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좌장’의 후퇴…다시보는 ‘2016 무대 잔혹史’

입력 2018.06.21 (08:3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친박 좌장' '친박 맏형' '친박 대부'…

20일 탈당을 선언한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 이름에는 '친박'(친 박근혜)이란 단어가 고유명사처럼 따라 붙습니다. 1981년 11대 때 처음 뺏지를 단 서 의원은 12대를 건너뛰고 7번 연임한 현역 최다선(8선)입니다. 2008년 친박연대 창당 때를 빼곤 소속당이 이름을 고친 적은 있지만 스스로 당적을 바꾼 일은 없습니다. 그의 탈당을 두고 "친박이 컨트롤타워를 잃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국당이 다시 '불신의 회오리'에 빠졌습니다. (중략) '친이', '친박'의 분쟁이 끝없이 반복되며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습니다. 역사에 기록될 '비극적 도돌이표'입니다. 자리를 비켜드리고자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서 의원 탈당 선언문의 일부입니다. 자신의 '이선 후퇴'로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한국당에서 고질적인 계파 갈등이 재연되지 않길 바란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친박 패권'에 대한 반성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친박의 득세는 그가 2013년 10월 재·보선에서 여의도로 컴백한 직후 정점을 찍었다는 평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연, 혹은 필연인지, 오는 22일 <보수의 민낯, 도전 2022>란 책이 출간됩니다. 2016년 4·13 총선을 전후해 여당이던 새누리당 내부에서 벌어진 최악의 공천 비화(秘話)를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은 적나라합니다. 당시 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을 10여년 간 지근거리에서 도운 장성철 전 보좌관이 썼습니다. 장 씨의 허락을 받아 저서 중 '서청원-김무성' 관련 일화를 뽑았습니다. 서청원 의원의 탈당 선언 닷새 전인 지난 15일, 6선의 김무성 의원은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편집자주-아래 내용과 관련해 서 대표 등의 반론이 있으면 반영할 예정입니다.)


"박세일은 '친박계'를 배신한 인물"

(2015년 1월) 김무성 대표가 여의도연구원장에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 이사장(*편집자주-2017년 1월 별세)을 내정하자 서청원 최고위원이 격렬히 반대했다. 2005년, 박근혜 대표가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자 박 이사장이 '수도분할은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며 의원직을 사퇴한 전력을 두고 '친박계를 배신한 인물'로 낙인찍었다. 서 최고위원은 "김무성 대표가 거의 모든 당직 인선을 일방적으로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당시 청와대는 여러 경로를 통해 "박세일은 절대로 안 된다. 대신 ○○○ 교수는 괜찮다"고 압력을 가해왔다. 친박계가 다수인 상황에서 표결에 부칠 경우 결과가 뻔했기 때문에 결국 박세일 이사장 스스로 사의를 표명했다. MS(김무성)는 몇 달 동안 버티다가 일면식도 없던 김종석 교수를 선임했다. 박 전 대통령과 경제공약을 함께 개발하며, 인연이 있었던 그의 선임을 청와대와 친박들도 반대하지 않아 겨우 임명할 수 있었다.

"서청원, 서류 던지고 박차고 나가"

(2015년 3월) 대대적인 당무감사를 예고하자 서청원 최고위원 등 친박계가 '보복성 표적 감사, 정치적 살인'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군현 사무총장이 당무감사 결과를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서류를 던지고, 회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당무감사는 당헌·당규에 명시된 합법적인 당무임에도 '비박계인 김무성 대표가 친박계를 물갈이하려 한다'는 이유로 집단 반발했다. 당이 시끄러워졌다. 청와대를 등에 업은 서청원 최고와 친박들은 기세가 등등했다. 그들은 "당의 주인은 친박과 박근혜"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결국 대표는 당의 화합을 위해서 또 한 발 물러섰다.


"김무성을 용서하지 않겠다"

2015년 9월 추석 연휴 때 (김무성) 대표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2016년 총선 공천과 관련해 '권역별비례', '안심번호여론조사', '오픈프라이머리' 등의 원칙에 공감대를 합의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친박과의 대치가 시작됐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무성을 용서하지 않겠다"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좀 심하게 말해서는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그런 주제 넘는 짓을 하느냐"라는 비아냥도 있었던 것 같다. 의원총회에서도 친박들은 조직적으로 반대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못하게 하면서 자신들이 공천을 좌지우지하고, 싫은 사람을 쳐내고 싶어 했다. 최종 타깃은 물론 유승민 의원이었다. '당의 주인은 우리'라는 동지의식이 강했다.


