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헌 심판…여가부 “폐지해야” 의견제출

입력 2018.05.23 (18:49) 수정 2018.05.2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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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24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의 위헌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소원 심판청구 사건의 공개변론이 열린다. 2012년 4 대 4로 팽팽하게 합헌 결정이 내려진 이후 6년 만의 재심판이다. 이를 앞두고 지난 3월 여성가족부가 사실상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 알려져 관심이 뜨겁다. 앞선 2012년 심판 때는 함구했던 여성가족부가, 이번엔는 공식적으로 '낙태죄는 위헌성이 있어 폐지해야 한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일까?

1. 여성의 기본권(자기결정권,재생산권,건강권) 중대 침해

형법상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헌법에 보장된 여성의 여러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침해한다고 여성가족부는 주장했다.

헌재는 2012년 결정에서 이미 임신과 출산에 있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했다. "헌법 제10조 개인의 인격권·행복추구권에는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 전제된다. 여기서 '자기운명결정권'이란 임신과 출산에 관한 결정, 그 과정에서 특별한 희생을 당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다" 명시했다.

또, 우리나라가 1984년 비준한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은 제16조에서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자녀의 수와 출산 간격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결정할 권리"를 남녀평등의 기초 위에 보장하도록 한 것이다.

여성의 건강권은 헌법 제36조 제3항“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를 통해 보장받는데, 헌법재판소는 1995년 "국가는 소극적 보호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국민보건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의무가 있다"고도 결정한 바 있다.


2. 낙태죄, '태아 생명 보호' 기능 하나?
… 오히려 '보복·협박' 악용 사례 多

그렇다면 과연 이 낙태죄가 '태아 생명 보호'라는 입법 목적에 맞는, 적정한 방법이긴 할까? 여러 수치와 조사결과를 종합해볼 때 "아니다"라는 것이 여가부의 입장이다.

가장 먼저 '낙태죄' 존치가, 낙태 건수를 줄이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기능을 못 한다는 것이 통계로 입증된다. 보건복지부는, 임신중절수술이 연간 17만 건 정도 이뤄지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실제 기소는 연간 10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낙태를 죄로 다스리는 법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증거로 봐야 할 것이다.

제 기능은 상실한 대신 오히려 악용되는 사례가 많은 점은 의미심장하다. 형법상 낙태죄는 처벌 대상을 '부녀'와 '낙태하게한 자, 즉 시술자'로만 한정하고 있다. 게다가 법에서 정한 이유에 따라 합법적으로 임신중절을 한다해도 반드시 배우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어, 여성들이 남성으로부터 보복과 협박에 시달리게 되는 빌미를 제공한다.

실제로 한국여성민우회의 2013년 자료에 따르면, 그 해 낙태상담 12건 중 10건이 남성의 고소와 협박에 관한 것이었다. 가정폭력으로 이혼려는 부인을 가해자인 남편이 낙태죄로 고발하거나, 남녀 사이가 틀어진 이후 남성이 앙심을 품고 과거 동의했던 낙태 건으로 여성을 괴롭힌 사례도 있다.

3. 침해의 최대(大)성?

설사 사회적 법익에 아무리 부합하는 처벌이라 해도, 개인의 기본권 침해는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침해의 최소성 원칙'이다. 헌데 낙태죄는 이 '최소성 원칙'에서 벗어나있다 게 여성가족부의 판단이다. 형법이 모든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대신 몇 가지 예외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중절 절차와 허용범위 국제 비교(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4.)임신중절 절차와 허용범위 국제 비교(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4.)

그래서 임신을 지속하는 것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다 해도, 배우자의 동의가 있고 임신 24주 이내일 때만 중절이 합법이다. 한 인간을 자신의 몸과 건강을 위한 결정에서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심각하고 과도한 건강권 침해다.

심지어 몇 안 되는 합법적 중절사유에 해당하고 여성 스스로 중절을 결정해도,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무조건 위법이다. 그러니까 현행법은 직접 당사자인 여성이 아니라, 배우자인 남성에게 임신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권한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시대착오적이고 성차별적이다.

원래 기능 상실하고, 과도한 침해만 남은 '낙태죄'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우리나라에 대한 2011년 보고서에 이어 올해(2018년) 보고서에서도, '낙태죄'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를 요청했다. "강간이나 근친상간, 임산부의 생명 및 건강에 심각한 위협, 심각한 태아 손상의 경우에는 낙태를 합법화하고 여성에 대한 처벌을 없애라"는 것이 핵심 요청이다.

