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과외까지 받은 ‘카자흐 모델’은?

입력 2018.06.08 (07:55) 수정 2018.06.0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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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트럼프 모델’ 여전히 베일

오는 12일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른바 북한 비핵화를 위한 ‘트럼프 모델’의 실체가 어떤 것일지 관심이다.
일단 리비아모델은 미 백악관에서조차 일종의 금기어가 된 모양새다. 미 워싱턴 현지시간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서한을 전달하는 김영철 북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에는, 북한 비핵화에 리비아 모델 적용을 주창해온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물론, 이를 지지했던 펜스 부통령마저 없었다. 펜스 부통령은, 리비아모델과 관련해 특히 카다피의 죽음을 거론하며 비핵화에 응하지 않을 경우 김정은 위원장의 운명을 경고해, 그 발언이 북한의 ‘북미정상회담이 안열릴 수도 있다’는 엄포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선언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이른바 리비아모델로 일컬어지는 “일괄타결식 비핵화를 선호한다”면서도, “물리적으로 단계적 접근이 조금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 접근의 검토를 시사했으며, “이번 정상회담은 큰 일의 시작”이라며 일회성이 아닌 다회성 ‘북미정상회담’을 예고하기도 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도 비핵화의 구체적 방식에서의 ‘트럼프 모델’은 베일에 가려져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과 함께 ‘카자흐 모델’로 불리는 ‘넌-루가 법’을 그 법안의 입안자들로부터 직접 자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넌-루가법’을 넌.루가 의원으로부터 배우다

‘넌-루가법’은 지난 1991년 구소련 즉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갑자기 자국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카자스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의 비핵화를 위해, 샘 넌 당시 공화당 상원의원과 리처드 루가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이 함께 발의해 만든 법안이다. 워싱턴 현지 시간 5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 두 의원을 직접 만나,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조언을 들었다고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정식 명칭이 ‘넌-루가 소비에트 핵 위협 감소법’인 이 법은, 원래 구 소련의 소유였다가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밸라루스 등이 자국 땅의 것을 그대로 승계하면서 보유하게 된, 핵연구소, 핵시설, 핵무기, 화학무기 등의 폐기와 이에 따른 보상의 추진 등에 대해 규정한 법안이다.

이 나라들에 ‘핵시설의 해체, 핵무기의 폐기 또 그를 위한 러시아로의 운송과 관련한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핵 화학무기 관련 프로그램에 종사했던 과학자들이 생산적이고 평화적인 과학연구활동으로 전환해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들이 보유한 핵무기 관련 기술과 노하우가 외부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미국은 이 프로그램에 따라 4년 동안 총 16억 달러의 정부 예산을 만들어, 해당 국가들을 지원했고, 이들이 보유한 수천 기의 핵탄두와 미사일 등 핵전력은 러시아로 넘겨져 폐기 또는 재활용됐다.

“폐기-검증-보상 동시에 가능” 단계적 접근 조언

지난 4월 넌, 루가 두 전 의원은 직접 미 워싱턴포스트에 ‘넌-루가법’을 참고한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제언’을 기고한 바 있다. 두 사람은 무엇보다 ‘단계적’ 접근에 참고가 될 만한 조언을 한다.

“정상회담이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길고 복잡한 과정의 시작이 될 뿐이다. 한반도에서 핵위협을 제거하고 평화 안정을 이루는 데는 비핵화 이상의 훨씬 더 넓은, 구습에 얽매지지 않는 사고와 단계들이 요구된다. 두 정상이 합의에 이르더라도, 몇 달 아니 몇 년에 걸친 전문가 수준의 협상과 광범위한 단계적 이행이 요구될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이 해온 말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큰 틀의 합의’를 하고, 후속 회담들에서 세부적 합의를 계속 이뤄나가는 방안이다.

넌.루가 전 의원들은 또 기고에서, 미국은 ‘핵폐기부터’, 북한은 ‘보상부터’라는 엇갈리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핵무기의 폐기와 검증, 보상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넌-루가법’의 이행이 그게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다국적 접근 필요”…“여러 나라가 나눠서 폐기?”

