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전면 나선 ‘대미 외교 일꾼’…북한 외무성은?

입력 2018.05.26 (08:08) 수정 2018.05.2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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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한 가장 큰 이유, 바로 북한의 적대적 태도인데요.

그 선봉에 나선 인물, 북한에서 이른바 미국을 담당하고 있는 외교관들입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나선 뒤 이들은 이른바 ‘핵외교’의 성과를 내기 위해 국제무대에서 줄곧 강경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는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외교 일꾼이라 불리는 북한의 외교관들을 전격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조선중앙TV/1993년 3월 : "나라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부득이 핵무기전가방지 조약에서 탈퇴한다는 것을 선포한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가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 양이 적다며 영변 핵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1993년 3월 12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를 선언한다.

한반도에 위기가 엄습했고, 북미 간에는 전쟁 직전의 긴장이 조성됐다.

하지만 곧 두 나라는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 한다는데 뜻을 모으고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북미 고위급 회담의 시작이다.

당시 세계 언론의 이목은 갈루치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를 상대할 북한 대표에 집중됐다.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제네바에 입성한 인물은 외무성 제1 부부장 강석주였다.

[강석주/북한 수석대표 : "후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담을 앞두고도 비교적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인 강석주.

북한 외교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회담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강석주/북한 수석대표 : "견해를 같이 한 것은 오늘 회담이 아주 유익했다는 거 아주 생산적이었다는 견해를 같이 했습니다. 그 결과는 후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은 제네바 합의서에 서명했다.

[로버트 갈루치/미국 수석대표 : "미국과 북한 양측은 실무 그룹작업에 성실하게 임할 것입니다."]

[강석주/북한 수석대표 :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 합의문을 승인하도록 갈루치한테 지시를 하였고..."]

1차 북핵 위기가 일단락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또다시 북한 외교관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포문을 연 건 지난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김 부상은 담화문에서 한미연합공중훈련을 문제 삼으며,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 포기를 강요하면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을 재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24일, 대미 외교 핵심 인사로 꼽히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발언을 강하게 비난하며 북미정상회담을 재 고려하는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하겠다고 나섰다.

두 외교관의 잇따른 담화 발표 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됐던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면서 이들의 발언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태를 보다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선 북한 외무성과 외교관이 가지는 특수성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일단 북한은 외교관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일단 외교전사라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일단 당에서 내려온 지침을 관철하는데 있어서 상대방의 배려와 뭐 인정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죠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생존외교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외교전술이 요구 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일단 블러핑 일종의 허풍 전술도 있을 수 있고요. 또 끝까지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벼랑끝외교 등등 수많은 외교전술이 노하우로 축적이 된 상황입니다."]

북한 외무성은 1948년 설립됐다.

내각의 산하 부서들 중 북한 대외정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부서로 알려져 있다.

북한 내부에서 외무성이 차지하는 위상은 1982년 김정일이 외무성을 자신의 직속기관으로 편입시켰던 데서 잘 드러난다.

외교관을 뽑는 기준도 까다롭다.

철저하게 출신성분을 검증한 뒤 능력을 인정받은 엘리트만을 발탁한다.

대부분은 평양 외국어 학원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졸업하면 평양 외국어 대학, 김일성 종합대학, 국제관계대학이라는 외교관 코스를 밟게 된다.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 : "친가 쪽으로는 8촌까지 외가 쪽으로는 4촌 내지 6촌까지 여기에 외국의 친척이 없어야 되고 월남자가 없어야 되고 중국의 친척이 없어야 되고 이런 기준을 맞춰야 되고 그리고 아버지어머니가 현직에 있거나 돌아가셨다 그래도 죽을 때 까지 충성을 다했는지 이 지표가 있어야 되고 그러니까 외무 외교관들을 12살 때부터 키우신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네바 합의의 주역 강석주 역시 평양 외국어 학원과 대학을 졸업한 뒤 모스크바에서 유학까지 한 엘리트다.

강석주는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4년에도 외교무대에 등장해 삼대에 걸쳐 북한 지도자의 신뢰를 받았음을 확인시켰다.

1990년대 북한 외교를 이끈 강석주의 뒤를 이어 2000년대 국제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 바로 김계관이다.

2004년, 제2차 6자회담 수석대표로 베이징을 찾은 김계관.

당시 김계관은 회담을 끝내고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김계관/제2차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 : "기자 선생들이 우리 회담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취재 사업을 하느라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후 김계관은 2008년 6차 6자회담까지 이끌며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존재감을 국제사회에 뚜렷이 각인시켰다.

