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몰카 르포① “그러니까 알아서 조심하지 그랬어”

입력 2018.06.04 (18:09) 수정 2018.06.0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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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 찍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크게 의식을 못 하고 살았는데 여대에 입학한 뒤에는 특히 그래요.”

이화여대 의류학과에 재학 중인 차예린(21) 씨는 몰카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쳤다.

지난 2월 이화여대 정문에서 불과 3분 거리인 한 작은 사진관에서 2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의 몰카가 찍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저렴한 가격으로 여권 사진과 증명사진을 찍을 수 있어 인기를 끌던 곳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증명사진을 찍는 이 평범한 사진관이 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인해 범죄의 장소가 돼버렸다.

지난달 28일 이곳 아르바이트생인 서 모 씨(23, 남)가 사진관에서 일하며 고객들과 동료 직원들을 불법 촬영하고 강제 추행한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다. 서 씨는 지난해 5월부터 약 9달 동안 200여 명을 225회에 걸쳐 불법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 씨는 증명사진 원본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한 뒤 여성들을 사진관 컴퓨터에 앉혀 이메일 주소를 쓰도록 유도하고, 몸을 숙이면 카메라로 치마 속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현재도 영업 중인 사진관 앞에는 'CCTV 촬영 중, 범죄 예방 성추행 방지'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사진관 몰카 이전에도 몰카는 존재했다

지난 2014년 중국인 관광객들이 이대생들의 특정부위를 찍어 중국 사이트에 올렸던 중국인 관광객 몰카를 비롯해 지난 4월 음란물 사이트에 '이대 화장실 몰카'라는 이름의 게시물이 올라오는 등 20대 초반의 여대생들이 많이 모여 있는 이화여대는 쉽게 몰카 범죄의 타겟이 되곤 한다.

이 학교 졸업생 오수진 (31) 씨는 "분명히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임에도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범죄가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게 너무 어이없다"고 분노했다.

몰카는 비단 이화여대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성들에게 몰카는 이제 일상의 공포다. 지하철, 화장실, 헬스장, 사우나 등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여성들은 몰카의 위험에 노출된다.

홍은표 씨(32)는 "내가 직접 몰카범을 목격한 것만 4번"이라며, "사당역에서 운동화에 몰카를 숨기고 촬영하던 남자, 신촌역에서 휴대전화로 촬영하며 쫓아오던 남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기술의 발달로 무엇이든 찍을 수 있는 초소형 카메라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 누구나 초소형 카메라를 구매할 수 있다. 휴대폰 카메라, 혹은 물통, USB, 손목시계 등의 생활용품에 내장된 카메라 덕분에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언제든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무엇이든 눈치 보지 않고 쉽게 찍을 수 있는 편리함은 역설적으로 어디서든 쉽게 찍힐 수 있는 불안함으로 이어졌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몰카 범죄가 전체 성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7.9%로 2007년 3.9%와 비교해 크게 늘었다.

초소형 카메라 판매 홈페이지 화면 캡처초소형 카메라 판매 홈페이지 화면 캡처

조완서 (20) 씨는 "공중화장실은 웬만하면 안 가고, 가더라도 천장을 보거나 벽면을 살피며 두리번댄다"며“혹시 찍힐까 봐 자주 주위를 살피곤 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옷을 갈아입는 지극히 일상적인 활동들이 몰래 찍히고, 본인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인터넷에서 성적으로 소비되고 유통된다.

경찰 가짜 몰카 유통 실험...2주 만에 다운로드 2만 6천 건

몰카는 텀블러 등 SNS 기반의 사이트나 일간 베스트 등의 커뮤니티, 국내 파일공유사이트 등을 통해 퍼져나간다. 다운로드 수도 상당하다. 공식 집계된 몰카의 다운로드 수는 없지만, 지난해 10월 부산경찰청이 가짜 몰래카메라 영상을 만들어 파일 공유 사이트에 올린 결과, 불과 2주 만에 이용자들이 2만 6천 건이나 영상을 내려받았다.

몰카는 인터넷으로 유통되면서 2차 가해로 이어진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몰래 촬영 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몰카에 찍힌 여성들의 얼굴이나 신체 부위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돌며 불특정 다수에게 품평 당한다.

