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질까”…‘영화 속 축구’ 베스트5

입력 2018.06.18 (08:55) 수정 2018.06.1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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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에 대한 편견에 ‘킥’을 날리는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

축구는 자유다.

드넓은 그라운드를 누비며 뻥, 차면 팍팍한 현실도 저 멀리 날아갈 것 같다. 정해진 포지션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조직'되는 종목이 야구라면, 축구는 시시각각 위치가 변하는 선수들끼리의 '연결'에 결정적인 몫이 있다.

공수 교대 안 한 투수가 홈런을 칠 수는 없지만 골키퍼가 골 넣지 말라는 법은 한국에도 스웨덴에도 없다. 규칙에 제약이 적고 점수도 적다. 그러다 끝내 골이 터지면, 우리 선조들이 사냥에 성공했을 때 얻는 원초적 쾌감과 21세기 노마드(유목민)가 좇는 수평적 연결의 즐거움이 동시에 폭죽을 터뜨린다.

그래서인지 많은 영화들은 저항과 소통, 열정과 참여를 말하는 대목에서 축구를 기용하곤 했다.

묵직한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들에서 축구 장면이 그 의미를 더한 '베스트5'를 꼽아봤다. (개봉순)

1. "소녀여, 코르셋을 벗어라"'슈팅 라이크 베컴'(2002)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당당히 차버리는 소녀들의 이야기다.

영국에 사는 인도계 여학생 제스는 전통에 따라 신부수업 따위나 받아야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축구다. 인도 관습대로라면 여성의 인생은 어느 가문에 시집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조신하고 참한 여자 되기'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제스는 이를 거부한 채 축구장에 발을 들인다.

원제는 'Bend it like Beckham'(베컴처럼 구부려라). 즉 베컴 선수의 '커브 킥'처럼 절묘하게 철벽수비를 돌파해보자는 뜻이다. 여성 혹은 이방인으로서 맞닥뜨리는 장애물은 부모의 반대에서부터 레이스 달린 폼 브래지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제스와 그 친구는 베컴의 슛처럼 유연한 지혜로 골문을 두드린다. 현재 '탈 코르셋' 운동을 비롯해 여성을 향한 갖은 '시선 폭력'에 저항의 물결이 일고 있는 한국에서 여전히 유의미한 수작이다.

현재 유럽의 골칫거리인 난민 문제에 일찌감치 목소리 높인 ‘인 디스 월드’현재 유럽의 골칫거리인 난민 문제에 일찌감치 목소리 높인 ‘인 디스 월드’

2. 소년이 축구를 하는 이유는?…'인 디스 월드'(2002)

가난한 아이들에게 축구는 헝겊 뭉치 하나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오락이다. 파키스탄의 아프간 난민 캠프에 사는 12살 소년 자말은 창대한 꿈을 품고 런던행 밀입국 길에 오른다. 소년은 충분히 똘똘하다. 하지만 난민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여정은 못된 어른들에게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빼앗기는 과정이 되어간다.

터키에서 이탈리아, 영국까지를 거치며 자말은 주변 아이들과 틈틈이 축구 경기를 벌인다. 소년에게 축구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열정이자 희망이었다. 그가 더 이상 축구를 하지 않게 되는, 희망을 잃어버린 어떤 사건을 통해 영화는 16년이 지난 지금 더욱 심각해진 난민 문제를 직시하게 해준다. 당시 "유럽 사회는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이 영화로 2003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다.

2018년 한국인에게 한층 흥미롭게 다가오는 ‘굿바이 레닌’2018년 한국인에게 한층 흥미롭게 다가오는 ‘굿바이 레닌’

3. 독일이 분단국?…'굿바이 레닌'(2003)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어머니가 독일 통일(1989) 후 의식을 되찾는다. 동독 공산당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사회주의자 어머니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아들은 거짓말을 시작한다. 가짜 TV뉴스를 제작해 보여주며 "동독은 건재하다"고 다독인다. 어머니의 방 안에서 독일은 여전히 분단국가다.

통독 이듬해(1990) 개최된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독일은 보란 듯 우승컵을 쥐었다. 영화에는 당시 실제 경기 장면이 여러차례 등장하는데, 아들이 만든 거짓 뉴스가 통일 전후 실제 풍경과 만나며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버거킹' 동베를린 지점, 여전히 냉전시대를 사는 일부 노인들…. '맥도날드 평양 지점 가능성' 기사를 보는 현재 한국 관객의 머릿속에선 '쉬리'(1998)의 남북 축구 장면부터 20년 뒤인 현재 급변한 한반도 정세에 이르기까지, 정리되지 않은 질문과 상상이 꼬리를 물게 만드는 영화다.