그리고 매번 흔들림 없이 일관된 태도로 북핵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견제를 교묘하게 빠져나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계관/북한 수석대표/2008년 3월 : "우리는 우라늄 농축도 없고 시리아하고도 핵 협조도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 입장에선 변함 없습니다."]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김계관과 협상을 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의 차관보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 3박 4일 동안 물고 넘어지는 이 김계관의 협상 스타일에 거의 질려버렸 다고 할 정도로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국 가에서 외교라는 것은 승리하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고 협상을 성공하려고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제로섬게임이죠. 상대가 패배하고 자신이 승리하는 관점에서 외교를 추진하기 때문에 거의 뭐 전투 전쟁 수준의 외교를 하고 있다."]

2016년 강석주가 사망하고 김계관 역시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새로운 외교 일꾼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리수용, 리용호, 최선희다.

지난해 4월, 19년 만에 복원된 외교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리수용.

김정은 정권 초기 외무상을 역임하며 다양한 외교무대에 섰던 리수용은 김정은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지난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도발 뒤 유엔 고위급 회의에선 핵불가피론을 주장했다.

[리수용/당시 북한 외무상 : "남은 것은 오직 하나,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조선중앙TV/2016년 6월 : "주체 조선의 핵공격 능력을 강화하는 데서 거대한 우위를 가지는 지상 대 지상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켓 ‘화성-10’..."]

2016년 6월, 북한은 여섯 번째 시도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무수단 발사에 성공했다.

사거리 3천 킬로미터. 북한이 직접 괌 미군 기지를 목표로 한 것이라 밝히면서 국제사회의 파장이 커지자, 이번에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국장이 대표로 입장을 밝혔다.

[최선희/당시 북한 외무성 부국장 : "미국의 적대정책이 여전합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임할 생각이 없습니다."]

같은해 9월에는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의 핵무장을 옹호하는데 시간 대부분을 할애했다.

[리용호/북한 외무상 :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는 핵 보유국이 존재하는 한 우리 국가의 안전과 조선반도의 평화는오직 믿음직한 핵 억제력으로서만 (지킬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비난에는 귀를 닫은 채 일방적으로 북한의 입장만을 주장하는 북한 외교관들.전문가들은 이 역시 북한 외무성만의 특징적인 외교전략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북한 외무성이 갖는 독특한 외교의 특성 중에 하나는 핵 외교입니다. 북한은 핵보유가 생존전략으로 간주하고 있고 이 핵개발을 통해서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을 움직여서 자신들의 국익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이 핵을 개발하는 내부의 어떤 전략을 외교로 승화시켜서 자신들의 국익을 극대화시키는 북한의 핵외교는 북한의 외무성이 30년 동안에 일종의 노하우로서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여타 국가들이 북한 외무성을 상대로 협상을 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속으로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충분히 인식 할 것이라고 전직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민은 전한다.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 : "강성발언들을 하지만 사실은 북한외교관들이 나와 다니면서 보면서 미국이라는 서방이라는 한국이라는 실체를 다 알겠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머리가 얼마나 요란하고 대단하다고 미국하고 맞서서 싸워서 이길 수나 있겠으며 이런 거는 본인들이 생각을 한다는 거죠. 일단은 강한 소리를 해야 칭찬을 받고 그리고 지도자가 우리 공화국의 본때를 잘 보여주고 왔다 그러고 훈장도 주고 선물도 주고 하 니까 자꾸 그런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런 과정에서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외교관들의 이탈도 생겨나고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망명이 대표적 사례다.

[태영호/前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 "북한에만 살았으면 자유나 민주주의의 이런 가치를 잘 모르고 그야말로 노예처럼 생활하면서 자기가 어떤 처지에 생활하는 걸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해외에 와서 정말 살면서 아, 이거 인간으로 이렇게 사는 그것 인간이 아니로구나."]

더욱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북한의 위상이 약화되고 또 경제난이 거듭되고 있다는 점도 북한 외교관의 이탈을 부채질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 : "지금은 좀 많이 위축이 된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외교도 대사관도 많이 철수를 하고 외화사정이 긴장을 해서 철수도 하고 외교활동의 폭도 줄어들면서 북한외교가 현재 차지하는 현재 국제외교에서 차지하는 몫은 이전에 비해서 많이 적어졌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철저한 성분 검증과 조기 엘리트 교육을 거쳐 북한 대외 정책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는 북한 외교관.