김현지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여성의 모습을 함부로 찍고 보는 것이 일종의 놀이 문화처럼 소비되는 구조가 분명히 있다"며, "그 촬영물이 대상이 된 사람을 인격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명백한 범죄임에도 서로 몰카 촬영물을 공유하고, 그 여성의 신체 부위를 품평하는 것은 심각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특정인의 몰카가 찍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몰카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검색으로 실시간 검색어에 특정인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지난 5월, 3년 전 촬영했던 스튜디오 사진이 유출된 C씨의 경우 유튜브에 자신은 성범죄 피해자라며 눈물로 고백하는 영상을 올린 뒤, 주요 포털사이트에 'C씨', 'C씨 동영상' 등의 키워드가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심지어 해외 포르노 사이트에서까지 'C씨'라는 이름이 주요 검색어로 등장하기도 했다.

출처 : C씨 유튜브출처 : C씨 유튜브

20년 지났지만 인식은 여전히 A양 B양 비디오 수준

거의 20년 전에 일어난, A양 비디오나 B양 비디오 유출 사건 때와 전혀 나아지지 않은 인식이다. 당시에도 개인의 사생활이 담긴 비디오가 유출된 명백한 범죄 행위였지만, 유출자를 비난하기에 앞서 영상을 돌려보거나, 피해자의 사생활에 대해 평가하는 2차 가해가 이뤄졌고, 해당 연예인들은 한동안 방송에 나올 수 없었다.

일반인의 리벤지 포르노가 유출될 때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는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된 피해자임에도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시달린다.

디지털 장의업체 산타크루즈 김나경 팀장은 "지하철이나 백화점 같은 곳에서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영상이 인터넷을 떠돈다는 것을 알게 된 피해자들도 상당하다"며. "몰카 삭제를 의뢰한 피해자 중에는 몰카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로 인해 치료를 받다가, 결국 저희와도 연락이 끊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남자친구가 몰래 찍은 영상이 헤어진 뒤 유통되거나, 모텔에서 설치된 몰카에 자신도 모르게 찍힌 경우 등 다양한 종류의 몰카 삭제 요청 의뢰 들어와 저희 업체에서만 한 달에 20여 건 정도 삭제 작업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이미 몰카의 피해자로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은 여성으로 해야 할 처신을 운운하는 사회적인 통념이나 시선으로 또 한 번 고통당하게 된다.

"더 조심하지 그랬어"...'피해자다움'의 이중성

한국 여성의 전화 최선혜 소장은 "사회에서는 유독 성범죄에서만 끝없이 '피해자다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며 " '피해자가 조심했어야 한다'고 말하거나 본인이 생각하는 피해자다움과 거리가 있으면, 피해자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며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수사기관이나 원색적인 언론 보도 등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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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몰카 르포① “그러니까 알아서 조심하지 그랬어”
    • 입력 2018-06-04 18:09:59
    • 수정2018-06-04 20:17:57
    취재K
“언제 어디서 찍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크게 의식을 못 하고 살았는데 여대에 입학한 뒤에는 특히 그래요.”

이화여대 의류학과에 재학 중인 차예린(21) 씨는 몰카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쳤다.

지난 2월 이화여대 정문에서 불과 3분 거리인 한 작은 사진관에서 2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의 몰카가 찍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저렴한 가격으로 여권 사진과 증명사진을 찍을 수 있어 인기를 끌던 곳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증명사진을 찍는 이 평범한 사진관이 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인해 범죄의 장소가 돼버렸다.

지난달 28일 이곳 아르바이트생인 서 모 씨(23, 남)가 사진관에서 일하며 고객들과 동료 직원들을 불법 촬영하고 강제 추행한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다. 서 씨는 지난해 5월부터 약 9달 동안 200여 명을 225회에 걸쳐 불법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 씨는 증명사진 원본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한 뒤 여성들을 사진관 컴퓨터에 앉혀 이메일 주소를 쓰도록 유도하고, 몸을 숙이면 카메라로 치마 속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현재도 영업 중인 사진관 앞에는 'CCTV 촬영 중, 범죄 예방 성추행 방지'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사진관 몰카 이전에도 몰카는 존재했다

지난 2014년 중국인 관광객들이 이대생들의 특정부위를 찍어 중국 사이트에 올렸던 중국인 관광객 몰카를 비롯해 지난 4월 음란물 사이트에 '이대 화장실 몰카'라는 이름의 게시물이 올라오는 등 20대 초반의 여대생들이 많이 모여 있는 이화여대는 쉽게 몰카 범죄의 타겟이 되곤 한다.

이 학교 졸업생 오수진 (31) 씨는 "분명히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임에도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범죄가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게 너무 어이없다"고 분노했다.

몰카는 비단 이화여대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성들에게 몰카는 이제 일상의 공포다. 지하철, 화장실, 헬스장, 사우나 등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여성들은 몰카의 위험에 노출된다.

