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책방] “김지영 씨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까?”

입력 2018.05.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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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점심시간 동네에 명망 있는 칼국수집의 풍경이다. 한 무리의 중년 사내들이 식당으로 들이닥친다. 유니폼 점퍼를 입은 폼이 근처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단골인 듯 거침없이 방으로 올라오면서 걸판진 말을 쏟아낸다.

“아니 우리 딸 돌아왔네?” 여성종업원을 향해 던지는 모양이다.
“예. 조금 아파서 쉬었어요.” 어색한 웃음을 던지면서 손님에게 반응을 안겨준다.
“딸은 무슨 딸, 우리가 오빠지” “허허. 몸이 아프셨나? 마음이 아프셨나?”“아픈 것도 종류가 많지.” 옆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하하. 잘해줘야겠어. 아프면 쓰나!”

'미투' 이후 민감해진 감수성이 발동한 탓인가? 듣는 내내 불편함이 부글거린다. 여성 한 명을 두고 벌이는 중장년의 '아무말대잔치'가 심히 거북하다. 한국전쟁 직후 베이비붐의 정점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젠더 이슈에 대한 공감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다만, 아주 다만,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상식과 최소한의 배려를 바라면 안 될까? 우리 사회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상식과 배려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면 상처받을 수많은 삶이 슬프지 않은가?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간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일도 재밌고 동료들도 좋았다. 다만 기자들이나 클라이언트, 인하우스 홍보팀을 상대하는 자리가 힘들었고 불편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과 경력이 쌓이고, 일이 충분히 익숙해진 후에도 그들과는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홍보대행사 입장에서 그들은 항상 갑이고, 대부분 나이가 많고 직위가 높은 남자들이었고, 일단 유머 코드가 달랐다. 재미없는 농담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데, 어느 타이밍에 웃고, 또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본문 중에서


【82년생 김지영】를 읽은 직후 경험한 소소한 일상이다. 이 일상의 이야기를 일상을 넘어 세대의 담론으로 느끼게 한, 느껴야 한다고 조그맣게 외치다 속으로 삼켜버리고 타인의 목소리로 절규하는 사람이 바로 '김지영 씨'다. 책은 이야기의 형식으로 풀어낸 다큐에 가깝다. 성차별의 문제를 통계를 인용해 사회 전체의 구조의 문제로 이끌어낸다. 엄마를 포함한 가족들의 역할을 통해 바닥에 뿌리 깊게 박힌 일상의 '차별'을 전면으로 끌어낸다. 늦둥이 남동생의 분유 한 숟갈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겸상을 하지 못하는 현실은 식당 밥 미원처럼 자연스러운 삶의 풍경이다. 이 자연스러운 '폭력'이 우리의 삶과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불을 걷고 나갈 수가 없었다. 본의 아니게 민망한 대화를 엿듣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말했다. "아, 됐어. 씹다 버린 껌을 누가 씹냐?"」

분명한 이유가 있기에 울고 소리치고 호소하는데도 이유가 없다고 원래 그렇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여성들의 삶은 김지영 씨의 삶에 빙의한다. 폭력을 애정이라고 달래고 바바리맨에 대한 응징을 '학교 망신'이라고 때리고 친절을 '헤픔'으로 받아들이는 악몽은 학교생활을 관통한다. 대학은 다른가? '젠틀'과 '배려'를 앞세우고 뒤에서는 '씹던 껌'이라고 떠든다. 상대에 대한 차별과 비하를 자신의 '가오'쯤으로 여기는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과잉과 차별과 폭력을 배려와 사랑으로 만드는 자기 해석이 거대한 강물을 이루는 현실은 직장에서도 가정에도 이어진다. 며느리의 가족계획을 걱정하고 똑똑한 여자를 경계하고 여자지만 면접생처럼 보여 택시를 태워준다. 김지영 씨는 계속 나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너는?