파행국면인 북미관계와 한반도 평화 정착 과정에 북한 외교관의 행보가 또 어떠한 변수로 작용 할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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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전면 나선 ‘대미 외교 일꾼’…북한 외무성은?
    • 입력 2018-05-26 08:49:20
    • 수정2018-05-26 09:06:11
    남북의 창
[앵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한 가장 큰 이유, 바로 북한의 적대적 태도인데요.

그 선봉에 나선 인물, 북한에서 이른바 미국을 담당하고 있는 외교관들입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나선 뒤 이들은 이른바 ‘핵외교’의 성과를 내기 위해 국제무대에서 줄곧 강경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는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외교 일꾼이라 불리는 북한의 외교관들을 전격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조선중앙TV/1993년 3월 : "나라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부득이 핵무기전가방지 조약에서 탈퇴한다는 것을 선포한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가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 양이 적다며 영변 핵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1993년 3월 12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를 선언한다.

한반도에 위기가 엄습했고, 북미 간에는 전쟁 직전의 긴장이 조성됐다.

하지만 곧 두 나라는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 한다는데 뜻을 모으고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북미 고위급 회담의 시작이다.

당시 세계 언론의 이목은 갈루치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를 상대할 북한 대표에 집중됐다.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제네바에 입성한 인물은 외무성 제1 부부장 강석주였다.

[강석주/북한 수석대표 : "후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담을 앞두고도 비교적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인 강석주.

북한 외교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회담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강석주/북한 수석대표 : "견해를 같이 한 것은 오늘 회담이 아주 유익했다는 거 아주 생산적이었다는 견해를 같이 했습니다. 그 결과는 후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은 제네바 합의서에 서명했다.

[로버트 갈루치/미국 수석대표 : "미국과 북한 양측은 실무 그룹작업에 성실하게 임할 것입니다."]

[강석주/북한 수석대표 :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 합의문을 승인하도록 갈루치한테 지시를 하였고..."]

1차 북핵 위기가 일단락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또다시 북한 외교관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포문을 연 건 지난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김 부상은 담화문에서 한미연합공중훈련을 문제 삼으며,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 포기를 강요하면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을 재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24일, 대미 외교 핵심 인사로 꼽히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발언을 강하게 비난하며 북미정상회담을 재 고려하는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하겠다고 나섰다.

두 외교관의 잇따른 담화 발표 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됐던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면서 이들의 발언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태를 보다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선 북한 외무성과 외교관이 가지는 특수성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일단 북한은 외교관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일단 외교전사라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일단 당에서 내려온 지침을 관철하는데 있어서 상대방의 배려와 뭐 인정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죠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생존외교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외교전술이 요구 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일단 블러핑 일종의 허풍 전술도 있을 수 있고요. 또 끝까지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벼랑끝외교 등등 수많은 외교전술이 노하우로 축적이 된 상황입니다."]

북한 외무성은 1948년 설립됐다.

내각의 산하 부서들 중 북한 대외정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부서로 알려져 있다.

북한 내부에서 외무성이 차지하는 위상은 1982년 김정일이 외무성을 자신의 직속기관으로 편입시켰던 데서 잘 드러난다.

외교관을 뽑는 기준도 까다롭다.

철저하게 출신성분을 검증한 뒤 능력을 인정받은 엘리트만을 발탁한다.

대부분은 평양 외국어 학원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졸업하면 평양 외국어 대학, 김일성 종합대학, 국제관계대학이라는 외교관 코스를 밟게 된다.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 : "친가 쪽으로는 8촌까지 외가 쪽으로는 4촌 내지 6촌까지 여기에 외국의 친척이 없어야 되고 월남자가 없어야 되고 중국의 친척이 없어야 되고 이런 기준을 맞춰야 되고 그리고 아버지어머니가 현직에 있거나 돌아가셨다 그래도 죽을 때 까지 충성을 다했는지 이 지표가 있어야 되고 그러니까 외무 외교관들을 12살 때부터 키우신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네바 합의의 주역 강석주 역시 평양 외국어 학원과 대학을 졸업한 뒤 모스크바에서 유학까지 한 엘리트다.

강석주는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4년에도 외교무대에 등장해 삼대에 걸쳐 북한 지도자의 신뢰를 받았음을 확인시켰다.

1990년대 북한 외교를 이끈 강석주의 뒤를 이어 2000년대 국제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 바로 김계관이다.

2004년, 제2차 6자회담 수석대표로 베이징을 찾은 김계관.

당시 김계관은 회담을 끝내고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김계관/제2차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 : "기자 선생들이 우리 회담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취재 사업을 하느라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후 김계관은 2008년 6차 6자회담까지 이끌며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존재감을 국제사회에 뚜렷이 각인시켰다.

