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탄핵’ 못하는 일본, 버티면 그만 아베

입력 2018.05.2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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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사학 스캔들이 또 일본 신문들의 1면과 주요 뉴스의 첫 머리를 장식했다. 지금까지는 아베 총리의 관련성이 간접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아베 총리 본인이 직접 당사자로 지목됐다고 한다. 이번에는 다를까?

사학 스캔들은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키애 여사가 명예 교장을 했던 모리토모 학원이 국유지를 90% 가까이 싸게 샀다는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과 수십 년 동안 신설 허가가 나지 않던 대학의 수의학부가 아베 총리의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 재단에 허가된 '수의학부 신설 특혜 의혹' 2가지로 요약된다.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과 관련해 땅을 파는데 관여했던 재무성 공무원이 자살하고, 재무성 차관이 총리의 관련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문서를 조작한 사실이 올해 드러났지만 아베 총리는 본인이 지시한 바도 없고 직접 관련도 없다며 도마뱀 꼬리 자르기로 일관해왔다.

야권 중심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높고 지지율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지만, 아베 총리는 버티기에 들어갔고...한때 내림세를 면치 못하던 지지율도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 신문의 5월 여론조사에서는 4월 조사 때보다 3%p 상승해 42%를 보이는 등 최악의 상황에서는 벗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드러난 총리 직접 관여…. 도마뱀 꼬리 자르기 이번에도 될까?

일본 언론들은 21일 일제히 사학 스캔들의 또 다른 축인 수의학부 특혜 신설 의혹과 관련해 문제의 대학 측이 3년 전 아베 총리와 직접 면담했다는 문서가 공개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수의학부가 신설을 추진했던 에히메 현 측이 사전 정지 작업을 위해 정부 관계자들을 접촉하면서 작성한 27쪽 분량의 문서에는, "가케학원의 가케 고타로 이사장이 아베 총리와 면담, 수의학부 구상을 설명했다"는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고, 아베 총리가 "그런 새로운 수의대학 생각은 좋은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또 가케학원 이사장과 아베 총리의 면담에 따라 야나세 전 총리 비서관이 자료 제출을 지시했다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가케학원의 수의학부 신설 계획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가케학원이 국가전략특구 사업자로 선정된 2017년 1월 20일이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래서 2015년 만나서 설명을 들었다는 기록이 공개된 만큼 이것이 사실이라면, 2017년 처음 이를 알게 됐다는 아베 총리의 그동안의 설명은 거짓이 되는 셈이다.

아베 총리는 새로운 문서가 처음 공개된 21일에는 기자들의 질의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가, 하루가 지난 22일 사실이 아니라고 이를 적극 부정하고 나섰다. 아베 총리는 기자들을 만나 "문서에서 지적된 날에 가케학원의 이사장과 만난 적이 없다. 혹시 몰라 관저의 기록을 살펴봤어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케학원 측이 "2015년 2월에 이사장이 아베 총리를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한 뒤에 나온 말이다.


□ ‘탄핵’은 언감생심, 본인의 결단(?)만을 기다려야 하는 일본 정치…. 버티면 된다

이러한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떻게 흘러갔을까?

우선 야당은 특검을 요구하고 몇 달 간의 수사가 이어졌을 것이다. 여기에 선거가 있었다면 집권당의 필패로 이어졌을 것이고, 특검 수사 과정 등에서 대통령의 비리가 드러났다면 '탄핵' 움직임 또한 본격화면서 엄하게 책임을 묻는 국민적 공감대와 흐름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어떨까?

일본 검찰 오사카 특수부가 국유지 헐값 의혹 관련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지지부진해 그 진상이 드러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야당은 공세를 펴고 있지만 관련자를 국회에 세워 질의하는 하루 이틀의 단발성 퍼포먼스 이상의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국회에서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내각 책임제인 일본에서 책임을 물어 아베 총리를 퇴진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표심이 반영돼야 하지만 지난해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는 사학 스캔들 와중에도 자민당이 대승을 거둬 오히려 아베 총리의 위치는 공고해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다시 올해 들어서 연이어 사학스캔들 후속타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분위기는 아베 총리의 퇴진 여부보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과연 아베 총리를 꺾을 만한 인물이 있는가에 모이고 있는 실정이다.

전후 1955년 자민당 결성 이후 2009년 민주당이 정권을 가져간 3년 3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일본의 정치 체제는 사실상 자민당 집권이 계속되는 55년 체제의 연속 선상에 있다. 그러다 보니 정체 세력에 대한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 부패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방향 감각의 상실을 보이는 게 일본 사회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찾아오는 것은 어떻게 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아베 총리는 이번에도 사실관계를 부정하며 다시 '버티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정치를 하려면 일본처럼 해야 하는데…." 식사 자리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던 한국의 어느 유력 정치인의 말이 생각난다. 정권을 수십 년간 유지하는 '자민당'이 부러워 보였던 모양이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일본의 정치는 그릇된 집권자에게는 천국, 선량한 국민에게는 악몽인 후진 정치일 뿐이다.