‘넌-루가법’은 20여년에 걸쳐 서서히 실행되며 그 위력을 발휘했다. 이 법안은 갑자기 세계 3,4,5위의 핵 보유국이 돼버린 세 나라들의 핵무기 해체에만 적용된 게 아니다. 구 소련의 화학무기 폐기, 그 밖의 동구권 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 폐기 등에도 적용됐다. 2013년 체코공화국 농축우라늄 폐기나 2013년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를 위한 미-소 간 합의도 결국 이 법에 근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학계는 ‘넌-루가법’을, 1990년대 초 구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해체 뒤 세계가 탈 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당시 미국 부시대통령과 러시아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함께 만들어낸, 냉전시대의 군비증강을 군축으로 전환하기 위한 ‘미-러 간 협력 모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법의 궁극적 목표는, ‘냉전시대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을 전세계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장기적이고 다국적인 노력’을 이끌어내는데 있다는 것이다.

넌.루가 의원은 이 법의 실행이 제 3의 국가에서의 핵 폐기를 위해 ‘미-러’가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처럼,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역시 미-북 양자적 관점에서만 논의돼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중국, 한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모든 당사국들이 정치적 관심사로서, 경제적, 인도적 문제 등을 포함해 지역 안보적 관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밸라루스 3국의 핵무기와 핵물질은 러시아로 옮겨져 폐기되거나 평화적으로 재활용됐다. 하지만 (결코 용도 폐기됐다고 볼 수 없고, 단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있다고 볼 수 있는) ‘리비아 모델’에서의 리비아 핵물질은 미국으로 운반됐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은 어디로 운반돼 처리돼야 하는가?
리비아식으로 북한의 모든 핵미사일 관련 무기와 물질을 미국으로 운반해야 할 것인가? 찾아내고 확인하고 검증하고 운반하고 폐기하는 과정은 누가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앞의 세 나라가 구 소련에서 분리되면서 어쩌다 핵을 갖게 된 것과 달리, 북한은 자발적으로 집요하게 핵을 개발해왔고 미국에 대한 직접적 공격을 위협해왔다. 또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게 다른 아닌 ‘미국의 북한 체제 보장’이라는 점에서, 이번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먼저 담판을 해야 할 당사자가 북한과 미국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그 때야말로 넌-루가의 조언인 ‘다국적 접근’은 더욱 긴요해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시설과 핵무기, 핵물질 폐기의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이 새롭게 협력할 수도 있고, 미국과 러시아가 과거를 모델 삼아 협력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미국은, 미국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져가고, 핵물질의 처리와 평화적 재활용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맡는 방안은 어떤가?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북한에 대한 경제 협력과 지원은 한국, 일본, 중국이 할 일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카자흐 모델”의 함의는 결국 ‘북한의 번영’

이 ‘넌-루가’식 핵폐기를 “카자흐 모델”이라 부르는 이유는, 비록 자신들이 개발한 핵무기가 아니었지만, 카자흐스탄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경제발전을 이룬’ 비핵화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1991년 신생 독립국이었던 당시 카자흐스탄에는 핵보유 강국을 주장하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는 “핵 대신 경제 발전”이란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1992년 2월 카자흐-러시아 정상회담을 통해 자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러시아 인도를 합의했고, 1993년 12월에는 미국과 ‘비핵화 협력 협정’을 체결해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경제 원조를 약속받았다. 카자흐스탄은 협정대로 1995년까지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로 보내고 핵시설과 핵무기 발사시설을 완전히 해체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가입 등 비핵화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많은 지하자원을 보유한 북한처럼 자원의 부국으로 불리는 카자흐스탄은 이후 미국의 원조 등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체제 전환과 경제 성장을 이뤘고,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으로부터 받은 핵무기 물질을 평화적 원자력 발전 물질로 전환해 카자흐스탄에 돌려주기도 했다.

