문을 올렸지만, 공문에 대해서는 조사를 한 뒤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12일, 간사이가쿠인대학이 기자회견을 열고 "선수를 다치게 할 목적의, 매우 위험하고 악의적인 행위다"라고 비난했다. 또 경기 직후 감독의 발언은 반칙을 용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지적했다.

간사이가투인대학 기자회견간사이가투인대학 기자회견

14일, 언론 매체들이 일제히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스즈키 다이치 스포츠청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유감을 표했다. 왜 그런 위험한 플레이를 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5일 일본 미식축구협회 회장이 나서서 부상자와 학부모, 피해 학교 측에 위로와 사과의 뜻을 전했다.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대학 등은 선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니혼대학과의 경기를 보류시켰다. 공동연습도 잇따라 중단됐다.

니혼대학 측은 15일 밤에야 답변서를 보냈다.



17일 간사이가쿠인대학 미식축구부의 도리우치 감독과 오노 코치가 기자회견을 열고 답변서 내용을 공개했다. 의문을 해소할 수 없고 성의 있는 대응으로 판단하기도 어렵다면서 정기전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답변서에는 "의도적인 난폭행위를 가르친 적이 전혀 없다. 지도자의 가르침과 선수의 이해에 괴리가 있었다. 지도 방법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감독의 발언은 본의가 아니다. 상대를 다치게 할 의도가 아니라 사기를 올리기 위한 것이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감투정신도 좋지만…선수 조련 명감독의 양면성

17일 저녁, 우치다 감독이 경기 직전에 반칙을 격려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NHK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우치다 마사토 감독. 62세. 니혼대학을 졸업한 뒤 모교의 미식축구부 코치를 맡았다가 2003년 감독이 됐다. 오랫동안 성적이 부진했던 팀을 엄격하게 조련해 강팀으로 만들어,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27년 만에 대학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니혼대학 상무 이사도 맡고 있다. 미식축구와 관련해, 학교 안에서 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던 것 같다. 비난 여론은 높아졌지만, 학교당국도 감독자신도 침묵을 지켰다.

18일, 하야시 문부과학상이 기자회견을 열고 "간과할 수 없는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스포츠 담당 책임자로서 문제의 조기해결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간토 학생연맹 1부 리그 소속 15개 팀은 진상규명을 위한 제3자 위원회 소집을 요구했다.


가해자 측의 직접 사과는 사건 발생 13일 만에 나왔다. 19일, 니혼대학의 우치다 감독과 가토 축구부장 겸 부학장이 피해 선수 등에게 직접 사과했다. 우치다 감독은 "일련의 문제는 모두 나에게 책임이 있다. 감독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학 내 보직 사퇴 의사는 밝히지 않았고, 반칙 선수가 경기에 조기 복귀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스포츠의 중대 반칙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까? 

니혼대학이 2차 조사결과를 조만간 내놓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폭로가 잇따랐다. NHK는 옛 선수들의 증언을 인용해, 우치다 감독의 지도 방식이 선수들에게는 반칙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칙행위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경기 중 강도높은 플레이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20일, 피해 선수의 아버지가 대학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니혼대학 측의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20일 밤, 스즈키 스포츠청 장관은 감독이 사임보다 원인규명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선수에게 반칙 행위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답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1일, 피해 선수 측이 경찰에 피해 신고를 낸 사실이 알려졌다. 21일 저녁, 피해 선수의 아버지가 기자회견을 갖고 진상 규명을 호소했다.

22일 오후, 반칙 태클로 출장 정지 조치를 받은 니혼대학 선수가 기자 회견을 갖고 '감독의 반칙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경기 출장 조건으로 상대팀 핵심 선수에 대한 반칙을 하라는 언질을 받았다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들의 석연치 않은 대응 속에 '악질 태클'이라는 표현은 언론을 통해 이미 고유명사처럼 굳어졌다. 승부욕에 집착한 후유증일까? 일본의 대학 스포츠계는 중대한 도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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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악질 태클’ 파동…日 대학 스포츠 휘청
    • 입력 2018-05-22 12:16:04
    • 수정2018-05-22 16:45:12
    특파원 리포트
 원초적 욕망을 형상화한 스포츠 '미식축구'

미식축구는 유럽에서 건너온 축구와 럭비가 독특한 방식으로 섞여 탄생했다. 한 편당 11명씩 나서서, 상대 진영 제일 깊숙한 곳‘엔드 존(end zone)’에 타원형 공을 찍거나, 공을 발로 차서 허공의 가로막대를 넘기면 득점한다.

무력으로 밀고 들어가는 방식이 원주민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하던 초창기 미국 모습과 흡사해 보이기도 한다. 구기 종목 가운데 인간의 원초적인 정복 욕망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형상화한 스포츠가 또 있을까 싶다.


경기 양상은 역동적이며 격렬하다. 공격적이며 전투적이다. 주먹질·발길질만 없을 뿐, 언듯 보면 싸움질처럼 보인다. 그래도 스포츠는 스포츠다. 경기 규칙을 지키고, 일부러 상대선수를 해코지 하려고 하지 않으면 불상사는 거의 없다. 용기와 체력, 정신력, 조직력, 책임감 등을 기를 수 있는 스포츠로 통한다.

미식축구의 본고장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서도 선수 보호를 위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 선수와 코치 등에게 정확한 태클 방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경기 규칙도 계속 개선하고 있으며, 악의적인 태클을 하는 선수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고 있다.

폭력적인 태클 … 선수 안전은 어디로? 

