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몰카르포② ‘몰카금지 응급키트’ 반격나서는 여성들

입력 2018.06.06 (16:0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혜화역, 1만 명 운집한 여성들의 분노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부근에는 만 여 명의 여성들이 참가한‘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최근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모델을 몰래 촬영한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경찰이 신속하게 수사를 했다고 비난했다. 이번 시위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주제로 만들어진 한 인터넷 카페의 주최로 진행됐다. 이들은 "이전에 무수히 많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 범죄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이뤄지다가 남성 피해자에 대해서만 포토라인에 세우고 구속까지 한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여성들은 전국 각지에서 버스 대절을 하면서까지 모여들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남자만 국민이냐 여자도 국민이다" "동일범죄 저질러도 남자만 무죄판결" "워마드는 압수수색, 소라넷은 17년 방관" 등의 구호를 외쳤다.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전혀 편파 수사가 아니고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거짓 진술 한 점, 휴대전화를 한강에 버린 점을 토대로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구속한 것 뿐"이라며 "이 사건은 발생 시간과 장소가 특정되어 있어서 수사가 빨랐고, 포토라인은 경찰이 세운 것이 아니라 영장실질심사 시각을 알렸을 뿐인데 기자들이 와서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원칙에 따라 수사했을 뿐이라고?

몰카 범죄 피의자의 대다수는 남성, 피해자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검거된 남성 몰카 피의자는 2만 924명으로, 여성 피의자 523명의 30배가 넘는다.


피해자의 경우는 정반대다. 최근 7년간 몰카 범죄 피해자 3만 4,416명 중 여성 피해자가 2만 9,194명인 것에 비해 남성피해자는 876명에 그친다. 80%가 여성 피해자이다. 나머지 4,346명은 화질 문제 등으로 성별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다.


경찰 측의 주장처럼 홍대 몰카 사건이 성별과 관계없이 원칙에 따른 수사라는 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비슷한 사건을 저지른 남성 피의자에 대해서도 신속한 수사와 구속이 이뤄졌어야 한다고 여성들은 주장한다.

"경찰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는 몰카 여성 피해자 수 만큼 많다"

'지난달 28일 부산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대학생 A 씨를 몰래 촬영한 고등학생 B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B 군의 경우는 사진을 삭제하고 혐의를 부인해, 증거 인멸에 해당하지만, 불구속 입건됐다'

'부산의 한의원 원장인 C 씨는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2차례에 걸쳐 직원 탈의실에 구멍을 뚫은 봉투에 공용 휴대전화기를 설치해 여직원들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 촬영했다. C 씨의 경우도 몰카에 이용한 공용 휴대 전화기에서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은 지워, 증거 인멸에 해당하지만 역시 불구속 입건됐다'

페미니즘 책방 달리봄 운영자 류소연 씨는 "여성들은 그동안 굉장히 오랫동안 몰카에 대한 구속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요구해왔다"며,"그럼에도 늘 미적지근한 수사 당국의 태도만 접하다가 성별이 바뀌자 너무도 빠르게 구속 수사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그동안 수사를 못한게 아니라 안한거구나’하는 생각에 허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 변호사회에 따르면 몰카 피의자에 약 70%가 100만 원에서 300만 원의 벌금형을 받는 것에 그친다.

알아서 지키자, ‘몰카 응급 키트’

출처: 인스타그램출처: 인스타그램

여성들은 가만히 있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집단 시위를 진행하며, 수사 당국을 압박하는 동시에 상당수의 공용 화장실 벽면, 변기마다 뚫려 있는 몰카 구멍을 막기 위한 몰카 응급 키트를 제작했다.

몰카 응급 키트에는 카메라 렌즈를 부술 수 있는 송곳과 구멍을 막을 수 있는 실리콘 등이 담겨있다. 여성들은 키트 사용법을 공유하며 서로를 지키기 위한 연대에 나섰다. 순식간에 6백 만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