사학 스캔들 관련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곧잘 한국 언론에서 아베 총리의 '위기'를 논하지만, 이는 우리의 바람일 뿐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일본의 변화가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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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탄핵’ 못하는 일본, 버티면 그만 아베
    • 입력 2018-05-22 18:34:13
    특파원 리포트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사학 스캔들이 또 일본 신문들의 1면과 주요 뉴스의 첫 머리를 장식했다. 지금까지는 아베 총리의 관련성이 간접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아베 총리 본인이 직접 당사자로 지목됐다고 한다. 이번에는 다를까?

사학 스캔들은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키애 여사가 명예 교장을 했던 모리토모 학원이 국유지를 90% 가까이 싸게 샀다는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과 수십 년 동안 신설 허가가 나지 않던 대학의 수의학부가 아베 총리의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 재단에 허가된 '수의학부 신설 특혜 의혹' 2가지로 요약된다.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과 관련해 땅을 파는데 관여했던 재무성 공무원이 자살하고, 재무성 차관이 총리의 관련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문서를 조작한 사실이 올해 드러났지만 아베 총리는 본인이 지시한 바도 없고 직접 관련도 없다며 도마뱀 꼬리 자르기로 일관해왔다.

야권 중심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높고 지지율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지만, 아베 총리는 버티기에 들어갔고...한때 내림세를 면치 못하던 지지율도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 신문의 5월 여론조사에서는 4월 조사 때보다 3%p 상승해 42%를 보이는 등 최악의 상황에서는 벗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드러난 총리 직접 관여…. 도마뱀 꼬리 자르기 이번에도 될까?

일본 언론들은 21일 일제히 사학 스캔들의 또 다른 축인 수의학부 특혜 신설 의혹과 관련해 문제의 대학 측이 3년 전 아베 총리와 직접 면담했다는 문서가 공개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수의학부가 신설을 추진했던 에히메 현 측이 사전 정지 작업을 위해 정부 관계자들을 접촉하면서 작성한 27쪽 분량의 문서에는, "가케학원의 가케 고타로 이사장이 아베 총리와 면담, 수의학부 구상을 설명했다"는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고, 아베 총리가 "그런 새로운 수의대학 생각은 좋은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또 가케학원 이사장과 아베 총리의 면담에 따라 야나세 전 총리 비서관이 자료 제출을 지시했다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가케학원의 수의학부 신설 계획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가케학원이 국가전략특구 사업자로 선정된 2017년 1월 20일이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래서 2015년 만나서 설명을 들었다는 기록이 공개된 만큼 이것이 사실이라면, 2017년 처음 이를 알게 됐다는 아베 총리의 그동안의 설명은 거짓이 되는 셈이다.

아베 총리는 새로운 문서가 처음 공개된 21일에는 기자들의 질의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가, 하루가 지난 22일 사실이 아니라고 이를 적극 부정하고 나섰다. 아베 총리는 기자들을 만나 "문서에서 지적된 날에 가케학원의 이사장과 만난 적이 없다. 혹시 몰라 관저의 기록을 살펴봤어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케학원 측이 "2015년 2월에 이사장이 아베 총리를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한 뒤에 나온 말이다.


□ ‘탄핵’은 언감생심, 본인의 결단(?)만을 기다려야 하는 일본 정치…. 버티면 된다

이러한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떻게 흘러갔을까?

우선 야당은 특검을 요구하고 몇 달 간의 수사가 이어졌을 것이다. 여기에 선거가 있었다면 집권당의 필패로 이어졌을 것이고, 특검 수사 과정 등에서 대통령의 비리가 드러났다면 '탄핵' 움직임 또한 본격화면서 엄하게 책임을 묻는 국민적 공감대와 흐름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어떨까?

일본 검찰 오사카 특수부가 국유지 헐값 의혹 관련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지지부진해 그 진상이 드러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야당은 공세를 펴고 있지만 관련자를 국회에 세워 질의하는 하루 이틀의 단발성 퍼포먼스 이상의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국회에서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내각 책임제인 일본에서 책임을 물어 아베 총리를 퇴진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표심이 반영돼야 하지만 지난해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는 사학 스캔들 와중에도 자민당이 대승을 거둬 오히려 아베 총리의 위치는 공고해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다시 올해 들어서 연이어 사학스캔들 후속타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분위기는 아베 총리의 퇴진 여부보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과연 아베 총리를 꺾을 만한 인물이 있는가에 모이고 있는 실정이다.

전후 1955년 자민당 결성 이후 2009년 민주당이 정권을 가져간 3년 3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일본의 정치 체제는 사실상 자민당 집권이 계속되는 55년 체제의 연속 선상에 있다. 그러다 보니 정체 세력에 대한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 부패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방향 감각의 상실을 보이는 게 일본 사회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찾아오는 것은 어떻게 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아베 총리는 이번에도 사실관계를 부정하며 다시 '버티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정치를 하려면 일본처럼 해야 하는데…." 식사 자리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던 한국의 어느 유력 정치인의 말이 생각난다. 정권을 수십 년간 유지하는 '자민당'이 부러워 보였던 모양이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일본의 정치는 그릇된 집권자에게는 천국, 선량한 국민에게는 악몽인 후진 정치일 뿐이다.

사학 스캔들 관련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곧잘 한국 언론에서 아베 총리의 '위기'를 논하지만, 이는 우리의 바람일 뿐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일본의 변화가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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