김지영 씨 어머니는 구로에서 청계천에서 타이밍을 먹어가며 먼지 마시고 미싱을 돌리며 돈을 벌었다. 이 돈으로 오빠 동생들은 의사가 되고 경찰서장이 되고 선생이 되었지만 누구 하나 같은 재주를 갖고 태어난 여자 형제들의 희생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차라리 연을 끊고 사는 게 속 편하다. 결국 딸내미만큼은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여전히 여자가 설 자리는 좁고 드러나지 않는 폭력은 여전한 세상이다.

자꾸 도와주겠다는 남편, 지하철 타는 주제에 왜 애는 낳느냐고 쏴붙이는 젊은 여자, 1,500원짜리 커피 한잔의 지영씨에게 '맘충'의 상팔자를 떠드는 직장인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정작 모든 삶은 며느리의 노동에 기대지만 '내가 아들 넷을 낳아서 이렇게 따뜻한 밥 먹고 산다'는 할머니, 자신의 아내는 아이 때문에 의사를 그만두지만, 직원 후임은 미혼을 뽑겠다는 의사,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폭력과 차별은 얼마나 많은가? 왜 우리는 이런 자기모순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까?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본문중에서

'님'의 입장에서 함부로 말하고 내 생각에 좋은 일이라고 상대방까지 좋을 것으로 생각하는 '근자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 식구의 일에 피를 토하면서 타인에게는 똑같은 짓을 거침없이 자행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삶이 지속될수록 상식과 배려라는 긴장의 끈을 놓고 아무말대잔치를 벌이는 당신은 누구인가? 김지영 씨는 우리에게 절규한다. 엄마와 선배의 소리를 빌어서….


* 68년생 B씨는 독자에 남자아이였다. 백 배는 예쁘고 영특하던 형이 일찍 죽었기에 집안의 특혜를 조금 받고 살았다. 다만 성장기에 쪼그라든 가계와 스스로의 반항 질이 은총을 안드로메다로 걷어찼지만, 그것도 은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자 형제들에 비해 과도한 혜택을 받았음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는 노동으로 집안을 지키신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싶어졌다. 공평하지 못한 성장기를 보낸 형제들에게는 다음 설에 소심한 사과의 말이라도 전하련다.

복진선 bo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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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 책방] “김지영 씨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까?”
    • 입력 2018-05-24 07:00:55
    여의도책방
이른 점심시간 동네에 명망 있는 칼국수집의 풍경이다. 한 무리의 중년 사내들이 식당으로 들이닥친다. 유니폼 점퍼를 입은 폼이 근처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단골인 듯 거침없이 방으로 올라오면서 걸판진 말을 쏟아낸다.

“아니 우리 딸 돌아왔네?” 여성종업원을 향해 던지는 모양이다.
“예. 조금 아파서 쉬었어요.” 어색한 웃음을 던지면서 손님에게 반응을 안겨준다.
“딸은 무슨 딸, 우리가 오빠지” “허허. 몸이 아프셨나? 마음이 아프셨나?”“아픈 것도 종류가 많지.” 옆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하하. 잘해줘야겠어. 아프면 쓰나!”

'미투' 이후 민감해진 감수성이 발동한 탓인가? 듣는 내내 불편함이 부글거린다. 여성 한 명을 두고 벌이는 중장년의 '아무말대잔치'가 심히 거북하다. 한국전쟁 직후 베이비붐의 정점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젠더 이슈에 대한 공감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다만, 아주 다만,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상식과 최소한의 배려를 바라면 안 될까? 우리 사회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상식과 배려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면 상처받을 수많은 삶이 슬프지 않은가?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간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일도 재밌고 동료들도 좋았다. 다만 기자들이나 클라이언트, 인하우스 홍보팀을 상대하는 자리가 힘들었고 불편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과 경력이 쌓이고, 일이 충분히 익숙해진 후에도 그들과는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홍보대행사 입장에서 그들은 항상 갑이고, 대부분 나이가 많고 직위가 높은 남자들이었고, 일단 유머 코드가 달랐다. 재미없는 농담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데, 어느 타이밍에 웃고, 또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본문 중에서


