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해명 또 해명…김상조의 특별한 취임 1주년

입력 2018.06.23 (08:02) 수정 2018.06.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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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주일 동안 가장 많이 언론에 등장한 정부 기관장을 꼽으라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일 것입니다. 지난 14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시작으로 라디오, 신문 인터뷰와 세미나 모두 발언 등을 포함해 대여섯 차례 이상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취임 1주년을 맞이해 언론 인터뷰를 잡았을 것이고, 공정거래법 개정과 관련해 외부 활동이 많아지는 시기여서 횟수는 그리 특별하진 않습니다. 다만, 가는 곳마다 해명에 또 해명을 해야 했던 상황이 김 위원장의 취임 1주년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분 팔아라" 발언에 삼성SDS 주가 폭락

시작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발언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4일 간담회에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은 편법적 경영권 승계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거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SI(시스템 통합), 물류, 부동산 관리, 광고 등과 같이 그룹의 핵심 사업과 관련 없는 계열사에 총수 일가가 다수의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일감 몰아주기가 이뤄진다"고 언급하며 구체적인 업종까지 꼽았습니다.

"경영에 참여하는 직계 위주의 대주주 일가에서는 주력 핵심 계열사의 주식만을 보유하고 나머지는 가능한 한 빨리 매각해 주길 부탁한다"며 "대기업 집단의 대주주 일가들이 비주력, 비상장사의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공정위의 조사, 제재 대상이 될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고 발언을 마쳤습니다.

발언의 영향은 컸습니다. 삼성의 SI 업체인 삼성SDS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발언이 있었던 지난 14일 종가는 1주당 22만 8,500원이었는데 다음 날인 15일 19만 6,500원으로 14%가 떨어졌습니다. 삼성SDS는 비상장사가 아니라 상장사였지만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주가 책임져라" 반발에 거듭 해명
삼성SDS 주주들은 김 위원장과 공정위에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소액주주 카페에서는 '비핵심 계열사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어떤 국내법과 규정에 근거해 비핵심 계열사 대주주 주식을 매각하라는 것인가? '등을 질의한 질의서를 공정위에 발송했습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맡고 있는 공정위 기업집단국에 항의전화를 걸기도 했습니다.

재계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룹 계열사들의 시스템 보안 등을 책임지는 SI 업체는 보안 때문에 외부 업체에 맡길 수 없어서 내부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데, 지분을 팔라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업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김 위원장의 '해명 퍼레이드'가 시작됐습니다. 간담회 이튿날인 15일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각 그룹에서 시장과 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시해주길 부탁했고, 설명이 안 된다면 비상장 비주력 계열사 지분은 처분함으로써 논란을 해소해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있었던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선 "SI·물류 등이 주력 사업이고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으면 (지분을 매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해명은 점점 구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현 정부 공정거래정책 1년의 성과와 과제' 세미나 기조 강연에서는 "분명 비상장 계열사라고 했는데 어느 상장회사 주가가 폭락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다"며 "기본적으로 문제 삼은 부분은 주력사업이 아닌 비상장인 상태에서 대주주 일가가 다수 지분을 보유하면서 일감 몰아주기로 이익을 얻고 공정거래를 해치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입에서 삼성SDS가 직접 언급된 건 오늘(21일)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KBS 1라디오 '최강욱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삼성SDS는 내가 말했던 취지에 벗어나 있는 기업이었는데 시장에서 민감하게 반응(주가 폭락)했다"며 "삼성SDS는 한국 최고의 SI 기업으로, 상장회사이고 (삼성그룹의) 주력회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거듭된 해명에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김 위원장이 직접 삼성SDS를 최고의 SI 기업으로 인정하고, 주력 사업으로 확인까지 해 준 셈입니다.


'경제 검찰'의 위력에 맞는 신중한 말이 필요할 때

김 위원장과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해소 정책의 표적을 '비주력·비상장 업종'이라고 처음부터 못 박았다며 시장이 오해했다고 했지만, 오해를 풀기 위해 여러 번 해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속 오해를 한 사람을 탓한다고 논란이 잦아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정위는 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잡아내 1심 판결에 해당하는 제재를 가할 수 있어서 '경제 검찰'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특히, 경제 민주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는 경제 검찰의 말 한마디가 과거보다 더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듣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도록 말을 신중하게 하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기업들에 일감 몰아주기 해소에 자발적으로 나서달라는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현행법으로 제재할 수 없는 부분을 요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표현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 위원장을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 "말을 정말 잘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오랫동안 시민 단체를 이끌면서 '재벌 저격수'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한국의 경제 문제를 고민해 온 내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뛰어난 언변에 신중함까지 더한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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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3 08:02:44
    • 수정2018-06-23 09:16:50
    취재후·사건후
지난 1주일 동안 가장 많이 언론에 등장한 정부 기관장을 꼽으라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일 것입니다. 지난 14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시작으로 라디오, 신문 인터뷰와 세미나 모두 발언 등을 포함해 대여섯 차례 이상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취임 1주년을 맞이해 언론 인터뷰를 잡았을 것이고, 공정거래법 개정과 관련해 외부 활동이 많아지는 시기여서 횟수는 그리 특별하진 않습니다. 다만, 가는 곳마다 해명에 또 해명을 해야 했던 상황이 김 위원장의 취임 1주년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분 팔아라" 발언에 삼성SDS 주가 폭락