홍은표 씨(32)는 "내가 직접 몰카범을 목격한 것만 4번"이라며, "사당역에서 운동화에 몰카를 숨기고 촬영하던 남자, 신촌역에서 휴대전화로 촬영하며 쫓아오던 남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기술의 발달로 무엇이든 찍을 수 있는 초소형 카메라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 누구나 초소형 카메라를 구매할 수 있다. 휴대폰 카메라, 혹은 물통, USB, 손목시계 등의 생활용품에 내장된 카메라 덕분에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언제든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무엇이든 눈치 보지 않고 쉽게 찍을 수 있는 편리함은 역설적으로 어디서든 쉽게 찍힐 수 있는 불안함으로 이어졌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몰카 범죄가 전체 성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7.9%로 2007년 3.9%와 비교해 크게 늘었다.

초소형 카메라 판매 홈페이지 화면 캡처
조완서 (20) 씨는 "공중화장실은 웬만하면 안 가고, 가더라도 천장을 보거나 벽면을 살피며 두리번댄다"며“혹시 찍힐까 봐 자주 주위를 살피곤 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옷을 갈아입는 지극히 일상적인 활동들이 몰래 찍히고, 본인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인터넷에서 성적으로 소비되고 유통된다.

경찰 가짜 몰카 유통 실험...2주 만에 다운로드 2만 6천 건

몰카는 텀블러 등 SNS 기반의 사이트나 일간 베스트 등의 커뮤니티, 국내 파일공유사이트 등을 통해 퍼져나간다. 다운로드 수도 상당하다. 공식 집계된 몰카의 다운로드 수는 없지만, 지난해 10월 부산경찰청이 가짜 몰래카메라 영상을 만들어 파일 공유 사이트에 올린 결과, 불과 2주 만에 이용자들이 2만 6천 건이나 영상을 내려받았다.

몰카는 인터넷으로 유통되면서 2차 가해로 이어진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몰래 촬영 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몰카에 찍힌 여성들의 얼굴이나 신체 부위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돌며 불특정 다수에게 품평 당한다.

김현지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여성의 모습을 함부로 찍고 보는 것이 일종의 놀이 문화처럼 소비되는 구조가 분명히 있다"며, "그 촬영물이 대상이 된 사람을 인격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명백한 범죄임에도 서로 몰카 촬영물을 공유하고, 그 여성의 신체 부위를 품평하는 것은 심각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특정인의 몰카가 찍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몰카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검색으로 실시간 검색어에 특정인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지난 5월, 3년 전 촬영했던 스튜디오 사진이 유출된 C씨의 경우 유튜브에 자신은 성범죄 피해자라며 눈물로 고백하는 영상을 올린 뒤, 주요 포털사이트에 'C씨', 'C씨 동영상' 등의 키워드가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심지어 해외 포르노 사이트에서까지 'C씨'라는 이름이 주요 검색어로 등장하기도 했다.

출처 : C씨 유튜브
20년 지났지만 인식은 여전히 A양 B양 비디오 수준

거의 20년 전에 일어난, A양 비디오나 B양 비디오 유출 사건 때와 전혀 나아지지 않은 인식이다. 당시에도 개인의 사생활이 담긴 비디오가 유출된 명백한 범죄 행위였지만, 유출자를 비난하기에 앞서 영상을 돌려보거나, 피해자의 사생활에 대해 평가하는 2차 가해가 이뤄졌고, 해당 연예인들은 한동안 방송에 나올 수 없었다.

일반인의 리벤지 포르노가 유출될 때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는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된 피해자임에도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시달린다.

디지털 장의업체 산타크루즈 김나경 팀장은 "지하철이나 백화점 같은 곳에서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영상이 인터넷을 떠돈다는 것을 알게 된 피해자들도 상당하다"며. "몰카 삭제를 의뢰한 피해자 중에는 몰카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로 인해 치료를 받다가, 결국 저희와도 연락이 끊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남자친구가 몰래 찍은 영상이 헤어진 뒤 유통되거나, 모텔에서 설치된 몰카에 자신도 모르게 찍힌 경우 등 다양한 종류의 몰카 삭제 요청 의뢰 들어와 저희 업체에서만 한 달에 20여 건 정도 삭제 작업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이미 몰카의 피해자로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은 여성으로 해야 할 처신을 운운하는 사회적인 통념이나 시선으로 또 한 번 고통당하게 된다.

"더 조심하지 그랬어"...'피해자다움'의 이중성

한국 여성의 전화 최선혜 소장은 "사회에서는 유독 성범죄에서만 끝없이 '피해자다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며 " '피해자가 조심했어야 한다'고 말하거나 본인이 생각하는 피해자다움과 거리가 있으면, 피해자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며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수사기관이나 원색적인 언론 보도 등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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