<부록> "이 사람들은 공천 주면 안 된다"

A(실명은 거론되지 않음)가 다시 나타난 것은 20대 총선 공천을 앞둔 2016년 2월이었다. 어느 날 그가 무대(김무성)를 찾아와 "청와대 인사를 만났다. 청와대와 대표가 소통이 부족한 거 같은데 그 연결고리를 내가 하겠다"라면서 청와대의 D와 나눈 얘기를 한참이나 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힘이 세다. 박근혜의 영향력은 퇴임해서도 유지될 것이다. 다른 대통령하고 다를 것이다. 청와대 말 안 들으면 '훅' 하고 대표를 쑤시고 들어올 것이다"라는 등의 말을 대표에게 했다. 며칠 후 메신저를 자처한 A를 통해 대표에게 제안이 왔다.(*편집자주-주요 내용만 요약 발췌)

① 최고위원들이 추천한 명단은 무시하고 공관위원을 청와대에서 절반을 추천하고, 나머지 절반을 대표가 추천하자.

② (2016년) 2월 24일 쯤인 것으로 기억된다. 청와대의 뜻이라며 "이런 사람들은 공천을 주면 안 된다"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명단을 불러줬다. 저쪽(청와대)에서 불러준 명단을 이면지에 볼펜으로 적은 수준이었다. 이재오 의원을 필두로 유승민, 정두언, 김용태, 조해진, 김세연, 김학용, 김성태, 박민식, 홍지만 의원 등등의 이름이 있었던 것 같다.

③ 그런(공천 주면 안 되는) 사람들 다 떨어지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른 이야기 안하고 말 잘 듣는 충성스러운 8-90명의 의원만 당선되면 좋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④ 청와대에서 D가 비례대표로 가는 것으로 결정했으니, 대표께서도 허락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청와대에서 이한구 공관위원장에게 얘기하기로 했다.

⑤ 2016년 11월 23일 MS(김무성)가 전격적으로 대선 후보 불출마를 선언했다. 전날 대표가 A 등 몇몇 인사들과 회의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특히 A는 대표에게 '의원직도 사퇴하라'고 계속 주장을 해 와서 나랑 언쟁을 한 적도 있었다.

친이·친박·친홍에 바른정당 복당파와 비주류에 이르기까지…
자유한국당 내에는 여전히 많은 계파가 있습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그리고 지방선거 등을 거치며 '정치적 파문'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인적쇄신'과 '계파갈등 극복'을 당 재건의 해법으로 꼽는데도 큰 이견이 없습니다.

<보수의 민낯, 도전 2022>는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그립니다. 이들이 서로 발목을 잡아 함께 추락하는 <보수의 민낯>을 재연할 지, 아니면 폐허 위에 새로운 보수를 세워 <도전 2022>로 나아갈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친박 좌장’의 후퇴…다시보는 ‘2016 무대 잔혹史’
    • 입력 2018-06-21 08:38:55
    취재K
'친박 좌장' '친박 맏형' '친박 대부'…

20일 탈당을 선언한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 이름에는 '친박'(친 박근혜)이란 단어가 고유명사처럼 따라 붙습니다. 1981년 11대 때 처음 뺏지를 단 서 의원은 12대를 건너뛰고 7번 연임한 현역 최다선(8선)입니다. 2008년 친박연대 창당 때를 빼곤 소속당이 이름을 고친 적은 있지만 스스로 당적을 바꾼 일은 없습니다. 그의 탈당을 두고 "친박이 컨트롤타워를 잃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국당이 다시 '불신의 회오리'에 빠졌습니다. (중략) '친이', '친박'의 분쟁이 끝없이 반복되며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습니다. 역사에 기록될 '비극적 도돌이표'입니다. 자리를 비켜드리고자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서 의원 탈당 선언문의 일부입니다. 자신의 '이선 후퇴'로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한국당에서 고질적인 계파 갈등이 재연되지 않길 바란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친박 패권'에 대한 반성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친박의 득세는 그가 2013년 10월 재·보선에서 여의도로 컴백한 직후 정점을 찍었다는 평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연, 혹은 필연인지, 오는 22일 <보수의 민낯, 도전 2022>란 책이 출간됩니다. 2016년 4·13 총선을 전후해 여당이던 새누리당 내부에서 벌어진 최악의 공천 비화(秘話)를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은 적나라합니다. 당시 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을 10여년 간 지근거리에서 도운 장성철 전 보좌관이 썼습니다. 장 씨의 허락을 받아 저서 중 '서청원-김무성' 관련 일화를 뽑았습니다. 서청원 의원의 탈당 선언 닷새 전인 지난 15일, 6선의 김무성 의원은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편집자주-아래 내용과 관련해 서 대표 등의 반론이 있으면 반영할 예정입니다.)


