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1주년 “외로운 늑대 정보 공개”…배경은?

입력 2018.06.05 (07:55) 수정 2018.06.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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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년' ... 영국 테러 추모식 잇따라

영국을 뒤흔든 런던 브릿지 테러가 발생한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런던 브릿지 테러는 2017년 6월 3일 밤(현지시각) 런던 브릿지 위를 달리던 승합차 한 대가 시속 80킬로미터 속도로 다리 위 행인들을 덮치면서 시작됐다. 이후 테러범들은 다리 남단 보로우 시장 입구에서 내려 행인과 인근 식당과 바에 있던 손님들에게 닥치는 대로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이 도착해 진압 작전이 끝나기까지 불과 10분 만에 8명(테러범 3명 포함)이 숨지고 48명이 다쳤다.

1년이 지나 테러 현장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와 사디크 칸 런던시장, 사지드 자비드 내무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차분한 분위기 속에 추모식이 열렸다.

앞서 지난달 22일에는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테러 1주년 추모식이 진행됐다. 지난해 5월 22일 아레나에서는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 콘서트 도중 자살폭탄 테러로 22명이 사망하고 115명이 부상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날 추모 행사에도 수많은 영국인이 참여해 1년 전 충격과 슬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 테러범 정보, 'MI5' 손바닥 안에

지난해 영국에서 발생한 테러만 5건.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테러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국내정보국, MI5는 현재 '잠재적 테러리스트' 3천 명이 연루된 테러 모의 등 5백 건이 넘는 테러 관련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3천 명 중 5백 명은 '요주의 인물'로 꼽혀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받고 있다. 또한, 테러리스트 동조자(낮은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자국민 2만 명의 정보를 보유하고 감시 중이다.


범행 다음날 새벽 경찰 특공대에 붙잡힌 런던 브릿지 테러 용의자들(여성 4명 포함 12명)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 런던 시내 한 아파트에서 검거된 이들은 체포 당시 영국 억양을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몇 시간 만에 체포가 이뤄진 점, 영국의 정보력이 세계 최강인 점을 고려하면 런던 브릿지 테러 용의자들의 정보도 MI5가 보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3월 22일에도 브릿지 테러와 비슷한 테러가 일어났었다. '의사당 차량 테러'이다. 승용차 한 대가 인도로 돌진해 행인들을 친 뒤 차에서 내린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6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50대 용의자도 영국 태생이었다. 그런데 이슬람교를 믿었던 이 용의자는 범행 몇 년 전 MI5로부터 한차례 조사를 받은 이력이 드러났다. 당시 메이 총리는 이와 관련해 "그가 수사망에 없었던 '주변 인물'"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MI5가 관리하는 '요주의 인물'까진 아니지만 '주변 인물'로서 정보 파일에 있는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IS 등 테러단체들이 테러범 '주변 인물'에 대한 경계가 느슨한 점을 악용하고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 "늑대가 나타났다" ... '2만 명 공개' 추진

이런 가운데 최근 MI5가 테러리스트 동조자로 의심되는 영국 국민에 대한 기밀 정보를 민간 부문과 공유할 수 있다고 BBC가 보도했다. BBC는 사지드 자비드 내무장관이 MI5가 보유 중인 인물 2만여 명에 대한 정보를 민간 부문, 다른 협력자들과 공유하는 방안을 담은 대테러 종합 전략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사지드 자비드 영국 내무장관사지드 자비드 영국 내무장관

극단주의에 심취한 외로운 늑대들에 대한 정보를 사실상 공개해 "늑대가 나타났다"고 경보를 울림으로써 일상으로 침투한 이른바 '소프트 타깃 테러'의 위험을 줄이겠다는 의도이다.

BBC는 영국 정부가 이를 통해 누군가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비축하거나 자동차를 빌리면서 수상한 행동을 하는 등 특이한 징후를 포착했을 경우 가능한 한 신속하게 경보를 울리기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 브렉시트, 또 다른 정보 공개 이유?

영국 정부가 2만 명이나 되는 국민의 정보를 공개하기로 한 데에는 또 다른 속내가 있다.

'테러리스트 주변 인물'에는 포함돼 있었는데 '요주의 인물'이 아니어서 감시를 못했다는 것이 변명 아닌 변명이 된 '의사당 차량 테러' 당시 상황에서 그 속내를 일부 엿볼 수 있다. 영국 정부가 과연 그 많은 사람을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무리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도 실제로 그들을 감시해 테러를 예방하지 못하면 '정보력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영국 경찰과 정보 당국의 인력난도 테러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메이 총리는 지난해 취임하기 전까지 6년 동안 내무부 장관을 맡으면서 경찰 인력 2만 명을 감축한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메이 총리는 영국의 테러 대응력을 떨어뜨렸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설상가상으로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게 되면 유로폴과의 정보 공유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로폴과의 결별 가능성 역시 영국 정부가 테러범 동조자 정보 공유를 결정하게 된 배경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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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러 1주년 “외로운 늑대 정보 공개”…배경은?
    • 입력 2018-06-05 07:55:08
    • 수정2018-06-05 10:05:19
    취재K
■ '벌써 1년' ... 영국 테러 추모식 잇따라