출처: 텀블벅출처: 텀블벅

이효정 (32)씨는 "물론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며 "나라를 믿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강남역에서 여성 상반신 시위를 주도했던 페미니즘 단체 불꽃페미액션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여성에 대한 몰카 문제를 그냥 장난으로 여기거나, 사소한 일로 치부해 왔다"며, "하지만 여성들이 직면하는 공포는 결코 작지도, 사소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연관기사] 여성 몰카 르포① “그러니까 알아서 조심하지 그랬어”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여성 몰카르포② ‘몰카금지 응급키트’ 반격나서는 여성들
    • 입력 2018-06-06 16:03:55
    취재K
혜화역, 1만 명 운집한 여성들의 분노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부근에는 만 여 명의 여성들이 참가한‘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최근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모델을 몰래 촬영한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경찰이 신속하게 수사를 했다고 비난했다. 이번 시위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주제로 만들어진 한 인터넷 카페의 주최로 진행됐다. 이들은 "이전에 무수히 많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 범죄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이뤄지다가 남성 피해자에 대해서만 포토라인에 세우고 구속까지 한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여성들은 전국 각지에서 버스 대절을 하면서까지 모여들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남자만 국민이냐 여자도 국민이다" "동일범죄 저질러도 남자만 무죄판결" "워마드는 압수수색, 소라넷은 17년 방관" 등의 구호를 외쳤다.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전혀 편파 수사가 아니고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거짓 진술 한 점, 휴대전화를 한강에 버린 점을 토대로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구속한 것 뿐"이라며 "이 사건은 발생 시간과 장소가 특정되어 있어서 수사가 빨랐고, 포토라인은 경찰이 세운 것이 아니라 영장실질심사 시각을 알렸을 뿐인데 기자들이 와서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원칙에 따라 수사했을 뿐이라고?

몰카 범죄 피의자의 대다수는 남성, 피해자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검거된 남성 몰카 피의자는 2만 924명으로, 여성 피의자 523명의 30배가 넘는다.


피해자의 경우는 정반대다. 최근 7년간 몰카 범죄 피해자 3만 4,416명 중 여성 피해자가 2만 9,194명인 것에 비해 남성피해자는 876명에 그친다. 80%가 여성 피해자이다. 나머지 4,346명은 화질 문제 등으로 성별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다.


경찰 측의 주장처럼 홍대 몰카 사건이 성별과 관계없이 원칙에 따른 수사라는 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비슷한 사건을 저지른 남성 피의자에 대해서도 신속한 수사와 구속이 이뤄졌어야 한다고 여성들은 주장한다.

"경찰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는 몰카 여성 피해자 수 만큼 많다"

'지난달 28일 부산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대학생 A 씨를 몰래 촬영한 고등학생 B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B 군의 경우는 사진을 삭제하고 혐의를 부인해, 증거 인멸에 해당하지만, 불구속 입건됐다'

'부산의 한의원 원장인 C 씨는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2차례에 걸쳐 직원 탈의실에 구멍을 뚫은 봉투에 공용 휴대전화기를 설치해 여직원들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 촬영했다. C 씨의 경우도 몰카에 이용한 공용 휴대 전화기에서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은 지워, 증거 인멸에 해당하지만 역시 불구속 입건됐다'

페미니즘 책방 달리봄 운영자 류소연 씨는 "여성들은 그동안 굉장히 오랫동안 몰카에 대한 구속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요구해왔다"며,"그럼에도 늘 미적지근한 수사 당국의 태도만 접하다가 성별이 바뀌자 너무도 빠르게 구속 수사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그동안 수사를 못한게 아니라 안한거구나’하는 생각에 허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 변호사회에 따르면 몰카 피의자에 약 70%가 100만 원에서 300만 원의 벌금형을 받는 것에 그친다.

알아서 지키자, ‘몰카 응급 키트’

출처: 인스타그램
여성들은 가만히 있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집단 시위를 진행하며, 수사 당국을 압박하는 동시에 상당수의 공용 화장실 벽면, 변기마다 뚫려 있는 몰카 구멍을 막기 위한 몰카 응급 키트를 제작했다.

몰카 응급 키트에는 카메라 렌즈를 부술 수 있는 송곳과 구멍을 막을 수 있는 실리콘 등이 담겨있다. 여성들은 키트 사용법을 공유하며 서로를 지키기 위한 연대에 나섰다. 순식간에 6백 만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

출처: 텀블벅
이효정 (32)씨는 "물론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며 "나라를 믿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강남역에서 여성 상반신 시위를 주도했던 페미니즘 단체 불꽃페미액션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여성에 대한 몰카 문제를 그냥 장난으로 여기거나, 사소한 일로 치부해 왔다"며, "하지만 여성들이 직면하는 공포는 결코 작지도, 사소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연관기사] 여성 몰카 르포① “그러니까 알아서 조심하지 그랬어”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