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박원순에 100장”…도박판에는 ‘선거’도 예외없다

입력 2018.06.15 (13:37) 수정 2018.06.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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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팅해요! 저는 박원순 100장"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100장을 건다는 이 대화. 무슨 말일까.

하지만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서 이른바 '토토' 좀 해본 사람은 다 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당선되는 데 돈을 건다는 의미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출마자들의 이름이 올라와있다.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출마자들의 이름이 올라와있다.

6.13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사설 도박 사이트에 선거 결과에 배팅할 수 있는 항목이 등장했다. 광역단체장 후보자의 당선에 돈을 걸고 맞히면 배당금을 타가는 방식이었다.

기존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높게 나온 후보는 배당률이 낮고, 반대로 열세로 간주되는 후보는 배당률이 높게 잡혔다.

사실 '선거 배팅'은 오늘 내일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서는 이미 2017년 대선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선거 결과에 대한 도박판이 벌어졌고, 심지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탄핵될 지를 두고도 배팅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마저도 도박꾼들의 돈벌이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러시아 월드컵 출전 국가 대진표가 올라와 있다.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러시아 월드컵 출전 국가 대진표가 올라와 있다.

6.13 지방선거가 끝나자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는 새로운 판이 벌어졌다. 러시아 월드컵이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개막전을 시작으로 월드컵에 출전한 32개 국가의 대진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있고, 경기마다 배당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선거와 유사하게 약체일 수록 고배당이, 축구강국일 수록 저배당이 책정됐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배당률은 최근의 추세(?)를 반영한 듯 비교적 높은 편으로 잡혀있다. 배팅 금액은 사실상 무제한이어서 돈만 있으면 한번에 수 천 만원도 걸 수 있다.

선거에 월드컵까지…대형 이벤트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박 사이트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불법이라는 점이다.

현행법은 국가에서 공인된 '스포츠토토' 외에 개인이나 사설 기관이 스포츠 등 특정 이벤트를 대상으로 배팅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인터넷에 무수히 널려 있던 도박 사이트들은 대부분 공인되지 않은 '불법 도박 사이트'인 셈이다. 이런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은 당연히 처벌 대상이고, 사이트에서 도박을 한 이용자도 걸릴 경우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도박 사이트 광고 문자도박 사이트 광고 문자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의 불법 도박은 끊이지 않고 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란에 도박 사이트 주소를 링크하거나, 잊을 만 하면 날아오는 도박 사이트 광고 문자만 봐도 그렇다. 도박 사이트 운영 업자 입장에서는 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불법 인터넷 도박 규모는 연간 46조 원으로 추정된다. 불법 도박 전체 규모는 83조 원으로,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셈이다.

독버섯 처럼 퍼진 인터넷 불법 도박이 한탕주의를 부추기며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지만 단속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 서버가 주로 해외에 있어서 추적이 어려운 데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회원만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등 구조 자체도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로고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로고

불법 도박을 감시하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 기간 동안 최우선적으로 위법 사항을 채증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의뢰를 보내 신속한 차단이 될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 불법 도박에 대한 감시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또 불법 도박 사이트나 운영자 정보를 제보한 신고자에게는 기여 정도에 따라 30만원에서 최고5000만 원 까지 포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경찰도 칼을 빼들었다. 경찰은 지방선거를 이용한 불법 도박 사이트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고, 다른 불법 도박 사이트에 대해서도 서버 위치 확인 작업과 함께 계좌 추적 등에 나설 방침이다.

그러나 수사 기관이나 관계 당국의 의지만으로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결국 이용자 스스로가 '손 쉽게 목돈을 만질 수 있다'고 광고하는 불법 도박 사이트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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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박원순에 100장”…도박판에는 ‘선거’도 예외없다
    • 입력 2018-06-15 13:37:04
    • 수정2018-06-15 15:59:39
    취재후·사건후
"배팅해요! 저는 박원순 100장"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100장을 건다는 이 대화. 무슨 말일까.

하지만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서 이른바 '토토' 좀 해본 사람은 다 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당선되는 데 돈을 건다는 의미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출마자들의 이름이 올라와있다.
6.13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사설 도박 사이트에 선거 결과에 배팅할 수 있는 항목이 등장했다. 광역단체장 후보자의 당선에 돈을 걸고 맞히면 배당금을 타가는 방식이었다.

기존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높게 나온 후보는 배당률이 낮고, 반대로 열세로 간주되는 후보는 배당률이 높게 잡혔다.

사실 '선거 배팅'은 오늘 내일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서는 이미 2017년 대선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선거 결과에 대한 도박판이 벌어졌고, 심지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탄핵될 지를 두고도 배팅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마저도 도박꾼들의 돈벌이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러시아 월드컵 출전 국가 대진표가 올라와 있다.
6.13 지방선거가 끝나자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는 새로운 판이 벌어졌다. 러시아 월드컵이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개막전을 시작으로 월드컵에 출전한 32개 국가의 대진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있고, 경기마다 배당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선거와 유사하게 약체일 수록 고배당이, 축구강국일 수록 저배당이 책정됐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배당률은 최근의 추세(?)를 반영한 듯 비교적 높은 편으로 잡혀있다. 배팅 금액은 사실상 무제한이어서 돈만 있으면 한번에 수 천 만원도 걸 수 있다.

선거에 월드컵까지…대형 이벤트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박 사이트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불법이라는 점이다.

현행법은 국가에서 공인된 '스포츠토토' 외에 개인이나 사설 기관이 스포츠 등 특정 이벤트를 대상으로 배팅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인터넷에 무수히 널려 있던 도박 사이트들은 대부분 공인되지 않은 '불법 도박 사이트'인 셈이다. 이런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은 당연히 처벌 대상이고, 사이트에서 도박을 한 이용자도 걸릴 경우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도박 사이트 광고 문자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의 불법 도박은 끊이지 않고 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란에 도박 사이트 주소를 링크하거나, 잊을 만 하면 날아오는 도박 사이트 광고 문자만 봐도 그렇다. 도박 사이트 운영 업자 입장에서는 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불법 인터넷 도박 규모는 연간 46조 원으로 추정된다. 불법 도박 전체 규모는 83조 원으로,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셈이다.

독버섯 처럼 퍼진 인터넷 불법 도박이 한탕주의를 부추기며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지만 단속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 서버가 주로 해외에 있어서 추적이 어려운 데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회원만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등 구조 자체도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로고
불법 도박을 감시하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 기간 동안 최우선적으로 위법 사항을 채증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의뢰를 보내 신속한 차단이 될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 불법 도박에 대한 감시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또 불법 도박 사이트나 운영자 정보를 제보한 신고자에게는 기여 정도에 따라 30만원에서 최고5000만 원 까지 포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경찰도 칼을 빼들었다. 경찰은 지방선거를 이용한 불법 도박 사이트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고, 다른 불법 도박 사이트에 대해서도 서버 위치 확인 작업과 함께 계좌 추적 등에 나설 방침이다.

그러나 수사 기관이나 관계 당국의 의지만으로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결국 이용자 스스로가 '손 쉽게 목돈을 만질 수 있다'고 광고하는 불법 도박 사이트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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