과거에 형법으로 규정한 '낙태죄'가 목적했던 것을 이루는 수단으로써 적정성을 읽었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재생산권/건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제한한다는 주장을 우리도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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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태죄’ 위헌 심판…여가부 “폐지해야” 의견제출
    • 입력 2018-05-23 18:49:17
    • 수정2018-05-23 22:55:31
    취재K
내일(24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의 위헌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소원 심판청구 사건의 공개변론이 열린다. 2012년 4 대 4로 팽팽하게 합헌 결정이 내려진 이후 6년 만의 재심판이다. 이를 앞두고 지난 3월 여성가족부가 사실상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 알려져 관심이 뜨겁다. 앞선 2012년 심판 때는 함구했던 여성가족부가, 이번엔는 공식적으로 '낙태죄는 위헌성이 있어 폐지해야 한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일까?

1. 여성의 기본권(자기결정권,재생산권,건강권) 중대 침해

형법상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헌법에 보장된 여성의 여러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침해한다고 여성가족부는 주장했다.

헌재는 2012년 결정에서 이미 임신과 출산에 있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했다. "헌법 제10조 개인의 인격권·행복추구권에는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 전제된다. 여기서 '자기운명결정권'이란 임신과 출산에 관한 결정, 그 과정에서 특별한 희생을 당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다" 명시했다.

또, 우리나라가 1984년 비준한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은 제16조에서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자녀의 수와 출산 간격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결정할 권리"를 남녀평등의 기초 위에 보장하도록 한 것이다.

여성의 건강권은 헌법 제36조 제3항“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를 통해 보장받는데, 헌법재판소는 1995년 "국가는 소극적 보호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국민보건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의무가 있다"고도 결정한 바 있다.


2. 낙태죄, '태아 생명 보호' 기능 하나?
… 오히려 '보복·협박' 악용 사례 多

그렇다면 과연 이 낙태죄가 '태아 생명 보호'라는 입법 목적에 맞는, 적정한 방법이긴 할까? 여러 수치와 조사결과를 종합해볼 때 "아니다"라는 것이 여가부의 입장이다.

가장 먼저 '낙태죄' 존치가, 낙태 건수를 줄이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기능을 못 한다는 것이 통계로 입증된다. 보건복지부는, 임신중절수술이 연간 17만 건 정도 이뤄지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실제 기소는 연간 10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낙태를 죄로 다스리는 법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증거로 봐야 할 것이다.

제 기능은 상실한 대신 오히려 악용되는 사례가 많은 점은 의미심장하다. 형법상 낙태죄는 처벌 대상을 '부녀'와 '낙태하게한 자, 즉 시술자'로만 한정하고 있다. 게다가 법에서 정한 이유에 따라 합법적으로 임신중절을 한다해도 반드시 배우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어, 여성들이 남성으로부터 보복과 협박에 시달리게 되는 빌미를 제공한다.

실제로 한국여성민우회의 2013년 자료에 따르면, 그 해 낙태상담 12건 중 10건이 남성의 고소와 협박에 관한 것이었다. 가정폭력으로 이혼려는 부인을 가해자인 남편이 낙태죄로 고발하거나, 남녀 사이가 틀어진 이후 남성이 앙심을 품고 과거 동의했던 낙태 건으로 여성을 괴롭힌 사례도 있다.

3. 침해의 최대(大)성?

설사 사회적 법익에 아무리 부합하는 처벌이라 해도, 개인의 기본권 침해는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침해의 최소성 원칙'이다. 헌데 낙태죄는 이 '최소성 원칙'에서 벗어나있다 게 여성가족부의 판단이다. 형법이 모든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대신 몇 가지 예외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중절 절차와 허용범위 국제 비교(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4.)
그래서 임신을 지속하는 것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다 해도, 배우자의 동의가 있고 임신 24주 이내일 때만 중절이 합법이다. 한 인간을 자신의 몸과 건강을 위한 결정에서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심각하고 과도한 건강권 침해다.

심지어 몇 안 되는 합법적 중절사유에 해당하고 여성 스스로 중절을 결정해도,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무조건 위법이다. 그러니까 현행법은 직접 당사자인 여성이 아니라, 배우자인 남성에게 임신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권한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시대착오적이고 성차별적이다.

원래 기능 상실하고, 과도한 침해만 남은 '낙태죄'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우리나라에 대한 2011년 보고서에 이어 올해(2018년) 보고서에서도, '낙태죄'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를 요청했다. "강간이나 근친상간, 임산부의 생명 및 건강에 심각한 위협, 심각한 태아 손상의 경우에는 낙태를 합법화하고 여성에 대한 처벌을 없애라"는 것이 핵심 요청이다.

과거에 형법으로 규정한 '낙태죄'가 목적했던 것을 이루는 수단으로써 적정성을 읽었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재생산권/건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제한한다는 주장을 우리도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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