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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책방] 북유럽 미스터리를 애정한다면
입력 2018.05.23 (07:00) 수정 2018.05.23 (09:07) 여의도책방
[여의도 책방] 북유럽 미스터리를 애정한다면
북유럽 범죄 소설을 애정하는 당신에게….

그저 각자의 속도에 따라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할 뿐이야.
예전에 사람들은 항상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단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들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지.
「죽은 자들의 메아리」중


어둡고 묵직한 북유럽 범죄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기뻐할 소식이다. 스웨덴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요한 테오린(Johan Theorin)의 「욀란드의 사계」시리즈가 전권 한국어로 번역된다.

시리즈 첫 소설 「죽은 자들의 메아리」(원제 Skumtimmen,2007)가 지난해 12월 한국어로 번역됐고 다음 시리즈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스웨덴어 원본이 아닌 영어 번역본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진정 추리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어떤 스포일러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서평의 결론부터 말씀드린다.

당신이 스티그 라르손(밀레니엄 시리즈)과 헤닝 만켈(발란더 시리즈), 요 네스뵈(해리 홀레 시리즈) 등 북유럽 범죄 소설을 즐겼다면, 「죽은 자들의 메아리」도 당신의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북유럽의 느리고 긴 호흡이 익숙치 않은 독자라면 중반부가 살짝 지루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읽다 보면, 안개 자욱한 북유럽 미스터리 만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유골을 보게 될 날 만을 기다렸다"…아이를 잃은 엄마 '율리아'

1972년, 스웨덴의 한적한 욀란드 섬에서 6살 남자아이, '옌스'가 사라진다. 그리고 20년 뒤, 슬픈 기억을 극복하지 못한 엄마 '율리아'는 욀란드 섬으로 돌아온다. '율리아'와 율리아의 아버지 '옐로프'는 함께 20년 전의 미스터리를 풀어 나간다.

수십년 전 사라진 아이를 끈질기게 쫓아가는 플롯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첫 시리즈,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과 닮아있다. 이제는 고전이 된 이 소설에서도 1966년 실종된 한 여자아이의 행방을 추적하며 추리를 풀어나간다.

율리아는 옌스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니, 이젠 직장에서 돌아온다고 해야겠지.
옌스, 넌 뭐가 됐을까? 소방관? 변호사? 선생님?
「죽은 자들의 메아리」중


「죽은 자들의 메아리」는 밀레니엄 시리즈보다 엄마 '율리아'의 감정선에 조금 더 집중한다. 아이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후회로 가득한 20년의 긴 블랙홀을 지나는 엄마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중요한 사람, 반쯤 죽은 노인이 아니라"…율리아의 아버지 '옐로프'

율리아의 아버지 '옐로프'는 스스로 거동하기도 어려운 79살 노인이다. 20년 전의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다시 사건이 휘몰아치지만, 그는 스스로 걷기조차 힘들다.

옐로프는 침체되고 우울한 히어로라는 북유럽 범죄 소설의 시그니쳐를 따라간다. (옐로프가 유난히 늙기는 했다….) 예컨대 노르웨이 국민 작가 요 네스뵈의 히어로 해리 홀레 형사는 항상 지쳐 있다. 알콜 중독에 이혼남으로 항상 초췌하고 곤두서있다. 스웨덴의 정통 범죄 소설 「마르틴 벡」시리즈에서도 형사 마르틴은 매일 두통과 위장 장애에 시달린다. 가족은 안식처라기보단 짐에 가깝다.

어쩌면 스스로 중요한 인물인 듯 보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중요한 인물이 되어야 할 필요성이 어쩌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것인지도 몰라.
「죽은 자들의 메아리」중


주인공은 제임스 본드가 아니다. 정신과 신체가 스러져가는 아저씨 혹은 노인이다. 이들의 무기는 끈기다. 사건이 해결되기 위해선 집념이 그들을 갉아먹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사람이기에 빠지는 끝없는 어둠 속에 북유럽 범죄소설의 매력이 있다.

"유령은 눈끝으로 봐야 잘 볼 수 있어"…흘러간 시대를 쓰다

율리아가 옌스를 다시 찾아나선 건 1992년, 옌스가 실종된 1972년으로부터 20년이 흐른 뒤다. 소설은 이로부터 수십 년을 더 거슬러 제2차 세계대전까지 되짚어 간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스웨덴의 섬 욀란드는 변한다. 욀란드 중부 도시 '스텐비크'는 채석·항만 산업의 흥망성쇠를 겪고 황량한 유령 도시가 된다. 한편 북쪽의 '롱비크'는 관광산업에 투자해 부유한 본토 스웨덴인들의 별장이 된다. 옌스의 실종은 역사를 관통하는 진실로 드러난다.

나는 스텐비크에 돌아올 때마다 집집마다 사람들이 계속 살고 있다고 상상한단다.
마을길을 따라 어슬렁거리는 그림자들도 보이지, 작은 움직임들이 눈끝에 걸려.
유령들은 눈끝으로 봐야 잘 볼 수 있어.
「죽은 자들의 메아리」중


스웨덴의 떠오르는 신인답게 (이제는 더이상 신인이 아니지만) 스웨덴 범죄 미스터리의 전통을 풍부하게 변주했다. 때때로 보이는 불필요한 수식과 지나친 설명은 오히려 데뷔작의 덕목으로 다음 시리즈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 [여의도 책방] 북유럽 미스터리를 애정한다면
    • 입력 2018.05.23 (07:00)
    • 수정 2018.05.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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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책방] 북유럽 미스터리를 애정한다면
북유럽 범죄 소설을 애정하는 당신에게….