그리고 매번 흔들림 없이 일관된 태도로 북핵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견제를 교묘하게 빠져나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계관/북한 수석대표/2008년 3월 : "우리는 우라늄 농축도 없고 시리아하고도 핵 협조도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 입장에선 변함 없습니다."]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김계관과 협상을 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의 차관보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 3박 4일 동안 물고 넘어지는 이 김계관의 협상 스타일에 거의 질려버렸 다고 할 정도로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국 가에서 외교라는 것은 승리하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고 협상을 성공하려고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제로섬게임이죠. 상대가 패배하고 자신이 승리하는 관점에서 외교를 추진하기 때문에 거의 뭐 전투 전쟁 수준의 외교를 하고 있다."]

2016년 강석주가 사망하고 김계관 역시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새로운 외교 일꾼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리수용, 리용호, 최선희다.

지난해 4월, 19년 만에 복원된 외교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리수용.

김정은 정권 초기 외무상을 역임하며 다양한 외교무대에 섰던 리수용은 김정은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지난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도발 뒤 유엔 고위급 회의에선 핵불가피론을 주장했다.

[리수용/당시 북한 외무상 : "남은 것은 오직 하나,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조선중앙TV/2016년 6월 : "주체 조선의 핵공격 능력을 강화하는 데서 거대한 우위를 가지는 지상 대 지상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켓 ‘화성-10’..."]

2016년 6월, 북한은 여섯 번째 시도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무수단 발사에 성공했다.

사거리 3천 킬로미터. 북한이 직접 괌 미군 기지를 목표로 한 것이라 밝히면서 국제사회의 파장이 커지자, 이번에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국장이 대표로 입장을 밝혔다.

[최선희/당시 북한 외무성 부국장 : "미국의 적대정책이 여전합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임할 생각이 없습니다."]

같은해 9월에는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의 핵무장을 옹호하는데 시간 대부분을 할애했다.

[리용호/북한 외무상 :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는 핵 보유국이 존재하는 한 우리 국가의 안전과 조선반도의 평화는오직 믿음직한 핵 억제력으로서만 (지킬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비난에는 귀를 닫은 채 일방적으로 북한의 입장만을 주장하는 북한 외교관들.전문가들은 이 역시 북한 외무성만의 특징적인 외교전략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북한 외무성이 갖는 독특한 외교의 특성 중에 하나는 핵 외교입니다. 북한은 핵보유가 생존전략으로 간주하고 있고 이 핵개발을 통해서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을 움직여서 자신들의 국익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이 핵을 개발하는 내부의 어떤 전략을 외교로 승화시켜서 자신들의 국익을 극대화시키는 북한의 핵외교는 북한의 외무성이 30년 동안에 일종의 노하우로서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여타 국가들이 북한 외무성을 상대로 협상을 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속으로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충분히 인식 할 것이라고 전직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민은 전한다.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 : "강성발언들을 하지만 사실은 북한외교관들이 나와 다니면서 보면서 미국이라는 서방이라는 한국이라는 실체를 다 알겠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머리가 얼마나 요란하고 대단하다고 미국하고 맞서서 싸워서 이길 수나 있겠으며 이런 거는 본인들이 생각을 한다는 거죠. 일단은 강한 소리를 해야 칭찬을 받고 그리고 지도자가 우리 공화국의 본때를 잘 보여주고 왔다 그러고 훈장도 주고 선물도 주고 하 니까 자꾸 그런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런 과정에서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외교관들의 이탈도 생겨나고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망명이 대표적 사례다.

[태영호/前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 "북한에만 살았으면 자유나 민주주의의 이런 가치를 잘 모르고 그야말로 노예처럼 생활하면서 자기가 어떤 처지에 생활하는 걸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해외에 와서 정말 살면서 아, 이거 인간으로 이렇게 사는 그것 인간이 아니로구나."]

더욱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북한의 위상이 약화되고 또 경제난이 거듭되고 있다는 점도 북한 외교관의 이탈을 부채질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 : "지금은 좀 많이 위축이 된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외교도 대사관도 많이 철수를 하고 외화사정이 긴장을 해서 철수도 하고 외교활동의 폭도 줄어들면서 북한외교가 현재 차지하는 현재 국제외교에서 차지하는 몫은 이전에 비해서 많이 적어졌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철저한 성분 검증과 조기 엘리트 교육을 거쳐 북한 대외 정책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는 북한 외교관.

파행국면인 북미관계와 한반도 평화 정착 과정에 북한 외교관의 행보가 또 어떠한 변수로 작용 할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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