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대법원 판결에도 요지부동…법 위에 군림하는 국회

입력 2018.06.06 (17:43) 수정 2018.06.0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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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성역이 있었다. 과거 군부 독재 시대에는 청와대와 군, 중앙정보부 같은 권력 기관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국가 기관들도 죄를 저지르면 수사를 받고 재판을 거쳐,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예외가 있다. 바로 국회다.


대법원은 지난달 3일, 국회 특수활동비는 비공개 대상 정보가 아니므로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참여연대가 정보공개 행정소송이 제기한 지 3년 만이었다.

앞서 참여연대는 국회 특수활동비 유용 논란이 불거진 2015년 5월 국회사무처에 2011년, 2012년, 2013년 사이 국회 특수활동비의 지출·지급결의서, 지출·지급 승인일자, 금액, 수령인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즉 19대 국회의 특수활동비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국회사무처는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경비로 세부 지출내역이 공개되면 국회 본연의 의정 활동이 위축돼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공개하지 않았고 사건은 법정으로 갔다.

1·2심은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해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국회 활동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고, 최종심의 판단도 같았다.


KBS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국회 특수활동비를 확인하기 위해 국회에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즉 20대 국회 특활비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 했다. 참여연대가 청구했던 내용과 다른 건 단 하나, 기간이었다.

사실 대법원의 판단까지 나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당연히 국회에서 공개할 거라고 믿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정보공개 청구 답변 마감 시한을 가득 채웠지만, 국회에서 한 달만에 돌아온 건 '비공개' 통보였다.

국회는 비공개 결정 사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요청하신 2016, 2017, 2018회계연도 국회 일반회계 4개 세항 특수활동비 집행에 관한 정보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과 관련된 것으로서 진행 중인 재판의 심리 또는 재판결과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제1항제4호 및 제2호, 제5호, 제6호에 따라 해당 정보를 공개하기 어려운 점에 대해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 특활비와 관련된 재판이 진행중이어서 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재판이 뭔지 찾아보니, 20대 국회 특활비를 공개하라는 정보 공개 청구소송이었다.

국회가 특활비와 관련해 같은 사안을 두고 기간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한 채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입법부 수장인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대법원 판결을 수용해 특활비를 공개하겠다고 공언했는데도 '묻지마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 국회 특활비 공개 여부는 이미 14년 전에 결론이 나왔다. 대법원은 2004년 15대 국회의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등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도 계속 혈세를 써가며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버티는 이유에는 여러가지 배경이 있겠지만 특활비 세부 항목 중 '예비금'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용 일시와 장소 등을 역추적하면 특활비를 제대로 썼는지 곧바로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라는 식으로 버틸 것으로 보인다. 아마 시간이 지나가면 잊혀질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간한 '2017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4점 만점에 1.8점으로 조사 대상 가운데 유일한 1점대를 기록하며 최하위에 머물렀다. 검찰(2.2)과 대기업(2.2)보다도 국회의 신뢰도가 훨씬 낮았다.

어쩌면 '법 위에 군림'하는 국회의 행태를 볼 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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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대법원 판결에도 요지부동…법 위에 군림하는 국회
    • 입력 2018-06-06 17:43:33
    • 수정2018-06-06 17:47:37
    취재후·사건후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성역이 있었다. 과거 군부 독재 시대에는 청와대와 군, 중앙정보부 같은 권력 기관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국가 기관들도 죄를 저지르면 수사를 받고 재판을 거쳐,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예외가 있다. 바로 국회다.


대법원은 지난달 3일, 국회 특수활동비는 비공개 대상 정보가 아니므로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참여연대가 정보공개 행정소송이 제기한 지 3년 만이었다.

앞서 참여연대는 국회 특수활동비 유용 논란이 불거진 2015년 5월 국회사무처에 2011년, 2012년, 2013년 사이 국회 특수활동비의 지출·지급결의서, 지출·지급 승인일자, 금액, 수령인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즉 19대 국회의 특수활동비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국회사무처는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경비로 세부 지출내역이 공개되면 국회 본연의 의정 활동이 위축돼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공개하지 않았고 사건은 법정으로 갔다.

1·2심은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해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국회 활동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고, 최종심의 판단도 같았다.


KBS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국회 특수활동비를 확인하기 위해 국회에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즉 20대 국회 특활비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 했다. 참여연대가 청구했던 내용과 다른 건 단 하나, 기간이었다.

사실 대법원의 판단까지 나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당연히 국회에서 공개할 거라고 믿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정보공개 청구 답변 마감 시한을 가득 채웠지만, 국회에서 한 달만에 돌아온 건 '비공개' 통보였다.

국회는 비공개 결정 사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요청하신 2016, 2017, 2018회계연도 국회 일반회계 4개 세항 특수활동비 집행에 관한 정보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과 관련된 것으로서 진행 중인 재판의 심리 또는 재판결과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제1항제4호 및 제2호, 제5호, 제6호에 따라 해당 정보를 공개하기 어려운 점에 대해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 특활비와 관련된 재판이 진행중이어서 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재판이 뭔지 찾아보니, 20대 국회 특활비를 공개하라는 정보 공개 청구소송이었다.

국회가 특활비와 관련해 같은 사안을 두고 기간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한 채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입법부 수장인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대법원 판결을 수용해 특활비를 공개하겠다고 공언했는데도 '묻지마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 국회 특활비 공개 여부는 이미 14년 전에 결론이 나왔다. 대법원은 2004년 15대 국회의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등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도 계속 혈세를 써가며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버티는 이유에는 여러가지 배경이 있겠지만 특활비 세부 항목 중 '예비금'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용 일시와 장소 등을 역추적하면 특활비를 제대로 썼는지 곧바로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라는 식으로 버틸 것으로 보인다. 아마 시간이 지나가면 잊혀질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간한 '2017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4점 만점에 1.8점으로 조사 대상 가운데 유일한 1점대를 기록하며 최하위에 머물렀다. 검찰(2.2)과 대기업(2.2)보다도 국회의 신뢰도가 훨씬 낮았다.

어쩌면 '법 위에 군림'하는 국회의 행태를 볼 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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