최근 일본의 대학 미식축구 경기에서 매우 위험한 반칙 태클이 발생해, 선수가 큰 부상을 입을 뻔했다. 당사자들의 어설픈 초기 대응은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갔다. 언론은 연일 '악질 태클'이라는 제목으로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사건은 지난 6일 시작됐다. 일본 대학리그에서 각각 20여 차례의 우승을 자랑하는 미식축구 명문 니혼대학과 간사이가쿠인대학의 정기전이 도쿄에서 열렸다. 경기 도중 니혼대 선수 한 명이, 패스를 한 뒤 한숨을 돌리던 상대 선수의 뒤쪽을 돌진해 들어왔다. 하반신을 강타당한 선수는 몸이 휘청하고 꺾이며 공중으로 붕 떴다가 맥없이 떨어졌다.

명백한 반칙 태클이었다. 피해 선수는 오른쪽 무릎 등에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 왼쪽 발에도 마비증상을 호소했다. 가해 선수는 거듭된 반칙으로 결국 퇴장당했다. 양측 선수들은 몸싸움 직전 상황까지 갔다.

경기 종료 뒤 니혼대학 우치다 마사토 감독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피해 선수가 시합의 중심축인 '쿼터백' 담당이었고, 동일 선수가 여러 차례 거친 반칙을 했다는 점까지 겹쳐, 고의 반칙 지시설이 퍼졌다.


경기를 주최한 간토 학생미식축구연맹은 9일, "페어플레이 정신과 스프맨십 정신을 크게 훼손했다"며 반칙 선수에게 대외 경기 출장 금지, 지도자 엄중 주의 조치를 내리고, 조사 징계위를 구성했다.

부실대응이 자초한 파문 … 사회 문제로 

간사이가쿠인대학은 10일 니혼대 측에 항의 공문을 보내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니혼 대학 홍보부는 홈페이지에 의례적 사과문을 올렸지만, 공문에 대해서는 조사를 한 뒤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12일, 간사이가쿠인대학이 기자회견을 열고 "선수를 다치게 할 목적의, 매우 위험하고 악의적인 행위다"라고 비난했다. 또 경기 직후 감독의 발언은 반칙을 용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지적했다.

간사이가투인대학 기자회견
14일, 언론 매체들이 일제히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스즈키 다이치 스포츠청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유감을 표했다. 왜 그런 위험한 플레이를 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5일 일본 미식축구협회 회장이 나서서 부상자와 학부모, 피해 학교 측에 위로와 사과의 뜻을 전했다.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대학 등은 선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니혼대학과의 경기를 보류시켰다. 공동연습도 잇따라 중단됐다.

니혼대학 측은 15일 밤에야 답변서를 보냈다.



17일 간사이가쿠인대학 미식축구부의 도리우치 감독과 오노 코치가 기자회견을 열고 답변서 내용을 공개했다. 의문을 해소할 수 없고 성의 있는 대응으로 판단하기도 어렵다면서 정기전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답변서에는 "의도적인 난폭행위를 가르친 적이 전혀 없다. 지도자의 가르침과 선수의 이해에 괴리가 있었다. 지도 방법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감독의 발언은 본의가 아니다. 상대를 다치게 할 의도가 아니라 사기를 올리기 위한 것이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감투정신도 좋지만…선수 조련 명감독의 양면성

17일 저녁, 우치다 감독이 경기 직전에 반칙을 격려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NHK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우치다 마사토 감독. 62세. 니혼대학을 졸업한 뒤 모교의 미식축구부 코치를 맡았다가 2003년 감독이 됐다. 오랫동안 성적이 부진했던 팀을 엄격하게 조련해 강팀으로 만들어,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27년 만에 대학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니혼대학 상무 이사도 맡고 있다. 미식축구와 관련해, 학교 안에서 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던 것 같다. 비난 여론은 높아졌지만, 학교당국도 감독자신도 침묵을 지켰다.

18일, 하야시 문부과학상이 기자회견을 열고 "간과할 수 없는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스포츠 담당 책임자로서 문제의 조기해결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간토 학생연맹 1부 리그 소속 15개 팀은 진상규명을 위한 제3자 위원회 소집을 요구했다.


가해자 측의 직접 사과는 사건 발생 13일 만에 나왔다. 19일, 니혼대학의 우치다 감독과 가토 축구부장 겸 부학장이 피해 선수 등에게 직접 사과했다. 우치다 감독은 "일련의 문제는 모두 나에게 책임이 있다. 감독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학 내 보직 사퇴 의사는 밝히지 않았고, 반칙 선수가 경기에 조기 복귀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스포츠의 중대 반칙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까? 

니혼대학이 2차 조사결과를 조만간 내놓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폭로가 잇따랐다. NHK는 옛 선수들의 증언을 인용해, 우치다 감독의 지도 방식이 선수들에게는 반칙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칙행위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경기 중 강도높은 플레이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20일, 피해 선수의 아버지가 대학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니혼대학 측의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20일 밤, 스즈키 스포츠청 장관은 감독이 사임보다 원인규명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선수에게 반칙 행위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답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1일, 피해 선수 측이 경찰에 피해 신고를 낸 사실이 알려졌다. 21일 저녁, 피해 선수의 아버지가 기자회견을 갖고 진상 규명을 호소했다.

22일 오후, 반칙 태클로 출장 정지 조치를 받은 니혼대학 선수가 기자 회견을 갖고 '감독의 반칙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경기 출장 조건으로 상대팀 핵심 선수에 대한 반칙을 하라는 언질을 받았다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들의 석연치 않은 대응 속에 '악질 태클'이라는 표현은 언론을 통해 이미 고유명사처럼 굳어졌다. 승부욕에 집착한 후유증일까? 일본의 대학 스포츠계는 중대한 도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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