【82년생 김지영】를 읽은 직후 경험한 소소한 일상이다. 이 일상의 이야기를 일상을 넘어 세대의 담론으로 느끼게 한, 느껴야 한다고 조그맣게 외치다 속으로 삼켜버리고 타인의 목소리로 절규하는 사람이 바로 '김지영 씨'다. 책은 이야기의 형식으로 풀어낸 다큐에 가깝다. 성차별의 문제를 통계를 인용해 사회 전체의 구조의 문제로 이끌어낸다. 엄마를 포함한 가족들의 역할을 통해 바닥에 뿌리 깊게 박힌 일상의 '차별'을 전면으로 끌어낸다. 늦둥이 남동생의 분유 한 숟갈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겸상을 하지 못하는 현실은 식당 밥 미원처럼 자연스러운 삶의 풍경이다. 이 자연스러운 '폭력'이 우리의 삶과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불을 걷고 나갈 수가 없었다. 본의 아니게 민망한 대화를 엿듣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말했다. "아, 됐어. 씹다 버린 껌을 누가 씹냐?"」

분명한 이유가 있기에 울고 소리치고 호소하는데도 이유가 없다고 원래 그렇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여성들의 삶은 김지영 씨의 삶에 빙의한다. 폭력을 애정이라고 달래고 바바리맨에 대한 응징을 '학교 망신'이라고 때리고 친절을 '헤픔'으로 받아들이는 악몽은 학교생활을 관통한다. 대학은 다른가? '젠틀'과 '배려'를 앞세우고 뒤에서는 '씹던 껌'이라고 떠든다. 상대에 대한 차별과 비하를 자신의 '가오'쯤으로 여기는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과잉과 차별과 폭력을 배려와 사랑으로 만드는 자기 해석이 거대한 강물을 이루는 현실은 직장에서도 가정에도 이어진다. 며느리의 가족계획을 걱정하고 똑똑한 여자를 경계하고 여자지만 면접생처럼 보여 택시를 태워준다. 김지영 씨는 계속 나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너는?

김지영 씨 어머니는 구로에서 청계천에서 타이밍을 먹어가며 먼지 마시고 미싱을 돌리며 돈을 벌었다. 이 돈으로 오빠 동생들은 의사가 되고 경찰서장이 되고 선생이 되었지만 누구 하나 같은 재주를 갖고 태어난 여자 형제들의 희생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차라리 연을 끊고 사는 게 속 편하다. 결국 딸내미만큼은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여전히 여자가 설 자리는 좁고 드러나지 않는 폭력은 여전한 세상이다.

자꾸 도와주겠다는 남편, 지하철 타는 주제에 왜 애는 낳느냐고 쏴붙이는 젊은 여자, 1,500원짜리 커피 한잔의 지영씨에게 '맘충'의 상팔자를 떠드는 직장인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정작 모든 삶은 며느리의 노동에 기대지만 '내가 아들 넷을 낳아서 이렇게 따뜻한 밥 먹고 산다'는 할머니, 자신의 아내는 아이 때문에 의사를 그만두지만, 직원 후임은 미혼을 뽑겠다는 의사,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폭력과 차별은 얼마나 많은가? 왜 우리는 이런 자기모순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까?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본문중에서

'님'의 입장에서 함부로 말하고 내 생각에 좋은 일이라고 상대방까지 좋을 것으로 생각하는 '근자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 식구의 일에 피를 토하면서 타인에게는 똑같은 짓을 거침없이 자행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삶이 지속될수록 상식과 배려라는 긴장의 끈을 놓고 아무말대잔치를 벌이는 당신은 누구인가? 김지영 씨는 우리에게 절규한다. 엄마와 선배의 소리를 빌어서….


* 68년생 B씨는 독자에 남자아이였다. 백 배는 예쁘고 영특하던 형이 일찍 죽었기에 집안의 특혜를 조금 받고 살았다. 다만 성장기에 쪼그라든 가계와 스스로의 반항 질이 은총을 안드로메다로 걷어찼지만, 그것도 은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자 형제들에 비해 과도한 혜택을 받았음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는 노동으로 집안을 지키신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싶어졌다. 공평하지 못한 성장기를 보낸 형제들에게는 다음 설에 소심한 사과의 말이라도 전하련다.

복진선 bo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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