시작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발언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4일 간담회에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은 편법적 경영권 승계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거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SI(시스템 통합), 물류, 부동산 관리, 광고 등과 같이 그룹의 핵심 사업과 관련 없는 계열사에 총수 일가가 다수의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일감 몰아주기가 이뤄진다"고 언급하며 구체적인 업종까지 꼽았습니다.

"경영에 참여하는 직계 위주의 대주주 일가에서는 주력 핵심 계열사의 주식만을 보유하고 나머지는 가능한 한 빨리 매각해 주길 부탁한다"며 "대기업 집단의 대주주 일가들이 비주력, 비상장사의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공정위의 조사, 제재 대상이 될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고 발언을 마쳤습니다.

발언의 영향은 컸습니다. 삼성의 SI 업체인 삼성SDS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발언이 있었던 지난 14일 종가는 1주당 22만 8,500원이었는데 다음 날인 15일 19만 6,500원으로 14%가 떨어졌습니다. 삼성SDS는 비상장사가 아니라 상장사였지만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주가 책임져라" 반발에 거듭 해명
삼성SDS 주주들은 김 위원장과 공정위에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소액주주 카페에서는 '비핵심 계열사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어떤 국내법과 규정에 근거해 비핵심 계열사 대주주 주식을 매각하라는 것인가? '등을 질의한 질의서를 공정위에 발송했습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맡고 있는 공정위 기업집단국에 항의전화를 걸기도 했습니다.

재계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룹 계열사들의 시스템 보안 등을 책임지는 SI 업체는 보안 때문에 외부 업체에 맡길 수 없어서 내부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데, 지분을 팔라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업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김 위원장의 '해명 퍼레이드'가 시작됐습니다. 간담회 이튿날인 15일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각 그룹에서 시장과 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시해주길 부탁했고, 설명이 안 된다면 비상장 비주력 계열사 지분은 처분함으로써 논란을 해소해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있었던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선 "SI·물류 등이 주력 사업이고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으면 (지분을 매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해명은 점점 구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현 정부 공정거래정책 1년의 성과와 과제' 세미나 기조 강연에서는 "분명 비상장 계열사라고 했는데 어느 상장회사 주가가 폭락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다"며 "기본적으로 문제 삼은 부분은 주력사업이 아닌 비상장인 상태에서 대주주 일가가 다수 지분을 보유하면서 일감 몰아주기로 이익을 얻고 공정거래를 해치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입에서 삼성SDS가 직접 언급된 건 오늘(21일)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KBS 1라디오 '최강욱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삼성SDS는 내가 말했던 취지에 벗어나 있는 기업이었는데 시장에서 민감하게 반응(주가 폭락)했다"며 "삼성SDS는 한국 최고의 SI 기업으로, 상장회사이고 (삼성그룹의) 주력회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거듭된 해명에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김 위원장이 직접 삼성SDS를 최고의 SI 기업으로 인정하고, 주력 사업으로 확인까지 해 준 셈입니다.


'경제 검찰'의 위력에 맞는 신중한 말이 필요할 때

김 위원장과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해소 정책의 표적을 '비주력·비상장 업종'이라고 처음부터 못 박았다며 시장이 오해했다고 했지만, 오해를 풀기 위해 여러 번 해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속 오해를 한 사람을 탓한다고 논란이 잦아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정위는 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잡아내 1심 판결에 해당하는 제재를 가할 수 있어서 '경제 검찰'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특히, 경제 민주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는 경제 검찰의 말 한마디가 과거보다 더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듣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도록 말을 신중하게 하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기업들에 일감 몰아주기 해소에 자발적으로 나서달라는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현행법으로 제재할 수 없는 부분을 요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표현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 위원장을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 "말을 정말 잘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오랫동안 시민 단체를 이끌면서 '재벌 저격수'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한국의 경제 문제를 고민해 온 내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뛰어난 언변에 신중함까지 더한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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