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밥이라고 주나”…대한항공 승무원의 분통

입력 2018.06.0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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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뜬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길.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설렘은 비행기 안에서의 식사, 바로 기내식일텐데요. 밥이 식어 굳어도, 밑반찬 가짓수가 적어도, 특별한 장소인 덕에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거겠죠.

"규정조차 위반하며 저런 걸 먹는 거죠"

그런데 위 사진을 보면 어떠신가요? 최근 현직 항공사 승무원들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학재 의원실에 제보해 온 내용 중 일부입니다. 불고기 버거 하나에 새우과자 한 봉지. 버거 속살은 듬성 비었고, 고기는 덜 익은 듯 합니다. 다름아닌 지난 4월 말, 대한항공 중국 다롄(大連)행 기내에서 승무원들에게 지급된 도시락입니다.

얼핏 봐도 3000~40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보다 못해 보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질이 문제일까요? 당시 회사 측은 이 도시락을 기장과 부기장을 포함한 운항 및 객실 승무원 모두에게 동시에 지급했습니다. 이는 대한항공이 국토부로부터 인가받은 '비행운영규범'(FOM·Flight Operations Manual) 위반입니다. 이 규범은 운항 관련 종사자들이 지켜야 할 정책과 절차, 기준 등을 정리해 놓은 지침서입니다. 그래서 '안전운항 바이블'이라고도 불립니다. 음식물 관련 내용을 추리면 이렇습니다.

비행운영규범
운항승무원은 음식으로 인한 해와 독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래 절차를 따라야 한다.
●비행 중 운항승무원 식사는 비행 안전 및 식중독 가능성을 고려하여 운항 승무원마다 각기 다른 시간에 다른 종류의 음식을 취식하도록 한다.
●비행 중에는 회사에서 기내식으로 인가된 음식물만을 취식해야 하며, 기내식이라도 변질되거나 변질 우려가 있는 음식물은 절대 취식해서는 안 된다.

대한항공 측에 이유를 물었습니다. "해당 음식은 기내 도시락이 아닌 승객에게 제공되는 '엑스트라'(extra·간식)로 보인다. 이 음식이 실제 운항·객실 승무원들에게 지급됐다면 그 경위부터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로선 '비행운영규범 위반' 여부도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조 패밀리 자회사에서 비싸게 사 와요"

납득이 좀 되시나요? 그럼 이번엔 어떠신가요? 앞선 사진보다 조금은 나아보이지만 부실한 건 여전합니다. 그런데 이 도시락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모두 대한항공 제주 노선 객실 승무원들에게 지급됐다는 점입니다. 이 도시락은 어디서 만들까요? 아래 사진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도시락 스티커를 보면 납품처는 '제주 칼(KAL) 호텔'입니다. 2014년 12월 '땅콩회항 사건'의 주인공, 조현아 씨가 대한항공 부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올해 4월에 사장으로 일시 복귀했던 곳입니다. '칼 호텔'은 제주에만 두 곳이 있습니다. 이 도시락이 제주 노선에만 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수준의 도시락을 호텔에서 만든다는 것도 믿기 힘들지만,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복수의 승무원들은 이 도시락 가격을 '1만 5000원 정도'라고 증언했습니다. 대한항공이나 칼 호텔이나 모두 한진그룹 계열사죠. 그래서 "1만 5000원은 고사하고 몇 천 원도 안 돼 보이는 도시락을 내부 거래를 통해 납품받는 일종의 '일감 몰아주기' 아니냐"라고 묻고 있습니다.

"모든 국내선 도시락을 칼 호텔에서 제공하지는 않아요. 제주공항 연결편만 그래요. 다른 공항은 다른 업체이겠지만, 저 도시락보다 더 질이 떨어지죠." (대한항공 A 승무원)

"국제선 편에 저런 운항 승무원(기장) 식사는 탑재가 되는데 객실 승무원은 아예 식사가 안 실리는 경우가 많아서 남는 거 알아서 챙겨먹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한항공 B 승무원)


대한항공, "칼 호텔과의 계약은 대외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이학재 의원실은 감독기관인 국토부를 통해 대한항공 측에 '칼 호텔과의 기내 도시락 계약 현황'을 물었습니다. 계약 기간과 납품 단가, 수량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한항공 측은 질의 사흘 뒤 한 줄짜리 회신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타 회사와의 거래 계약에 관한 자료로, 대외비에 해당돼 자료 제공이 어렵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이학재 의원은 "'땅콩회항 사건' 이후 대한항공이 국토부 공무원들에게 좌석 업그레이드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칼피아'(대한항공 KAL+마피아) 논란으로 확산됐다"면서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국토부가 개입에 소극적인 것은 감독기관으로서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달 18일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해 조현아 씨에게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과태료 150만 원을 물리는데 3년 6개월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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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걸 밥이라고 주나”…대한항공 승무원의 분통
    • 입력 2018-06-04 14:07:04
    취재K
달뜬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길.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설렘은 비행기 안에서의 식사, 바로 기내식일텐데요. 밥이 식어 굳어도, 밑반찬 가짓수가 적어도, 특별한 장소인 덕에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거겠죠.