영국을 뒤흔든 런던 브릿지 테러가 발생한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런던 브릿지 테러는 2017년 6월 3일 밤(현지시각) 런던 브릿지 위를 달리던 승합차 한 대가 시속 80킬로미터 속도로 다리 위 행인들을 덮치면서 시작됐다. 이후 테러범들은 다리 남단 보로우 시장 입구에서 내려 행인과 인근 식당과 바에 있던 손님들에게 닥치는 대로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이 도착해 진압 작전이 끝나기까지 불과 10분 만에 8명(테러범 3명 포함)이 숨지고 48명이 다쳤다.

1년이 지나 테러 현장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와 사디크 칸 런던시장, 사지드 자비드 내무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차분한 분위기 속에 추모식이 열렸다.

앞서 지난달 22일에는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테러 1주년 추모식이 진행됐다. 지난해 5월 22일 아레나에서는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 콘서트 도중 자살폭탄 테러로 22명이 사망하고 115명이 부상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날 추모 행사에도 수많은 영국인이 참여해 1년 전 충격과 슬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 테러범 정보, 'MI5' 손바닥 안에

지난해 영국에서 발생한 테러만 5건.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테러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국내정보국, MI5는 현재 '잠재적 테러리스트' 3천 명이 연루된 테러 모의 등 5백 건이 넘는 테러 관련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3천 명 중 5백 명은 '요주의 인물'로 꼽혀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받고 있다. 또한, 테러리스트 동조자(낮은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자국민 2만 명의 정보를 보유하고 감시 중이다.


범행 다음날 새벽 경찰 특공대에 붙잡힌 런던 브릿지 테러 용의자들(여성 4명 포함 12명)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 런던 시내 한 아파트에서 검거된 이들은 체포 당시 영국 억양을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몇 시간 만에 체포가 이뤄진 점, 영국의 정보력이 세계 최강인 점을 고려하면 런던 브릿지 테러 용의자들의 정보도 MI5가 보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3월 22일에도 브릿지 테러와 비슷한 테러가 일어났었다. '의사당 차량 테러'이다. 승용차 한 대가 인도로 돌진해 행인들을 친 뒤 차에서 내린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6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50대 용의자도 영국 태생이었다. 그런데 이슬람교를 믿었던 이 용의자는 범행 몇 년 전 MI5로부터 한차례 조사를 받은 이력이 드러났다. 당시 메이 총리는 이와 관련해 "그가 수사망에 없었던 '주변 인물'"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MI5가 관리하는 '요주의 인물'까진 아니지만 '주변 인물'로서 정보 파일에 있는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IS 등 테러단체들이 테러범 '주변 인물'에 대한 경계가 느슨한 점을 악용하고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 "늑대가 나타났다" ... '2만 명 공개' 추진

이런 가운데 최근 MI5가 테러리스트 동조자로 의심되는 영국 국민에 대한 기밀 정보를 민간 부문과 공유할 수 있다고 BBC가 보도했다. BBC는 사지드 자비드 내무장관이 MI5가 보유 중인 인물 2만여 명에 대한 정보를 민간 부문, 다른 협력자들과 공유하는 방안을 담은 대테러 종합 전략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사지드 자비드 영국 내무장관
극단주의에 심취한 외로운 늑대들에 대한 정보를 사실상 공개해 "늑대가 나타났다"고 경보를 울림으로써 일상으로 침투한 이른바 '소프트 타깃 테러'의 위험을 줄이겠다는 의도이다.

BBC는 영국 정부가 이를 통해 누군가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비축하거나 자동차를 빌리면서 수상한 행동을 하는 등 특이한 징후를 포착했을 경우 가능한 한 신속하게 경보를 울리기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 브렉시트, 또 다른 정보 공개 이유?

영국 정부가 2만 명이나 되는 국민의 정보를 공개하기로 한 데에는 또 다른 속내가 있다.

'테러리스트 주변 인물'에는 포함돼 있었는데 '요주의 인물'이 아니어서 감시를 못했다는 것이 변명 아닌 변명이 된 '의사당 차량 테러' 당시 상황에서 그 속내를 일부 엿볼 수 있다. 영국 정부가 과연 그 많은 사람을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무리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도 실제로 그들을 감시해 테러를 예방하지 못하면 '정보력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영국 경찰과 정보 당국의 인력난도 테러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메이 총리는 지난해 취임하기 전까지 6년 동안 내무부 장관을 맡으면서 경찰 인력 2만 명을 감축한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메이 총리는 영국의 테러 대응력을 떨어뜨렸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설상가상으로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게 되면 유로폴과의 정보 공유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로폴과의 결별 가능성 역시 영국 정부가 테러범 동조자 정보 공유를 결정하게 된 배경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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