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암 환자 야유한 현역 의원…알고 보니 암 재단 이사

입력 2018.06.25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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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관련 재단 이사를 맡고 있는 일본 국회의원이 암 환자에게 공개적으로 야유를 보내 물의를 빚고 있다. 말을 함부로 내뱉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으레 그러하듯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로 대충 유감 표명하고 넘어가려다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불렀다. 결국 암 재단 이사에서 물러나기로 했지만, 비난이 쉽게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

암 환자에게 야유를 날린 집권당 국회의원

잔인한 언어 폭력의 장본인은 일본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 아나미 요이치(48세) 의원이다. 집권 자민당 소속으로, 오이타 암 연구 진흥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 6월 15일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가 간접흡연 억제대책을 강화한 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었다. 하세가와 가즈오 일본 폐암환자연락회의 이사장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실외 흡연장소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가능하면 담배 피우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나 흡연 장소가 없다면 흡연자 입장에서 괴로울 것이라는 점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때 아나미 의원이 "적당히 하라"며 야유조의 발언을 내뱉었다. 일본 언론은 국회의원이 참고인에게 '야지(ヤジ:야유)를 날렸다'면서, 무례를 지적했다.

하세가와 이사장은 당시 상항에 대해 "옥외 흡연장소에 대한 의견을 질문을 받고 '폐암 환자이므로 야외 흡연장소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흡연 장소가 없어지면 흡연자가 곤란해질 것은 안다'고 말했다. 흡연자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배려하는 의견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반응에 놀랐다. 폐암 환자의 심정을 호소하러 갔는데, 그렇게 돼서 슬프다"고 말했다.

이어 "간접흡연 대책을 강화하는 법률을 만들도록 국회의원들이 깊이 있는 논의를 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나쁜 의도 없었다" 사과인 듯 사과 아닌 사과 같은...

아나미 의원의 사실 인정과 사과는 엿새 뒤 사과문(코멘트) 형태로 나왔다. 논란이 벌어지면 직접 나서서 해명하거나 사과하는 여느 정치인과는 달랐다.


사과문의 주요 내용은 "참고인의 발언을 방해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흡연자를 필요 이상으로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또 "참고인과 관계자 여러분에게 불쾌감을 주었다면 진심으로 반성하고, 깊이 사과 드린다.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적었다.

사과의 형식도 내용도 모두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비난 여론은 더 커졌다.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 이사 간담회가 열렸다. 야당 측은 사실 관계 조사를 요구했다. 자민당은 당내 협의를 거쳐 곧 대응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 측 수석 이사를 맡고 있는 니시무라 입헌민주당 의원은 기자들에게 "자신의 발언 사실을 인정한 것은 좋지만, 국회 부탁으로 참석한 참고인에게 압력성 발언을 한 것은 매우 큰 문제이다. 참고인에게 직접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흡연에 온정적인 일본 문화...금연 운동, 정말 어렵다

후생노동위 참고인으로 함께 출석했던 아마노 전국 암환자단체 연합회의 이사장은 "폐암 환자 단체의 대표가 발언하고 있던 때에 '적당히 하라'는 야유를 두번 듣고 귀를 의심했다. 주위에 있던 의원들도 야유가 나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 단체의 대표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위원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었다. 이러한 야유가 나와서 슬프다. 간접흡연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이므로, 야유를 보내지 말고 제대로 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간접흡연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일본 정부는 정작 이 문제에 대해 말을 아꼈다. 정부 대변인 격인 스가 관방장관은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보도 내용은 알고 있지만, 사실 관계는 모른다. 국회의원의 발언 하나 하나에 정부로서 코멘트는 자제하겠다"면서 언급을 회피했다.

다카토리 중의원 후생노동위 위원장은 물의를 빚은 아나미 의원을 만나 엄중하게 주의를 줬다고 밝혔다. 또 위원회를 대표해 참고인 모두에게 사과문을 보내기로 했다.

의사 등으로 구성된 일본 금연학회는 발끈했다. 아나미 의원에게 항의문을 보내 "간접흡연으로 폐암이 발병한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며 말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 뭐라고 하는,분별없는 말을 퍼붓을 수 있나?"면서 강하게 비난했다.

