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진 당혹…알쏭달쏭한 北 철도 대표의 말말말

입력 2018.06.26 (16:46) 수정 2018.06.26 (16:5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26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남북 철도협력 분과회의가 열렸습니다.

오늘(26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남북 철도협력 분과회의가 열렸습니다.

남북 정상이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동해선·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사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남북의 철도 협력 논의는 2008년 이후 10년 만입니다.

북측 수석대표인 김윤혁 철도성 부상은 전체회의 모두 발언에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북남 철도 사업에서는 쌍방의 마음과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반가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쏟아지는 김 부상의 발언은 현장 취재진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김윤혁 / 북한 철도성 부상
우리 경제 사업에서 철도는 경제의 ‘선인관’이라고도 말하고, 또 우리 사업에서 북남 철도 협력 사업이 ‘경기’와 같은 이런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터지는 사진기자의 플래쉬 소리에 묻혀 김윤혁 부상의 목소리는 남측 공동 취재단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경제의 선인관”, “북남 철도 협력 사업의 경기” 등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녹취록을 전달받은 서울 통일부 기자단 역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다행히 ‘선인관’이라는 표현은 ‘선행관’이라는 단어의 발음을 잘못 받아 적은 것으로 바로 정리가 됐습니다.

선행관은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비교적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선행-관 (先行官)
「명사」
「1」『역사』임금의 행차에 앞서가면서 준비를 시키던 벼슬아치.
「2」『북한어』앞서 나가야 할 부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하지만 ‘경기’라는 녹취록 표현에 대해서는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통일부 분석국은 "경기란 '경맥의 기'란 의미로써, 정맥 속을 돌아다니면서 운동기능이 진행되게 영양물질을 공급하는 역할이란 뜻"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듣고 보니 그럴 듯 했습니다. 철도가 물류의 핵심이고, 경기 역시 혈류의 핵심일 테니까요.

하지만, 현지에 있던 공동 취재단이 북한 관계자들을 붙잡고 질문을 거듭한 결과, ‘경기’가 아니라 ‘견인기’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견인기 (牽引機)
[명사]
1. 어떤 물체를 끌어당기는 기구.
2. '견인 기관차'의 북한어.

선행관도, 견인기도 남측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서, 말로만 들었을 땐 아주 낯설고 무슨 말인지 받아쓰기조차 쉽지 않았던 겁니다. 철도 연결만큼이나 언어의 연결도 쉽지 않았습니다.

김윤혁 / 북한 철도성 부상김윤혁 / 북한 철도성 부상

김 부상의 또 다른 말은 현장에서 웃지 못 할 해프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김윤혁 / 북한 철도성 부상
"두 줄기 궤도에 곡성이 있을 수 있지만, 민족이 동맥을 하나로 이어나가는 쌍방이 마음과 의지에는 곡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녹음기를 되돌려도 분명히 ‘곡성’이었습니다. 김 부상이 말한 '곡성'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영화 제목일까요?

처음에 현장에 있던 공동 취재단은 '열차 궤도에서 일어나는 쇳소리 같은 잡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통일부 분석국은 또 다른 해석을 내놨습니다. 곡성은 '성문을 밖으로 둘러 가려서 구부러지게 쌓은 성'이란 뜻으로, 북한에서는 속임수나 꼼수로 자주 쓴다는 겁니다. 쌍방의 마음에 꼼수가 없도록 하자, 그런 뜻일까요?

그래도 명쾌하지가 않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공동취재단은 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북측 관계자를 다시 붙잡고 "도대체 곡성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습니다.

북측 관계자의 대답은 취재단 모두를 실소하게 만들었습니다. 김 부상이 말한 건 곡성이 아니라 '곡선(曲線)'이라고 했습니다.

김윤혁 / 북한 철도성 부상
"두 줄기 궤도에 곡선이 있을 수 있지만, 민족이 동맥을 하나로 이어나가는 쌍방의 마음과 의지에는 곡선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야 확실히 이해가 갔습니다. 민족의 동맥을 이어나가는 마음과 의지는 곡선이 아니라 직선이다, 이런 뜻이었던 겁니다.

김 부상의 발음을 잘못 들은 건데, 북한에 '곡성'이라는 말이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기자들과 당국조차도 엉뚱한 해석들을 했습니다.


북한 김 부상의 말을 다시 곱씹어보면, 북한이 철도 문제를 얼마나 중요한 경제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철도 연결을 최우선 경협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읽힙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남측 취재진은 김 부상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10년 동안 떨어졌던 시간만큼 남과 북의 언어의 거리도 더 멀어진 것 같습니다.