"박세일은 '친박계'를 배신한 인물"

(2015년 1월) 김무성 대표가 여의도연구원장에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 이사장(*편집자주-2017년 1월 별세)을 내정하자 서청원 최고위원이 격렬히 반대했다. 2005년, 박근혜 대표가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자 박 이사장이 '수도분할은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며 의원직을 사퇴한 전력을 두고 '친박계를 배신한 인물'로 낙인찍었다. 서 최고위원은 "김무성 대표가 거의 모든 당직 인선을 일방적으로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당시 청와대는 여러 경로를 통해 "박세일은 절대로 안 된다. 대신 ○○○ 교수는 괜찮다"고 압력을 가해왔다. 친박계가 다수인 상황에서 표결에 부칠 경우 결과가 뻔했기 때문에 결국 박세일 이사장 스스로 사의를 표명했다. MS(김무성)는 몇 달 동안 버티다가 일면식도 없던 김종석 교수를 선임했다. 박 전 대통령과 경제공약을 함께 개발하며, 인연이 있었던 그의 선임을 청와대와 친박들도 반대하지 않아 겨우 임명할 수 있었다.

"서청원, 서류 던지고 박차고 나가"

(2015년 3월) 대대적인 당무감사를 예고하자 서청원 최고위원 등 친박계가 '보복성 표적 감사, 정치적 살인'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군현 사무총장이 당무감사 결과를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서류를 던지고, 회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당무감사는 당헌·당규에 명시된 합법적인 당무임에도 '비박계인 김무성 대표가 친박계를 물갈이하려 한다'는 이유로 집단 반발했다. 당이 시끄러워졌다. 청와대를 등에 업은 서청원 최고와 친박들은 기세가 등등했다. 그들은 "당의 주인은 친박과 박근혜"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결국 대표는 당의 화합을 위해서 또 한 발 물러섰다.


"김무성을 용서하지 않겠다"

2015년 9월 추석 연휴 때 (김무성) 대표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2016년 총선 공천과 관련해 '권역별비례', '안심번호여론조사', '오픈프라이머리' 등의 원칙에 공감대를 합의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친박과의 대치가 시작됐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무성을 용서하지 않겠다"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좀 심하게 말해서는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그런 주제 넘는 짓을 하느냐"라는 비아냥도 있었던 것 같다. 의원총회에서도 친박들은 조직적으로 반대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못하게 하면서 자신들이 공천을 좌지우지하고, 싫은 사람을 쳐내고 싶어 했다. 최종 타깃은 물론 유승민 의원이었다. '당의 주인은 우리'라는 동지의식이 강했다.


<부록> "이 사람들은 공천 주면 안 된다"

A(실명은 거론되지 않음)가 다시 나타난 것은 20대 총선 공천을 앞둔 2016년 2월이었다. 어느 날 그가 무대(김무성)를 찾아와 "청와대 인사를 만났다. 청와대와 대표가 소통이 부족한 거 같은데 그 연결고리를 내가 하겠다"라면서 청와대의 D와 나눈 얘기를 한참이나 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힘이 세다. 박근혜의 영향력은 퇴임해서도 유지될 것이다. 다른 대통령하고 다를 것이다. 청와대 말 안 들으면 '훅' 하고 대표를 쑤시고 들어올 것이다"라는 등의 말을 대표에게 했다. 며칠 후 메신저를 자처한 A를 통해 대표에게 제안이 왔다.(*편집자주-주요 내용만 요약 발췌)

① 최고위원들이 추천한 명단은 무시하고 공관위원을 청와대에서 절반을 추천하고, 나머지 절반을 대표가 추천하자.

② (2016년) 2월 24일 쯤인 것으로 기억된다. 청와대의 뜻이라며 "이런 사람들은 공천을 주면 안 된다"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명단을 불러줬다. 저쪽(청와대)에서 불러준 명단을 이면지에 볼펜으로 적은 수준이었다. 이재오 의원을 필두로 유승민, 정두언, 김용태, 조해진, 김세연, 김학용, 김성태, 박민식, 홍지만 의원 등등의 이름이 있었던 것 같다.

③ 그런(공천 주면 안 되는) 사람들 다 떨어지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른 이야기 안하고 말 잘 듣는 충성스러운 8-90명의 의원만 당선되면 좋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④ 청와대에서 D가 비례대표로 가는 것으로 결정했으니, 대표께서도 허락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청와대에서 이한구 공관위원장에게 얘기하기로 했다.

⑤ 2016년 11월 23일 MS(김무성)가 전격적으로 대선 후보 불출마를 선언했다. 전날 대표가 A 등 몇몇 인사들과 회의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특히 A는 대표에게 '의원직도 사퇴하라'고 계속 주장을 해 와서 나랑 언쟁을 한 적도 있었다.

친이·친박·친홍에 바른정당 복당파와 비주류에 이르기까지…
자유한국당 내에는 여전히 많은 계파가 있습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그리고 지방선거 등을 거치며 '정치적 파문'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인적쇄신'과 '계파갈등 극복'을 당 재건의 해법으로 꼽는데도 큰 이견이 없습니다.

<보수의 민낯, 도전 2022>는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그립니다. 이들이 서로 발목을 잡아 함께 추락하는 <보수의 민낯>을 재연할 지, 아니면 폐허 위에 새로운 보수를 세워 <도전 2022>로 나아갈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