더구나, 아니미 의원이 "흡연자를 필요 이상으로 차별해서는 안된다"며 흡연 문제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보여준 점도 문제가 됐다. 학회 측은 "간접흡연을 막고 생명과 건강을 지켜달라는 호소를 '차별'이라고 하는 것은 그릇된 인식에 근거한 적반하장에 불과하다. 강력히 항의한다"고 비판했다.

공동 여당인 공명당의 이노우에 간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다며 책임 있는 대응을 자민당에 요구했다. "참고인이 의견을 말할 때 잘못된 야유는 없어야 한다. 의견이 있으면 질의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국회 규칙을 모르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어 "암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 중 하나는 흡연이나 간접흡연을 없애는 것이다. 간접흡연 대책 관련 법 개정안을 어떻게든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싶다. 자민당이 책임을 갖고 대응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암 재단 이사가 흡연권 지킴이?...암환자는 괴롭다

물의를 빚은 아나미 의원은 공교롭게도 암 치료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의 이사였다. 오이타 암 연구 진흥재단(오이타 현 유후 시)의 이사를 맡아 온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다. 암 환자의 권익을 지켜야 할 위치에서 폐암 환자가 아닌 흡연자의 입장을 대변한 셈이 된 것이다.

아나미 의원은 22일 암 연구 재단 이사의 사임 신고서를 제출했다. 재단 이사장은 사과문을통해 "참고인과 전국의 암 환자, 그 가족들에게 매우 불쾌한 감정을 품게 했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집권당 의원이 암 환자를 내놓고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간접흡연 방지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자민당 후생노동부 모임이 열렸다. 도쿄 도당 부위원장인 오니시 히데오 중의원 의원은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일하지 않아서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비난의 목소리가 커진 뒤에야, 본심을 그것이 아니었다며 사과했다. 암 환자 관련 단체는 분노보다 슬픔이 앞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자를 조롱하면 용기가 되지만, 약자를 조롱하면 폭력이 된다. 돌이켜보면 일본의 일부 정치인이나 각료들 사이에서 유독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이 고질병처럼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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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암 환자 야유한 현역 의원…알고 보니 암 재단 이사
    • 입력 2018-06-25 07:21:17
    특파원 리포트
암 관련 재단 이사를 맡고 있는 일본 국회의원이 암 환자에게 공개적으로 야유를 보내 물의를 빚고 있다. 말을 함부로 내뱉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으레 그러하듯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로 대충 유감 표명하고 넘어가려다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불렀다. 결국 암 재단 이사에서 물러나기로 했지만, 비난이 쉽게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

암 환자에게 야유를 날린 집권당 국회의원

잔인한 언어 폭력의 장본인은 일본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 아나미 요이치(48세) 의원이다. 집권 자민당 소속으로, 오이타 암 연구 진흥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 6월 15일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가 간접흡연 억제대책을 강화한 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었다. 하세가와 가즈오 일본 폐암환자연락회의 이사장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실외 흡연장소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가능하면 담배 피우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나 흡연 장소가 없다면 흡연자 입장에서 괴로울 것이라는 점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때 아나미 의원이 "적당히 하라"며 야유조의 발언을 내뱉었다. 일본 언론은 국회의원이 참고인에게 '야지(ヤジ:야유)를 날렸다'면서, 무례를 지적했다.

하세가와 이사장은 당시 상항에 대해 "옥외 흡연장소에 대한 의견을 질문을 받고 '폐암 환자이므로 야외 흡연장소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흡연 장소가 없어지면 흡연자가 곤란해질 것은 안다'고 말했다. 흡연자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배려하는 의견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반응에 놀랐다. 폐암 환자의 심정을 호소하러 갔는데, 그렇게 돼서 슬프다"고 말했다.

이어 "간접흡연 대책을 강화하는 법률을 만들도록 국회의원들이 깊이 있는 논의를 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나쁜 의도 없었다" 사과인 듯 사과 아닌 사과 같은...

아나미 의원의 사실 인정과 사과는 엿새 뒤 사과문(코멘트) 형태로 나왔다. 논란이 벌어지면 직접 나서서 해명하거나 사과하는 여느 정치인과는 달랐다.