철도가 연결이 되고, 자연스럽게 말도 막힘없이 연결될 날을 기다려 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진 당혹…알쏭달쏭한 北 철도 대표의 말말말
    • 입력 2018-06-26 16:46:40
    • 수정2018-06-26 16:52:55
    취재K
오늘(26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남북 철도협력 분과회의가 열렸습니다.

오늘(26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남북 철도협력 분과회의가 열렸습니다.

남북 정상이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동해선·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사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남북의 철도 협력 논의는 2008년 이후 10년 만입니다.

북측 수석대표인 김윤혁 철도성 부상은 전체회의 모두 발언에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북남 철도 사업에서는 쌍방의 마음과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반가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쏟아지는 김 부상의 발언은 현장 취재진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김윤혁 / 북한 철도성 부상
우리 경제 사업에서 철도는 경제의 ‘선인관’이라고도 말하고, 또 우리 사업에서 북남 철도 협력 사업이 ‘경기’와 같은 이런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터지는 사진기자의 플래쉬 소리에 묻혀 김윤혁 부상의 목소리는 남측 공동 취재단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경제의 선인관”, “북남 철도 협력 사업의 경기” 등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녹취록을 전달받은 서울 통일부 기자단 역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다행히 ‘선인관’이라는 표현은 ‘선행관’이라는 단어의 발음을 잘못 받아 적은 것으로 바로 정리가 됐습니다.

선행관은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비교적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선행-관 (先行官)
「명사」
「1」『역사』임금의 행차에 앞서가면서 준비를 시키던 벼슬아치.
「2」『북한어』앞서 나가야 할 부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하지만 ‘경기’라는 녹취록 표현에 대해서는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통일부 분석국은 "경기란 '경맥의 기'란 의미로써, 정맥 속을 돌아다니면서 운동기능이 진행되게 영양물질을 공급하는 역할이란 뜻"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듣고 보니 그럴 듯 했습니다. 철도가 물류의 핵심이고, 경기 역시 혈류의 핵심일 테니까요.

하지만, 현지에 있던 공동 취재단이 북한 관계자들을 붙잡고 질문을 거듭한 결과, ‘경기’가 아니라 ‘견인기’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견인기 (牽引機)
[명사]
1. 어떤 물체를 끌어당기는 기구.
2. '견인 기관차'의 북한어.

선행관도, 견인기도 남측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서, 말로만 들었을 땐 아주 낯설고 무슨 말인지 받아쓰기조차 쉽지 않았던 겁니다. 철도 연결만큼이나 언어의 연결도 쉽지 않았습니다.

김윤혁 / 북한 철도성 부상
김 부상의 또 다른 말은 현장에서 웃지 못 할 해프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김윤혁 / 북한 철도성 부상
"두 줄기 궤도에 곡성이 있을 수 있지만, 민족이 동맥을 하나로 이어나가는 쌍방이 마음과 의지에는 곡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녹음기를 되돌려도 분명히 ‘곡성’이었습니다. 김 부상이 말한 '곡성'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영화 제목일까요?

처음에 현장에 있던 공동 취재단은 '열차 궤도에서 일어나는 쇳소리 같은 잡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통일부 분석국은 또 다른 해석을 내놨습니다. 곡성은 '성문을 밖으로 둘러 가려서 구부러지게 쌓은 성'이란 뜻으로, 북한에서는 속임수나 꼼수로 자주 쓴다는 겁니다. 쌍방의 마음에 꼼수가 없도록 하자, 그런 뜻일까요?

그래도 명쾌하지가 않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공동취재단은 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북측 관계자를 다시 붙잡고 "도대체 곡성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습니다.

북측 관계자의 대답은 취재단 모두를 실소하게 만들었습니다. 김 부상이 말한 건 곡성이 아니라 '곡선(曲線)'이라고 했습니다.

김윤혁 / 북한 철도성 부상
"두 줄기 궤도에 곡선이 있을 수 있지만, 민족이 동맥을 하나로 이어나가는 쌍방의 마음과 의지에는 곡선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야 확실히 이해가 갔습니다. 민족의 동맥을 이어나가는 마음과 의지는 곡선이 아니라 직선이다, 이런 뜻이었던 겁니다.

김 부상의 발음을 잘못 들은 건데, 북한에 '곡성'이라는 말이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기자들과 당국조차도 엉뚱한 해석들을 했습니다.


북한 김 부상의 말을 다시 곱씹어보면, 북한이 철도 문제를 얼마나 중요한 경제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철도 연결을 최우선 경협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읽힙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남측 취재진은 김 부상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10년 동안 떨어졌던 시간만큼 남과 북의 언어의 거리도 더 멀어진 것 같습니다.

철도가 연결이 되고, 자연스럽게 말도 막힘없이 연결될 날을 기다려 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