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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트럼프는 거대 공연 기획자”…기자회견 참관기
입력 2018.06.14 (13:47) 수정 2018.06.15 (15:59) 취재후
[취재후] “트럼프는 거대 공연 기획자”…기자회견 참관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뒤에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서 싱가포르로 멀리 날아간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악관은 기자단 프레스센터가 마련된 JW 메리어트 호텔에 보안검색대를 설치해 신분증 확인과 소지품 검색을 한 뒤 기자들을 대형 버스 여러 대에 나눠 태우고 북미정상회담이 막 끝난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로 향했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서 보니까 단상은 연극이나 연주 무대 같은 느낌이 났고 그 양쪽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그때까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기자회견 전 동영상 상영…“절호의 기회 놓치지 말아야”

기자회견이 예고됐던 시간인 오후 4시가 되니까 자꾸 시선이 단상 쪽으로 갔는데,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고 주최 측은 동영상을 틀었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의미를 부각하려는 홍보물이었는데,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으니 주저앉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게 요지였다. 특이한 건 각각 똑같은 내용의 한국어와 영어 동영상을 잇달아 틀었다는 것인데, 한국어 동영상을 먼저 틀고 영어 동영상을 뒤에 틀었다.

섬세한 부분까지 북한 측을 예우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기자회견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막바지에 백악관이 만든 이 동영상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여줬더니 매우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기자회견장 뒤쪽 배경을 자세히 보니까 동그라미 하나 안에 성조기와 인공기를 반반씩 넣었고, 영어 글씨와 싱가포르 회담이란 한국말이 서로 교차하는 형식으로 디자인돼 있었다.

이런 큰일을 벌이려면 저런 세세한 부분까지 상대방을 배려하고 정치적 의미를 담아야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공연이 시작된다.” It's a Show time

마치 전주곡과 같은 동영상 상영이 끝난 뒤에 드디어 주인공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내 근처에 앉아 있던 미국 기자들이 "이제 공연이 시작되는구나"(It's a show time)라고 말하며 낄낄댔다. 그렇지만 질문은 처음부터 빡빡했다.

단상 바로 아래 있던 NBC 기자는 북한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오토 웜비어를 죽인 사람을 왜 재능 있다고 평가하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살에 국가를 통치하기 시작한 건 일단 대단한 거로 생각한다. 오토 웜비어의 죽음은 잔인하고 비극적이었지만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보통 솜씨가 아니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좀 뒤에 다른 질문이 나왔을 때는 북한과의 회담 준비 과정에서 억류 미국인들을 데리고 나왔다는 것도 놓치지 않고 자랑했다.

기자회견이 제법 진행됐을 때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할 거라는 방침을 밝혀서, 기자들이 바짝 긴장하면서 주목했는데 그가 밝힌 이유 역시 보통 사람의 생각과는 달랐다. 한반도긴장 완화 차원에서 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게 아니라 군사훈련에 돈이 하도 많이 들어서 중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북미회담 기자회견서도 ‘미국 우선주의…돈. 돈. 돈’

트럼프의 돈 타령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기자가 무역문제로 G7 내에서 왕따 신세처럼 된 것을 거론하며 "왜 적과는 악수하면서 친구와는 싸우느냐"라고 묻자, 바로 "그들은 좋은 친구이긴 하지만 미국인들에게 많은 금전적 손해를 안겼다. 이것을 반드시 바로잡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북한의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떻게 도울 거냐는 질문을 받고는, "미국 돈을 들여 도울 필요는 없고 한국과 일본이 도와줄 준비가 잘 돼 있다"고 말했다. 돈 문제에서는 철저하게 미국인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정책의 적절성이나 현실성 같은 걸 떠나서, 자기 대통령이 저렇게 국민 돈을 벌게 해주고 지켜주겠다고 하면, 그 국민들은 좋아하겠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물론 비용이 전가되는 상대방 입장이 행복하진 않을 테지만….

치열한 질문 경쟁…50번 이상 자리에서 들썩

미국 주요 언론들이 앞자리를 꿰찬 데다가 질문이 끝날 때마다 50명, 백 명씩 손들고 자신을 봐달라고 소리치는 상황에서 질문 기회를 따내기는 쉽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30분은 족히 넘었을 시점이 되니까 나도 초조해졌다.

