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찌른 트럼프, 맞대응 피한 김정은…대화 불씨 살릴 묘안은?

입력 2018.05.25 (17:46) 수정 2018.05.25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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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한반도 정세가 다시 한 번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 '세기의 핵 담판'을 앞두고 살얼음판을 걸으며 최고조로 치닫던 양측의 힘겨루기가 결국 북미 정상회담 취소로 귀결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발표 이후 워싱턴과 평양의 움직임을 종합해보면, 현 상황은 '최악의 파국'이라기보다는 '북미 간의 극한 대치'라고 진단하는 게 더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 모두 여지를 남기며 여전히 대화의 불씨를 살려놓고 있고, 비록 힘겨운 과정이 되겠지만, 회담을 살려낼 수 있는 동력 또한 곳곳에서 발견된다.


■ 허찌른 트럼프 "북미회담 취소"…이대로는 안된다?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미국의 '북미회담 취소' 발표는 미국 동부시간 24일 아침 9시 50분쯤(한국시간 밤 10시 50분쯤) 이른바 '트럼프 공개서한'을 통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담화가 나온 지 14시간, 특히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행사의 종료 소식이 전해진 뒤 불과 4시간 만에 이뤄진 전격적인 발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애하는 위원장에게'로 시작하는 서한에서 "최근 당신들의 발언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으로 보건대,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이 회담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면서 "싱가포르 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좋은 기회를 놓쳤다. 이 기회를 놓친 것은 역사상 가장 슬픈 순간"이라면서 "당신은 핵 능력에 관해 얘기하지만, 우리의 것(미국의 핵)이 매우 엄청나고 강력하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트위터를 통해서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된 정상회담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고, 잠재적으로 큰 기회가 앞에 놓여있으나 이것은 북한에 엄청난 퇴보(tremendous setback)가 되고 세계에도 퇴보가 될 것이다"고 재공지해 지난 3월 트럼프의 회담 수락 이후 두 달여 만에 북미정상회담이 공식 취소됐음을 선언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언젠가는 당신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여운을 남겼다.

미국의 북미회담 취소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결정했으며, 공개서한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한 자 한 자 직접 구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최선희 담화'에 뿔났다고?…회담 취소 진짜 이유는

그렇다면 다음 주쯤 북미회담 개최 여부를 결론 내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일정을 앞당겨 먼저 판을 깨고 나선 이유는 뭘까?

일단 회담 취소의 직접적 계기가 된 건 같은 날(24일) 발표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담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서한에서 "최근 당신들의 발언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회담 취소 사유로 적시해, 사실상 김계관 제1부상과 최선희 부상의 대미 비난 발언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최선희 부상이 '북미회담 재검토' 가능성을 다시 거론하며, 특히 펜스 미국 부통령을 향해 '아둔한 얼뜨기' '무지몽매' '핵 대 핵의 대결장'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점이 결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관리들, 미국 우파 엘리트 세력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 통신은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으며 정상회담을 취소하게끔 했다"고 전했다.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미국의 접촉 요청에 북한이 응하지 않는 등 북미 간 실무접촉이 차질을 빚은 점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는 "북측이 싱가포르에서 사전 접촉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 소통을 끊는 등 약속을 위반했다"면서 이는 "심각한 신의성실 부족을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현재로선 북미회담의 성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회담 취소의 결정적 배경이 됐을 거라는 게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록 리비아식 모델에 반발하는 북한의 입장을 감안해 '단계적이고 신속한 비핵화'라는 절충안을 제시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6월 12일 회담 이전에 이른바 '특정 조건(certain conditions)'을 충족시킬만한 합의를 끌어내기엔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세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미 수차례 '전임 행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최근엔 이란 핵 합의마저 파기해 비핵화의 기준치를 한층 끌어올린 터여서, '북한 핵무기의 미국 이전' 등의 파격적인 조치가 담보되지 않는 한 정상회담장에 나가기 힘든 게 미국의 국내 정치 현실이기도하다.

이와 관련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은 북미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며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현재 상황이 회담 취소의 결정적 배경이 됐음을 숨기지 않았다.


■ 맞대응 피한 김정은 "아무 때나 마주앉겠다"…전례없는 저자세-공손

북한은 날이 밝자마자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문 형식의 공식 입장을 서둘러 발표했다.

