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인생 40여 년 JP의 말…“정치는 허업”

입력 2018.06.23 (17:59) 수정 2018.06.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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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2세로 타계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 1963년 11월 충남 부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후 2004년 4월, 정계 은퇴 선언을 할 때까지 정치생활만 40여년이다. '촌철살인'으로 유명했던 그가 최근 남긴 말부터 정리해 본다.


"정치는 허업"
2015년 5월,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사진집 출판기념회에서 한 말은 '정치는 허업'이었다. 김 전 총리는 별로 자랑할 것 없는 부족한 지난날에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도 걱정을 끼친 정치 인생이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저기 있는 저의 집사람이 첫사랑이에요"
김 전 총리 부부는 해로했던 64년간 '잉꼬부부'로 유명했다. 부인 박영옥 여사가 3년 전 별세하자, 김 전 총리는 부인의 영정 앞에서 서럽게 흐느꼈다. 김 전 총리는 뇌졸중으로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병상의 아내를 간호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아주 편안하게 숨을 거뒀어...미구에 나도 갈 테니 몇 발짝 앞서 간 거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 상희 씨의 장녀로 태어난 박영옥 여사는 박 전 대통령의 소개로 김 전 총리와 결혼했다. 김 전 총리는 1997년 인터뷰에서 "엄격히 따지면 첫 사랑은 저기 있는 저의 집사람이 첫사랑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패전장수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김 전 총리는 2004년 4월 자민련 총재로 비례대표 1번에 출마했음에도 낙선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남긴 말은 "패전장수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였다. 국민들의 선택에 조건 없이 승복하겠다는 것이었다.

"몽니를 부리겠다"
김 전 총리는 내각제를 고리로 한 DJP 연합의 대가로 김대중 정부에서 내각 절반의 지분과 함께 생애 두 번째 국무총리가 됐다. 1998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하면서 "참다가 안 되면 몽니를 부리겠다"고 말했다.

"줄탁동기"
1997년 김 전 총리의 대선 후원조직인 민족중흥회 회보의 신년 휘호는 '줄탁동기'(啐啄同機)였다. 중국 송나라 선종의 대표적 전적인 벽암록에 나오는 글귀다. 병아리가 건강하게 부화하려면, 알 속에서 두드려 나갈 때가 됐음을 알리고 어미 닭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밖에서 알을 쪼아 껍데기를 깨줘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일은 시기가 적절히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당시 대선 정국에서 적절한 시기의 결단이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는 해석이 나왔다.

"충청도 사람이 핫바지냐"
충남 부여에서 국회의원을 시작해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유민주연합의 수장이었던 김 전 총재는 1995년 6월 지방선거 천안역 지원유세에서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 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라고 말하며 지역감정을 자극하기도 했다.

"춘래불사춘"
1980년 '서울의 봄'을 두고 김 전 총리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말했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이을 2인자로 주목받았고 이윽고 '3김'이 정치의 전면에 다시 나서는 듯했다. 그러나 신군부는 '3김'의 정치 활동을 금지했고, 김 전 총리는 부정축재 혐의로 연행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소요 조종 혐의로 붙잡혔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택 연금됐다. 당시 연행에 앞서 김 전 총리는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고 표현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김 전 총리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1년 6월부터 2년 간 중앙정보부 초대 중정부장을 지냈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이다. 당시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고 말했고, 지금도 국정원을 비유할 때 자주 쓰인다.

"자의 반 타의 반"
1963년 2월 중앙정보부장으로 공화당 창설을 주도하면서 실세 2인자로 부상했지만 창당 과정에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회전당구기 사건)'에 휘말렸다. 그 여파로 창당을 하루 앞두고 외유길에 나서며 한 말이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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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인생 40여 년 JP의 말…“정치는 허업”
    • 입력 2018-06-23 17:59:10
    • 수정2018-06-23 18:07:40
    취재K
향년 92세로 타계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 1963년 11월 충남 부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후 2004년 4월, 정계 은퇴 선언을 할 때까지 정치생활만 40여년이다. '촌철살인'으로 유명했던 그가 최근 남긴 말부터 정리해 본다.


"정치는 허업"
2015년 5월,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사진집 출판기념회에서 한 말은 '정치는 허업'이었다. 김 전 총리는 별로 자랑할 것 없는 부족한 지난날에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도 걱정을 끼친 정치 인생이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저기 있는 저의 집사람이 첫사랑이에요"
김 전 총리 부부는 해로했던 64년간 '잉꼬부부'로 유명했다. 부인 박영옥 여사가 3년 전 별세하자, 김 전 총리는 부인의 영정 앞에서 서럽게 흐느꼈다. 김 전 총리는 뇌졸중으로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병상의 아내를 간호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아주 편안하게 숨을 거뒀어...미구에 나도 갈 테니 몇 발짝 앞서 간 거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 상희 씨의 장녀로 태어난 박영옥 여사는 박 전 대통령의 소개로 김 전 총리와 결혼했다. 김 전 총리는 1997년 인터뷰에서 "엄격히 따지면 첫 사랑은 저기 있는 저의 집사람이 첫사랑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패전장수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김 전 총리는 2004년 4월 자민련 총재로 비례대표 1번에 출마했음에도 낙선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남긴 말은 "패전장수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였다. 국민들의 선택에 조건 없이 승복하겠다는 것이었다.

"몽니를 부리겠다"
김 전 총리는 내각제를 고리로 한 DJP 연합의 대가로 김대중 정부에서 내각 절반의 지분과 함께 생애 두 번째 국무총리가 됐다. 1998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하면서 "참다가 안 되면 몽니를 부리겠다"고 말했다.

"줄탁동기"
1997년 김 전 총리의 대선 후원조직인 민족중흥회 회보의 신년 휘호는 '줄탁동기'(啐啄同機)였다. 중국 송나라 선종의 대표적 전적인 벽암록에 나오는 글귀다. 병아리가 건강하게 부화하려면, 알 속에서 두드려 나갈 때가 됐음을 알리고 어미 닭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밖에서 알을 쪼아 껍데기를 깨줘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일은 시기가 적절히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당시 대선 정국에서 적절한 시기의 결단이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는 해석이 나왔다.

"충청도 사람이 핫바지냐"
충남 부여에서 국회의원을 시작해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유민주연합의 수장이었던 김 전 총재는 1995년 6월 지방선거 천안역 지원유세에서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 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라고 말하며 지역감정을 자극하기도 했다.

"춘래불사춘"
1980년 '서울의 봄'을 두고 김 전 총리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말했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이을 2인자로 주목받았고 이윽고 '3김'이 정치의 전면에 다시 나서는 듯했다. 그러나 신군부는 '3김'의 정치 활동을 금지했고, 김 전 총리는 부정축재 혐의로 연행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소요 조종 혐의로 붙잡혔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택 연금됐다. 당시 연행에 앞서 김 전 총리는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고 표현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김 전 총리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1년 6월부터 2년 간 중앙정보부 초대 중정부장을 지냈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이다. 당시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고 말했고, 지금도 국정원을 비유할 때 자주 쓰인다.

"자의 반 타의 반"
1963년 2월 중앙정보부장으로 공화당 창설을 주도하면서 실세 2인자로 부상했지만 창당 과정에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회전당구기 사건)'에 휘말렸다. 그 여파로 창당을 하루 앞두고 외유길에 나서며 한 말이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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