워싱턴 한국 특파원단에서도 거의 모든 언론사가 싱가포르로 출장을 갔는데, 매번 질문 기회는 미국 아니면 유럽 기자 차지였고, 나머지는 중국 기자 한 명이 질문 기회를 잡았을 정도였다. 백악관 가면 항상 나와 있는 친구였다.

나도 질문 기회를 한번 얻어보려고 자리에서 엉덩이를 붙였다, 뗐다를 아마 50번은 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있는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나인지 내 앞의 유럽 기자인지 확실친 않았는데 그 순간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트럼프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Thank you, Mr President)"라고 큰소리로 외친 뒤 질문을 시작했다.

2차 회담이 열린다면 그 장소는 평양이냐 워싱턴이냐는 질문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대답을 했다.



“트럼프 머리는 컴퓨터 같아…즉석에서 종합 분석”

기자회견이 길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 쪽을 흘낏 보며, 새러 샌더스 대변인에게 계속 해도 되냐고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너스레를 하더니, 바로 "계속 질문을 받겠습니다. 집에 좀 늦게 돌아가도 상관 없겠죠. 질문하십시오." 라고 말했다.

북치고 장구 치고 그 솜씨가 너무 화려하다고 해야 하나.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미국 심장부 워싱턴에 입성했을 때, 그를 다소 만만히 보는 시각이 많았다. 정치를 모른다 또는 흠이 워낙 많아서 일 년 안에 탄핵을 당할 것이라는 등 부정적인 전망이 많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마냥 준비 안 되고 즉흥적으로 보였던 트럼프가 사실은 천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이번 북미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백악관을 방문했던 우리나라 고위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가 컴퓨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모들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면 그것을 머릿속에서 재빨리 분석해서 즉석에서 지시를 내린다."

사람을 평가할 때 피상적으로 파악하지 말고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그가 세계 최강국 미국 대통령이면 더더욱 그렇다.

트럼프 기획. 트럼프 주연 기자회견 1시간 진행…후속 작품은?

트럼프는 한 시간 넘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더니 기자회견을 끝냈고 걸어가면서 엄지손가락에 힘주어 자신감을 나타냈다.

거대한 공연의 기획자이자 주인공은 그러고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올 때 과연 어떤 작품을 갖고 나타날지 주목해서 볼 일이다.
  • [취재후] “트럼프는 거대 공연 기획자”…기자회견 참관기
    • 입력 2018.06.14 (13:47)
    • 수정 2018.06.15 (15:59)
    취재후
[취재후] “트럼프는 거대 공연 기획자”…기자회견 참관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뒤에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서 싱가포르로 멀리 날아간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악관은 기자단 프레스센터가 마련된 JW 메리어트 호텔에 보안검색대를 설치해 신분증 확인과 소지품 검색을 한 뒤 기자들을 대형 버스 여러 대에 나눠 태우고 북미정상회담이 막 끝난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로 향했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서 보니까 단상은 연극이나 연주 무대 같은 느낌이 났고 그 양쪽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그때까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기자회견 전 동영상 상영…“절호의 기회 놓치지 말아야”

기자회견이 예고됐던 시간인 오후 4시가 되니까 자꾸 시선이 단상 쪽으로 갔는데,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고 주최 측은 동영상을 틀었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의미를 부각하려는 홍보물이었는데,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으니 주저앉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게 요지였다. 특이한 건 각각 똑같은 내용의 한국어와 영어 동영상을 잇달아 틀었다는 것인데, 한국어 동영상을 먼저 틀고 영어 동영상을 뒤에 틀었다.

섬세한 부분까지 북한 측을 예우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기자회견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막바지에 백악관이 만든 이 동영상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여줬더니 매우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기자회견장 뒤쪽 배경을 자세히 보니까 동그라미 하나 안에 성조기와 인공기를 반반씩 넣었고, 영어 글씨와 싱가포르 회담이란 한국말이 서로 교차하는 형식으로 디자인돼 있었다.

이런 큰일을 벌이려면 저런 세세한 부분까지 상대방을 배려하고 정치적 의미를 담아야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공연이 시작된다.” It's a Show time

마치 전주곡과 같은 동영상 상영이 끝난 뒤에 드디어 주인공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내 근처에 앉아 있던 미국 기자들이 "이제 공연이 시작되는구나"(It's a show time)라고 말하며 낄낄댔다. 그렇지만 질문은 처음부터 빡빡했다.