북한의 입장 표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발표가 있는 지 8시간 반 만에 매우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데다, 특히 내용 면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공손한 표현으로 대화 지속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김계관 부상은 담화문에서 미국의 북미회담 취소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며 대화 지속의 뜻을 밝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시기 그 어느 대통령도 내지리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 상봉이라는 중대사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데 대해 의연 내심 높이 평가했다", "'트럼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 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 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였다"고 시종일관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미국이 회담 취소의 명분으로 삼은 최선희 부상의 담화에 대해서는 "미국 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의미를 축소하며 사태를 수습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이 담화 발표의 주체로 김계관 제1부상을 다시 내세운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김계관 제1부상은 볼턴 NSC보좌관의 '리비아 모델'발언을 맹비난하며 미국에 첫 포문을 연 당사자인 데다, 최선의 부상의 직속상관이라는 점에서 결자해지의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자존심을 먹고 산다'는 북한이 이처럼 전례 없는 저자세의 입장표명을 하고 나선 데는 무엇보다 파국을 면하고 대화의 불씨를 살려 나가자는 김정은 위원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다음 달 12일 예정됐던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진행하자는 메시지도 담겼다는 평가다.


■ 다시 주목받는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시험대 오른 한국의 중재

"회담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북미회담이 열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나중에 열리게 될 것이다. 아마도 다른 날짜에 열리게 될 것이다." (There’s a lot of substantial chance that it won’t work out.If it doesn’t happen, maybe it will happen later. Maybe it will happen at a different time)"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카드를 완전히 접지 않았다는 정황은 이틀 전 워싱턴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회담 취소 가능성을 처음 언급할 당시 쏟아낸 발언 내용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6월 12일 예정된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면서도 만일 회담이 취소되더라도 나중에, 다른 날짜에 열릴 수 있다고 말했고, 이날 북미회담 취소를 발표한 뒤 참석한 백악관 행사에서도 "북한과의 모든 일이 잘되고, 내달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거나 추후에 열릴 가능성을 포함한 많은 일이 일어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가 결코 즉흥적인 결정이 아닌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깔린 준비된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특히 북한의 추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트럼프 특유의 벼랑끝 협상 전술일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문제는 과연 누가, 어떤 방식으로 대화의 물꼬를 터서 북미회담의 불씨를 살려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시 한 번 주목되는 건 북미정상회담 산파역이었던 폼페이오와 김영철의 북미 고위급 라인이다. 특히 두 사람의 회동은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물밑 접촉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데다, 최근 힘겨루기 과정에서도 그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정상회담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나선 마당에 두 사람만의 재회동만으로 과연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까지 취소해가며 "11월 중간선거 이전 핵무기 이전- 임기내 비핵화 완료"로 여겨지는 가시적인 조치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과연 이를 충족시킬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고,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중재 노력 또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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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5 17:46:40
    • 수정2018-05-25 23:01:06
    취재K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한반도 정세가 다시 한 번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 '세기의 핵 담판'을 앞두고 살얼음판을 걸으며 최고조로 치닫던 양측의 힘겨루기가 결국 북미 정상회담 취소로 귀결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발표 이후 워싱턴과 평양의 움직임을 종합해보면, 현 상황은 '최악의 파국'이라기보다는 '북미 간의 극한 대치'라고 진단하는 게 더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 모두 여지를 남기며 여전히 대화의 불씨를 살려놓고 있고, 비록 힘겨운 과정이 되겠지만, 회담을 살려낼 수 있는 동력 또한 곳곳에서 발견된다.


■ 허찌른 트럼프 "북미회담 취소"…이대로는 안된다?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미국의 '북미회담 취소' 발표는 미국 동부시간 24일 아침 9시 50분쯤(한국시간 밤 10시 50분쯤) 이른바 '트럼프 공개서한'을 통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담화가 나온 지 14시간, 특히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행사의 종료 소식이 전해진 뒤 불과 4시간 만에 이뤄진 전격적인 발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애하는 위원장에게'로 시작하는 서한에서 "최근 당신들의 발언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으로 보건대,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이 회담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면서 "싱가포르 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좋은 기회를 놓쳤다. 이 기회를 놓친 것은 역사상 가장 슬픈 순간"이라면서 "당신은 핵 능력에 관해 얘기하지만, 우리의 것(미국의 핵)이 매우 엄청나고 강력하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트위터를 통해서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된 정상회담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고, 잠재적으로 큰 기회가 앞에 놓여있으나 이것은 북한에 엄청난 퇴보(tremendous setback)가 되고 세계에도 퇴보가 될 것이다"고 재공지해 지난 3월 트럼프의 회담 수락 이후 두 달여 만에 북미정상회담이 공식 취소됐음을 선언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언젠가는 당신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여운을 남겼다.

미국의 북미회담 취소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결정했으며, 공개서한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한 자 한 자 직접 구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최선희 담화'에 뿔났다고?…회담 취소 진짜 이유는

그렇다면 다음 주쯤 북미회담 개최 여부를 결론 내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일정을 앞당겨 먼저 판을 깨고 나선 이유는 뭘까?