북한이 미국에 가장 원하는 것은 ‘북한 김정은 체제 보장’과 ‘북미수교’ 등 관계 정상화지만, 미국은 그것은 물론이고, “경제 번영”도 약속하겠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넌-루가법’에 기초한 “카자흐 모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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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8-06-08 07:5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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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트럼프 모델’ 여전히 베일

오는 12일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른바 북한 비핵화를 위한 ‘트럼프 모델’의 실체가 어떤 것일지 관심이다.
일단 리비아모델은 미 백악관에서조차 일종의 금기어가 된 모양새다. 미 워싱턴 현지시간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서한을 전달하는 김영철 북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에는, 북한 비핵화에 리비아 모델 적용을 주창해온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물론, 이를 지지했던 펜스 부통령마저 없었다. 펜스 부통령은, 리비아모델과 관련해 특히 카다피의 죽음을 거론하며 비핵화에 응하지 않을 경우 김정은 위원장의 운명을 경고해, 그 발언이 북한의 ‘북미정상회담이 안열릴 수도 있다’는 엄포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선언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이른바 리비아모델로 일컬어지는 “일괄타결식 비핵화를 선호한다”면서도, “물리적으로 단계적 접근이 조금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 접근의 검토를 시사했으며, “이번 정상회담은 큰 일의 시작”이라며 일회성이 아닌 다회성 ‘북미정상회담’을 예고하기도 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도 비핵화의 구체적 방식에서의 ‘트럼프 모델’은 베일에 가려져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과 함께 ‘카자흐 모델’로 불리는 ‘넌-루가 법’을 그 법안의 입안자들로부터 직접 자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넌-루가법’을 넌.루가 의원으로부터 배우다

‘넌-루가법’은 지난 1991년 구소련 즉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갑자기 자국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카자스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의 비핵화를 위해, 샘 넌 당시 공화당 상원의원과 리처드 루가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이 함께 발의해 만든 법안이다. 워싱턴 현지 시간 5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 두 의원을 직접 만나,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조언을 들었다고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정식 명칭이 ‘넌-루가 소비에트 핵 위협 감소법’인 이 법은, 원래 구 소련의 소유였다가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밸라루스 등이 자국 땅의 것을 그대로 승계하면서 보유하게 된, 핵연구소, 핵시설, 핵무기, 화학무기 등의 폐기와 이에 따른 보상의 추진 등에 대해 규정한 법안이다.

이 나라들에 ‘핵시설의 해체, 핵무기의 폐기 또 그를 위한 러시아로의 운송과 관련한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핵 화학무기 관련 프로그램에 종사했던 과학자들이 생산적이고 평화적인 과학연구활동으로 전환해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들이 보유한 핵무기 관련 기술과 노하우가 외부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미국은 이 프로그램에 따라 4년 동안 총 16억 달러의 정부 예산을 만들어, 해당 국가들을 지원했고, 이들이 보유한 수천 기의 핵탄두와 미사일 등 핵전력은 러시아로 넘겨져 폐기 또는 재활용됐다.

“폐기-검증-보상 동시에 가능” 단계적 접근 조언

지난 4월 넌, 루가 두 전 의원은 직접 미 워싱턴포스트에 ‘넌-루가법’을 참고한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제언’을 기고한 바 있다. 두 사람은 무엇보다 ‘단계적’ 접근에 참고가 될 만한 조언을 한다.

“정상회담이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길고 복잡한 과정의 시작이 될 뿐이다. 한반도에서 핵위협을 제거하고 평화 안정을 이루는 데는 비핵화 이상의 훨씬 더 넓은, 구습에 얽매지지 않는 사고와 단계들이 요구된다. 두 정상이 합의에 이르더라도, 몇 달 아니 몇 년에 걸친 전문가 수준의 협상과 광범위한 단계적 이행이 요구될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이 해온 말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큰 틀의 합의’를 하고, 후속 회담들에서 세부적 합의를 계속 이뤄나가는 방안이다.

넌.루가 전 의원들은 또 기고에서, 미국은 ‘핵폐기부터’, 북한은 ‘보상부터’라는 엇갈리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핵무기의 폐기와 검증, 보상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넌-루가법’의 이행이 그게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다국적 접근 필요”…“여러 나라가 나눠서 폐기?”

