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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2인자’ JP…영욕 교차한 정치 인생
입력 2018.06.23 (21:09) 수정 2018.06.24 (13:13)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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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2인자’ JP…영욕 교차한 정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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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고인의 삶은 부침과 영욕이 교차한 한국 현대사 그 자체였습니다.

40여 년 동안 권력의 정점에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결국 대권은 차지하지 못하고 영원한 2인자로 남게 됐습니다.

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 인생을 김경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김종필 전 총리는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5·16 쿠데타를 일으키며, 한국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군사 독재 시절, 서슬 퍼렇던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초대 부장이 됐고, '오히라 메모'로 굴욕 외교 논란이 일었던 한일 청구권 협상을 막후에서 이끌었습니다.

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불거져 "자의반 타의반"이란 말을 남기고 외유를 떠난 적도 있었지만, 김 전 총리는 군사 정권 시절, 줄곧 2인자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1980년 신군부의 등장, 김 전 총리는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가 됐습니다.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고, 미국으로 쫓기듯 떠났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겨울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민주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정계에 복귀했고, '3당 합당'을 이끌어내며, 다시 한번 권력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김종필/전 국무총리/1990년 1월 : "90년대를 열어나가는 일꾼 노릇을 하자, 여기에 뜻을 같이 하는 어떤 사람도 환영을 한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던 정치적 변신은 계속됐습니다.

1992년 대선에선 김영삼 후보를 지원해, 당선의 1등 공신이 됐습니다.

그러나 민주계와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고, 이번엔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습니다.

계속된 대권 도전, 그러나 김 전 총리는 1997년 대선에서도 막판에 결국 '킹메이커'를 선택했습니다.

평생의 꿈이었던 내각제를 담보로, 김대중 후보에게 힘을 보탠 겁니다.

[김종필/전 국무총리/1997년 11월 : "운명공동체로서 피안의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같이 노를 저으며 풍파를 헤치고 힘차게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두 차례의 국무총리, 9선의 국회의원, 김 전 총리는 정치 인생 40여 년 동안 줄곧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3김' 가운데 유일하게 끝내 대권을 차지하지 못했고, 이제는 한국 정치사의 영원한 2인자로 남게 됐습니다.

[김종필/전 국무총리/2015년 5월 : "저의 정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정치는 허업, 바로 허업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떠올려봅니다."]

KBS 뉴스 김경진입니다.
  • ‘영원한 2인자’ JP…영욕 교차한 정치 인생
    • 입력 2018.06.23 (21:09)
    • 수정 2018.06.24 (13:13)
    뉴스 9
‘영원한 2인자’ JP…영욕 교차한 정치 인생
[앵커]

고인의 삶은 부침과 영욕이 교차한 한국 현대사 그 자체였습니다.

40여 년 동안 권력의 정점에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결국 대권은 차지하지 못하고 영원한 2인자로 남게 됐습니다.

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 인생을 김경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김종필 전 총리는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5·16 쿠데타를 일으키며, 한국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군사 독재 시절, 서슬 퍼렇던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초대 부장이 됐고, '오히라 메모'로 굴욕 외교 논란이 일었던 한일 청구권 협상을 막후에서 이끌었습니다.

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불거져 "자의반 타의반"이란 말을 남기고 외유를 떠난 적도 있었지만, 김 전 총리는 군사 정권 시절, 줄곧 2인자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1980년 신군부의 등장, 김 전 총리는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가 됐습니다.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고, 미국으로 쫓기듯 떠났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겨울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민주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정계에 복귀했고, '3당 합당'을 이끌어내며, 다시 한번 권력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김종필/전 국무총리/1990년 1월 : "90년대를 열어나가는 일꾼 노릇을 하자, 여기에 뜻을 같이 하는 어떤 사람도 환영을 한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던 정치적 변신은 계속됐습니다.

1992년 대선에선 김영삼 후보를 지원해, 당선의 1등 공신이 됐습니다.

그러나 민주계와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고, 이번엔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습니다.

계속된 대권 도전, 그러나 김 전 총리는 1997년 대선에서도 막판에 결국 '킹메이커'를 선택했습니다.

평생의 꿈이었던 내각제를 담보로, 김대중 후보에게 힘을 보탠 겁니다.

[김종필/전 국무총리/1997년 11월 : "운명공동체로서 피안의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같이 노를 저으며 풍파를 헤치고 힘차게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두 차례의 국무총리, 9선의 국회의원, 김 전 총리는 정치 인생 40여 년 동안 줄곧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3김' 가운데 유일하게 끝내 대권을 차지하지 못했고, 이제는 한국 정치사의 영원한 2인자로 남게 됐습니다.

[김종필/전 국무총리/2015년 5월 : "저의 정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정치는 허업, 바로 허업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떠올려봅니다."]

KBS 뉴스 김경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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