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여성 대상 강력 범죄·몰카 사건 집중 단속”…현실은?

입력 2018.05.22 (14:20) 수정 2018.05.22 (18:2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8일 새벽 4시, 경찰서 112상황실에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옵니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피해 신고였습니다. 경찰은 여성이 상담 센터로 가서 곧바로 필요한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같은 시간, 범행 장소로 지목된 서울 관악구의 한 모텔로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이곳에서 머물고 있던 20대 중반 남성은 긴급체포됐습니다. 남성은 미수에 그쳤다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경찰은 남성의 휴대전화에 범행 당시의 영상이 찍혀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몰래 촬영한 것입니다. 경찰이 휴대전화를 증거물로 압수했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찍힌 다른 4명 여성과의 몰카 영상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남성은 그제야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경찰 ‘성폭행, 몰카 촬영’ 혐의 영장 신청
… 법원 ‘주거 일정 등의 이유’ 구속영장 기각

경찰은 신고자의 목 등에 심한 상처가 남았을 만큼 죄질이 나쁘고, 여성이 신고하거나 도망가지 못하게 휴대전화를 미리 빼앗은 점, 또 추가 4명의 몰카 피해자 조사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판단했
습니다. 검거 당일,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남성이 혐의를 인정했고, 증거가 확보됐다는 점, 남성의 주거가 일정해 도주 우려가 없다는 것이 기각 사유"라고 밝혔습니다. 남성은 풀려났습니다. 이후, 경찰의 출석 요구를 수차례 무시했습니다.

경찰은 이후 한 달여간 남성을 조사했는데, 신고인을 제외한 몰카 피해 여성에 대해서는 조사를 확대하지 못했습니다. 남성은 "이름밖에 모른다", 자신의 얼굴이 드러난 영상을 보고도 "기억이 안 난다"고 답을 피했습니다. 결국, 지난 16일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며 경찰 수사는 일단락됐습니다.

●원칙은 ‘불구속 수사’…시민 법감정과 현장의 목소리는?

형사소송법에는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구속수사는 헌법에 따른 기본권 제한에 대한 과잉 금지의 원칙에 따라 수사의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무분별한 구속수사 관행을 막기 위해 1997년부터 구속영장 실질심사도 도입됐습니다.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받은 법원 판사는 구속사유를 판단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피의자를 신문할 수 있도록 규정할 만큼 구속 여부 판단은 조건을 세밀하게 따져 결정해야 합니다.


몰카 범죄로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 구속되는 사람은 2%에 그칩니다. 몰카 범죄 가운데 사법당국의 판단으로는 구속할 정도가 아닌 정도의 불법 행위가 수두룩하단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범죄에 대해서는 사법 당국의 감수성이 좀 더 민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수사 경찰의 주장입니다. 피해자가 느끼는 2차 피해에 대한 공포도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가정폭력, ‘방화’ 혐의 구속영장 기각…40여 일 뒤 동거녀 살해 참극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경찰은 이달 초, 같은 관악구에서 벌어졌던 동거녀 살인 사건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지난 4일, 서울 관악구의 한 주택에서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로 30대 남성이 붙잡혔습니다. 이 남성의 지인이 경찰에 신고했는데, "친구가 자살할 것 같다. 위험해 보인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집에 도착한 경찰은 남성의 상태를 확인한 뒤, 함께 사는 여자분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앞서 가정폭력 신고가 여러 번 접수돼 출동했던 곳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남성에게 맞았다며 직접 경찰에 신고한 여성은, 현장에서는 아니라며 경찰을 여러 차례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여성의 안부를 묻는 말에 남성이 머뭇거리는 것을 수상히 여긴 경찰은 방 안을 보겠다고 했고, 여성은 결국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앞서, 지난 3월에 이 남성이 방 안에 옷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기까지 하자, 경찰을 영장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남성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까지 제출한 것이 고려됐다고 합니다. 여성은 가해 남성과 40여 일간을 더 함께 지내왔고, 가정폭력은 안타까운 참극으로 끝났습니다.