사과문의 주요 내용은 "참고인의 발언을 방해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흡연자를 필요 이상으로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또 "참고인과 관계자 여러분에게 불쾌감을 주었다면 진심으로 반성하고, 깊이 사과 드린다.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적었다.

사과의 형식도 내용도 모두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비난 여론은 더 커졌다.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 이사 간담회가 열렸다. 야당 측은 사실 관계 조사를 요구했다. 자민당은 당내 협의를 거쳐 곧 대응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 측 수석 이사를 맡고 있는 니시무라 입헌민주당 의원은 기자들에게 "자신의 발언 사실을 인정한 것은 좋지만, 국회 부탁으로 참석한 참고인에게 압력성 발언을 한 것은 매우 큰 문제이다. 참고인에게 직접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흡연에 온정적인 일본 문화...금연 운동, 정말 어렵다

후생노동위 참고인으로 함께 출석했던 아마노 전국 암환자단체 연합회의 이사장은 "폐암 환자 단체의 대표가 발언하고 있던 때에 '적당히 하라'는 야유를 두번 듣고 귀를 의심했다. 주위에 있던 의원들도 야유가 나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 단체의 대표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위원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었다. 이러한 야유가 나와서 슬프다. 간접흡연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이므로, 야유를 보내지 말고 제대로 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간접흡연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일본 정부는 정작 이 문제에 대해 말을 아꼈다. 정부 대변인 격인 스가 관방장관은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보도 내용은 알고 있지만, 사실 관계는 모른다. 국회의원의 발언 하나 하나에 정부로서 코멘트는 자제하겠다"면서 언급을 회피했다.

다카토리 중의원 후생노동위 위원장은 물의를 빚은 아나미 의원을 만나 엄중하게 주의를 줬다고 밝혔다. 또 위원회를 대표해 참고인 모두에게 사과문을 보내기로 했다.

의사 등으로 구성된 일본 금연학회는 발끈했다. 아나미 의원에게 항의문을 보내 "간접흡연으로 폐암이 발병한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며 말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 뭐라고 하는,분별없는 말을 퍼붓을 수 있나?"면서 강하게 비난했다.

더구나, 아니미 의원이 "흡연자를 필요 이상으로 차별해서는 안된다"며 흡연 문제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보여준 점도 문제가 됐다. 학회 측은 "간접흡연을 막고 생명과 건강을 지켜달라는 호소를 '차별'이라고 하는 것은 그릇된 인식에 근거한 적반하장에 불과하다. 강력히 항의한다"고 비판했다.

공동 여당인 공명당의 이노우에 간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다며 책임 있는 대응을 자민당에 요구했다. "참고인이 의견을 말할 때 잘못된 야유는 없어야 한다. 의견이 있으면 질의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국회 규칙을 모르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어 "암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 중 하나는 흡연이나 간접흡연을 없애는 것이다. 간접흡연 대책 관련 법 개정안을 어떻게든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싶다. 자민당이 책임을 갖고 대응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암 재단 이사가 흡연권 지킴이?...암환자는 괴롭다

물의를 빚은 아나미 의원은 공교롭게도 암 치료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의 이사였다. 오이타 암 연구 진흥재단(오이타 현 유후 시)의 이사를 맡아 온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다. 암 환자의 권익을 지켜야 할 위치에서 폐암 환자가 아닌 흡연자의 입장을 대변한 셈이 된 것이다.

아나미 의원은 22일 암 연구 재단 이사의 사임 신고서를 제출했다. 재단 이사장은 사과문을통해 "참고인과 전국의 암 환자, 그 가족들에게 매우 불쾌한 감정을 품게 했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집권당 의원이 암 환자를 내놓고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간접흡연 방지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자민당 후생노동부 모임이 열렸다. 도쿄 도당 부위원장인 오니시 히데오 중의원 의원은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일하지 않아서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비난의 목소리가 커진 뒤에야, 본심을 그것이 아니었다며 사과했다. 암 환자 관련 단체는 분노보다 슬픔이 앞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자를 조롱하면 용기가 되지만, 약자를 조롱하면 폭력이 된다. 돌이켜보면 일본의 일부 정치인이나 각료들 사이에서 유독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이 고질병처럼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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