차별 받는 이란 여성들을 통해 ‘자유’에 대해 묻는 ‘오프사이드’차별 받는 이란 여성들을 통해 ‘자유’에 대해 묻는 ‘오프사이드’

4. "경계를 넘어라"…'오프사이드’(2006)

자국팀의 월드컵 진출 결정전을 보고 싶기는 남성이나 여성 팬이나 매한가지다.

하지만 이란에선 여성의 축구 경기장 출입이 금지돼있다. 경기를 보기 위해 축구장에 잠입하려다 군인에게 발각된 여성 팬들이 경기장 밖 임시 구치소에 갇힌다. 축구를 보고 말겠다는 그녀들의 꿈은 이루어질까.

축구를 알지 못하는 '축알못' 병사 한 명이 어설픈 중계방송을 해주면서 구치소 내부에는 웃음과 연대가 형성된다. 바깥쪽에서 울려퍼지는 자유의 함성과 내부의 갑갑한 공기, 누군가는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가 누군가에겐 결코 그렇지 못한 현실이 충돌한다. 공중화장실에 출입하는 당연한 자유도, 누군가에겐 공포를 안고 감행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 영화로 2006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받았다.


5. 동참하는 롱테이크…'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2009)

축구 강국이지만 정치 후진국인 1970년대 아르헨티나. 끔찍한 강간살인 사건 피해자의 남편이 축구 경기를 보러 온 용의자를 쫓는다. 태연히 A매치를 보고 있던 살인마와의 추격전이 약 5분간의 롱테이크(한 장면이 끊김 없이 이어진 촬영)로 펼쳐진다.

컷이 나뉘지 않고 숨막힐 듯 진행되는 화면을 통해 관객은 추격전의 한 가운데로 들어와 기꺼이 동참한다. 결국 범인을 잡고야 마는데, 관객도 기진맥진 체포에 참여했는데, 당시 군부독재 세력은 이 악마에게 처벌은커녕 권력을 준다. 축구장의 열기와 검거를 향한 열망이 이 명장면을 통해 관객의 마음 속에서 일치되면서, 이후 영화가 제시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에 함께 고민하도록 해준다.

2010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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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은 이루어질까”…‘영화 속 축구’ 베스트5
    • 입력 2018-06-18 08:55:05
    • 수정2018-06-18 09:02:19
    취재K
▲ 여성에 대한 편견에 ‘킥’을 날리는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

축구는 자유다.

드넓은 그라운드를 누비며 뻥, 차면 팍팍한 현실도 저 멀리 날아갈 것 같다. 정해진 포지션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조직'되는 종목이 야구라면, 축구는 시시각각 위치가 변하는 선수들끼리의 '연결'에 결정적인 몫이 있다.

공수 교대 안 한 투수가 홈런을 칠 수는 없지만 골키퍼가 골 넣지 말라는 법은 한국에도 스웨덴에도 없다. 규칙에 제약이 적고 점수도 적다. 그러다 끝내 골이 터지면, 우리 선조들이 사냥에 성공했을 때 얻는 원초적 쾌감과 21세기 노마드(유목민)가 좇는 수평적 연결의 즐거움이 동시에 폭죽을 터뜨린다.

그래서인지 많은 영화들은 저항과 소통, 열정과 참여를 말하는 대목에서 축구를 기용하곤 했다.

묵직한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들에서 축구 장면이 그 의미를 더한 '베스트5'를 꼽아봤다. (개봉순)

1. "소녀여, 코르셋을 벗어라"'슈팅 라이크 베컴'(2002)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당당히 차버리는 소녀들의 이야기다.

영국에 사는 인도계 여학생 제스는 전통에 따라 신부수업 따위나 받아야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축구다. 인도 관습대로라면 여성의 인생은 어느 가문에 시집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조신하고 참한 여자 되기'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제스는 이를 거부한 채 축구장에 발을 들인다.

원제는 'Bend it like Beckham'(베컴처럼 구부려라). 즉 베컴 선수의 '커브 킥'처럼 절묘하게 철벽수비를 돌파해보자는 뜻이다. 여성 혹은 이방인으로서 맞닥뜨리는 장애물은 부모의 반대에서부터 레이스 달린 폼 브래지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제스와 그 친구는 베컴의 슛처럼 유연한 지혜로 골문을 두드린다. 현재 '탈 코르셋' 운동을 비롯해 여성을 향한 갖은 '시선 폭력'에 저항의 물결이 일고 있는 한국에서 여전히 유의미한 수작이다.