●여성 불안감 해소 위한 경찰 ‘집중단속 100일 계획’…엄중한 수사 필요

경찰은 '여성 대상 악성 범죄 집중단속 100일 계획'을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어제(21일)부터 한 달 동안 다중이용장소의 불법 카메라 설치 여부 점검에 나섰습니다. 또, 불법 촬영 영상물 유포에 대해서도 사이버 성폭력수사팀에서 전담해 적극적으로 수사할 계획입니다. 여성 대상의 악성 범죄나 가정폭력의 경우도, '재발 우려와 긴급성'이 인정되는 경우 긴급임시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최근 여성 대상의 강력 사건, 몰카 범죄에 대해 더욱 엄중한 수사가 필요하다는데 공감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처한 상황은 사안마다 제각각이고, 물론 죄의 무게도 모두 다를 것입니다. 예방만큼이나 사건 발생 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민들의 법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법당국의 수사와 판단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단독] [단독] ‘성폭행·몰카 촬영’ 혐의 20대 남성 검거…‘영장 기각’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여성 대상 강력 범죄·몰카 사건 집중 단속”…현실은?
    • 입력 2018-05-22 14:20:47
    • 수정2018-05-22 18:28:37
    취재후·사건후
지난달 8일 새벽 4시, 경찰서 112상황실에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옵니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피해 신고였습니다. 경찰은 여성이 상담 센터로 가서 곧바로 필요한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같은 시간, 범행 장소로 지목된 서울 관악구의 한 모텔로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이곳에서 머물고 있던 20대 중반 남성은 긴급체포됐습니다. 남성은 미수에 그쳤다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경찰은 남성의 휴대전화에 범행 당시의 영상이 찍혀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몰래 촬영한 것입니다. 경찰이 휴대전화를 증거물로 압수했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찍힌 다른 4명 여성과의 몰카 영상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남성은 그제야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경찰 ‘성폭행, 몰카 촬영’ 혐의 영장 신청
… 법원 ‘주거 일정 등의 이유’ 구속영장 기각

경찰은 신고자의 목 등에 심한 상처가 남았을 만큼 죄질이 나쁘고, 여성이 신고하거나 도망가지 못하게 휴대전화를 미리 빼앗은 점, 또 추가 4명의 몰카 피해자 조사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판단했
습니다. 검거 당일,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남성이 혐의를 인정했고, 증거가 확보됐다는 점, 남성의 주거가 일정해 도주 우려가 없다는 것이 기각 사유"라고 밝혔습니다. 남성은 풀려났습니다. 이후, 경찰의 출석 요구를 수차례 무시했습니다.

경찰은 이후 한 달여간 남성을 조사했는데, 신고인을 제외한 몰카 피해 여성에 대해서는 조사를 확대하지 못했습니다. 남성은 "이름밖에 모른다", 자신의 얼굴이 드러난 영상을 보고도 "기억이 안 난다"고 답을 피했습니다. 결국, 지난 16일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며 경찰 수사는 일단락됐습니다.

●원칙은 ‘불구속 수사’…시민 법감정과 현장의 목소리는?

형사소송법에는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구속수사는 헌법에 따른 기본권 제한에 대한 과잉 금지의 원칙에 따라 수사의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무분별한 구속수사 관행을 막기 위해 1997년부터 구속영장 실질심사도 도입됐습니다.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받은 법원 판사는 구속사유를 판단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피의자를 신문할 수 있도록 규정할 만큼 구속 여부 판단은 조건을 세밀하게 따져 결정해야 합니다.


몰카 범죄로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 구속되는 사람은 2%에 그칩니다. 몰카 범죄 가운데 사법당국의 판단으로는 구속할 정도가 아닌 정도의 불법 행위가 수두룩하단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범죄에 대해서는 사법 당국의 감수성이 좀 더 민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수사 경찰의 주장입니다. 피해자가 느끼는 2차 피해에 대한 공포도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가정폭력, ‘방화’ 혐의 구속영장 기각…40여 일 뒤 동거녀 살해 참극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경찰은 이달 초, 같은 관악구에서 벌어졌던 동거녀 살인 사건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지난 4일, 서울 관악구의 한 주택에서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로 30대 남성이 붙잡혔습니다. 이 남성의 지인이 경찰에 신고했는데, "친구가 자살할 것 같다. 위험해 보인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집에 도착한 경찰은 남성의 상태를 확인한 뒤, 함께 사는 여자분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앞서 가정폭력 신고가 여러 번 접수돼 출동했던 곳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남성에게 맞았다며 직접 경찰에 신고한 여성은, 현장에서는 아니라며 경찰을 여러 차례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여성의 안부를 묻는 말에 남성이 머뭇거리는 것을 수상히 여긴 경찰은 방 안을 보겠다고 했고, 여성은 결국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앞서, 지난 3월에 이 남성이 방 안에 옷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기까지 하자, 경찰을 영장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남성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까지 제출한 것이 고려됐다고 합니다. 여성은 가해 남성과 40여 일간을 더 함께 지내왔고, 가정폭력은 안타까운 참극으로 끝났습니다.

●여성 불안감 해소 위한 경찰 ‘집중단속 100일 계획’…엄중한 수사 필요

경찰은 '여성 대상 악성 범죄 집중단속 100일 계획'을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어제(21일)부터 한 달 동안 다중이용장소의 불법 카메라 설치 여부 점검에 나섰습니다. 또, 불법 촬영 영상물 유포에 대해서도 사이버 성폭력수사팀에서 전담해 적극적으로 수사할 계획입니다. 여성 대상의 악성 범죄나 가정폭력의 경우도, '재발 우려와 긴급성'이 인정되는 경우 긴급임시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최근 여성 대상의 강력 사건, 몰카 범죄에 대해 더욱 엄중한 수사가 필요하다는데 공감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처한 상황은 사안마다 제각각이고, 물론 죄의 무게도 모두 다를 것입니다. 예방만큼이나 사건 발생 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민들의 법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법당국의 수사와 판단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단독] [단독] ‘성폭행·몰카 촬영’ 혐의 20대 남성 검거…‘영장 기각’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