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으로 들어온 구두 이야기…수제화 특별전

입력 2018.06.2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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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 사진 속 반짝이는 구두 '눈길'

수염을 곱게 다듬고, 연미복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사진기 앞에 앉은 고종 황제. 정갈한 차림새를 완성하는 건 그의 구두입니다. 구두만큼은 1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 신는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것 같지 않습니다. 영화 <킹스맨>에도 언급돼 유명해진 구두, '브로그 없는 옥스포드'입니다.

지난해에도 한 켤레의 구두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었던 낡은 수제화 얘깁니다. 대통령 취임 전인 2016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 도중 무릎을 꿇은 대통령의 신발 바닥은 헐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자주 신었으면…' 에서, '그런데 어디 구두이기에 저렇게 자주 신었지?' 로 사람들의 궁금증이 이어졌죠.


왕과 대통령, 두 권력자 구두의 공통점은 '수제화'

이렇게 구두에 얽힌 이야기를 모은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냥 구두 말고, 특별히 수제화에 집중했습니다. 제목은 '세대를 넘어-수제화장인' 특별전시회.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장 안에 들어가면 구두약 냄새가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전시장의 가운데, 가장 넓은 공간에 구두 공방을 꾸며 놓았기 때문입니다. 접객, 즉 손님맞이부터 가죽 재단, 재료를 바느질하는 과정인 '갑피', 바닥과 결합하는 '저부'에 이르기까지 크게 네 가지 과정을 거쳐야 수제화가 완성됩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전자제품 조립하는 과정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무수한 사람 손길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천 번의 망치질이 있어야 수제화 한 켤레가 완성된다' 전시장 한편에서 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똑같은 건 안 팔아요' 80여 년 이어온 수제화 가게가 주인공

시간과 노력이 지나치게 많이 드는 이 과정을 요즘도 이어가는 업체 역시 전시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송림제화', 을지로 수표교에서 83년 동안 구두를 팔고 있는 상점이죠. 발이 불편한 사람들, 산악인 등이 주요 고객인 이곳에서는 절대로 똑같은 모형으로 제작한 구두를 팔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발을 본뜬 목형을 만들어서, 그 사람의 생활 환경을 고려한 재료를 사용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품을 만듭니다.


왜 수제화 이야기에 주목했나? '장인'의 중요성

요즘 세태와 거리가 있는 이런 풍경들을 굳이 전시장 안으로 끌고 온 이유는 뭘까요? 박물관 측은 '장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종 황제의 구두를 만들었을 이름 모를 선조부터, 에베레스트 산도 등정할 튼튼한 구두를 만든 업체에 이르기까지 재주와 사명감이 투철한 '구두장인'이 늘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겁니다. 과거엔 갖바치라고 천대받았고, 요즘도 어깨를 구부린 채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누구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이요.

전시 막바지에는 그래서 수제화 장인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 보여줍니다. 왜 이 일을 선택했느냐고 물으면 쑥스러워하면서도 "손님들이 이 신발을 신으면 '살겠다'고 만족하는 게 좋았다"는 대답을 하죠. 손님의 불평이 싫지 않느냐고 하면 "그 불평이 우리의 선생님이다"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특별한 꾸밈이 없어도 그 인터뷰들이 묘한 감동을 줍니다. 전시에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챙겨봐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는 장인을 어떻게 대접하는가? 전시가 던지는 질문

전시에 등장한 송림제화가 10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가는 이유는, 직원에게 충분한 휴식시간과 임금을 주어 '장인'다운 대접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최근 터무니없이 적은 공임에 항의하며 시위에 나선 제화노동자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집니다. 일본 같은 장인이 왜 우리 사회에 없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전시는 얘기합니다. 우리는 장인을 존중하고 있나요? "나라에서 존경받는 것이 그곳에서 양성될 것이다" 플라톤이 한 말입니다.


주말엔 수제화 만들기 시범…'신발 주인 찾기' 이벤트도

7월부터는 주말마다 전시장에서 수제화를 만드는 과정을 시연합니다. 앞서 언급된 송림제화의 장인들이 전시장에 직접 와서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구두를 만듭니다. 신데렐라 찾듯 치수가 맞는 사람에게 구두를 공짜로 선사하는 이벤트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세대를 넘어 - 수제화장인' 특별전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 6월 20일~10월 15일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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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장으로 들어온 구두 이야기…수제화 특별전
    • 입력 2018-06-29 10:15:01
    취재K
고종 황제 사진 속 반짝이는 구두 '눈길'

수염을 곱게 다듬고, 연미복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사진기 앞에 앉은 고종 황제. 정갈한 차림새를 완성하는 건 그의 구두입니다. 구두만큼은 1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 신는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것 같지 않습니다. 영화 <킹스맨>에도 언급돼 유명해진 구두, '브로그 없는 옥스포드'입니다.