단상 바로 아래 있던 NBC 기자는 북한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오토 웜비어를 죽인 사람을 왜 재능 있다고 평가하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살에 국가를 통치하기 시작한 건 일단 대단한 거로 생각한다. 오토 웜비어의 죽음은 잔인하고 비극적이었지만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보통 솜씨가 아니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좀 뒤에 다른 질문이 나왔을 때는 북한과의 회담 준비 과정에서 억류 미국인들을 데리고 나왔다는 것도 놓치지 않고 자랑했다.

기자회견이 제법 진행됐을 때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할 거라는 방침을 밝혀서, 기자들이 바짝 긴장하면서 주목했는데 그가 밝힌 이유 역시 보통 사람의 생각과는 달랐다. 한반도긴장 완화 차원에서 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게 아니라 군사훈련에 돈이 하도 많이 들어서 중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북미회담 기자회견서도 ‘미국 우선주의…돈. 돈. 돈’

트럼프의 돈 타령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기자가 무역문제로 G7 내에서 왕따 신세처럼 된 것을 거론하며 "왜 적과는 악수하면서 친구와는 싸우느냐"라고 묻자, 바로 "그들은 좋은 친구이긴 하지만 미국인들에게 많은 금전적 손해를 안겼다. 이것을 반드시 바로잡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북한의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떻게 도울 거냐는 질문을 받고는, "미국 돈을 들여 도울 필요는 없고 한국과 일본이 도와줄 준비가 잘 돼 있다"고 말했다. 돈 문제에서는 철저하게 미국인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정책의 적절성이나 현실성 같은 걸 떠나서, 자기 대통령이 저렇게 국민 돈을 벌게 해주고 지켜주겠다고 하면, 그 국민들은 좋아하겠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물론 비용이 전가되는 상대방 입장이 행복하진 않을 테지만….

치열한 질문 경쟁…50번 이상 자리에서 들썩

미국 주요 언론들이 앞자리를 꿰찬 데다가 질문이 끝날 때마다 50명, 백 명씩 손들고 자신을 봐달라고 소리치는 상황에서 질문 기회를 따내기는 쉽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30분은 족히 넘었을 시점이 되니까 나도 초조해졌다.

워싱턴 한국 특파원단에서도 거의 모든 언론사가 싱가포르로 출장을 갔는데, 매번 질문 기회는 미국 아니면 유럽 기자 차지였고, 나머지는 중국 기자 한 명이 질문 기회를 잡았을 정도였다. 백악관 가면 항상 나와 있는 친구였다.

나도 질문 기회를 한번 얻어보려고 자리에서 엉덩이를 붙였다, 뗐다를 아마 50번은 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있는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나인지 내 앞의 유럽 기자인지 확실친 않았는데 그 순간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트럼프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Thank you, Mr President)"라고 큰소리로 외친 뒤 질문을 시작했다.

2차 회담이 열린다면 그 장소는 평양이냐 워싱턴이냐는 질문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대답을 했다.



“트럼프 머리는 컴퓨터 같아…즉석에서 종합 분석”

기자회견이 길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 쪽을 흘낏 보며, 새러 샌더스 대변인에게 계속 해도 되냐고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너스레를 하더니, 바로 "계속 질문을 받겠습니다. 집에 좀 늦게 돌아가도 상관 없겠죠. 질문하십시오." 라고 말했다.

북치고 장구 치고 그 솜씨가 너무 화려하다고 해야 하나.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미국 심장부 워싱턴에 입성했을 때, 그를 다소 만만히 보는 시각이 많았다. 정치를 모른다 또는 흠이 워낙 많아서 일 년 안에 탄핵을 당할 것이라는 등 부정적인 전망이 많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마냥 준비 안 되고 즉흥적으로 보였던 트럼프가 사실은 천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이번 북미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백악관을 방문했던 우리나라 고위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가 컴퓨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모들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면 그것을 머릿속에서 재빨리 분석해서 즉석에서 지시를 내린다."

사람을 평가할 때 피상적으로 파악하지 말고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그가 세계 최강국 미국 대통령이면 더더욱 그렇다.

트럼프 기획. 트럼프 주연 기자회견 1시간 진행…후속 작품은?

트럼프는 한 시간 넘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더니 기자회견을 끝냈고 걸어가면서 엄지손가락에 힘주어 자신감을 나타냈다.

거대한 공연의 기획자이자 주인공은 그러고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올 때 과연 어떤 작품을 갖고 나타날지 주목해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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