그저 각자의 속도에 따라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할 뿐이야.
예전에 사람들은 항상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단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들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지.
「죽은 자들의 메아리」중


어둡고 묵직한 북유럽 범죄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기뻐할 소식이다. 스웨덴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요한 테오린(Johan Theorin)의 「욀란드의 사계」시리즈가 전권 한국어로 번역된다.

시리즈 첫 소설 「죽은 자들의 메아리」(원제 Skumtimmen,2007)가 지난해 12월 한국어로 번역됐고 다음 시리즈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스웨덴어 원본이 아닌 영어 번역본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진정 추리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어떤 스포일러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서평의 결론부터 말씀드린다.

당신이 스티그 라르손(밀레니엄 시리즈)과 헤닝 만켈(발란더 시리즈), 요 네스뵈(해리 홀레 시리즈) 등 북유럽 범죄 소설을 즐겼다면, 「죽은 자들의 메아리」도 당신의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북유럽의 느리고 긴 호흡이 익숙치 않은 독자라면 중반부가 살짝 지루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읽다 보면, 안개 자욱한 북유럽 미스터리 만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유골을 보게 될 날 만을 기다렸다"…아이를 잃은 엄마 '율리아'

1972년, 스웨덴의 한적한 욀란드 섬에서 6살 남자아이, '옌스'가 사라진다. 그리고 20년 뒤, 슬픈 기억을 극복하지 못한 엄마 '율리아'는 욀란드 섬으로 돌아온다. '율리아'와 율리아의 아버지 '옐로프'는 함께 20년 전의 미스터리를 풀어 나간다.

수십년 전 사라진 아이를 끈질기게 쫓아가는 플롯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첫 시리즈,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과 닮아있다. 이제는 고전이 된 이 소설에서도 1966년 실종된 한 여자아이의 행방을 추적하며 추리를 풀어나간다.

율리아는 옌스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니, 이젠 직장에서 돌아온다고 해야겠지.
옌스, 넌 뭐가 됐을까? 소방관? 변호사? 선생님?
「죽은 자들의 메아리」중


「죽은 자들의 메아리」는 밀레니엄 시리즈보다 엄마 '율리아'의 감정선에 조금 더 집중한다. 아이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후회로 가득한 20년의 긴 블랙홀을 지나는 엄마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중요한 사람, 반쯤 죽은 노인이 아니라"…율리아의 아버지 '옐로프'

율리아의 아버지 '옐로프'는 스스로 거동하기도 어려운 79살 노인이다. 20년 전의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다시 사건이 휘몰아치지만, 그는 스스로 걷기조차 힘들다.

옐로프는 침체되고 우울한 히어로라는 북유럽 범죄 소설의 시그니쳐를 따라간다. (옐로프가 유난히 늙기는 했다….) 예컨대 노르웨이 국민 작가 요 네스뵈의 히어로 해리 홀레 형사는 항상 지쳐 있다. 알콜 중독에 이혼남으로 항상 초췌하고 곤두서있다. 스웨덴의 정통 범죄 소설 「마르틴 벡」시리즈에서도 형사 마르틴은 매일 두통과 위장 장애에 시달린다. 가족은 안식처라기보단 짐에 가깝다.

어쩌면 스스로 중요한 인물인 듯 보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중요한 인물이 되어야 할 필요성이 어쩌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것인지도 몰라.
「죽은 자들의 메아리」중


주인공은 제임스 본드가 아니다. 정신과 신체가 스러져가는 아저씨 혹은 노인이다. 이들의 무기는 끈기다. 사건이 해결되기 위해선 집념이 그들을 갉아먹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사람이기에 빠지는 끝없는 어둠 속에 북유럽 범죄소설의 매력이 있다.

"유령은 눈끝으로 봐야 잘 볼 수 있어"…흘러간 시대를 쓰다

율리아가 옌스를 다시 찾아나선 건 1992년, 옌스가 실종된 1972년으로부터 20년이 흐른 뒤다. 소설은 이로부터 수십 년을 더 거슬러 제2차 세계대전까지 되짚어 간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스웨덴의 섬 욀란드는 변한다. 욀란드 중부 도시 '스텐비크'는 채석·항만 산업의 흥망성쇠를 겪고 황량한 유령 도시가 된다. 한편 북쪽의 '롱비크'는 관광산업에 투자해 부유한 본토 스웨덴인들의 별장이 된다. 옌스의 실종은 역사를 관통하는 진실로 드러난다.

나는 스텐비크에 돌아올 때마다 집집마다 사람들이 계속 살고 있다고 상상한단다.
마을길을 따라 어슬렁거리는 그림자들도 보이지, 작은 움직임들이 눈끝에 걸려.
유령들은 눈끝으로 봐야 잘 볼 수 있어.
「죽은 자들의 메아리」중


스웨덴의 떠오르는 신인답게 (이제는 더이상 신인이 아니지만) 스웨덴 범죄 미스터리의 전통을 풍부하게 변주했다. 때때로 보이는 불필요한 수식과 지나친 설명은 오히려 데뷔작의 덕목으로 다음 시리즈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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