지난해에도 한 켤레의 구두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었던 낡은 수제화 얘깁니다. 대통령 취임 전인 2016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 도중 무릎을 꿇은 대통령의 신발 바닥은 헐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자주 신었으면…' 에서, '그런데 어디 구두이기에 저렇게 자주 신었지?' 로 사람들의 궁금증이 이어졌죠.


왕과 대통령, 두 권력자 구두의 공통점은 '수제화'

이렇게 구두에 얽힌 이야기를 모은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냥 구두 말고, 특별히 수제화에 집중했습니다. 제목은 '세대를 넘어-수제화장인' 특별전시회.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장 안에 들어가면 구두약 냄새가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전시장의 가운데, 가장 넓은 공간에 구두 공방을 꾸며 놓았기 때문입니다. 접객, 즉 손님맞이부터 가죽 재단, 재료를 바느질하는 과정인 '갑피', 바닥과 결합하는 '저부'에 이르기까지 크게 네 가지 과정을 거쳐야 수제화가 완성됩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전자제품 조립하는 과정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무수한 사람 손길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천 번의 망치질이 있어야 수제화 한 켤레가 완성된다' 전시장 한편에서 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똑같은 건 안 팔아요' 80여 년 이어온 수제화 가게가 주인공

시간과 노력이 지나치게 많이 드는 이 과정을 요즘도 이어가는 업체 역시 전시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송림제화', 을지로 수표교에서 83년 동안 구두를 팔고 있는 상점이죠. 발이 불편한 사람들, 산악인 등이 주요 고객인 이곳에서는 절대로 똑같은 모형으로 제작한 구두를 팔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발을 본뜬 목형을 만들어서, 그 사람의 생활 환경을 고려한 재료를 사용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품을 만듭니다.


왜 수제화 이야기에 주목했나? '장인'의 중요성

요즘 세태와 거리가 있는 이런 풍경들을 굳이 전시장 안으로 끌고 온 이유는 뭘까요? 박물관 측은 '장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종 황제의 구두를 만들었을 이름 모를 선조부터, 에베레스트 산도 등정할 튼튼한 구두를 만든 업체에 이르기까지 재주와 사명감이 투철한 '구두장인'이 늘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겁니다. 과거엔 갖바치라고 천대받았고, 요즘도 어깨를 구부린 채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누구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이요.

전시 막바지에는 그래서 수제화 장인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 보여줍니다. 왜 이 일을 선택했느냐고 물으면 쑥스러워하면서도 "손님들이 이 신발을 신으면 '살겠다'고 만족하는 게 좋았다"는 대답을 하죠. 손님의 불평이 싫지 않느냐고 하면 "그 불평이 우리의 선생님이다"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특별한 꾸밈이 없어도 그 인터뷰들이 묘한 감동을 줍니다. 전시에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챙겨봐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는 장인을 어떻게 대접하는가? 전시가 던지는 질문

전시에 등장한 송림제화가 10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가는 이유는, 직원에게 충분한 휴식시간과 임금을 주어 '장인'다운 대접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최근 터무니없이 적은 공임에 항의하며 시위에 나선 제화노동자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집니다. 일본 같은 장인이 왜 우리 사회에 없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전시는 얘기합니다. 우리는 장인을 존중하고 있나요? "나라에서 존경받는 것이 그곳에서 양성될 것이다" 플라톤이 한 말입니다.


주말엔 수제화 만들기 시범…'신발 주인 찾기' 이벤트도

7월부터는 주말마다 전시장에서 수제화를 만드는 과정을 시연합니다. 앞서 언급된 송림제화의 장인들이 전시장에 직접 와서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구두를 만듭니다. 신데렐라 찾듯 치수가 맞는 사람에게 구두를 공짜로 선사하는 이벤트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세대를 넘어 - 수제화장인' 특별전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 6월 20일~10월 15일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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