현재 유럽의 골칫거리인 난민 문제에 일찌감치 목소리 높인 ‘인 디스 월드’
2. 소년이 축구를 하는 이유는?…'인 디스 월드'(2002)

가난한 아이들에게 축구는 헝겊 뭉치 하나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오락이다. 파키스탄의 아프간 난민 캠프에 사는 12살 소년 자말은 창대한 꿈을 품고 런던행 밀입국 길에 오른다. 소년은 충분히 똘똘하다. 하지만 난민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여정은 못된 어른들에게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빼앗기는 과정이 되어간다.

터키에서 이탈리아, 영국까지를 거치며 자말은 주변 아이들과 틈틈이 축구 경기를 벌인다. 소년에게 축구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열정이자 희망이었다. 그가 더 이상 축구를 하지 않게 되는, 희망을 잃어버린 어떤 사건을 통해 영화는 16년이 지난 지금 더욱 심각해진 난민 문제를 직시하게 해준다. 당시 "유럽 사회는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이 영화로 2003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다.

2018년 한국인에게 한층 흥미롭게 다가오는 ‘굿바이 레닌’
3. 독일이 분단국?…'굿바이 레닌'(2003)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어머니가 독일 통일(1989) 후 의식을 되찾는다. 동독 공산당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사회주의자 어머니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아들은 거짓말을 시작한다. 가짜 TV뉴스를 제작해 보여주며 "동독은 건재하다"고 다독인다. 어머니의 방 안에서 독일은 여전히 분단국가다.

통독 이듬해(1990) 개최된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독일은 보란 듯 우승컵을 쥐었다. 영화에는 당시 실제 경기 장면이 여러차례 등장하는데, 아들이 만든 거짓 뉴스가 통일 전후 실제 풍경과 만나며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버거킹' 동베를린 지점, 여전히 냉전시대를 사는 일부 노인들…. '맥도날드 평양 지점 가능성' 기사를 보는 현재 한국 관객의 머릿속에선 '쉬리'(1998)의 남북 축구 장면부터 20년 뒤인 현재 급변한 한반도 정세에 이르기까지, 정리되지 않은 질문과 상상이 꼬리를 물게 만드는 영화다.

차별 받는 이란 여성들을 통해 ‘자유’에 대해 묻는 ‘오프사이드’
4. "경계를 넘어라"…'오프사이드’(2006)

자국팀의 월드컵 진출 결정전을 보고 싶기는 남성이나 여성 팬이나 매한가지다.

하지만 이란에선 여성의 축구 경기장 출입이 금지돼있다. 경기를 보기 위해 축구장에 잠입하려다 군인에게 발각된 여성 팬들이 경기장 밖 임시 구치소에 갇힌다. 축구를 보고 말겠다는 그녀들의 꿈은 이루어질까.

축구를 알지 못하는 '축알못' 병사 한 명이 어설픈 중계방송을 해주면서 구치소 내부에는 웃음과 연대가 형성된다. 바깥쪽에서 울려퍼지는 자유의 함성과 내부의 갑갑한 공기, 누군가는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가 누군가에겐 결코 그렇지 못한 현실이 충돌한다. 공중화장실에 출입하는 당연한 자유도, 누군가에겐 공포를 안고 감행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 영화로 2006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받았다.


5. 동참하는 롱테이크…'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2009)

축구 강국이지만 정치 후진국인 1970년대 아르헨티나. 끔찍한 강간살인 사건 피해자의 남편이 축구 경기를 보러 온 용의자를 쫓는다. 태연히 A매치를 보고 있던 살인마와의 추격전이 약 5분간의 롱테이크(한 장면이 끊김 없이 이어진 촬영)로 펼쳐진다.

컷이 나뉘지 않고 숨막힐 듯 진행되는 화면을 통해 관객은 추격전의 한 가운데로 들어와 기꺼이 동참한다. 결국 범인을 잡고야 마는데, 관객도 기진맥진 체포에 참여했는데, 당시 군부독재 세력은 이 악마에게 처벌은커녕 권력을 준다. 축구장의 열기와 검거를 향한 열망이 이 명장면을 통해 관객의 마음 속에서 일치되면서, 이후 영화가 제시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에 함께 고민하도록 해준다.

2010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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