‘넌-루가법’은 20여년에 걸쳐 서서히 실행되며 그 위력을 발휘했다. 이 법안은 갑자기 세계 3,4,5위의 핵 보유국이 돼버린 세 나라들의 핵무기 해체에만 적용된 게 아니다. 구 소련의 화학무기 폐기, 그 밖의 동구권 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 폐기 등에도 적용됐다. 2013년 체코공화국 농축우라늄 폐기나 2013년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를 위한 미-소 간 합의도 결국 이 법에 근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학계는 ‘넌-루가법’을, 1990년대 초 구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해체 뒤 세계가 탈 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당시 미국 부시대통령과 러시아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함께 만들어낸, 냉전시대의 군비증강을 군축으로 전환하기 위한 ‘미-러 간 협력 모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법의 궁극적 목표는, ‘냉전시대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을 전세계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장기적이고 다국적인 노력’을 이끌어내는데 있다는 것이다.

넌.루가 의원은 이 법의 실행이 제 3의 국가에서의 핵 폐기를 위해 ‘미-러’가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처럼,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역시 미-북 양자적 관점에서만 논의돼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중국, 한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모든 당사국들이 정치적 관심사로서, 경제적, 인도적 문제 등을 포함해 지역 안보적 관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밸라루스 3국의 핵무기와 핵물질은 러시아로 옮겨져 폐기되거나 평화적으로 재활용됐다. 하지만 (결코 용도 폐기됐다고 볼 수 없고, 단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있다고 볼 수 있는) ‘리비아 모델’에서의 리비아 핵물질은 미국으로 운반됐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은 어디로 운반돼 처리돼야 하는가?
리비아식으로 북한의 모든 핵미사일 관련 무기와 물질을 미국으로 운반해야 할 것인가? 찾아내고 확인하고 검증하고 운반하고 폐기하는 과정은 누가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앞의 세 나라가 구 소련에서 분리되면서 어쩌다 핵을 갖게 된 것과 달리, 북한은 자발적으로 집요하게 핵을 개발해왔고 미국에 대한 직접적 공격을 위협해왔다. 또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게 다른 아닌 ‘미국의 북한 체제 보장’이라는 점에서, 이번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먼저 담판을 해야 할 당사자가 북한과 미국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그 때야말로 넌-루가의 조언인 ‘다국적 접근’은 더욱 긴요해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시설과 핵무기, 핵물질 폐기의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이 새롭게 협력할 수도 있고, 미국과 러시아가 과거를 모델 삼아 협력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미국은, 미국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져가고, 핵물질의 처리와 평화적 재활용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맡는 방안은 어떤가?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북한에 대한 경제 협력과 지원은 한국, 일본, 중국이 할 일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카자흐 모델”의 함의는 결국 ‘북한의 번영’

이 ‘넌-루가’식 핵폐기를 “카자흐 모델”이라 부르는 이유는, 비록 자신들이 개발한 핵무기가 아니었지만, 카자흐스탄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경제발전을 이룬’ 비핵화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1991년 신생 독립국이었던 당시 카자흐스탄에는 핵보유 강국을 주장하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는 “핵 대신 경제 발전”이란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1992년 2월 카자흐-러시아 정상회담을 통해 자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러시아 인도를 합의했고, 1993년 12월에는 미국과 ‘비핵화 협력 협정’을 체결해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경제 원조를 약속받았다. 카자흐스탄은 협정대로 1995년까지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로 보내고 핵시설과 핵무기 발사시설을 완전히 해체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가입 등 비핵화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많은 지하자원을 보유한 북한처럼 자원의 부국으로 불리는 카자흐스탄은 이후 미국의 원조 등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체제 전환과 경제 성장을 이뤘고,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으로부터 받은 핵무기 물질을 평화적 원자력 발전 물질로 전환해 카자흐스탄에 돌려주기도 했다.

북한이 미국에 가장 원하는 것은 ‘북한 김정은 체제 보장’과 ‘북미수교’ 등 관계 정상화지만, 미국은 그것은 물론이고, “경제 번영”도 약속하겠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넌-루가법’에 기초한 “카자흐 모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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