"규정조차 위반하며 저런 걸 먹는 거죠"

그런데 위 사진을 보면 어떠신가요? 최근 현직 항공사 승무원들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학재 의원실에 제보해 온 내용 중 일부입니다. 불고기 버거 하나에 새우과자 한 봉지. 버거 속살은 듬성 비었고, 고기는 덜 익은 듯 합니다. 다름아닌 지난 4월 말, 대한항공 중국 다롄(大連)행 기내에서 승무원들에게 지급된 도시락입니다.

얼핏 봐도 3000~40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보다 못해 보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질이 문제일까요? 당시 회사 측은 이 도시락을 기장과 부기장을 포함한 운항 및 객실 승무원 모두에게 동시에 지급했습니다. 이는 대한항공이 국토부로부터 인가받은 '비행운영규범'(FOM·Flight Operations Manual) 위반입니다. 이 규범은 운항 관련 종사자들이 지켜야 할 정책과 절차, 기준 등을 정리해 놓은 지침서입니다. 그래서 '안전운항 바이블'이라고도 불립니다. 음식물 관련 내용을 추리면 이렇습니다.

비행운영규범
운항승무원은 음식으로 인한 해와 독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래 절차를 따라야 한다.
●비행 중 운항승무원 식사는 비행 안전 및 식중독 가능성을 고려하여 운항 승무원마다 각기 다른 시간에 다른 종류의 음식을 취식하도록 한다.
●비행 중에는 회사에서 기내식으로 인가된 음식물만을 취식해야 하며, 기내식이라도 변질되거나 변질 우려가 있는 음식물은 절대 취식해서는 안 된다.

대한항공 측에 이유를 물었습니다. "해당 음식은 기내 도시락이 아닌 승객에게 제공되는 '엑스트라'(extra·간식)로 보인다. 이 음식이 실제 운항·객실 승무원들에게 지급됐다면 그 경위부터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로선 '비행운영규범 위반' 여부도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조 패밀리 자회사에서 비싸게 사 와요"

납득이 좀 되시나요? 그럼 이번엔 어떠신가요? 앞선 사진보다 조금은 나아보이지만 부실한 건 여전합니다. 그런데 이 도시락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모두 대한항공 제주 노선 객실 승무원들에게 지급됐다는 점입니다. 이 도시락은 어디서 만들까요? 아래 사진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도시락 스티커를 보면 납품처는 '제주 칼(KAL) 호텔'입니다. 2014년 12월 '땅콩회항 사건'의 주인공, 조현아 씨가 대한항공 부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올해 4월에 사장으로 일시 복귀했던 곳입니다. '칼 호텔'은 제주에만 두 곳이 있습니다. 이 도시락이 제주 노선에만 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수준의 도시락을 호텔에서 만든다는 것도 믿기 힘들지만,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복수의 승무원들은 이 도시락 가격을 '1만 5000원 정도'라고 증언했습니다. 대한항공이나 칼 호텔이나 모두 한진그룹 계열사죠. 그래서 "1만 5000원은 고사하고 몇 천 원도 안 돼 보이는 도시락을 내부 거래를 통해 납품받는 일종의 '일감 몰아주기' 아니냐"라고 묻고 있습니다.

"모든 국내선 도시락을 칼 호텔에서 제공하지는 않아요. 제주공항 연결편만 그래요. 다른 공항은 다른 업체이겠지만, 저 도시락보다 더 질이 떨어지죠." (대한항공 A 승무원)

"국제선 편에 저런 운항 승무원(기장) 식사는 탑재가 되는데 객실 승무원은 아예 식사가 안 실리는 경우가 많아서 남는 거 알아서 챙겨먹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한항공 B 승무원)


대한항공, "칼 호텔과의 계약은 대외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이학재 의원실은 감독기관인 국토부를 통해 대한항공 측에 '칼 호텔과의 기내 도시락 계약 현황'을 물었습니다. 계약 기간과 납품 단가, 수량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한항공 측은 질의 사흘 뒤 한 줄짜리 회신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타 회사와의 거래 계약에 관한 자료로, 대외비에 해당돼 자료 제공이 어렵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이학재 의원은 "'땅콩회항 사건' 이후 대한항공이 국토부 공무원들에게 좌석 업그레이드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칼피아'(대한항공 KAL+마피아) 논란으로 확산됐다"면서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국토부가 개입에 소극적인 것은 감독기관으로서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달 18일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해 조현아 씨에게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과태료 150만 원을 물리는데 3년 6개월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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