일단 회담 취소의 직접적 계기가 된 건 같은 날(24일) 발표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담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서한에서 "최근 당신들의 발언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회담 취소 사유로 적시해, 사실상 김계관 제1부상과 최선희 부상의 대미 비난 발언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최선희 부상이 '북미회담 재검토' 가능성을 다시 거론하며, 특히 펜스 미국 부통령을 향해 '아둔한 얼뜨기' '무지몽매' '핵 대 핵의 대결장'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점이 결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관리들, 미국 우파 엘리트 세력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 통신은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으며 정상회담을 취소하게끔 했다"고 전했다.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미국의 접촉 요청에 북한이 응하지 않는 등 북미 간 실무접촉이 차질을 빚은 점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는 "북측이 싱가포르에서 사전 접촉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 소통을 끊는 등 약속을 위반했다"면서 이는 "심각한 신의성실 부족을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현재로선 북미회담의 성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회담 취소의 결정적 배경이 됐을 거라는 게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록 리비아식 모델에 반발하는 북한의 입장을 감안해 '단계적이고 신속한 비핵화'라는 절충안을 제시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6월 12일 회담 이전에 이른바 '특정 조건(certain conditions)'을 충족시킬만한 합의를 끌어내기엔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세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미 수차례 '전임 행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최근엔 이란 핵 합의마저 파기해 비핵화의 기준치를 한층 끌어올린 터여서, '북한 핵무기의 미국 이전' 등의 파격적인 조치가 담보되지 않는 한 정상회담장에 나가기 힘든 게 미국의 국내 정치 현실이기도하다.

이와 관련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은 북미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며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현재 상황이 회담 취소의 결정적 배경이 됐음을 숨기지 않았다.


■ 맞대응 피한 김정은 "아무 때나 마주앉겠다"…전례없는 저자세-공손

북한은 날이 밝자마자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문 형식의 공식 입장을 서둘러 발표했다.

북한의 입장 표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발표가 있는 지 8시간 반 만에 매우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데다, 특히 내용 면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공손한 표현으로 대화 지속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김계관 부상은 담화문에서 미국의 북미회담 취소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며 대화 지속의 뜻을 밝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시기 그 어느 대통령도 내지리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 상봉이라는 중대사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데 대해 의연 내심 높이 평가했다", "'트럼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 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 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였다"고 시종일관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미국이 회담 취소의 명분으로 삼은 최선희 부상의 담화에 대해서는 "미국 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의미를 축소하며 사태를 수습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이 담화 발표의 주체로 김계관 제1부상을 다시 내세운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김계관 제1부상은 볼턴 NSC보좌관의 '리비아 모델'발언을 맹비난하며 미국에 첫 포문을 연 당사자인 데다, 최선의 부상의 직속상관이라는 점에서 결자해지의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자존심을 먹고 산다'는 북한이 이처럼 전례 없는 저자세의 입장표명을 하고 나선 데는 무엇보다 파국을 면하고 대화의 불씨를 살려 나가자는 김정은 위원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다음 달 12일 예정됐던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진행하자는 메시지도 담겼다는 평가다.


■ 다시 주목받는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시험대 오른 한국의 중재

"회담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북미회담이 열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나중에 열리게 될 것이다. 아마도 다른 날짜에 열리게 될 것이다." (There’s a lot of substantial chance that it won’t work out.If it doesn’t happen, maybe it will happen later. Maybe it will happen at a different time)"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카드를 완전히 접지 않았다는 정황은 이틀 전 워싱턴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회담 취소 가능성을 처음 언급할 당시 쏟아낸 발언 내용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6월 12일 예정된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면서도 만일 회담이 취소되더라도 나중에, 다른 날짜에 열릴 수 있다고 말했고, 이날 북미회담 취소를 발표한 뒤 참석한 백악관 행사에서도 "북한과의 모든 일이 잘되고, 내달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거나 추후에 열릴 가능성을 포함한 많은 일이 일어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가 결코 즉흥적인 결정이 아닌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깔린 준비된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특히 북한의 추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트럼프 특유의 벼랑끝 협상 전술일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문제는 과연 누가, 어떤 방식으로 대화의 물꼬를 터서 북미회담의 불씨를 살려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시 한 번 주목되는 건 북미정상회담 산파역이었던 폼페이오와 김영철의 북미 고위급 라인이다. 특히 두 사람의 회동은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물밑 접촉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데다, 최근 힘겨루기 과정에서도 그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정상회담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나선 마당에 두 사람만의 재회동만으로 과연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까지 취소해가며 "11월 중간선거 이전 핵무기 이전- 임기내 비핵화 완료"로 여겨지는 가시적인 조치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과연 이를 충족시킬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고,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중재 노력 또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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